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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Chapter 2. 성장의 방정식 - 2

햇살이 밝다. 바람이 시원하다. 더구나 오늘은 아침부터 게이트가 발생하는 일도 없어 여유로운 오전의 티타임을 즐길 수 있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아니······ 실은 오늘 구름이 껴도, 바람이 불지 않아도, S급의 게이트가 발생해 출동을 했더라도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흐음, 흠흠······.”

수백만에 이르는 전 세계의 초인 중에서도 손꼽히는 능력자, 국제 초인 랭킹 317위에 빛나는 대한민국 20대 초인의 자존심.

한국뿐만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인, 뇌제 신은아는 오늘 하루 내내 무척 들떠 있었다. 사무실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그녀의 콧노래에 지나가던 이들 모두 의아해했다.

“뇌제 님 요즘 무슨 일 있으셔?”

“나 오늘 한 번도 안 혼났어.”

“아까부터 계속 웃고 계시잖아. 점심시간에 마주쳤는데 너무 예뻐서 심정지 오는 줄 알았어.”

“그분 앞에선 외모 얘기 하지 마라. 질색하시니까.”

“내가 미쳤냐.”

SS급의 특성 [뇌전의 지배자]를 타고난 신은아는 어린 나이부터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비스크 돌처럼 아리따운 미모도 그에 한몫 했지만, 그녀의 찬란하게 빛나는 재능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었다.

국제 초인 랭킹 1만 위 안에 들어가는 초인 부모를 둔 그녀는 까마득한 어린 나이부터 최고의 초인이 되기 위한 엘리트 교육을 받았고, 초인학교를 졸업할 즈음엔 이미 국제 초인 랭킹 1천 위 안에 가뿐히 들 정도의 S랭크 능력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세계 유수의 대형 길드 모두의 러브콜을 거절하고 그녀가 선택한 거처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 초인협회.

물론 명예로운 자리이지만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한 것에 의아해하는 이는 많았다. 대한민국 정부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보상의 두 배, 세 배 이상의 것을 내어줄 수 있는 길드가 당장 한국에만도 두어 곳은 되었으니까.

“조장님, 실례하겠습니다.”

“들어오세요.”

초인협회 특무부(특수임무부대)는 초인협회에 속한 일반 초인들이 해결하기 힘든 고난이도의 임무를 맡아 해결하는 특수부대였다.

당연히 초인협회에서도 손꼽히는 전투력을 지닌 초인들만이 배속되는 곳으로, 신은아는 그중에서도 1조의 조장을 맡고 있었다.

“나흘 전 있었던 A급 게이트 K-SEn4017의 사건 기록입니다. 특무부 7조가 출동하여 추가 피해자가 나오기 전 피의자 구속을 완료, 사건은 종결되었습니다.”

“아, 네. 음. 음음.”

신은아는 노골적으로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지 비서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보고서를 팔락팔락 넘겼다.

복잡한 이권이 얽힌 사건이었지만 요는 이 사건 때문에 특무부 몇 명이 출동해 어떻게 진압했는가, 그뿐이다.

어지간한 사건은 1조까지 오지 않고 끝나지만, 그녀는 언제 있을지 모르는 공동작전에 대비해 다른 조의 사건기록까지 모두 보고서로 받아보고 있었다.

“오후의 게이트 예보는 어떻죠?”

보고서를 대충 훑은 그녀는 그것을 내팽개치며 물었다. 비서는 속으로만 한숨을 내쉬며 답변했다.

“이레귤러는 전무. C급 이상의 유동 게이트 8건 중 8건 모두 무사낙찰되었습니다.”

“문제없네. 그럼 퇴근할게요.”

“오늘도 연금술사 님과 함께하십니까?”

“네. 무슨 문제라도?”

뇌제가 미국의 하이랭커(479위)인 연금술사 클레어 보일과 친구 사이라는 것은 초인 이슈에 밝은 이라면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대체 어디서 접점이 있었는지 아는 이는 없다. 둘의 나이가 비슷하긴 하지만 활동 영역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아뇨, 아닙니다. 하지만 그분의 접근에 혹 미국의 스카우트 의도가······.”

“걔가?”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좋은 하루되시길!”

신은아가 비서의 말에 살포시 인상을 찡그리며 반문하는 순간, 머릿속이 얼어붙은 비서는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고는 도망치듯 사무실을 나갔다.

그녀는 잠시 멍하니 있었으나 이내 작은 한숨을 불어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딱히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오늘 내내 맑았던 마음에 잠시 먹구름이 끼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있는 일도 아닌지라 금방 털어낼 수 있었다.

저런 어찌되든 좋은 사람이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든 이제와 신경 쓰지 않는다. 한때는 많이 슬펐고 많이 울었지만 이젠 괜찮았다.

