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 브레이커-887화 (887/923)

0887 / 0923 ----------------------------------------------

12장

리엘루스는 자신의 앞에 놓여진 영롱한 보석 같은 괴수의 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플래티나의 시체에서 추출한 핵으로, 하린이 직접 안전하게 보관하며 리엘루스의 거미집에다 놓아준 괴수의 핵.

하린은 끝까지 죽은 이들을 입에 담지 않으며, ‘주인님이 주래’ 라는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인간은 이해 못하겠지만 거미줄의 진동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두 다 알아들을 수 있는 거미 괴수인 리엘루스는, 밖에 있는 이들 전부가 죽은 이들의 언급을 피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삼태극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역시 세계 최악의 악당 집단이다. 동료의 죽음을 짧게나마 추모하지도 않는다니’ 라며 욕을 하겠지만, 삼태극 초기부터 함께 이리저리 다녔던 리엘루스의 생각은 달랐다.

‘목소리 너머에서 분노가 느껴지고 있다.’

삼태극의 모두들은 죽은 이들을 망각한 게 아니다.

단지 지금 당장 죽은 이들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군이 적에게 훨씬 더 많은 피해를 안겨다 주었다지만 결국 패배는 패배였고, 핵무기를 이용하여 전 세계를 인질삼아 가까스로 살아남게 되었다.

진우만 해도 겉으론 평소와 같은 장난을 치고 있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상태에선 홀로 분노를 토해내는 중이였다.

하린또한, 툭하면 투닥거리던 후지미네가 죽으니 쓸쓸해진 모습을 보여주면서 노아와 함께 찰싹 붙어서 적의 동태를 정찰한 후에 훈련을 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다.

다들 상처를 입었지만, 상처를 입었다고 징징거리는 게 아니라 복수를 위해 분노를 아끼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죽은 이들을 애도하기 위한 복수를 다짐하고 있는 삼태극.

리엘루스는 자신과 비등한 힘을 지녔던 플래티나의 핵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자신은 부상을 입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랜드 아크의 발목을 물면서 어떻게든 방해하려던 플래티나와, 그런 플래티나의 머리를 짓이긴 그랜드 아크의 모습이 8개의 눈알에서 아른거린다.

어찌 보자면 플래티나의 죽음은 자신에게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이 거기서 함께 그랜드 아크를 붙잡았더라면, 부상을 입었다 해도 두 명이 힘을 합쳐 어찌어찌 버텨낼 수 있었을 테니까.

‘지금까지 우리들을 제외한 인간들을 무시해왔다.’

이벨과 그랜드 아크는 강했다. 그 증거로 이벨을 상대로 2:1로 붙었는데도 오히려 자신들이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유물 무기의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가 어떤 능력을 가진 무기를 사용하는지 알아내고, 그에 맞는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무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면서 사냥하는 것인 거미의 사냥법이다.

‘다음은 이렇게 당하지 않겠다.’

손쉬운 먹잇감들만 잡아먹으며 자만에 빠져있었던 리엘루스는 플래티나의 핵을 먹고선 자신의 거미집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8개의 붉은 망막에 이벨과 그랜드 아크의 모습을 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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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극이 가지고 있는 핵무기를 하나라도 더 처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는 핵무기 해체팀과 조사원들.

페리샤는 그런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중국의 기지를 핵무기 기지처럼 꾸며서 그들의 이목을 끌어냈다.

실제로 자신들이 가진 핵무기를 모두 다 내줬지만 실제로 말해봤자 믿어주지도 않을 테고, 무엇보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져야만 했던 그녀는 가짜 핵무기 기지들을 만들며 조사팀이 허무하게 시간을 소비하게 만들었다.

한 쪽은 만에 하나 수준의 확률도 여지없이 확인할 정도로 핵무기를 해체하고자 하고, 다른 한 쪽은 시간이 필요하기에 그런 그들에게 먹음직스런 미끼들을 내놓는다.

핵무기의 공포는 예상보다 더더욱 큰 건지, 아니면 삼태극을 한차례 이겨서 여유가 있는 건지 몰라도, 페리샤의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렇게 벌어낸 시간은 약 2주.

정확히는 2주하고도 1일째가 되는 날에 전 세계의 전문가들이 우르르 달라붙어서 핵무기를 전부 해체하였다.

