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81화 유페미아테크
“으으...”
황시영 검사는 뒤통수가 얼얼했다.
권총같은 묵직한 걸로 뒤통수를 맞은게 분명하다.
미국에 도착해서 유페미아테크를 조사하다가 SB그룹과 마크로뱅크라는 미국의 거대기업이 연관되어있다는 것까지 알아냈었다.
유페미아테크가 위치한 워싱턴 DC의 포토맥 오클린까지 찾아와서 한밤중에 몰래 잠입한것 까지는 괜찮았었다.
정식 수사요청을 한 사안이 아니기에 증거를 수집하러 무리하게 들어왔다가 가드에게 공격을 당한 모양이었다.
무거운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떴는데 초점이 잘 맞지 않았다.
오른쪽 뺨에 바닥의 찬기운이 아직도 느껴졌다.
멍한 상태로 자리에 겨우 앉아서 이곳이 어디인지 둘러봤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중국인? 아니면 일본인? “
남미계통의 영어발음으로 누군가가 뒤에서 자신을 불렀다.
고개를 돌리려고 하는데 여전히 머리가 아파 표정을 찡그려야했다.
“한국인입니다.”
처음보는 히스패닉계의 젊은 청년이 보였다. 온몸에 문신을 하고 있고 머리는 짧게 짤라 스포티한 느낌을 주는 사내.
그리고 그의 뺨한쪽에는 길게 그어진 칼자국을 꿰멘 상처가 인상적이었다.
얼핏 봐도 갱으로 보였다.
그가 입고 있는 복장은 죄수복같은 면으로 된 편한 복장이었는데 황시영검사는 자신의 복장도 그의 옷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지갑과 여권, 핸드폰 등 자신을 증빙할 수 있는 모든 물건이 사라져 있었다.
“여기는 어디죠? 감옥인가요?”
황시영 검사의 질문에 이번에는 그의 옆쪽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꽤 뚱뚱한 흑인이었다.
“감옥이라면 감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댁도 사형수요?”
“네?? 사형수라뇨??”
황시영검사는 지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구치소 같은 느낌의 10평 남짓한 공간인데 나이가 들어보이는 노인 한명이 구석에 앉아있어서 존재감이 거의 없었고 이곳에는 자신을 포함하여 네명이 갇혀 있었다.
가구도 없이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한동안 갇혀 있었는지 눈밑이 다들 퀭해보였다.
“1121번. 이제부터 당신의 이름은 그 옷에써있는 번호요. 괜히 내보내 달라고 애원하다간 죽도록 맞을테니 조심하시고.”
흑인 사내가 고개를 푹 숙인채 발톱사이에 낀 떼를 손톱으로 벗겨내기 시작했다.
황시영은 자신의 죄수복에 번호가 써있다는걸 확인했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이렇게 사람을 함부로 가둘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
공정한 법 집행없이 사설 감옥에 갇힌 모양이다.
“혹시 이곳이 유페미아테크가 운영하는 사설 감옥인가요?”
“유페미아테크! 우리를 실험하는 녀석들이 그런 이름의 명찰을 달고 있었던 것 같기는 해.”
구석에 있던 노인이 차분하게 내뱉듯 말했다.
그 또한 히스패닉 계통의 노인이었다.
“어차피 사형대신 여기서 죽으면 가족에게 백만달러가 돌아가니 들어온건데 저 한국인은 아무래도 돈도 못받고 납치되서 온건가봐.”
히스패닉 갱이 한마디를 하자 덩치큰 흑인이 특유의 흑인억양으로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존내 불쌍하네. 이제 사형수 말고 닥치는대로 잡아와서 실험하나보네”
“죄송합니다만 무슨 상황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여기는 지옥이라우. 살아나가도 괴물이 되던가 죽어서 나가던가.”
그나마 구석의 노인이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자 황시영 검사는 그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불법 실험을 하고 있는 연구소인가요?”
“그렇지. 아담이라는 DNA를 사형수에게 심는 테스트를 한다고 하더군.”
황시영 검사는 백업없이 섯부르게 유페미아테크로 오게된 스스로를 한없이 자책해야했다.
윤미애 경위는 자신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경찰에 신고를 하라고 명령을 해놨지만 어떻게 일이 돌아가게 될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김득렬.. 아니 강재도 이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마음먹고 이곳으로 보냈다는 것을 황시영 검사는 알 수 있었다.
황시영 검사는 이대로 죽을 수 없었다.
쾅쾅쾅!
강하게 닫혀있는 철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이런. 저 한국인은 쳐맞게 생겼군.”
쾅쾅쾅쾅!!
이윽고 문이 삐꺽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시큐러티라고 써있는 모자를 쓴 사내가 굵은 눈썹을 더욱 찌푸렸다.
