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Chapter 1. 내 안에 할배 있다.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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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난 바로 그 다음날 강신혁은 너무 피곤한 나머지 오전 수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등교했다. 조회가 끝나자마자 책상 위에 엎어지는 그를 보며 백인하가 픽 웃었다.
“시뇩이 이젠 괜찮아?”
“아······ 어······ 응. 방에 데려다준 거 너지? 고맙다.”
“그 검 진짜 괜찮은 거야? 혹시 뭔 저주라도 있었던 거 아니냐?”
“그건 아니고, 내 특성. 그거랑 연동해서 좀 일이 있었어.”
“오오.”
백인하의 눈이 반짝였다.
“혹시 특성이 성장했다거나 그런 거냐?”
“비슷한 거, 나중에 설명할게. 암튼 진심 압도적 감사다. 어제 신세진 만큼은 확실히 갚아줄게.”
“근데 생각할수록 신기하네, 150만 원짜리 중고품 떨이 중에 특성을 자극할 만한 능력을 가진 게 있었어? 아님 네가 무기를 다루는 재능이 특출나서 그런 건가.”
“둘 다.”
“글쿠만······ 그런데 말이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소식이 있어. 바로 어제 네가 존나 손해를 봤다는 사실이지.”
“응?”
백인하가 그의 책상 앞에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본래 자리의 주인은 따로 있었지만 백인하에게 대놓고 불평할 수는 없었기에 얌전히 다른 친구를 찾아가야 했다.
“이거 봐. 너 업고 돌아오다가 발견한 거.”
“응? ······미친.”
강신혁은 백인하가 직접 찍은 것으로 보이는 그 사진 속 인물들을 보며 경악했다. 백인하가 큰소리를 내지 말라는 제스쳐를 냈지만 애초에 너무 놀라 그럴 수도 없었다.
“이거······ 이거 그거잖아.”
“뇌제랑 연금술사.”
“미친.”
사진 속에 찍혀있는 사람은 두 명. 둘 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각성한 능력의 영향으로 눈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검은 생머리의 미녀, 뇌제 신은아.
붉은 머리에 붉은 눈, 나른한 입가에 찍힌 점이 퇴폐적인 매력을 자아내는 글래머러스한 몸매의 주인, 연금술사 클레어 보일.
둘 다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미녀였지만, 보다 중요한 사실은 둘이 국제 초인 랭킹 500위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터무니없는 거물이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초인 상가에는 왜?”
“내가 믿을만한 정보원한테서 극비리에 입수한 정보가 있는데.”
“진심 겁나 수상한 인트로네.”
“실은 그 여자들이 초인상가에서 찾는 게 있대. 무슨 숨겨진 무기를 찾는 것 같다는데, 어제도 그래서 나타난 거고. 그러니까······.”
“오늘도 그곳에 나타날 거다?”
“우리 시뇩이 나랑 같이 갈 거지? 섹시한 초인 누님 헌팅하러 갈 거지?”
백인하는 기대감에 가득 찬 얼굴로 강신혁을 바라보았다. 설마 생일선물까지 사줬는데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는 않겠지! 그러나 강신혁은 매정하게 대꾸했다.
“미안, 안 간다.”
“아 시뇩아!”
“나 당분간 놀 시간 없어.”
“중간고사도 끝났는데 왜!”
“당분간은 네가 선물해준 검 붙들고 있어야 돼.”
“아놔······.”
강신혁의 진지한 목소리에 백인하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러나 자신이 선물한 검이 너무 마음에 들어 붙들고 있겠다는데 거기에 대고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 제 무덤을 판 꼴이었다.
“그러니까 다른 잘생긴 놈 찾아서 같이 잘해봐. 난 멀리서 네가 폭사하는 걸 지켜보고 있을게.”
“너 방금 폭사라고 안 했냐?”
“나 잠 좀 잔다.”
강신혁은 백인하를 완전히 쫓아버리곤 재차 얼굴을 책상에 박았다. 물론 어제 서울 초인 상가를 방문했다는 하이랭커들에 대한 관심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영력, 신살검, 히어로 유니버스······ 그리고 검무.’
어젯밤 신살검과 영력으로 소통하며 검의 능력을 끌어올리는데 성공한 순간, 강신혁은 한 가지 강렬한 기억을 전달받았다.
그것은 바로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인간의 그림자가 달그림자 아래 끊임없이 검을 휘두르며 춤을 추는 기억이었다.
단지 그뿐인 기억인데, 그 짧고도 선명한 장면이 강신혁의 뇌리에 들러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해하기도 힘들 만큼 수준 높은 검무였어······.’
도저히 머릿속에서 떨쳐낼 수 없는 기억이었다. 만약 그 검무를 자신이 재현하게 된다면 어떨까 생각하는 것만으로 몸이 저릿해졌다.
