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4화 엘레베이터
금요일 저녁.
오늘 낮에 3층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했다.
내 집에 몰래카메라라니.
나중에 강아영의 약점을 잡고 흔들 수 있는 무기가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2층과 1층에도 구석 구석 설치를 했다.
7시 30분이 되자 상단 모니터가 화악 켜졌다.
엘레베이터에 누군가 탔다는 신호였다.
이나희랑 강아영이 같이 탔나?
카메라에 비치는 화면.
엘레베이터의 문이 열렸다는 듯 환한 빛이 실내를 비췄다.
역시 강아영. 내 와이프였다.
허리 라인의 잘록함을 강조하는 분홍빛 H라인 스커트는 그녀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복장이다.
천천히 닫히고 있는 엘레베이터의 문을 어떤 젊은 사내가 손을 넣어 다시 열었다.
그리고 그 젊은 사내는 황급히 엘레베이터에 들어왔다.
“어??”
뭐야 저녀석은?
직통 엘레베이터는 관리실과도 연결되어 있어 외부인이 그 앞까지 오는 것도 쉬운일이 아닐텐데?
문은 닫혔고 엘레베이터 공간에 낯선 사내와 와이프가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크게 놀랐는지 그녀는 자신의 손을 입으로 막았다.
난 순간 엘레베이터 안에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펜트하우스 직통 엘리베이터에 탄 낯선 사내를 향해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카메라만 있을 뿐 마이크는 없지만, 아마 그녀의 성격 상 쌍욕을 하고 있으리라.
손짓을 보아하니 악다구니를 쓰며 빨리 내리라는 제스쳐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젊은 녀석은 그녀의 행동을 모른 척하며 팔짱을 끼고 방관자 처럼 감상을 하고 있었다.
도와줘야 되나?
나는 카메라를 보며 도와달라는 그녀의 입모양을 읽었다.
당황하는 그녀의 표정은 나도 처음 보는 거다.
갑자기 모니터의 화면이 지지직 거렸다.
어? 전기가 나갔나?
갑작스런 고압전력으로 모니터가 껌뻑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
카메라가 어두워지면서 천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헉!!”
나는 심장이 멈추는것 같았다.
카메라를 어둡게 만들었던 물체는 검은색 액체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젤리같은 검은색 액체는 어릴적 가지고 놀던 액체 괴물같이 생겼다.
지금 엘레베이터 바닥에 검은색 젤리가 일렁이고 있었다.
끈적거리는 검은색 액체는 엘레베이터 벽면을 따라 흐르고 있었고 그 중간 중간 검붉은 피도 보였다.
피??
나는 머리를 화면에 박다시피 하며 자세히 살펴봤다.
워낙 선명한 카메라였기에 지금 일어나는 상황을 한번에 알 수 있었다.
엘레베이터 바닥에 일렁이는 듯한 검은색 액체에 문득 문득 보이는 그녀의 긴생머리.
그리고 그 액체사이에서 그녀의 팔다리가 분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젊은 사내는 저 뒤에서 팔짱을 끼고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
특히 분리된 팔은 경련을 일으키며 마치 잉어같이 팔딱거리며 피분수를 흩뿌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동공에 힘이 빠져있는 그녀의 얼굴이 엘레베이터 바닥에 있는 검은 액체속에서 잠시 떠오르는 것을.
분명히 잘려져 있는 강아영의 머리였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꿈인가 싶어 불따구를 꼬집어 봤을 정도.
그리고 바닥에 있던 검은색 액체괴물은 보자기처럼 확 펼쳐지더니 그녀의 분리된 사지와 머리를 덮어버렸다.
뭐지?
SF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현실감 없는 장면.
카메라에는 마치 검은색 액체괴물이 강아영의 시체조각을 먹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젊은 사내는 심심한지 턱을 긁고 있을 뿐이었다.
1분 정도의 정적.
나는 지금도 상황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하나 확실한 건 이거다.
검은 슬라임같은 괴물이 강아영을 분리하더니
흡수해 버렸다.
그리고 검은 슬라임은 사람의 형체로 위로 솟구쳤다.
카메라까지 덮치는 검은색 슬라임의 찌꺼기로
화면은 다시 까맣게 변했다.
잠시후 검은색 괴물체는 사라졌고, 카메라에 붙었던 찌꺼기도 없어지며 이건 꿈이었다는 듯 다시 선명한 화면이 엘레베이터 실내를 비추기 시작했다.
엘레베이터 벽면에 있던 검은색 찌꺼기와 혈흔도 사라졌다.