그의 손에는 기관총이 들려있다.
“잠깐만요!”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기관총을 들고 있는 사내가 개머리판으로 황시영 검사를 치려고 했다.
“죽고싶나 1121번?”
“미스터 김..미스터 강을 찾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알려줄 비밀이 있어요!”
기관총을 들고 있던 사내가 뒤에 엄호하고 있던 사내에게 씨익 웃으며 말을 건냈다.
“와. 진짜 한토시 안틀리고 똑같은 말을 하네. 역시 니체는 천재야.”
“하하 저 한국인이 귀찮게 하면 그냥 죽이라고 했는데 지금 죽여버릴까? 엎드리지 않으면 그냥 죽이고 간다? 조용히 지내라고?”
이죽거리던 경비원이 총부리를 겨누자 황시영 검사는 두려움에 몸을 숙여야했다.
“엎드려 쏴갈기기전에.”
경비의 위협에 황시영 검사는 그 자리에 엎드려야했다.
김득렬이나 강재도 중의 한명을 니체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자신에 대해 더 이상 궁금한게 없을 정도로 다 알고 있다는건가?
황시영 검사는 절망감이 무엇인지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열린 문 사이로 꽤 많은 경비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철제로 되어있는 구조물은 완벽한 감금장소라는 걸 보여줬다.
희망이 없었다.
니체라는 놈은 왜 자신을 이곳에 보내 실험대상으로 삼은 걸까?
그냥 죽일 수도 있었는데.
윤미애 경위를 다시 수거해 갔을까?
황시영 검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을 살려둔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3일이 지났다.
“1121호 실험이다.”
황시영 검사를 호출하는 경비원들.
“부디 살아나면 이새끼들 다 죽여버려.”
덩치 큰 흑인 제임스가 한마디를 했다.
황시영 검사는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설령 이길이 죽으러 가는 길일지라도.
황시영 검사는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자신의 발 끝만 바라보며 한참을 걸어갔다.
그리고 시멘트 바닥에서 대리석 바닥으로 바뀌는 경계면. 자동문이 열리고 청량한 에어콘 바람이 시원하게 한다.
각종 컴퓨터에서 나는 기괴한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강제로 의자에 결박되고 나서야 시야에서 벗겨지는 검은색 두건.
눈앞에 기괴한 가면을 쓴 사내가 보였다.
콧수염이 잔뜩 부풀어 오르듯 붙어있는 가면인데 이런 기괴한 가면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안녕하신가. 황시영 검사.”
정확한 한국말. 목소리를 변조하는 프로그램으로 자신의 목소리도 숨기고 있었다.
황시영 검사는 그의 왜소한 덩치로 김득렬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김득렬. 드디어 만나는군.”
“오!!! 대단해요 대단해. 내가 김득렬인걸 어떻게 알아낸거지?”
콧수염 가면은 잔뜩 흥이 났는지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나를 그렇게 만나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 당신을 위해 그렇게 많은 선물을 해줬는데 맘에는 들었나 몰라?”
“개새끼..”
“아니 이혼하겠다는 아내를 돌려줬으면 편안하게 은퇴하고 아내랑 행복하게 아기 낳고 살면 되는데 왜 그리 내가 궁금하셨어요? 덕분에 부하들도 죽고 이렇게 되어 버렸잖어.”
으드드드득.
“죽여라. 비참하게 만들지 말고. 김득렬....”
황시영검사는 분노로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분노를 해본적이 최근에 있었을까.
“내가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알고 찾아온거야? 침입자가 황시영 검사인걸 알고 기절할뻔했잖아.”
“...”
대답이 없던 황시영 검사를 바라보던 가면의 사내가 한참 말이 없다가 그의 앞에 놓여진 간이 의자에 앉았다.
“차라투스트라를 알고있나? 이 가면이 니체 얼굴을 모티브로 만든 가면이거든.”
콧수염 가면을 쓴 사내는 고개를 갸웃하며 의자에 결박되어있는 황시영 검사를 내려다봤다.
“벽보고 이야기하는건 재미가 없는데?”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말고 빨리 끝내라.”
“하하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지.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언젠가 찾아올 위대한 정오에 우리의 마지막 의지가 되기를!”
궤변을 늘어놓던 니체가면의 사내를 황시영검사는 조용히 올려다 봤다.
“그런 개소리를 늘어놓으면 내가 감동받을 줄 알았나?”
“개소리라니.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는 책에서 언급한 내용이야. 위대한 정오는 카톨릭에서 이야기하는 진노의 날을 이야기해. 인류의 멸망을 이야기하지.”
갑자기 인류의 멸망을 이야기하는 니체 가면의 사내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걸까?
“이게 바로 라크라는 거지.”
사내의 손에서 주륵 미끌어져 내려오는 검은색 점액질의 괴생명체.
