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화 〉19화 L.A.R.K. (19/155)



〈 19화 〉19화 L.A.R.K.

점심을 먹자마자 나는 외근을 나가야했다.

어제 사고를 친 미정소프트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직접 오지 않으면 우리에게 솔루션 납품을 안하겠다고 엄포를 놨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빅데이터 기반 분석업체인데 해외의 다른 대기업의 지표를 시뮬레이션하여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업체.
시뮬레이션을 위한 인공지능 개발 능력이 국내 최고라고 과언할 수 있었다.
이들의 분석정보를 기반으로 신사업을 기획할  있었고 각종 미래지표를 예측할  있었기에 우리 전략기획실, 아니 SB그룹 차원에서 정말 중요한 업체였다.

하지만 문제는 예산 때문이었다.
재정담당 CFO 최문열상무가 솔루션 사용비용을 절반으로 줄여버렸다.
나는 미정소프트에 제공하는 솔루션 라이센스비용을 절반으로 줄이면서 그 대가로 다른 프로젝트를 연결해줬었는데, 그 프로젝트가 내가 없는 동안 나가리가 되어버렸다.
그들의 솔루션 공급거부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던 거다.
이 사실을 몰랐던 나는 직접 사과를 하러 가야 했다.


“어서와. 니놈 대신 그 멍청한 차장이 오면 해결 안해줄라고 했어.”


미정소프트 대표실에서 건방떠는 표정으로 나를 맞이하는 그녀.
무엇보다도 이 회사는 내 대학동기 김미정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짜식. 담배 아직도  끊었냐??”

대표실로 들어오자 매케한 쩐내가 났다.
회사대표 답지 않게 핑크색 츄리닝을 입고 있는 김미정. 어제 날밤을 샜는지 머리는 떡져있고 화장 따위는 안한지 꽤 오래되어 보였다. 대충 올린 똥머리에 볼펜을 꽂아 놓았지만 그녀의 미모는 여전히 물이 올라있었다.
오른쪽 눈 밑의 점은 그녀의 퇴폐적 매력을 상승시켜준다.
책상 위에 놓인 종이컵에서 스물스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턱짓으로 까딱 거리며 종이컵을 알려주자 깜짝 놀란 김미정이 침을 잔뜩 모아 주륵 종이컵에 내렸다.


치지지익


“인류 최강 니눔 마누라는 잘 지내고?”

“응.  그렇지. 니 남편은 잘지내고?”


“하아. 뭐. 네놈 좆을 떠올리면 형편없지만. 뭐. 그래도 워낙 착하니까.”

김미정과는 대학시절 CC로 4년 내내 동거를 했던 사이였다. 4년의 동거면 거의 사실혼이었다.
대학입학  첫눈에 서로 반해 만났는데 변태성욕도 잘맞고 궁합도 완벽했었다.
서로의 성격이 워낙 강성이었고 오래된 연인의 말로처럼 자연스럽게 헤어지고 친구처럼 지냈다.


“의료형 AI프로젝트 무산된거 진짜 몰랐다. 미안해.”

김미정이 코를 킁킁 거렸다.

“아. 어디서 똥내가 나는거 같은데?”


“야!!! 그건 니가!!!”


나는 얼굴이 벌개져서 소리를 빽 질렀다.  아킬레스건을 아주  알고 있는 그녀가 내 약점을 후벼팠다.
 첫 항문섹스는  눈앞의 김미정과 했었는데 그때그녀가 흘린 숙변으로 충격받아 ED(발기부전)이 왔었었다.


“하하. 짜식. 부끄러워하는건 지금도 똑같구만. 그래서서 어떻게 할라고? 이 AI 프로젝트에 내가 쏟아부은 노력이 얼마인지 알고 있어?”

“희민병원 원장을 알아. 그쪽에 소개시켜줄게.”

“야!”


이번에는 김미정이 고함을 질렀다.
왼쪽 눈썹이 올라간  진짜 화가 난거다.

“난 대기업이 운영하는  병원의 리소스가 필요하다고 했지? 학습용 데이터가 빅데이터로 존재해야 완성이 된다고! 그리고 내가 하려는건 의사를 대체하는 AI가 아니야!”


어?


옛날부터 그녀가 만들고 싶어하던 건 인공지능 의사였다.
내가 알고리즘을 개발했던 것도 인공지능과 연관이 있었다.
여담이지만,  알고리즘 개발 능력의 스승은 김미정이었다.
그녀와 내가  토론하면서 이야기 했던 주제는 어떤 직군이 인공지능으로 먼저 대체 될지에 대한 부분과 인공지능이 나중에 어떻게 발전될지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녀의 이론이긴 하지만, 가장 비싼 직업부터 인공지능으로 바뀐다고 했다.
모든 비지니스는 동일 결과물에 비용감축이 핵심이니까.
돈을 제일 많이 버는 판검사, 의사, 변호사가 가장 먼저 AI로 바뀔거라고 장담했었다.


그리고 자신이 인공지능 의사를 제일 먼저 완성할거라고 장담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만들고 싶은건 인공지능 의사가 아니라고?


