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1화 트로피허스번드
인생의 성공은 한강뷰의 삶이다.
거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한강의 멋진 야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한강뷰에도 급이 있다.
졸부들이나 연예인들이 즐겨 찾는 한남동 한강뷰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청담동 한강뷰의 삶.
내가 꿈꿔 왔던 그 인생이다.
한손에는 1,000만원짜리 고급 와인을 맥주잔에 담아 들고 야경을 만끽 하고 있었다.
씻기 힘든 와인잔을 들고 겉멋부리는 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거다.
나같은 진짜 부자는 그냥 맥주잔에 편하게 먹는다고.
손의 체온이 어떻고 떠드는데 프랑스 본토 부자들도 그냥 나처럼 편하게 먹는다
상위 0.0001%의 삶.
간만에 밤공기가 맑아 시야가 꽤 멀고 별들도 꽤 보인다.
맥주잔에 담긴 그랑크뤼를 한모금 마셨다.
적당한 무게감에 보르도 지방 와인다운 특유의 감칠 맛이 향긋하다.
청담 PIAS 타워.
한강이 보이는 청담동의 제일 높은 건물.
그리고 그 40층 건물의 꼭대기 3층을 럭셔리하게 개조한 펜트하우스.
대리석과 상아, 고급목재를 이용해 디자이너 피아누스가 설계한 럭셔리한 공간.
이곳이 내가 사는 집이다.
게다가 이곳은 PIAS타워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나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국내 1위 대기업인 SB그룹이 신경써서 만든 주상복합 건물.
원래 이 펜트하우스는 SB그룹 강재도 회장이 직접 살기 위해 설계한 곳이었다.
하지만 직접 살아보니 나쁜 점이 눈에 더 띈다.
대부분 한강 조망을 위해 북향으로 짓기 때문에 여름에 제습기능을 계속 틀어놓지 않으면 곰팡이가 생긴다.
무려 300억짜리 펜트하우스인데도 말이다.
건물위에 증축하여 만든 공간이다 보니 엘레베이터는 40층까지 올라오는 구조.
40층의 현관문을 지나면 게스트룸 겸 Bar가 마련되어 있고, 41층은 내가 거주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42층은 와이프가 거주하는 공간이다.
이 3개의 층을 내부의 계단이 고급스럽게 배치되어 있어 더 클래식하고 우아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집안일은 낮 시간동안에 청소 아주머니가 방문해서 깨끗하게 청소를 해놓고, 나머지 집안일은 인공지능 로봇이 자동으로 해주는 최첨단 럭셔리 하우스다.
110인치 TV 위에 하얗게 빛나는 LED시계를 바라봤다.
금요일 저녁 10시 12분.
TV 옆의 고풍스러운 액자에 시선이 갔다.
액자 안에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우아한 그녀.
중세시대 귀족이 입었을 만한 멋진 드레스를 입고 양손을 모아 다소곳이 앉아있는 미녀.
사진으로 착각 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초상화는 현대화가 김장수 씨의 작품이다.
바로 내 와이프의 모습을 극사실주의 화폭에 담았다.
갸냘픈 목선에 이어지는 새하얀 얼굴.
완벽한 계란형 턱선에 반쯤 벌려진 빨간입술은 숨을 내쉴 것만 같고, 완벽한 콧날과 고양이상의 커다란 눈망울은 모두가 추앙할 만한 여신의 품격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왠만한 미녀를 많이 사귀어 봤지만,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눈 조차 마주치지 못했으니까.
이건 나 뿐만이 아니다.
모든 남자들은 내 와이프의 미모를 감당하지 못한다.
너무 예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신의 걸작품.
나는 지금 2층 거실 쇼파에 널부러져 있었다.
넷플릭스에서 최근에 꽂힌 미드를 시청하고 있었다.
바닥에는 아까 시켜 먹었던 초밥 포장지가 떨어져 있고 이내 로봇청소기가 떨어진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띠리리리릭~
철컥.
지문인식으로 자동으로 열리는 현관문 소리가 들렸다.
와이프가 퇴근하고 돌아온 것 같다.
또각또각또각
레드샌달우드로 만들어진 나무 계단을 밟고 그녀가 밑의 층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제발 말걸지 말아라.
나는 간만에 즐겁게 보는 넷플릭스 미드를 꺼야하는 상황이 올까 살짝 긴장을 했다.
강아영.
내가 와이프라고 부르는 그 여자도 TV를 시청하는 나를 힐끗 보더니 아무 말 없이 3층으로 올라갔다.
적당히 짧은 치마에 쭉 뻗은 다리의 각선미는 결혼 전이나 지금 이 상황에서도 나를 흥분하게 만드는 예술적인 조각품과 같았다.
