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화 〉12화 비서실 (12/155)



〈 12화 〉12화 비서실

“어머! 실장님 안녕하세요~~”
비서실 프론트에 예쁘장하게 생긴 아가씨 둘이 한미주 실장을 향해 정중히 배꼽인사를 했다.


그녀들은 한미주실장 뒤를 따라 들어오는 나를 보고 깜짝놀라 다시 또 인사를 했다.

“어머머. 실장님. 안녕하세요~ 휴가 복귀하셨네요~”


“어. 오랜만이예요. 태희씨, 서희씨.”


그녀들은 내가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은 듯 얼굴이 빨개졌다.
참고로 나는 이쁜 여자들의 이름은 다 기억한다.
남태희 남서희.
쌍둥이 자매가 동시에 입사해서 17층과 그룹본부에서 꽤 유명했었다.

비서실은 이전에도 왔었지만, 약간 어둑한 느낌의 무거운 인테리어를 하고 있었다.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고 비서실을 통해 외부 손님들이 강재도 회장을 보러 오기 때문에 SB그룹에 대한 위압감을 주기 위해서 일런지도 모르겠다.


18층 회장실로 직통하는 계단이 연결된 곳도 바로 이 비서실이다.
회장의 섹스용 비서는 누구일까?
강재도가 회장의 권한으로 뽑는 비서들은 대부분 회장의 정액받이 노릇을 했다.
순전히 외모로만 뽑기 때문에 텐프로 출신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설마 이들 전부가 기쁨조 인것일까?
하지만 비서실이 해야되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똑똑한 진짜 비서는 필요한 법.


이 비서실에서는 진짜 비서와 강재도 회장의 정액받이가 공존하는 기묘한 곳이었다.


“아메리카노로 하실래요? 라떼로 하실래요?”


한미주 실장이 상당히 고급스러운 커피전문점에서나 보이는 커피머신앞으로 다가갔다.
한 대당 몇천만원이 넘는 고가의 장비다.
 우리 전략기획실에도 하나 들여놓을까?

“아메리카노로 할게요. 따뜻한거.”

한미주 실장이 직접 커피를 내리고 있으니 태희씨와 서희씨가 어쩔줄 몰라하며 근처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괜찮아. 일봐요. 여기 전략기획실장님 커피는 내가 만들어드려야지.”

“네~ 실장님.”

이내 안심하고 프론트 데스크로 돌아가는 그녀들.
남태희와 남서희가 입고 있는 투피스 유니폼.
짧은 검정색 펜슬스커트에 슬릿을 내어 걸을 때 마다 허벅지까지 노출 되는 디자인에 검정 리본타이가 정갈하게 매어져 있는 흰색 러플 블라우스.
그룹건물 1층의 인포에서 한미선이 입고 있던 유니폼보다 더 섹시하면서 귀여운 느낌이 드는 복장이다.

“이번에 바뀐 유니폼이예요. 귀엽죠?”

내가 그녀들의 몸매를 훑어보고 있던걸 눈치  모양이다.
괜히 얼굴이 벌개졌다.


“아. 네 두분이 워낙 스타일이 좋으시니 다 잘어울리실것 같네요.”

내 칭찬에 태희, 서희 자매의 얼굴도 벌개진다.

아.. 쓸데없이 말이 많아져 버렸다.
한미주 실장도 여자인데, 다른 여자를 면전에서 칭찬해버렸다.
이건 명백한 실수다. 절대 하면 안되는.

“한미주 비서실장님 수트핏을 보고 저도 내일부터 수트를 입고 출근해야될까 고민이 되었네요. 실장님의 스타일과 몸매가 워낙 발군이시니 부하직원들이 더 신경써야겠어요.”


아아아.. 안돼!!!
 큰 말실수를 해버렸다.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말을 하다가 더 큰 실수를 만드는 일.
직장에서는 자주 있는 상황이다.
당황한 나머지 맘 속에 있던 그녀의 몸매에 대한 이야기가 실 없이 터져나와버렸다.
성희롱 금지 교육에서 성희롱의 가장 첫번째 단골은 몸매 언급이었으니까.
하지만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발군? 한국말 백퍼센트 이해가 되지 않지만 좋다는 뜻이죠? 호호호. 한국 제일.. 아니 세계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강아영 실장님을 매일 보시면서 맘에 없는 소리를 하시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소우 스윗.”


휴.. 그냥 넘어갔다.
내가 SB그룹의 사위가 아니였다면 지금 싸대기를 맞았을게 뻔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지도 않고 차분하게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뜨거우니까 커피잔이랑 같이 가지고 가세요. 그리고 아침마다 비서실로 오셔서 커피 챙겨가세요. 태희씨? 남희씨? 두분이 저 없을 때는 실장님 챙겨드리세요?”


“네에~~”


“아. 감사합니다. 와이프가 있을 때도 못했던 호사를 누리는 군요. 잘마시겠습니다. 담에는 제가 보답드리죠.”