그도 수준 높은 무술을 보유하고 있기에 아주 잘 안다. 그 검무가 도저히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에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너무나 생생한 기억이었기에 일부를 해석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만약 보다 많은 기억을 얻게 된다면, 그땐 어쩌면 그 검무를 따라잡을 수 있게 될지도 몰랐다.
‘영력으로 검의 근원과 접촉하여 그 검이 품고 있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건, 검이 겪은 모든 일들을 함께 받아들인다는 것. 영력은 진짜 어처구니없는 능력이야. 마력이랑 비교하려고 했던 나 자신이 한심해질 정도로······.’
영력. 좌절하고 있던 자신을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 힘.
하지만 어제 있었던 일은 영력이 지닌 공능의 지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신살검의 날을 가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영력을 일깨워낸 지금이라면 알 수 있었다. 영력에는 다른 무수한 활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다 영력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다. 신살검이 잊고 있던 가능성을 깨워냈듯, 자기자신의 가능성 또한 깨워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 기회는 강신혁이 상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부터, 보다 빨리 그를 찾아왔다.
“오늘은 학생 간의 대련을 실시한다. 훈련용 무기를 활용한 대련이지만 재수 없으면 크게 다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임하도록. 알겠나?”
““옙!””
3교시, [무기술 단련2] 과목. 신영의 기사학과에 속한 이라면 누구나가 수강해야 하는 기본과목 중에 하나로, 무기를 활용한 대련, 훈련용 몬스터와의 실습까지 포괄하는 필수적이고도 위험한 교과였다.
“그럼 우선······ 도우진.”
“예.”
도우진, C클래스에서 백인하의 뒤를 잇는 마나량을 자랑하는 우수생. 타인에게 상태창을 공개하지 않아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마력량이 C+랭크에 달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C+랭크라면 어지간한 초인양성학교를 졸업하고 현역으로 활동하는 초인보다도 높았다.
“이어서 강신혁, 나와라.”
“······옙.”
강신혁은 담당교사 공준표의 부름에 담담히 답하며 나아갔다. 사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리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교사는 강신혁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신영에 있는 대부분의 인간은 강신혁을 좋아하지 않았다.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강신혁이 신영에 다니는 것만으로 신영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여겼으니까.
다만 그중에서도 공준표는 특히 그를 미워하는 정도가 심했다. 짓밟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를 짓밟고 싶어 했고, 합법적으로 우수한 학생과 붙여놓고 두들겨 팰 수 있는 대련 시간은 아주 좋은 기회였다.
“도우진, 무기는?”
“한손검과 방패로 하겠습니다.”
“강신혁.”
“검······ 아니, 장창으로 부탁드립니다.”
어느덧 뇌리에 똑똑히 새겨진 검무를 떠올리며 무의식중에 검이라고 답할 뻔했던 강신혁은 그러나 곧 제정신을 차렸다.
그 검무는 아직 자신이 재현할 수 없는 것이다.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하지도 못하는 자신이 C+랭크의 마력을 지닌 도우진을 상대로 접근전을 감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잠깐만······ 이젠 그렇지도 않은 것이 아닌가?’
강신혁은 장창을 쥐고 나서야 비로소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은 어제 영력이라는 새로운 힘을 각성하지 않았던가. 비록 마력과는 다르지만 마력에 꿀리지 않는 힘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어젯밤 그 확신을 얻었다.
‘아직 시험해본 적은 없지만······.’
어제 신살검의 날을 갈며 영력을 다른 물건에 불어넣는 법을 터득했다. 비록 영력으로 자기자신을 강화해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다른 물건의 근원과 접촉하는 것보다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기교로는 자신에게 상대도 안 되는 놈이다. 거기에 신체능력이 오른 지금이라면, 무술 스킬이 극적인 성장을 이룬 지금이라면, 영력이라는 특수능력을 다룰 수 있게 된 지금이라면······!
“둘 다 대련장 안으로 들어가라. 어느 한쪽이 항복을 하거나 기절하기 전까지 시합은 계속된다. 다만 너무 빨리 항복하게 되면 실기 평가 점수를 감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두도록.”
“옙.”
해석할 필요도 없는 악의가 줄줄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강신혁은 공준표와 도우진이 대놓고 시선을 교환하는 것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저렇게까지 싫어하지 않아도 될 텐데, 강신혁이 대체 뭘 했다고 저러는 건지 정말 알 수가 없다.
“선생이란 것이 씹······ 진짜 같잖은 것들이 아오.”
뒤에서 유일한 그의 우군인 백인하가 섬뜩한 표정으로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제아무리 그라고 해도 수업시간에 치러지는 대련을 방해할 수는 없어 그저 이를 악물고 있을 뿐이었다.
‘고마운 녀석.’