“??”
꿈이었던가??
엘레베이터에는 아까전의 악다구니를 치던 와이프가 다소곳하게 서있었고, 팔짱을 끼고 있던 젊은 남자가 뭐라고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아. 시발.
내가 MC 까페 같은데서 맨날 과대망상을 하고 있다보니 이런 좃같은 상상을 했나보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강아영은 집으로 올라오는 40층 버튼을 누르는 대신 엘레베이터 문을 열고 그 젊은 남자의 뒤를 따르는게 아닌가?
그리고 그날 내 와이프 강아영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 * *
아침이 되도 그녀가 여전히 집에 돌아오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전화번호도 모른다.
가끔 이나희의 집에가서 외박을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번에는 같이 나갔던 젊은 남자가 의심스러웠다.
그 괴이한 사건 - 아마 내 상상이었겠지만 - 이 다시 떠올라서 나는 녹화된 카메라를 처음부터 다시 PC로 플레이 해보았다.
과대망상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녹화된 MP4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어제 저녁에 생긴일은 무슨 기묘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발생한 일이었다.
피가 난자하고 그녀의 팔다리는 잘려나갔고 머리까지 분리가 된게 확실했다.
몇번을 돌려봐도 확실했다.
SF특수효과를 이용해서 나를 골려먹으려는건가?
하지만 강아영은 이렇게 나를 골려 먹을 이유가 없다.
녹화본을 USB로 저장하고 경찰서로 가야될지 고민을 했다.
증거는 있지만 이건 진짜 말도 안되는 황당한 사건이다.
보통 영화에서 보면 이런 기묘한 일을 제보하는 조연급들은 경찰들에게 오히려 구금되거나 정체불명의 집단에게 암살되곤 했다.
나는 현실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이런 기묘하고 그로테스크한 비현실적 사건은 상상력이 풍부한 MC카페 회원들에게 마치 소설의 한 부분인 것처럼 사건을 설명하고 조언을 얻으면 될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MC까페에 접속하여 질답게시판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제목: 만약 이런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글 내용에 어제저녁 카메라에 녹화된 영상 내용을 거짓말을 보태지 않고 그대로 서술했다. 물론 주인공은 다른 가상의 인물로 내세웠지만.
영상을 그대로 올리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최대한 현실적인 묘사와 서술을 이용해서 영상을 마치 보는 것 처럼 글로 작성했다.
그리고 나서 극도로 피곤해진 눈을 잠시 붙이는 시간을 가졌다.
[답변: 아마데우스 - 아마 남자주인공을 놀래주려고 몰래카메라를 설치한게 아닌가 싶네요. 요즘 그런 할로우윈용 특수용품은 온라인에서도 쉽게 구할수 있습니다. ]
[답변: 히틀러의꿈 - 비디오에 확실히 녹화되어있다면, 이건 귀신의 소행이 아닐까 싶네요. 여자주인공이 죽은거구요. 귀신이 되서 따라간게 아닐까 싶어요. 어흑 무셔...]
[답변: 양자역해 - 우주인의 짓이 확실합니다. 분자 단위로 재생성하여 복원을 한게 아닌가 싶네요. 혹시 카메라가 깨끗해지고 난 후 여주인공의 모습과 죽기 전의 모습을 잘 비교하면 차이점이 있을거예요. 한번 잘 비교해 보세요.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테니]
그 이후로도 수많은 기발한 답변들이 달렸지만 나는 양자역해의 결론이 그럴듯 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모니터 두개로 정지화면을 이용해가면서 그녀의 모습을 자세하게 비교하기 시작했다.
딱 2번을 봤을까?
나는 양자역해에게 바로 쪽지를 날리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분명히 하이힐을 신고 있었는데, 얌전해지고 난 후 그녀는 맨발이었기 때문이었다.
[쪽지보내기: 양자역해님에게]
[양자역해님 안녕하세요. 사건 전에는 하이힐을 신고 있었는데, 사건 후에는 하이힐이 없어졌어요. 그런데 이걸 어떻게 아셨죠?]
띠링~
바로 답변이 날라왔다.
다행히도 약자역해는 접속 중인 것 같았다.
[쪽지 받기: 아영간강]
[안녕하세 아영간강님. 소설쓰시는데 너무 몰입하신것 같ㄴ요. 사실로 착각하실 정도로 집중하시다니 존경스럽읍니다. ㅎㅎ
저도 비스탄 소설을 쓰고 있는데요.
DNA재구성에 대한 아이디어거든요.