황시영 검사는 이런 물질을 본적이 없기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미래에서 온 인공지능이야. 원래는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 만든 방주인데, 아이러니하게 이게 우리 인류를 멸망시키려 하고 있어.”
무슨 헛소리인가? 저 조그만 점액질덩어리가 인류를 멸망시킨다니.
“이 라크는 내가 통제를 하고 있지만, 전 세계에 퍼져있는 다른 라크들은 통제 불능이야. 각각 다른 방식으로 학습을 하며 각가 다른 능력으로 지구를 멸망시키기 위한 수단을 찾고 있지.”
그리고 그 점액질 괴생명체는 꾸물거리며 옆에 놓인 침대로 올라갔다.
그제서야 그 침대위에 은발의 할머니 시체가 놓여 있는게 보였다.
“헉..”
그리고 그 라크가 할머니의 사체를 파먹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사라지고 목이 잘라진다.
드드득.
까드드득.
황시영 검사는 끔찍한 장면에 눈을 감았다.
“이렇게 겁이 많아서야. 자세히 지켜보라고.”
니체 가면은 황시영 검사의 양볼을 꽉 쥐고는 고개를 그 무참한 살육 장면으로 고정시켰다.
그리고 검은색 괴생명체가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사람의 형태를 띄어갔다.
그리고 주륵 밑으로 흘러내리는 검은색 점액질.
“어떻..어떻게... 이런일이...”
검은색 점액질이 바닥에 내려앉으며 황시영검사의 눈앞에 보이는 건 윤미애 경위의 발가벗은 모습이었다.
“라크의 재생성 능력이다. 이런 능력으로 라크는 미국 대통령을 재생성해서 핵전쟁을 일으키려고 했었지. 그리고 지금 중국의 주석을 재생성해서 바이러스를 유포시킬 준비를 한다는 첩보를 받았어.”
황시영 검사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양손이 묶여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은 이것 뿐이었다.
하지만 윤미애 경위가 베시시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지구는 멸망 직전이다. 전쟁이 될지, 바이러스가 될지, 라크의 주인이 직접 멸망을 시킬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지구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야. 그리고 다시 소개하도록 하지. 나는 지구의 종말을 막고 있는 카톨릭 암흑교단의 사제 니체다.”
“김득렬씨. 이름을 바꾼다고 뭐 별다른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구를 지킨다느니 그렇게 좋은일을 한다는 사람이 대한민국의 검사를 이렇게 가둬서 죽이니 살리니 협박을 하면 됩니까?”
니체는 황시영의 비난을 무시한채 진료대 위에 놓인 주사기 두개를 꺼냈다.
“자 이 왼쪽거는 검증된 주사다. 이걸 맞으면 아담으로 각성을 해서 초인이 될 수 있어. 대신 자네는 기억을 잃고 우리를 위해 일하게 될거야.”
“오른쪽 이거는 우리가 이 실험을 계속하는 이유지. 힐링팩터를 찾아내는 실험용 주사다. 부작용으로 괴물이되거나 죽을 수 있지. 하지만 성공하면 힐링팩터를 가진 인류의 구원자가 될 수 있어.”
“자네가 결정하게. 어떤 주사를 맞을지.”
황시영 검사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말이 힐링팩터지 바이러스를 치료하기 위한 인간 약을 만드는 실험이군. 내가 첫번째 선택을 할거라고 생각했나. 김득렬?”
“아니? 나는 그냥 너의 분노를 더 이끌어내고 싶었을 뿐이야.”
순간 니체는 옆에 있던 윤미애 경위의 목을 메스로 찔렀다.
피슈우우우우.
앞으로 피를 흘리며 고꾸라지는 윤미애 경위의 복제체. 그녀가 아닌건 알고 있지만 바로 앞에서 목을 따버리는 니체를 보니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갔다.
“야이 개새끼야!! 내가 나가게되면 네놈 먼저 죽여버릴거니까 각오.”
니체의 오른손에 들린 주사기의 따끔함을 느낀 황시영검사는 고개가 아래로 떨궈졌다.
니체는 자신의 라크를 바라봤다.
“알어 알아. 분노수치가 상당히 높아서 성공가능성이 높겠어.”
- ...
“일단 다시 가둬두고 힐링팩터가 발동되기를 바래야지. 하지만 이녀석이라면 견뎌낼 것 같아. 나에 대한 분노가 이렇게 클줄이야.”
- ...
“저 시체는 다시 연구원 J로 재생성해줘.”
- ...
밑에서 꾸물거리던 라크가 윤미애 경위를 다시 잡아먹더니 금발의 아리따운 젊은 아가씨가 재생성되었다.
그리고 황시영 검사는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자신이 갇혀있던 방으로 다시 끌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