“너 지금 우리 그룹병원의 의료데이터로 뭘 만들려고 한거야?”


김미정이 자신이 말 실수를 한걸 깨달았는지 머뭇거렸다.
나한테 프리젠테이션했던 의료형 AI 프로젝트는 분명히 인공지능 의사를 만드는 프로젝트였었다.
진료와 치료를 동시에 하는 인공지능.


“하아.. 나중에 이야기할라고 했어.. 이리와 봐봐.”
그녀는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자신의 데스크탑쪽으로 나를 유도했다.

40인치의 듀얼모니터에는 각종 소스프로그램들과 CMD창이 열려있었다.


타닥 타다다닥 타닥 타다다다다다

그녀가 콘솔로 몇가지 명령어를 입력하자 왼쪽 모니터 화면이 화악 바뀌었다.

“이게 뭔대??”

화면에는 L.A.R.K 라는 영문이 떠 있고 그 밑에 유전자 지도로 보이는 3D시뮬레이션이 떠 있었다.


“라크. Life Awakening Restoration and Keep. 이게 내가 하려고 하는거야.”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집중하는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생명체를 깨어나게 하고 복원유지한다고? 도대체 너 뭐를 하려는 거냐?”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인류의 보존이야. 웃기지?”

그런 사람이 있다. 인류애가 넘치고 흘러서 앞장서서 피켓 들고 모피 반대를 하는 사람이나 아프리카 걸식아동에게  붙여달라는 사람.

나는 머리에 물음표를 잔뜩 달고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대답 대신 질문으로 말을 이어갔다.

“에스토니아에서 전국민 DNA를 데이터화를 했고 최근에는 역분화줄기세포로 노화까지 정복했잖어.”


2020년의 가장  과학적 혁명은 실제로 노화의 정복이었다. 114세 여성의 세포를 재프로그래밍해서 노인의 세포를 신생아의 세포로 되돌렸다.


“알어. DNA는 양자역학같이 이해가 안되는 영역이 아니지.”

“라크는 질병 진료와 치료 뿐만 아니라, 저장된 DNA를 다시 복원시키는 기술이야. 텔로미어와 줄기세포를 이용하는 건데, 난 암세포로 테스트 중이야.”

나는 그녀의 말을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아~ 쉽게 말하자면, 모든 생명체는 DNA로 이뤄져있어. 이 DNA를 데이터로 저장하고, 라크를 통해 저장된 DNA 데이터를 3D프린터처럼 합성하여 현실화 하는거지.”

김미정이 미쳤다.
지금 그녀는 자신이 하는 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말도 안돼...생명체를 창조하겠다는 말이잖아...그건 신이 되겠다는 소리라고.”


“알어. 지금은 말이 안되지만. 언젠가는 가능해 질거야. 3D프린터로 우리는 이미 기적을 보고 있잖아.
3D프린터의 재료인 필라멘트를 넣으면 무기체가 인쇄되는 것 처럼, 세포를 재료로 넣어 유기체를 창조해 낸다... 어때?
이렇게 이야기하니 불가능한 일은 아닌거 같지?”


하기사 3D프린터는 이전 이라면 상상도 못하던 물건이었다. 김미정의 소리는 헛된 망상이 아니다.

“소재와 이론은 이미 검증했어. 3D 프린터같은 기계를 아직 못만들고 있을 뿐이지. 난 이거를 완성시켜 일론머스크에게 투자를 받는게 목표다.”


김미정.
천재는 맞긴 했지만 이렇게 어처구니가 없는 목표를 갖고 있다는게 놀라웠다.

“그래.  이뤄내길 바래. 좀 황당하지만 그 목표로 시작하면 인공지능 의사는 금방 만들겠네.”

“비꼬진 말아줘. 물론 네말따나 인공지능 의사가 아웃풋으로 먼저 나올꺼야.”


김미정은 진심이었다. 하기사 이 반쯤 미쳐있는 매드사이언티스트 천재 개발자는 못 만들어 내는게 없었으니.


나는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돈 많이 들겠네. 그래서 솔루션을 인질로 나를 협박하는 거냐?”

“정답! 솔루션 라이센스비 절반으로 깎은 돈 원상회복해주고! 프로젝트 하나 구해와. 전처럼 리베이트는 챙겨줄테니까.”


요즘 그룹내 신규 프로젝트가  축소되서 그녀를 도와줄 방법이 신통하지 않았다.
그  떠오르는 아이디어.

“아. SB그룹에서 투자회사를 이번에 설립해. 다음달.”


김미정은  이야기에 화색이 돌았다.


“설립 후 1호 투자처는 미정소프트로 적극 밀어 붙일테니까. 투자 받으면 5% 현금으로 내놔.”


“하아.. 새끼. 넌 전 여친한테도 삥을 그렇게 뜯어야겠냐? 투자금의 5%는 사기지!!  돈도 많으면서!!”


“그러면 2%”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김미정을 두고 나는 돌아섰다.


“솔루션 라이센스 연장해놔. 오늘 저녁부터 다시 가동시킬테니까.”