핵분열 장치는 외부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된 케이스에 넣어둔 그들은 페리샤가 만들어놓은 미끼에 시간을 실컷 소비해놓고선 오히려 의기양양하게 복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마 이들이 시간을 이렇게나 소비해도 다들 콧대가 높은 것은 핵무기를 모두 처리했으니 이제 남은 건 삼태극의 멸망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라고 생각하기에 이런 여유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페리샤는 모두를 함교로 모이게 하여 이러한 설명을 하였고, 자신들이 명백하게 무시당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그녀들은 모두 자존심이 상한 표정이 되었다.

“뭐야? 그러니까 우리는 언제든지 처치할 수 있다 이거야?”

“그 자식들, 한 번 이겼다고 아주 기세등등하네?”

다들 한마디씩 하면서 자신들을 우습게 보는 연합군의 모습에 분개하려던 순간,

짜악!

페리샤의 뒤쪽에서 함장석에 앉아있던 남성이 손을 마주치는 소리로 모두의 입을 막아냈다.

“페리샤. 계속 말하도록.”

거기에는 선천지기 때문에 뚱뚱한 몸을 유지해야만 했었던 진우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이실리아와 아키를 자신의 무릎에 앉힌채로 그녀들의 몸을 애무하듯이 만지면서 보드라운 여자의 감촉을 즐기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평소 그대로의 모습 이였지만, 다들 진우의 기세가 확실하게 변하였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지금까진 뭐든지 찔러대기 위해 가시를 세우고 폭력적인 기세였다면, 지금은 거대하면서도 날카로운 느낌이였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눈에 띄면 아무에게나 달려들던 미친 고슴도치에서 산조차 베어낼 수 있는 거대한 검으로 변신했다고 해야 할까?

“예. 그리고 해체팀이 복귀하려 하자 연합군의 움직임도 눈에 띄기 시작하였습니다. 명백하게 우리가 있는 방향을 포위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거 이상한데. 은폐 대책은 모두 마련했다고 하지 않았나?”

위장용 천막을 치고, 만약을 대비해 스텔스 기능까지 사용하여 레이더와 인공위성의 감시를 막아냈다.

거기다 중국군 기지를 간이 정비소로 사용하여, 정찰을 위해 밖으로 돌린 무인 병기들은 절대로 지하드로 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런데도 이쪽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위치 정보가 까발려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떻게?

다행히도 답은 금방 나왔다.

“혹시나 몰라 지하드 내부에 정밀 스캔을 시도하였고, 초소형의 발신기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치에 있었던 사람을 CCTV로 확인해본 결과, 예전에 우주에서 펜타곤을 구해줬을 때 그리핀이 몰래 발신기를 부착한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배신을 염두해두고 있었다 이거군.”

“죄송합니다. 설마 우리에게 도움을 받은 그가 이런 행동을 할 것이라곤 생각치 못해서…….”

“아니다. 나 또한 히어로라는 것이, 그것도 그 수장격인 놈이 이런 더러운 짓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했으니까.”

진우는 자신의 무릎 오른편에 앉아있는 아키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그녀의 감촉과 체취를 얼굴 전체로 느끼면서 분노가 사그라드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문제는 우리가 있는 이 곳은 우리의 모든 재산이라 할 수 있는 창고라는 것이지.”

무인 병기를 만들 수 있는 금속 자재, 생필품들이 보관되어 있는 창고.

만약, 지하드에 자체 텔레포트 능력이 없었더라면 여기저기에 비밀 기지 형식으로 만들며 분배 관리를 하였겠지만, 텔레포트로 쉭 와서 후다닥 보급받고 다시 휙 사라지면 되기 때문에 한 곳에다 몰빵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 창고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장을 바꾸고자 합니다. 우리가 다른 곳에서 모습을 공개적으로 드러낸다면 저들 또한 우리쪽으로 포위의 방향을 바꿀테니까요.”

“그런데 저들도 우리가 숨어있던 곳에 뭐가 있을지 궁금해하며 찾아올지도 모르잖아?”

셀리가 만약을 대비하여 반박을 하자, 페리샤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거기에 수긍하였다.

