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63화 미정소프트
점심시간을 30분을 오버해버렸다.
유지선은 편의점에서 스타킹을 사서 갈아입고 들어간다고 먼저 나갔다.
덕분에 주머니에 정액 묻은 스타킹을 쑤셔 넣어야했다.
한미선이 유지선의 스타킹을 보며 군침을 흘렸다.
달라고 조르는데 어떻게 들고 갈꺼냐고 하니 대답을 못해서 내가 뺏어 주머니에 집어넣은거다.
아 축축해.
외근 나간다고 김성은 차장에게 문자하나를 남기고 미정소프트로 곧바로 찾아갔다.
역시 돈을 쓴 만큼 인생은 편해진다.
고오급 전기자동차로 네비게이션 설정하니 완전 자동 운전이다.
덕분에 스마트폰으로 중요업무를 보면서 갈수 있었다.
<대외비: SB그룹 투자회사 관련 분석자료>
이번에 김성은 차장이하 과장들이 전부 모여 전략기획실에서 만든 보고서.
원래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는데 김성은 차장에게 넘겼었다.
설립요건은 전부 검토완료되었고, 임원구성과 주주 구성도 끝났다. 다만 펀드구성에 있어서는 내가 직접 자료를 정리했다. 검찰총장 등 내 쪽 인사들의 돈을 불려주기로 했기 때문에 늙은 너구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페이퍼 컴퍼니를 세워서 정리를 완료했다.
그런데 자료에 이상한게 껴 있었다.
설립 후 투자 종목 업체 리스트 중에 내가 검토하지 않은 업체 이름이 두개가 추가 되어있다.
한국 - (주)여의제약
미국 - 유페미아테크 inc.
뭐야 이 업체들은?
뚜르르르르르.
- 네 실장님!
“보내준 보고서 봤는데, 여의제약이랑 유페미아테크 얘네들은 뭐야?”
- 아! 그거 실장님 메일로도 같이 왔을텐데요. 진아영과장을 통해서 회장님이 다이렉트로 추가 시킨 업체예요. 검토를 해봤는데 꽤 우량할 것 같아서 내부 검토에서도 패스 되었습니다.
“날 빼고 누가 패스를 해?”
- 아...죄송합니다. 실장님이 바쁘시기도 했고... 회장님이 진아영과장을 시켜 무조건 넣으라고 명령을 내리셨다고 해서..
이건 뭔가 있다.
“알았어. 검토하지말고 그냥 패스하라는 명령인거군? 책임은 누가 지는거고?”
- 송구합니다. 실장님. 제가 다시...
“됐어. 내가 최종검토할테니 그 두업체 자료 보내”
- 네 알겠습니다.
뚜욱.
지금껏 강재도 회장의 독단으로 진행한 케이스가 없는지라 냄새가 솔솔 난다.
띵동.
내가 외근을 하고 있다는걸 아는 김은성 차장이 센스있게 PDF를 떠서 스마트폰 문자로 보냈다.
역시 이 녀석은 일을 잘하긴 한다.
<주식회사 여의제약>
재정상태는 우량했다.
주요 생산품이 바이러스 검출시약과 백신?
인공지능을 통한 선진화된 설비를 갖춘 꽤 그럴듯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업체다.
그런데 쌩뚱맞게 이런 업체에 투자를 한다는 걸까?
기껏해야 바이러스라고 해봤자 에이즈나, 독감정도가 전부인데.
하지만 돼지콜레라나 바이러스 변종이 워낙 많으니 미래산업을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유페미아테크 inc>
이 회사가 냄새가 났다.
인공지능 연구 업체인데, 한물 간 이미지기반 인식 인공지능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오픈소스로 풀어서 널리고 널린게 이미지인식 인공지능인데 왜 이걸 투자하려고 하는거지?
그런데 재정상태가 말도 안된다.
사내 보유자금이 너무 많다.
초기 설립비도 상당히 높다.
투자를 받을 이유가 없는 회사인데?
보통 돈이 없는 회사가 투자를 받는데, 이런 규모의 회사가 SB그룹 투자회사의 돈을 받아 지분을 뺐길 이유가 전혀 없다.
물론 이런 회사에 투자를 해서 지분을 얼마나 가져오는지가 관건이긴 하지만, 보유금이 높아 지분을 가져올 가능성은 제로.
잠깐만...
투자대비 예상 획득 지분이 20억 투자에 30%?
이렇게 된다면야 대박이긴 했다.
아니다.
이 회사는 SB 투자 그룹회사가 편법 인수를 하는거다. 이런 거래는 미국 국세청의 레이다에 걸리지 않을리가 없는데 이런 모험을 하는거지?
도대체 저 회사를 SB그룹이 사려고 하는걸까?
어차피 투자를 하는 회사는 문제가 될거 없으니 안할 이유는 없다.
둘다 문제는 없지만 뭔가 쌔한 느낌이 들었다.
[두 회사 다 문제없네. 수고했어. 이걸로 최종보고하고 설립관련 스케쥴이나 짜줘.]