계단을 올라갈 때 마다 씰룩거리는 엉덩이로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응??
순간 그녀의 엉덩이의 흔들림이 멈추는 바람에 내 시선은 그녀의 얼굴 쪽으로 올라갔다.
헉!!
그녀도 고개를 돌려 45도 각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게 아닌가?
경멸스러운 표정의 그녀의 눈빛이 나의 눈과 마주쳐버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 곧바로 TV로 눈길을 돌려버렸다.
“뭘 쳐다봐? 변태같이... 더럽게.”
그녀는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나를 훑었다.
나는 거미에게 잡힌 파리 마냥 꼼짝 못한 채 TV만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 뭐라고 말 한마디를 잘못하면 물건이 날아올 수도 있다.
이전에 하이힐에 머리를 맞은 적도 있었다.
또각 또각 또각
다행히 다시 그녀는 3층 계단의 꺽어지는 코너로 사라져 갔다.
또각. 또각.
그녀의 힐굽에 레드샌달우드가 아파하는 비명을 연신 질러대고 있었다.
결혼 1년차.
하루가 멀다하고 서로 부둥켜 안고 살을 섞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신혼 초기.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남보다 더 차갑게 대했다.
그리고 신혼 첫날 밤이란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꼭두각시.
186cm의 키에 고등학생 때 모델경력도 있는 잘생긴 외모.
그리고 서울대를 졸업한 브레인.
나는...
그녀를 돋보이기 위한 장식품에 불과했다.
나는 트로피 허스번드(Trophy husband)다.
* * * * *
작년의 일이다.
나는 세계 시총 13위인 SB그룹의 전략기획실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었다.
냉철한 분석력과 주변에 적을 두지 않는 정치감각, 그리고 뛰어난 언변과 성실함은 입사 후 SB그룹 내 제일 빠른 차장급 승진을 했었다.
촉망받던 나는 강재도 회장에게 1:1 대면 보고를 할 기회를 자주 얻었었고, 강재도 회장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때가 아마 인도의 경쟁업체에 대한 보고자료를 브리핑 할 때였을 거다.
“잠깐. 보고는 이 정도로 하지. 인도의 수출물량을 좀 더 조절하는 기획안으로 변경 해주게나.”
“네 회장님.”
강재도 회장은 노트북을 챙기고 있는 내 어깨를 지긋이 눌렀다.
깜짝 놀란 나는 노트북을 떨굴 뻔 했다.
“잠시만. 자네. 개인적인 부탁 좀 들어줄 수 있는가?”
갑자기 회장님의 스킨쉽이라니.. 변태로 소문난 강재도 회장의 취미 때문에 나는 순간 이상한 걱정을 먼저 떠올렸었다.
“자네. 내 딸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네??”
나는 회사의 미혼 여직원들 모두가 관심을 가질 정도로 잘생긴 외모로 인해 피곤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그리 도덕군자는 아니다.
전략기획실의 꽃이라고 불리는 민은아 대리를 짝사랑하고 있는 전략기획실장의 질투로 회사에서 짤릴 뻔 한 적도 있었다.
재밌는 건 민은아 대리는 신혼이었고, 전략기획실장은 유부남이었다.
사실 민은아 대리가 결혼하기 전부터 그녀는 나의 섹스파트너였다. 사무실에서 몰섹을 했는데 약간의 흔적을 남겼고 이를 전략기획실장이 발견했었다.
하지만 내가 함정을 파서 전략기획실장을 회사에서 짤리게 했었다.
민은아 대리를 기분 나쁘게 쳐다봤고, 어깨에 손을 올렸기 때문이다.
못생기면 성추행이고 잘생기면 섹스파트너.
억울하면 잘생기던가.
그때까지도 민은아 대리는 내 섹스파트너였다.
결혼 6개월의 신혼의 단꿈을 꾸고 있는 유부녀였지만 말이다.
그런데 지금 강재도 회장이 자신의 딸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고 있었다.
설마 강아영 실장이 나를 좋아한다고??
“잠깐 이리로 앉게나.”
강재도 회장과 나는 쇼파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세계 시총 13위 그룹의 회장과 같은 위치에 앉아 있다는 건 엄청난 부담이었다.
“내 딸의 뉴스를 봤는가?”
안봤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강재도 회장의 막내딸 강아영 실장.
비서실 실장으로 근무하는 그녀는 연예계로 진출해서 광고도 찍을 정도로 유명한 셀럽이었다.
다스패치라는 연예전문 뉴스에서 특종으로 나온 보도는 전 국민을 아연실색하게 했었다.