“그래서 이곳에서 약 150km 벗어난 곳에서 모습을 드러낼 예정입니다. 만약 적들이 창고를 공격하면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페리샤가 전장으로 삼은 곳은 평야였다.

대군이 소수의 적을 포위하여 섬멸하기 딱 좋은 평야.

만약, 일반적인 군대를 가지고 있다면 다들 페리샤가 미쳤다고 입을 모으겠지만, 지금의 삼태극은 그 때와 완전히 다르다.

“무인 병기의 숫자는 전보다 약합니다. 아군의 간부 2명도 사망하여 전체적인 전력이 약해졌습니다.”

2명 사망이라는 부분에서 모두의 눈빛에 순간적으로 불이 들어오며 함교 내부가 살기로 들끓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설명 역을 맡은 페리샤는 아무렇지 않게 그 모든 살기를 감수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라고 연합군의 지휘관들은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평야에서 모습을 보이면 아주 좋다고 달려들겠죠.”

페리샤는 자신이 찾아낸 초소형 발신기를 검지와 엄지 손가락으로 조심스래 굴리다가 마스지드에게 넘겨주었다.

“적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불리한 평야에서 싸움을 시작할리 없다고 판단, 포위는 하되 언제든지 추적할 준비를 갖추고 있을 것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사악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단순무식하게 싸울 것입니다. 모든 전투 가용 병력을 쏟아 붓고, 설마설마 하는 생각에 빠져있는 적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입히며 기선을 제압하고자 합니다.”

적의 허를 친다.

하지만, 적은 절대적 다수고 이쪽은 절대적 소수다.

아무리 적의 허를 찔러도 그 피해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리샤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 이후론 전략도, 전술도 필요 없습니다. 단순 무식한 힘과 힘의 대결뿐이지요.”

페리샤의 눈이 향한 곳은 이실리아와 아키의 허리를 휘감고선 끈적거리는 애무를 즐기고 있는 진우에게 꽂혔다.

“큭큭큭. 거기서 놈들은 알게 되겠지. 나와 신이 없었던 삼태극은 진정한 삼태극이 아니였다는 것을.”

진우는 이실리아와 아키를 부드럽게 밀어내고선 몸을 일으켰다.

“!!”

“!!”

그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에 마치 거대한 산이 움직인 것 같은 기세를 느낀 간부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너희들은 나의 것이고, 나는 내 것이 피해 받는 것을 죽도록 싫어한다.”

장난기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묵중한 목소리.

“하나, 놈들은 나의 것을 해쳤고, 너희들까지 해치고자 포위망을 구성하고 있다.”

메인 스크린에는 붉은 점들이 모여, 마치 파도와도 같은 형태를 띤 연합군을 향해 살기를 퍼트린 진우는 분노로 이빨을 한차례 꽉 깨물었다.

“어려운 전술과 전략 같은 건 없다. 닥치고 몰살. 포로도, 인질도 필요없다. 우리들 외의 생명체는 모두 죽인다.”

마지막으로, 진우는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몰려드는 연합군을 향해 말하듯이 입을 열었다.

“감히 내게 분노를 느끼게 만든 죗값은 이자를 쳐서 제대로 갚도록 해주지.”

연합군을 몰살시키면 그 다음엔 전 세계를 공격할 예정이다.

항복? 평화협정? 무조건 복종을 해도 필요없다. 자신의 것을 망가뜨린 대가는 파멸뿐임을 지구 전체가 알아야 하니까.

‘그리고, 감히 내게 그딴 눈빛으로 꼬라본 여제……. 그 년에게도 그 굴욕감을 갚아주고 말겠다.’

지구와 전 우주를 적으로 삼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진우의 결단.

하지만, 여기에 있는 모든 이들은 자신들이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우리 오마니께서 내가 글 쓴다고 이리저리 다 떠드셨어...

무슨 글이냐고 묻길래 그냥 판타지 소설이라고 했는데 집안에서 문학인 나왔다고 다들 칭찬하네?

족보에 필요한 정보만 넘겨주니까 내가 하루마다 글 쓴다는걸 알고선 가보라 하네?

하...이 미묘복잡한 내 마음...정말로 내 소설을 단 한명이라도 읽었다간 족보에서 내 이름 파낼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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