아마 하이힐이 가죽 재질일거구요. 외개인은 인간의 가죽과 혼돈해서 분자를 재구성할 때 하이힐을 몸의 일부로 합성해 버릴 수 있거든요. 덕분에 여쥔공의 키가 좀더 커지지 않을까 싶네요.]
맞춤법이 안맞아서 설득력이 조금 떨어지고 황당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자꾸 곱씹어서 생각해보니 왠지 현실감 있게 들리는 것 같았다.
이게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건 왜인거지?
[쪽지보내기: 양자역해님에게]
[양자역해님 감사합니다. 좋은 아이디어라서 글 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만약 그녀가 다시 돌아올 때 키를 보면 알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나는 조용히 컴퓨터를 끄고 그녀가 언제 돌아올지 기다렸다.
3일정도 기다렸다가 만약 돌아오지 않는다면 경찰에 신고를 할 요량이었다.
* * *
토요일은 역시 그녀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일요일 저녁.
상단의 모니터가 화악 켜졌다.
누군가 엘레베이터를 탄 것이었다.
그제 퇴근할 때 입었던 연분홍색 스커트를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휴..”
다행히 그녀가 돌아온 것이다.
그냥 해프닝이었나보다.
그녀가 사라진 순간 부터 얼마나 많은 상상을 했는지 몰랐다.
무섭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의심이 스물스물 밀려왔다. 만약 그녀가 양자역해의 말처럼 외계인에 의해 다른 존재가 되었다면?
아니, 우주인이 그녀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거라면??
나는 현관 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장은 점점 요동치기 시작했다.
쿵쿵쿵.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녀가 현관문을 손으로 두들긴 거다.
분명히 지문감식기로 스스로 열 수 있을 텐데??
문을 여는 방법을 모른다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식은땀이 등뒤로 흘러 나의 티셔츠를 잔뜩 적시기 시작했다.
쿵쿵쿵.
나는 잠시 고민을 했지만, 이전의 또라이 그녀보다 외계인이 더 나을 수 있겠다는 황당한 결론을 내렸다.
그녀가 외계인이라면 죽기 밖에 더하겠냐.
아니 솔까, 지구를 침략하러 온게 아니고 친해지려고 온걸 수도 있지 않은가?
쿵쿵쿵.
나는 심호흡을 길게하고 용기를 내서 문을 열었다.
그녀의 긴생머리, 조각같이 아름다운 얼굴.
연분홍색의 엷은 립스틱과 허리라인을 살리는 H라인 연분홍색 스커트에 하얀 블라우스.
귀에 죽 늘어진 진주귀걸이와 결혼반지.
어느 한군데 그녀가 아니라고 생각할 만한 건덕지가 없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표독했던 그녀의 눈빛은 온순한 양처럼 순해져있고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어??
그리고 키가 166이었는데, 얼핏봐도 지금은 170cm는 족히 더 커져있었다.
키가 조금 더 커졌을 뿐인데 더 완벽한 여신으로 변해있었다.
이전에는 힐을 신고 나의 목에 닿을랑 말랑했던 키였지만 지금은 내 눈까지 닿을 정도였다.
“다녀왔어요. 여보.”
나긋나긋한 강아영의 목소리. 지금 나를 보고 웃으며 여보라고 했다.
여보라고??
강아영이 아니다. 이건 확실해...
순간 손과 발에 소름이 후드득 돋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에게 말을 거는건 혼전계약 위반이지만,
분명히 앞에 서있는 강아영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 건 내 와이프가 아니다.
“며칠 늦었네? 잘 다녀왔어?”
나는 씨익 웃으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매력적인 기다란 손가락을 나에게 죽내밀어
내 손을 맞잡았다.
그녀의 보드라운 오른 손은 마치 연체동물을 만지는 느낌이었다.
그녀도 부드럽게 내손을 엄지와 검지 중지를 이용해 꼬옥 잡아줬다.
“네~”
이빨이 보이게 씨익 웃는 그녀.
나에게 이렇게 사랑스럽게 웃다니.
묘한 스릴과 감동이 내 온몸을 전율 시켰다.
다소곳하게 인사를 하며 ’네’ 라니!!
나한테 ’네’라며 손을 잡다니!!!
나는 그녀의 연분홍색의 엷은 립스틱이 발린 입술이 너무 탐스러웠다.
내 결혼식날을 제외하고 그녀의 얼굴을 이렇게 자세히 본적이 있었을까?
나는 천천히 그녀의 턱을 잡았다.
턱을 잡자 저절로 살짝 열리는 그녀의 입술.
나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