강신혁은 자신을 위해 분노하고 있는 백인하를 일별하곤 특수 제작된 대련장 안에 들어섰다. 현대 마도공학 산물의 최첨단 설비는 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충격을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흡수해줄 것이다.
“미리 경고하는데 항복하는 게 좋을걸. 난 안 봐줘.”
한손검과 방패로 무장한 도우진이 차가운 말투로 선언했다. 누구보다도 신영에 대한 자부심이 큰 만큼, 신영에 어울리지 않는 ‘무능력자’ 강신혁을 싫어하는 녀석.
강신혁은 장창을 들어 그를 똑바로 겨누며 쓰게 웃었다.
“여태까지 아무도 안 봐주던데 대체 누구 얘길 하는 거냐.”
“지랄하네. 마력도 없는 네가 대련으로 신영의 학생들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너 아까부터 대사 레알 주옥같다. 악역 피라미 느낌?”
“입만 살아가지고······!”
그것도 꼭 저런 대사를 뱉는 것들은 금방 나가떨어지던데. 자신이 그렇게 만들 수 있을까?
확신은 들지 않았다. 영력을 각성했다곤 해도 그의 영력은 F+랭크고, 상대는 추정 C+랭크니까.
‘그래도 해볼 수밖에 없지.’
어제 신살검의 날을 갈며 마음을 가다듬은 덕분인지 대련을 앞두고도 그의 마음은 제법 잔잔했다.
어쩌면 희미하게 흘러든 전생의 기억의 영향일까? 소년의 혈기가 폭주하기 직전, 늙은이의 느긋한 손길이 다가와 거친 호흡을 가다듬어주는 기분이었다.
강신혁은 장창을 쥐고 마지막으로 숨을 고른 후, 자신의 내부에 잠자고 있던 영력을 조심스레 깨웠다. 검이 아닌 자신을 살피고, 스스로에게 집중했다. 그 순간 교사가 외쳤다.
“대련 개시!”
“하!”
교사의 신호가 떨어지는 순간 도우진이 돌진해왔다. 전신으로 마력이 분출되고 있음을 증명하듯 녀석의 몸이 찬란한 푸른빛에 감싸여 있었다.
빠르다. 좌우지간 빠르다. 놈은 강신혁이 마나를 못 다룬다는 사실 따윈 개의치 않고 전력으로 그를 부수기 위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러나 놈이 C+랭크의 마력을 다룬다는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제아무리 강신혁이 무예에 능하다고 해도 인지를 뛰어넘는 속도에 반응할 수는 없었다.
어제까지의 그였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으흣······!”
“피했어!?”
그와 엇갈리듯 스쳐지나간 도우진이 고개를 돌리며 경악성을 토했다. 한 발짝 움직이는 것으로 어렵지 않게 그의 돌진을 피한 강신혁 또한 속으로 무척 놀라고 있었다.
‘보였어. 반응할 수 있었어!’
첫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성공적이었다. 영력을 끌어올려 스스로의 근원을 자극해, 일시적으로 육체를 각성상태로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신체성능이 일시에 증폭되어 적의 움직임을 읽어내는 것은 물론 빠르게 피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단.
‘미친, 영력 줄어드는 속도도 쩌네!’
그의 영력은 F+랭크다. 그 양도 질도 아직 걸음마를 뗀 갓난아이 수준!
더욱이 어젯밤 느긋이 날을 갈며 영력을 발현했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영력을 조절하는 방법을 모르고 자신의 몸에 마구 퍼붓고 있는 꼴이었으니!
‘위험해, 바로 승부를 내야 돼!’
이대론 몇 초도 제대로 버티지 못하리라 직감한 강신혁은 곧장 다음 수순에 돌입했다. 바로 공격이었다.
도우진은 강신혁이 자신의 공격을 피했다는 사실에 경악한 나머지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굳어있는 상황. 지금 드러난 빈틈을 공략하지 않으면 다시 순식간에 우위가 바뀔 것이다.
‘도와줘!’
육신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던 강신혁은 남은 영력을 마저 끌어내며 훈련용 장창에 집중했다.
순식간에 장창의 이미지가 그의 뇌리에 새겨졌다. 장창에 흘러들어간 영력이 장창의 근원을 파악해, 기운을 북돋워주고 있었다. 다만.
‘신살검이랑은 많이 다르네. 근원을 이해하기는 겁나 쉬운데······ 그런데 증폭되는 힘도 얼마 없는 것 같아. 무기 자체의 의지가 너무 빈약해.’
스스로 영력을 지니고 있던 신살검과는 비할 바 없이 작고 보잘것없는 근원이었으나 실패는 아니었다.
훈련용 장창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미약한 의지를 일깨워 강신혁에게 동조하며 진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좋아, 부탁한다.’
체내에 남아있던 얼마 안 되는 영력이 장창에 집중되며 어째선지 급작스레 허기가 밀려왔다.