“라져댓. SB그룹 사위나리!”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투자라는 이야기에 밝게 웃고 있을 김미정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 * *


미정소프트의 일을 해결하고 돌아오니 벌써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유지선이 퇴근을 못하고 나를 자꾸 돌아보고 있었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그녀.
나는 그녀에게 문자를 조용히 보냈다.

[유지선씨. 금일 잔업은 없어요. 좋은 저녁 보내요.]


그녀는 문자를 확인하고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그녀의 입은 댓발 나와있었다.


띵동

그리고 기다리고 있는 문자가 도착했다.

[집으로 오세요. 저 퇴근했어요.]


한미주였다.

주소는 이미 알려줘서 알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택시를 타고 그녀의 아파트로 향했다.

고급 아파트 단지.
입구에는 커다란 분수가 방문자를 반기고 있고 산책을 하는 가족들을 형상화 한 커다란 조각상들이 가로수들을 따라 조화롭게 전시되어 있었다.

7시 20분.

점심을 걸렀더니 배가 꽤 고파졌다.

’오늘 저녁은 제가 멋지게 준비할게요.’
아까 낮에 마주쳤던 한미주가 내게 속삭였던 소리.
내 기대에 부응을 해줄 것인지 궁금했다.

B동 1001호.

띠로리로리로리리리~


가볍게 벨을 누르고 약간의 긴장감을 유지했다.


현관문이 벌컥열리며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한미주의 모습.
새틴소재가 주는 고급스러운 광택이 돋보이는 보라색 슬립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가슴은 깊게 파여져 있고 어깨는 가느다란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 우아한 느낌을 줬다.
안경도 그에 맞춰서 금테 안경으로 바꿔끼고 있었다.


“주인님~ 어서오세요~ 


주인님이라는 표현이 우아한 그녀의 입에서 나오자 마치 나는 왕이라도  듯한 기분을 받았다.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의 집으로 입성했다.
80평은 넘어보이는 넓은 공간.
모던한 디자인이 컨셉인 듯 밝은색 벽지와 거실에는 과하지 않은 샹들리에로 나름 신경쓰고 인테리어를 한  보였다.
그리고  샹들리에 아래 6인용 식탁에 차려진 각종 음식들이 고유의 컬러를 자랑하고 있었다.
푸른 채소와 과일, 빨간색 닭요리와 새끼돼지를 통으로 구워 로티세리처럼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모습.
일부러 식탁을 부엌에서 거실로 옮겨 놓은 듯 보였다.
분위기 있는 조명과 음식, 호스트의 우아한 복장에 성욕보다는 식욕이 먼저 발동되었다.

“진짜 멋지게 준비했군.”


“호호호. 감사해요. 주인님의 자매덮밥 연락을 받자마자 조퇴하고 직접 요리를 한거예요.”
자신의 입을 살짝 가리며 요염하게 웃었다.


“미선이는 차가 막혀서 30분정도 늦는데요. 죄송해요.”


“내가 좀 일찍 온거지. 괜찮아.”

나는 식탁에 앉기 전 한미주가 내어 준 밀크티를 들고 내 집인양 집을 훠훠 돌아 다녔다.
 멋진 한미주라는 여자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후릅.

밀크티도 꽤 고급스러운 브랜드인 듯 싶다.
집안의 가구나 소품들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있다.
각종 장신구들과 기념품들을 보니 해외여행을 많이 다닌 태가 났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이상한 사진을 봤다.
안방 침실 위에 눈에 띄는 가족사진.
한미주와 그녀 옆에 환하게 웃고 있는 금발머리의 외국인 사내가 보였다.
그리고 더 놀라운건 한미주와 금발머리 외국인 사내의 양손에는 각각 쌍둥이로 보이는 갓난아기가 하나씩 안겨있었다.
행복해 보이는 전형적인 가정의 모습이 커다란 액자에 담겨있었다.

나는 내색을 하지 않고 방을 하나씩 열어봤다.
분명히 안방은 부부의 침실이었고 그녀의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의 시계와 넥타이가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 붙어있는 방에는 아기 침대 2개와 그위에 돌아가는 모빌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사진속에서 봤던 그녀의 아기로 추정되는 쌍둥이는 보이지 않았다.


한미주가 유부녀에 갓난쟁이를 키우고 있었다고??
그것도 쌍둥이를?

나는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 살짝 당황했지만, 어차피 그녀는 내 육변기가 되기로 맹세를 한 입장이다.
김현준이 나를 포섭하기 위해 내린 명령이 제일 우선 시 될테니까.


“남편이랑 애들은?”


나를 보고 씨익 웃는 그녀.
보라색 슬립원피스와 태닝된 피부가 무척 잘 어울린다. 자세히보니 속옷은 입고 있지 않는  같았다.
약간은 부풀은 유륜까지 살짝 보였다.

“어디 갔어요~ 걱정안하셔도 되요~ 돈워리~”

자매덮밥을 기대하고 왔는데 갑자기 들이닥친 남편이 지랄하는 상황은 싫다.
아 혹시 미국식 마인드는  괜찮다 이러면서 남편이 구경하려나?
둘다 나는 관심이 없으니 더이상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주인님~ 식사 준비됬어요. 이쪽으로.”
나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식탁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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