“어머~ 기대할께요.”

나는 고급스러운 무늬의 커피 잔을 들고 비서실을 나서는데 문앞에 갑자기 들이닥친 그림자에 커피를 쏟을 뻔했다.

속으로 욕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죄송합니다. 

창백하게 보이는 하얀색 피부.
색기어린 눈빛과 입술아래 점이 눈에 띈다.

강아영과 닮았어??
아니.. 강아영과 닮게 성형수술을 한 여자였다.
강아영 같이 우아하고 숭배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드는 미모와는 다르게 강아영의 분위기만 실력있는 성형외과 의사가 특징을 잡아 성형해  느낌.


나는 먼저 사과했지만, 내 앞의 도도하게 고개를 바짝 세우고 있던 여자는 대꾸도 없이 비서실로 쑥 들어갔다.

급하게 들어온 여자가  잘못 한건데  혼자 사과하는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시발 뭐야?
저 싸가지 없는 년은 뭐지?
오전에 한미주 실장의 커피대접에 좋아졌던 기분이 팍 상해버렸다.
이제 내가 근무하던 전략기획실의 문이 앞에 보인다.

“여어. 오랜만입니다. 다들 잘 계셨죠!”

“어!! 실장님 안녕하세요!!”


전략기획실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열렬히 환영해 줬다.


간만에 회사 컴퓨터를 키고 밀려있는 메일들을 점검하느라 오전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내가 없는 동안 온갖 사건사고는  발생한 듯 싶다.


“김성은 차장. 이따가 오후에 이슈들 보고  부탁할게.”
나는 자리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전략기획실의 마당발 김성은 차장을 호출했다.
약간 대머리에 땀을 많이 흘리는 녀석이다.

“네. 실장님!”

나는 잠시 머리를 식히느라 포탈의 뉴스를 하나씩 클릭 해봤다.
뉴스를 보기 시작하면 1시간은 순삭이라 업무시간에는 거의 안보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업무가 손에 안잡힌다.


[JEN 기억상실증 완쾌. 연예계 완전 복귀 선언!!]

어!??
JEN이라면 김현준이 재생성한걸로 판단되는 아이돌그룹.
3명이 교통사고로 동시에 기억상실을 한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그녀들이었다.

연예뉴스와 유튜브 동영상이 링크 되어있었다.
JEN의 리더 김지수가 대표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영상이었다.


-저희가 한동안 기억상실증으로 고생했는데요! 이제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한동안 걱정시켜드렸던 젠느 팬클럽분들께 우선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이어서 랩을 담당하는 최수진이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정말 다행이죠? 준비하고 있던 음원들과 안무를 살짝 보여드릴게요~

이어서 그녀들의 완벽한 칼군무.
그녀들의 뒤에서 밝게 웃고 있는 매니저 김현준의 모습도 보였다.


생동감 있는 인터뷰와 칼군무.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 아직 학습을 하며 버벅거리고 있는 강아영과 천지 차이였다.


거의 한달가까이 강아영을 포르노채널과 요리채널, 패션채널로 학습을 시켰었지만, 김지수와 최수진처럼 저렇게 자연스럽게 예전의 모습과 동일하게 인터뷰를 한다는 건 말이 안됐다.

재생성된 그녀들의 기억이 돌아왔다고??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가설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음을  수 있었다.

만약 강아영에게 원래 기억이 갑자기 돌아온다면??

“야!! TV꺼 이 개새끼야! 시끄럽잖아!!”
“내꺼 만지지 말라고했지!!!!”
흉신악살의 원래 강아영 모습이 떠올랐다.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진짜로..진짜로...만약 그녀에게 기억이 돌아온다면?
지금 나에게 훈련되고 조교되어 있는 섹스머신 그대로 일까?
진성 레즈비언으로 남자의 손도 못 잡던 그녀가 지금은 내 자지가 없으면 하루도 잠을 못  정도인데.
아니면 나를 개나 동물 보듯 꺼려하던 원래의 강아영일까?

나는 스마트폰으로 펜트하우스에 연결된 카메라를 다시 확인했다.


다행히도 강아영은 여전히 포르노채널을 열심히 감상중이었다.


부디 기억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랬다. 진심으로.

* * * *

제1회의실에서 김성은 차장의 브리핑 도중 화를 내고 싶은 것을 꾹 참아내야됐다.


“그렇게 해서 거래처와 관련된 제일 커다란 이슈는 이렇게 3가지입니다. 그리고 자잘한 이슈들은 메일로 정리해서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 “

고개를 숙인 김성은 차장은 면목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기사 SB그룹의 사위가 되기 이전, 내가 차장으로 있을  영업을 다해서 만들어낸 거래처였기에, 김성은 차장이 움직인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을거다.
특히 김성은 차장은 말주변이 없어서 누군가를 설득하는 업무 보다는 이렇게 보고를 위한 장표를 만드는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전략기획실에서 만들어지는 장표에는 오탈자나 비문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이런 부분에 대한 교정이나 스토리텔링을 하는 능력은 김성은 차장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었다.