김성은 차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네비게이션의 알림소리에 주변을 보니 어느새 미정소프트 주차장 입구에 도착했다.
역시 고급 전기자동차는 돈 값을 하는군.
미정소프트 직원들 중에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애들도 있었다.
목례를 하고 김미정의 방문을 활짝 열었다.
내가 왔는지도 모르고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김미정.
“나 왔어!”
“어? 어. 잠깐만”
그녀는 쳐다보지도 않고 왼손만 살짝 흔들어 보인다.
나는 쇼파에 앉기 전 보이차가 보이길래 대충 종이컵에 몇스푼 넣고 온수를 담아 홀짝거렸다.
역시 미정이는 어제도 머리를 안감았는지 잔뜩 뻗쳐있는 머리다.
꾸미면 꽤 예쁜데 이제 여자로서의 매력은 포기한건가?
양미간에 찌푸리는 주름이 세로로 박혀있다.
어지간히 인상쓰고 있나보다.
그녀는 워낙 바쁜거 같아서 나도 스마트폰을 보며 한참을 업무를 봤다.
30분정도 지났을까?
“아. 미안. 시뮬레이션하는데 자꾸 문제가 터져서. 바쁘신 양반이 여기까지는 왠일이셔?”
“너 보러왔지.”
“왜 자지가 근질근질했냐?”
“아 짜식.”
실없는 농담에 피식웃고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뭐야 갑자기 진지한 모드는? 고백이라도 하게?”
“강재도 회장이 니네 회사 지분은 왜 가지고 있냐? 그것도 개인돈으로.”
“어? 그거? 나도 처음에 그 양반의 돈인지 몰랐어. 그런데 뭐 받으면 문제될거 있어?”
문제될거는 없다.
왜 강재도가 그녀에게 투자를 했는지가 궁금한거다.
“너 혹시 라크와 관련된 개발을 가지고 투자제안서를 만들어 돌린 적 있냐?”
“어? 라크를 기억하네? 응 초기 설립때 좀 거창하게 써야 투자를 받잖아. 그때 초기에 그려둔 러프한 스케치로 투자 제안서를 이곳 저곳에 뿌렸지.”
“음..”
“아.. 아마 인터넷만 검색해 뒤져도 나올껄? 내가 슬라이드쉐어에도 올렸거든.”
슬라이드쉐어는 각종 PPT나 제안서를 공유하는 플랫폼이었다.
휴. 강재도와 그녀의 연결고리는 무척 약했다.
걱정했던 내용이 아니라 다행이다.
강재도는 우연히 라크에 대한 발명자를 알게되서 미래가치를 목적으로 투자를 한 모양이다.
이 이야기는 라크가 우리의 미래에 등장한다는 걸 강재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강재도랑 사이가 안좋잖아. 그래서 니가 연관되어있길래 둘이 떡치는 사이인가 싶어서 걱정되서 온거야.”
“하.. 개놈시키. 생각을 해도”
“요즘 별일 없지?”
“별일도 많고 달일도 많어.”
아재개그를 남발하는 김미정의 모습. 가끔씩 그녀랑 투닥투닥 싸우던 옛날이 그립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진짜 순수했고 착했었다. 지금과 같이 머리속에서 계산기를 두들기는 타입이 아니었다.
“준비하는건 잘되가? 라크가 궁금하네?”
“오? 내 프로젝트에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잠깐 일루 와봐. 내가 보여줄께.”
그녀는 손가락을 까닥하며 자신의 자리로 날 데려갔다. 옆에 있는 간의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봤다.
“내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냈어. 일단 지금은 인공지능만 계속 학습을 시키고 있는데, 먼 미래가 되면 실제 구현도 되지 않을까 싶어.”
“뭔대~”
“테라포밍에 대한 새로운 방법!”
“뭔가 거창하네. 테라포밍이라면 다른 행성을 지구처럼 만드는 걸 이야기하잖아? 설마 라크로 그걸 하겠다고?”
모니터에 고전게임 팩맨같이 생긴 캐릭터가 우주로 날아가 행성에 진입하는 간단한 애니메이션이 보였다.
“봐봐. 인류의 DNA를 라크에 보존한다음에 다른 행성으로 이동하는거야. 나는 다른 행성에 지성체가 있다고 믿고 있거든.”
행성에 도착한 팩맨이 그곳에 있는 파란색 에일리언들을 하나씩 잡아먹더니, 이윽고 팩맨의 입에서 파란색 인간이 튀어나왔다.
“라크로 그 지성체를 흡수해서 그들의 데이터를 학습하는거지. 그러면 인류의 DNA와 다른 지성체의 DNA가 합쳐져서 그 행성의 환경을 바꾸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게 만드는거야.”
나는 이 천재 김미정의 얼굴을 다시 바라봐야했다.
정확히 내가 가지고 있는 라크의 능력이다.
“오.. 너무 감동하지마. 이건 시작이니까. 호호.
이걸로 끝나는게 아니라 이렇게 학습된 라크는 또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서 그쪽 지성체도 흡수하고 학습을 해. 그리고 또 다른 행성을 가고!”