이나희는 헐리웃 영화에도 진출한 국내 최고의 여배우였다.
미투(美Two)라고 불리는 한국의 최고미녀 2인방이 알고보니 레즈비언이었다는 보도는 연예계를 발칵 뒤집어 놨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미녀 2명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보도에 둘이 키스하는 사진까지 자극적으로 올려 그룹 차원에서 대응 중이었다.
“네 봤습니다.”
“내 딸아이랑 결혼 해주게.”
“네!!???”
“자네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자네와 민은아 대리 둘 다 해고하고 이 사진을 언론에 뿌리겠네.”
강재도 회장이 테이블위에 올리는 사진.
민은아 대리가 사무실 책상에 손을 올려 엎드려 있는데 그녀의 엉덩이를 포개고 있는 내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사진이었다.
둘 다 하의가 발목까지 내려가 있었다.
헉...
언제부터 내가 감시를 당했던 거지?
나는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그런데 그룹 회장이 직접 이런 추잡한 협박을 한다고?
뭔가 이상했다.
강아영과 결혼하면 사위가 되는게 아닌가?
사위의 이런 과거를 알면서 결혼해 달라니?
“하하. 너무 당황하지 말게나 젊은 사람들끼리 그럴 수 있지. 내가 부탁하는 건 명목 상 결혼일쎄. 사실. 내 딸아이는 레즈비언이네. 남자와 손도 잡을 수가 없어.“
“옛??”
나도 모르게 헛바람을 일으켜 대답을 하고는 깜짝놀라 입을 막아야 했다.
회장님 앞에서 큰 실례를 했다.
“놀랄 만 하지. 덕분에 다른 재벌가와 결혼은 불가능했지. 자네의 약점을 잡고 부탁을 해서 미안하지만 대신 자네를 진급시키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신혼집을 마련해주겠네. 이건 거부 할 수 없는 제의라네.”
나는 얼떨떨해서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네는 바람을 피워서는 안되네.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워 뉴스에 나오거나 하면 모든 책임을 물을걸세.”
내가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느꼈을까?
“10억원을 현찰로 주지. 대신 자네의 정자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주게나. 딸아이가 그래도 임신은 해야되니. 허허.”
거절하기에는 너무도 큰 돈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SB그룹 마케팅팀에서 뉴스를 뿌렸다.
SB그룹 전략기획실 브레인인 내가 강재도 회장의 세번째 딸 강아영과 결혼을 한다는 뉴스였다.
그리고 다스패치는 무슨 이유인지 레즈비언 보도에 대한 사과 보도를 헤드라인에 박아넣었었다.
결혼은 메드슨 호텔에서 성대하게 이뤄졌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기에 배우를 섭외해서 가짜 부모님을 세워야 했다.
그룹 회장의 막내딸의 결혼인데 부모 없는 자식과 결혼한다는게 수치라고 생각했던 걸까?
조금은 억울했지만 감내해야 했다.
강아영.
그녀는 연예계 진출을 위해 연기학원도 준비했던터라 대중 앞에서 엄청난 연기를 선보였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사랑받는 여인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을 만한 열연을 펼쳤다.
결혼식때의 그녀와의 키스.
혀를 절대 넣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듣고 나 또한 조심해서 키스하는 연기를 해야했다.
결혼식 후에 그녀는 칫솔질을 몇십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나와의 키스 이후에 토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남자라면 아예 질색을 하는 그녀는 천상 레즈비언이었다.
그리고 시작한 어색한 동거.
층과 층이 나뉘어져 있기에 서로간에 간섭을 하지 않는 물리적 간극이 존재했고,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함구를 해야하는 조건이 추가로 붙었다.
더 황당한건 말도 먼저 걸면 안된다는 것.
혼전 계약서를 다 들여다보면 기가막힌 조항들이 가득 했다.
3층에는 절대로 올라가면 안된다는 조항.
자신이 위급해도 절대로 안된다고 했다.
매월 그룹 소속의 병원에서 정액을 체취해야했다.
이 부분이 제일 내 자존감을 떨어트렸다.
이 미친 강재도 회장은 자신의 딸의 변태적 섹스취향을 인정하고 있었고, 그녀의 변태성이 나라는 껍데기를 이용해 완벽히 가려지기를 원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TV에도 출연할 만큼 잉꼬부부로 소문이 났다.
결국 국민들의 뇌리속에 미투(美TWO)의 레즈비언 사건은 한낱 루머로 인식되어갔다.
전략기획실장.
나는 차장에서 부장으로 단번에 진급을 했다.
나는 SB그룹 역사상 가장 단기간에 부장으로 진급한 사람으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아내를 강간하는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