“고생했어. 나 없는 동안   빠진것 같네.”

“아.. 실장님.. 정말 힘들었습니다. 실장님이 없으니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7살은 많고, 동급 차장에서 갑자기 상관이 된 나를 엿먹일까봐 조금 걱정은 했었지만, 생각보다 더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높고 책임감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첨인지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성은 차장은 역시 듣기 좋은 말은  골라서 한다.
예전 전략기획실장이 있을 때나 지금이나.

“복귀 기념으로 오늘은 회식이나 하자.”


“어디로 예약할까요?”

“그냥 간단하게 이 앞에 고기집 예약해놔.”

“네 알겠습니다.“


* * * * *


“전략기획실은 문제에 대응한다!!!”

내 건배사에 20명이 동시에 건배를 했다.
가장 바쁜 몇명을 제외하고 전원 참석을 했는데 왠간한 중소기업보다 인원이 많았다.


“전문대!!!”

젖을 문댄다는 발음과 비슷한 우리 전략기획실의 건배사를 다같이 외치며 소주잔을 들이켰다.

치직치이이치지직.


고기를 굽는 소리와 함께 왁자지껄 떠들며 주변자리의 삼삼오오씩 조가 나뉘어 조별과제하듯 대화를 나누는 실원들.


하지만 회식때 내 옆자리는 아무도  앉을라고 해서 늘 비어있었다.

“실장님~ 복귀 축하드립니다! 한잔 따라 드릴게요~”

달콤한 우유냄새를 풍기며 비어있는 내 옆자리에 앉는 유지선.
전략기획실의 오총사 중 일인.
상당히 커다란 눈과 두툼한 입술로 귀엽다는 인상이 제일 먼저 들었지만 하나씩 따지고 보면 전략기획실의 대표 미인이었다.
우리팀에 9개월  새로 들어온 브레인인데 꽤 예쁘장하고 귀여운 아가씨라고 생각했었다.

19살. 아마 그룹 내 재원 중 가장 어릴  싶었다.
미국 국적으로 검은 머리 미국인이다.
고등학교도 조기졸업하고 프린스턴대학을 나온 브레인이었다.
말 그대로 진짜 천재.
이번에 BI프로젝트 막판에 인공지능 관련 자문까지 해줄 정도로 똑똑한 인재였다.
보통 여자들의 첫 취업 나이는 빨라야 22살인데 상당히 어렸다.
덕분에 유지선의 인기는 장난이 아니었다.


“오. 지선씨. 고마워요. 머리 염색하고 파마했네? 갈색머리 잘어울려요”

“헤헤 긴 생머리가 관리가 더 어렵더라구요~ 사모님은 안녕하시죠?”

“하하. 그럼요. 고마워요. 지선씨도 한잔 받아요.”


유지선은 얼굴이 빨개지고 온건지  옆에서 빨개진건지는 모르겠다.

신입 때 내가 많이 챙겨주고 기업미팅 때마다 내 애마에에 태워서 데리고 다닌 적이 있었다.
그녀가 해야할 일은 영업과 기업들을 대상으로 업무 조율을 해야하는 일이였기 때문이다.

“와.. 페라리 생전처음 타봐요!!”
감동을 먹던 그녀의 순진한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한잔을 훌떡 다 마신 그녀는 조금 과장된듯 찡그리며 혀를 낼름 내밀었다.

“키야아~~ 오늘 술이 달다!!”
갑자기 소주병을 들고 자신의  잔에 다시 채우는 그녀.

뒤에서 김규현 대리가 나에게 귓속말을 소근 거렸다.

“죄송합니다. 실장님. 유지선씨가 술을 조금 많이 마신것 같아요. 혹시 실수하더라도 너그러이..”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아래위로 흔들며 김규현대리에게 미소를 보냈다.
걱정말라는 의미.

“키야. 실장님. 한잔 더하시죠!? 어차피 회식자리에서 대화 나눌사람도 없잖아요. 네?”

팩트 폭격.
비어있는 자리로 찾아온 조그만 새같은 그녀가 은따인 나를 발가벗겼다.

“그래. 마시자!”

“실장님의 좆나 이쁜 사모님을 위해 건배!!”


회식장소가 고기 굽는 소리와 워낙 시끄러운 대화가 오고가기에 그녀의 욕소리는 나만 들었다는게 다행이었다.


“그래.. 건배!”


씽긋 웃는 유지선.

“실장님은 왜!! 왜왜왜왜왜왜왜왜!! 모든걸  가진거예요. 배아프게. 쳇...”

하하하.


이녀석 나한테 나중에 혼좀 나야되겠는걸?

그래도 나와 대작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술자리가 흥겨웠다.
그것도 우리 전략기획실에서 제일 이쁘고 어린 신입이 당차게 술을 권하다니.


나는 간만에 근심걱정을 버려버리고 즐겁게 웃으며 술을 마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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