그는 그것을 참아내며 앞으로 빠르게 한 걸음 내딛었다. 목표로 하는 것은 멍청하게 굳은 도우진의 가슴팍!
“흡!”
그와 함께 일직선으로 내질러지는 장창. 무려 S-랭크의 무술이며 현재 숙련도만도 C랭크에 달하는 아룡환무의 힘이 담긴 장창이었다.
그런데 강신혁은 공격을 내지르는 순간 또 새로이 깨닫는 것이 있었다. 이전 자신이 익히고 있던 무술, 십팔반무예(A)를 펼칠 때와는 확연히 다른 손맛이 느껴졌던 것이다.
‘분명 같은 동작인데 훨씬 많은 힘이 실린다. 역시 스킬은 랭크빨이구나!’
더욱이 일격을 가하는 순간, 창대가 희미한 빛을 발하는가 싶더니 그곳에 희미한 그림이 새겨졌다. 꿈틀거리는 작은 새끼용의 그림!
강신혁은 미처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그의 특성인 깨어난 아룡의 힘이었다. 손에 쥔 무기를 강화하는 특성의 힘이 처음으로 발현된 것이다.
- 쾅!
“컥!”
기세 좋게 내뻗은 장창의 끄트머리가 도우진의 명치를 강타했다. 돌진 후 급하게 몸을 트느라 몸의 균형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던 도우진은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피를 토해내며 만화처럼 튕겨나가, 대련장 맞은편 벽에 부딪쳐 쓰러졌다.
그리고 기절하여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
“······.”
“뭐야!?”
“도우진 왜 갑자기 날라가는데?”
“강신혁이 이겼어? 레알?”
불과 몇 초. 대련이 시작되어 종료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대련을 지켜보던 이들 대부분이 아연해지고 말았다.
“뭐임, 마법 썼냐? 쟤 각성함?”
“분명히 도우진이 돌진을 했는데요, 그런데 혼자 고꾸라졌습니다.”
“미친 뭔데! 도우진이 왜 져!”
“강신혁 무술 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도우진을 이긴다고?”
“도우진이 빈혈이었던 거 아냐?”
공수의 교환이 너무 빨라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몇몇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도우진이 돌진을 하다 말고 쓰러졌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강신혁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학생들의 원성을 모두 가볍게 무시하며 공준표를 바라보았다. 대련종료선언을 해주길 바란 것인데, 공준표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에게 이렇게 물어왔다.
“······강신혁, 보조마법이나 아티팩트를 사용했나?”
“그랬더라면 대련장에 입장하는 순간 경보음이 울렸을 텐데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도우진과 강신혁의 움직임을 모두 파악한 공준표 역시 드러난 결과를 믿지 못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마력이 없는 그가 도우진을 쓰러트렸으니 의심이 가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승자를 선언할 생각도 않고 먼저 학생을 의심하다니······ 강신혁은 그저 쓴웃음만 나왔다.
“하지만 마력이 없는 네가 도우진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립되지 않는 대련이라고 확신하셨으면서 대련을 시키신 겁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최근에 제 특성과 스킬이 발전한 덕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도 제가 신영에 어떻게 입학했는지는 잘 아실 겁니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특성이 진화한 것도 사실이고 스킬이 성장한 것도 사실이니까.
다만 거기에 영력이라는 힘이 더해지기도 했지만, 이 사람한테 그런 것까지 말해줄 필요는 없으리라. 그가 눈치 챘다면 모르되 영력을 감지하지도 못한 것 같으니 더더욱.
“제가 이겼습니다. 정정당당하게.”
강신혁은 자신을 노려보는 공준표의 시선을 담담하게 맞받았다.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왜냐면 그의 허가 없이 타인이 멋대로 자신의 상태창을 열람할 수는 없으니까.
결국 공준표도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트집을 잡고 싶어도 건수가 없었다. 강신혁이 정정당당한 승부를 치렀음은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래. 네가 이겼다.”
“선생님, 제가 많이 지쳐서 그런데 보건실에 가도 괜찮겠습니까?”
“흥, 그야 지쳤겠지. 네 맘대로 해라.”
그가 계속 여기 있으면 학생들도 제대로 대련에 집중하지 못할 것이라 여긴 공준표는 강신혁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아니, 아마 본인부터가 동요하고 있었던 탓이겠지.
강신혁은 훈련용 장창을 원래 있던 곳에 되돌려놓고는 대련장을 나왔다.
여전히 자신을 향해 되도 않는 비방을 늘어놓고 있는 클래스메이트들을 무시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백인하에게 괜찮다는 제스쳐를 취해보인 후 제1체육관을 뛰쳐나왔다.
“돌겠네, 배고파 뒤지겠다······!”
그리고 주린 배를 움켜잡으며 화장실로 직행했다.
관리자의 도움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