할부지가 돌아왔으니까.

그녀에게 다시 말을 걸어주었으니까.

“사기꾼이 분명해.”

퇴근 후 초인상가에서 합류한 동갑내기 친구, 클레어 보일은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입술을 삐죽였다. 맵시 좋게 묶어 내린 붉은 포니테일이 그녀의 감정을 나타내듯 깡총깡총 뛰었다.

“환생이라니 말이 돼? 그 난다 긴다 하는 천재들이 모여드는 히어로 유니버스에도 여태껏 그런 케이스는 나타난 적이 없다면서.”

“영혼도 있는데 환생이 왜 말이 안 돼. ······게다가 우리 할부지는 천재니까.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 혼자 그 무수한 아티팩트를 만들어낸 진짜배기 천재.”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있지만 사실 뇌제와 연금술사에겐 한 가지 은밀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둘이 히어로 유니버스라는 비밀의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

고등학생이 되던 그 날 능력을 각성한 클레어 보일은 바로 히어로 유니버스에 접속하게 되었고, 거기서 신은아와 만났다.

우연히 사는 세계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된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으며, 성인이 되어 운신의 자유를 얻은 지금은 국가의 경계를 떠나 잦은 만남을 가지며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너 속고 있는 거야. 그냥 같은 아이디를 만든 신규 유저인 게 확실하다니까.”

“그런 거 아니야. 할부지가 직접 다 설명해줬어. 게다가 기억은 없어도 성격은 완전히 할부지 그대로였어. 내가 할부지를 못 알아볼 리가 없잖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 그래서? 히어로 유니버스에 접속한 거면 뭔가 능력을 각성한 거야?”

“그건 안 물어봤어. 하지만 할부지니까 전과 같은 아티팩트 제작 능력이겠지.”

신은아는 그런 말과 함께 흐뭇하게 웃으며 앞머리에 장식한 헤어핀을 만지작거렸다.

평생 웃는 법이 없던 애가 저렇게 노골적인 미소를 짓다니, 누가 보면 사랑에 빠진 소녀인 줄 알겠네······ 클레어 보일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기꾼인데. 그런 영감 신경 쓸 시간에 연애라도 하라니까? 이 의뢰만 끝나면 나 뉴욕 돌아가야 하는 거 알잖아. 그 전에 함께 서울의 밤을 즐기자, 응?”

“그런 곳은 싫어.”

“대체 왜? 기껏 초인 전용 클럽이 있는데 왜 안 가겠다는 거야?”

초인 전용 클럽. 말 그대로 초인들만 입장할 수 있는 클럽이었다. 게이트 발생 이래 세계 초인 무대의 중심지가 된 서울이기에 설립될 수 있었던 초인 VIP 시설.

신은아는 어떻게든 자신을 끌고 클럽에 가고 싶어 하는 친구를 바라보며 별 고민도 하지 않고 답했다.

“할부지랑 착한 아이로 있기로 약속했거든.”

“또 그놈의 할부지! 킁, 이젠 됐어. 야누스의 의뢰나 빨리 해치우자. 그······ 신살검 찾기라는 거.”

‘할부지’ 문제로 얘길 하다 보면 끝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은 클레어 보일이 한숨을 쉬며 화제를 돌렸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여기에도 역시 ‘할부지’가 관계되어 있었다.

“어젠 분명히 이 근처에서 느껴졌었는데, 오늘은 또 기운이 사그라졌어.”

“어떤 놈이 이미 가져간 거 아냐?”

지금 그녀들이 있는 곳은 초인상가에서도 제법 구석진 골목이었다. 히어로 유니버스에서 알고 지내는 강자 중 한 명인 ‘야누스’의 의뢰를 받아, 지구로 떨어졌다는 그의 애검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 리가. 기운이 꽁꽁 감춰져있어서 할부지가 만든 헤어핀이 아니면 반응을 찾아낼 수도 없을 거라고 했었는데.”

“사진으로 보니까 검날까지 시커먼 것이 엄청 사연 있어 보이던데······ 아, 저기 함 가보자. 사연 있는 물건 많이 굴러들어올 것처럼 보이는데.”

연신 헤어핀을 매만지며 주위 마력을 탐색하던 신은아가 친구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골목 어귀, 자그맣게 자리 잡고 있는 전당포였다. 무려 초인들에게 담보를 잡고 돈을 빌려주는 곳인 만큼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래, 가보자.”

“응. 으으, 찾아내면 약속대로 HP나 많이 주면 좋겠다. 안 그래도 사고 싶은 칵테일 재료가 있었는데 그게 한 뿌리에 무려 300만이 넘어간다니까! 믿겨져? 300만이라고!”

“그래, 그래.”

“그런데 야누스는 대체 뭘 하길래 그렇게 HP가 많은 거야? 그 자식 대체 뭐야?”