나는 지금 그녀의 말을 듣고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단 한번도 라크가 다른 행성을 돌고 우리 지구에 왔을거라는 생각은 안해봤기 때문.
“결국 지성체들을 흡수하면서 전 우주의 생명체가 동등하게 고도화가 되는거지. 어때??”
“그럼.. 그 라크는...결국 신이 되겠네...”
“아. 그렇네. 신이네. 그럼 나는 신을 창조한 신창녀!!”
왼주먹을 불끈 쥐고 머리위로 손을 올리던 그녀는 자신의 표현이 약간 이상했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호호. 그래도 이 허황된 소설을 니가 처음 긍정적으로 봐줬어. 고마워~”
“혹시 따로 생각하고 있는 다른 설정이나 아이디어는 있어?”
김미정의 아이디어를 통해 라크에 대한 다른 정보를 얻고 싶었다.
“아직은~ 근데 전에 왔었던 전략기획실 이쁜이 걔 니 이거지?”
한쪽 손을 둥글게말고 다른 손가락으로 쑤시는 포즈.
“쌩뚱맞게 뭔소리야.”
“그냥 쫀득쫀득하게 생겨서 귀엽던데, 그런 부하직원을 내버려둘 니놈이 아니잖아. 호호호.”
“그런거 아냐.”
와. 역시 김미정의 촉은 지금도 대단하다.
거짓말하면 항상 걸렸었다.
“와! 설마했는데 진짠가보네!! 코 벌렁대는거 봐.”
“맘대로 생각하셔.”
“이따가 같이 저녁이나 먹을까?”
“아냐 됐어. 너한테 따먹힐까봐 겁나서 사무실 다시 들어가야겠다.”
“하아~ 새끼 눈치도 빨러.”
싱거운 농담을 하고 미정이의 사무실을 나와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강재도는 라크가 김미정의 손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김득렬도 알고 있을 확률이 높은 상황.
하지만 그녀를 해치지 않고 초기 주주로 투자를 하며 오히려 개발을 독려했다.
이건 어떻게 해석을 해야될까...
설마 할아버지 패러독스 때문일까?
라크는 미래가 아니라 분명히 다른 행성에서 온거라고 했다.
아마 강재도와 김득렬은 라크가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온 존재라고 믿는게 아닐까?
“라크 너 우리 대화를 들으면서 뭐 느낀거 없어?”
- 여기에서 탄생되는 라크는 내가 아니겠지만, 기본적인 탄생배경과 능력은 비슷한것 같네. 그나저나 저 여자 재생성하면 안돼?
“왜? 갑자기 라크가 탄생되지 못하게 하고 싶어졌어?”
- 그건 아니고... 기억전달이 안되는게 상당히 불편한 일이군. 아.. 그리고 은빛알약과 검은알약 분석 끝났어.
“어? 결과는?”
- 기본적인 매질은 나를 기반으로 하는건데, 그 안에 들어가는 핵심적인 DNA가 있는데, 이 지구상에서는 존재하지 않어. 아마 내 저장데이터에서 삭제된 데이터에 있었던 모양이네.
“다시는 못 만든다는 이야기군.”
- 응. 다시 가져가.
손목에 검은색 밴드에서 은빛알약과 검은색 알약이 튀어나왔다.
은빛알약은 이제 나에게 2개가 있다.
일주일간의 강력한 최면을 주는 알약..
그리고 먹는 순간 액화되어 흔적도 안남기고 없어지는 검은알약 1개.
주머니에 넣고 차를 타려고 하는 순간.
“어이 형씨. 여기좀 보소. 당신 ■ ■ ■ 씨 맞지?”
한쪽눈에 하얀 의안을 달고 있는 인상 더러운 덩치녀석 한명과 쫄따구로 보이는 사내 3명이 나를 포위 하듯 다가왔다.
“아.. 키 좀 크네. 댁을 쫓아댕기느라 얼마나 피곤했는지 알랑가 몰라.”
쎄게 보이려는지 잔뜩 가래침을 바닥에 뱉고는 손등으로 쓰윽 닦는다.
“누구신지?”
나는 순간 긴장했다.
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다 스치고 지나간다.
김득렬의 패거리인가?
나를 어떻게 알아냈지?
설마 미정소프트 앞에서 계속 내가 오기를 기다린건가?
“아. 날 모르겠지. 근데 일단 한대 맞고 시작합시다 우리.”
다행이다.
전문적인 킬러는 아니다.
말본새로 봤을때 이들은 양아치다.
“왜 내가 맞아야 되죠?”
“하 이새끼가 좋게 말하니까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네?”
위협하듯 머리옆으로 오른손을 들어올리는 의안 사내를 차갑게 쳐다봤다.
라크가 나를 마스터로 삼으며 저장할 당시 힘과 민첩을 올려줬다고 했는데 이게 꽤 쓸만했었다.
덕분에 몸도 가벼워지고 왠간한 싸움은 자신있었다.
“하? 요놈 보소? 야리는거봐?”
“누가 보냈냐?”
“이 씨발롬이! 말을 까네?”
그 사내가 내 싸다귀를 날리려고 오른손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