“성격이 좀 이상하지만 엄청 강한 사람. 히어로 유니버스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했어.”

“와, 미쳤네······ 그 야누스한테 무기를 만들어준 모루는 대체 뭐야?”

“우리 할부지.”

“응, 그래그래.”

신은아는 친구와 얘기를 나누며 전당포로 향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의뢰를 마치고 다시 할부지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할부지도 아마 지금 내가 뭘 찾고 있는지 알게 되면 깜짝 놀라겠지······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배시시 웃었다.

그녀를 훔쳐보던 무수한 사람들이 그 미소에 가벼운 호흡곤란 현상을 겪었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미처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와 진심 환장하겠네. 모루 할배, 나 정말 기억 안 나?

- 그게······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희미하게 나기는 하는데요.

한편 신은아의 ‘할부지’ 강신혁은 지금, 그녀들이 애달프게 찾는 신살검을 한 손에 쥔 채 야누스와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

야누스는 메시지 로그의 비율로 보아 아마도 ‘은아’ 다음으로 전생의 모루와 친하게 지낸 친구인 모양이었다. 오후에 그에게도 메시지를 보냈었는데 그땐 답장이 없다가, 밤이 되어서야 답신이 날아온 것이다.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존댓말 하지 말라고오오오오!

- 아, 그······ 미안. 편하게 말할게.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후. 그래서 지금 신살검이 할배 손에 있다는 거야?

- 네, 응. 다시 히어로 유니버스에 접속한 것도 이것 덕분이야. 그런데 좀 많이 약화되어있어. 지금은 가이아 시스템 기준으로 D랭크.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D랭크면 쓰레기 이하잖아······. 에휴, 보나마나 드래곤 하트도 빠져있지?

- 원래는 정말로 드래곤 하트가 박혀있었구나······.

D랭크 무기는 현대 몬스터 헌팅 룰의 표준 무기다. 신품이면 2천만 원을 우습게 넘어가고, 중고품이라도 관리가 잘된 것이면 1천만 원은 어렵지 않게 받아낼 수 있다.

그런데 그걸 쓰레기라고 표현하다니. 아니, 드래곤 하트라는 전설적인 보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 밖에 낼 때 알아보기는 했지만 역시 이 야누스라는 사람도 말도 안 되는 강자인 모양이었다.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됐어, 난 검 살리는 법도 모르니까 그건 이제 그냥 할배가 가져. 대신 나한테 새로운 신살검 하나만 만들어주라. 아직 죽여야 할 놈들이 남아있거든. 특히 불을 잘 잡는 놈으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는데.

- 정말 미안한데 내가 야금술 레벨도 리셋되는 바람에······.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아 진짜, 그럼 후딱 복구시키란 말이야. 어차피 할배 지금도 금속 두들기는 일 할 거 아냐.

- 아직은 아닌데.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아직은?

- 응, 아직은.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히어로 유니버스와 관계된, 관리자를 포함한 모든 이가 강신혁이 야금술을 하기를 기대하는 것만 같아서였다.

분명 지금 자신이 다시 망치를 붙잡아도 전생과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 텐데······.

‘그래도 해야겠지만.’

영력을 수련하기 위해서.

동화율을 높여 히어로 유니버스의 VIP 혜택을 온전히 얻기 위해서.

······아니, 실은 그 이유만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포함되지만, 동시에 그런 '필요성'과는 별개로 순수하게 야금술에 끌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쇠를 치고 싶어. 그 외로운 남자의 등을 본 이후로 쭉 그런 충동이 떠나질 않아.’

전생의 기억을 전달받은 그 순간부터 쭉, 어쩌면 신살검의 날을 갈아준 순간부터 더더욱, 그는 망치가 잡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오늘 자신이 굳이 무술수련을 우선시했던 것은 어쩌면 그런 충동적인 끌림에 저항하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안에서 너무나 순식간에 돋아난 새로운 감각과 충동을 무턱대고 거부했던 것이다. 결국 그 모두가 자신이니, 편하게 받아들였으면 되었을 것을.

- 하지만 이제 할 거야.

그래도 더는 늦출 수 없겠지. 늦추고 싶지도 않고, 늦출 이유도 없다.

영력을 깨닫고, 자아를 관조하고, 신살검과 마주한 끝에, 그는 이제 드디어 준비가 되었다.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그래,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 아무튼 다시 신살검을 만들어준다면 재료는 뭐든 가져올 테니까 부탁해, 할배.

- 그래, 고마워.

강신혁은 야누스와의 대화를 마치고 고개를 들었다.

드디어 마음을 확실하게 정한 그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야금술을 수련할 수 있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찾아봐야겠어.”

- 감격한 관리자의 100HP 보너스!

“아니 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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