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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진우 일행이 내부적으로 단련(?) 하고 있을 무렵, 남궁 신과 도윤은 지하드 천장위의 마법진을 지우고선 가부좌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두 눈을 감으며 자신의 몸을 관조하던 두 남녀는, 여기저기서 흘러드는 바람에 따라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휘날렸다.
원래 운기조식을 할 때는 외부의 방해가 들어오지 않게끔 안전한 곳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근방은 이미 삼태극의 영토이며, 무엇보다도 최악의 상황에는 쫓기면서도 운기조식을 틈틈이 해야 하는 상황도 있기에 바람속에서 운기조식을 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렇게 한차례의 운공을 마친 두 사람은, 내부 관조를 통해 자신의 몸을 단련하기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한가에 대해 고찰을 하던 중,
“잡념이 많다.”
도윤의 기가 자꾸 흐트러지는 것을 느낀 신이 꾸중하듯이 입을 열었다.
“…….”
그의 꾸중을 들은 도윤은 평소 같았으면 틱틱 거렸겠지만, 지금의 그녀는 마치 심약한 사람이 공포물을 본 것 같은 눈빛을 짓고 있었다.
겁에 질려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잖아……. 어차피…어차피 다 끝인데…….”
“끝?”
자신의 몸 상태를 관조하던 신은 모든 걸 포기한듯한 도윤의 목소리에 눈썹을 찌푸렸다.
“당신도 느꼈잖아!? 그건…그건…괴물이였어! 마나도! 내공도 없는데도 그런 존재감과 압박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는 괴물밖에 없다고!”
솔직히 말해서 신 또한 거기에 동의하였다.
무림쪽의 전생, 판타지쪽의 전생 모두를 통틀어도 여제라는 존재는 ‘규격 외’ 라고 밖에 표현이 불가능한 힘과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양 쪽 세계에는 최강의 절대자들이 존재하는데, 무림쪽은 툭하면 튀어나오는 단골소재인 천마와 남궁신의 전생인 독고무린이고, 판타지쪽은 대체 뭘 하고 자빠졌길래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천사들과 다르게, 누가 개근상이라도 주는지 툭하면 중간계에 튀어나오는 마왕이 있다.
물론, 판타지쪽 전생에서 마왕을 본 적이 없지만, 여제가 보여준 존재감과 힘이라면 마왕이 아니라 대마왕이 찾아와야 동수를 이루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강렬했다.
“맞다. 그 년은 정말 괴물이였지.”
신이 자신의 의견에 동의해주자, 도윤은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차라리 후일을 기약하고 도망치는 게 어떨까? 어차피 우주 저 너머에 다른 외계인이랑 행성들도 있다면서?”
말이 후일을 기약하는 거지, 결국엔 도망치자는 뜻이다.
신은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어보였다.
“도망? 우주의 지배자라는 여제가 잘도 그걸 지켜보겠군. 설령 도망친다해도 여제가 이룩한 제국의 정보망에 걸릴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아무리 강해봤자 일개 집단에 불과해. 수많은 행성을 지배한 제국의 집중 포화를 받으면 과연 어디까지 도망칠 수 있을까?”
알고 있다.
신의 말은 정론이며, 거기에 반박할 여지는 없다.
하지만, 애초에 인간이 정론대로만 살면 전쟁도, 범죄도 없는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 제한이 없으면 감정대로 행동하기에 그것을 막을 법과 규칙이 존재하는 법.
도윤은 여제가 보여준 존재감 때문에 신의 정론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하지만…지금 여기서 싸워봤자 이길 확률이…….”
“그 가능성, 지금이 제일 높다.”
이미 마음이 한차례 꺾인 도윤은 승산을 따져보려 하였지만, 신은 그녀의 말을 도중에 가로챘다.
“여제는 지금 우리를 장난감 취급하고 있는 중이지. 아니, 자신을 조금이라도 즐겁게 만들어주면 아무래도 좋은 년이다. 그렇기에 우주에서 제대로 싸울 수 없는 지구인을 위해 지구로 내려왔고, 함께 내려온 함대를 운용하지도 않는 중이지.”
거기서 잠시 크게 호흡을 하며 숨을 내쉰 그는 재차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그나마 지금이 가장 승산이 높은거다. 방심하고 있는 적, 우리의 홈 그라운드인 지구, 이쪽이 정비할 시간까지 주어진 상황이다. 칼리 제국에게 쫓기면서 일발역전을 기대하는 것보다, 여제 하나만 치는 것에 모든 것을 집중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나?”
도윤이라고 그걸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여제와 멀리 떨어지고 싶은 두려움 때문에 이성과 정론을 애써 부정하기에 이런 억지를 부린 것이다.
“죽으면 죽었지, 그딴 굴욕적인 도주 따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형님이 명령하신다면 또 모르겠지만, 애초에 형님 성향상 도망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지.”
신은 오히려 호승심을 활활 불태우면서 여제와의 싸움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를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생각한 도윤은, 결국 이래나 저래나 여제와 싸워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뭐, 겁이 난다면 우주에서 해줬던 것 마냥 내 품을 빌려주겠지만.”
여제의 존재감으로 공포에 질렸을 때, 겁에 질린 어린 아이가 부모를 찾듯이 신의 품 속으로 파고 들어갔던 것이 기억난 도윤은 얼굴이 붉어졌다.
“시…시끄러웟!”
빼액 소리를 내지른 그녀는 해치를 열면서 지하드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고, 신은 그런 그녀의 앙탈에 피식 거리다가 혼잣말을 하듯이 입을 열었다.
“마법사는 언제나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줄 존재가 필요하지. 마법사들의 세계에선 정정당당한 승부는 개그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마라.”
“…….”
도윤은 그의 말에 잠시 멈칫거리다가 해치 안으로 몸을 넣었고, 그녀에게 조언을 한 신은 조금이라도 강해지고자 다시 한번 몸 상태를 관조하기 시작했다.
철컹-
해치를 닫고 지하드 안으로 들어선 도윤은, 우주에서 여제와 눈이 마주쳤을 때를 다시 생각하자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하였다.
‘…어차피 나 혼자 도망가지도 못해. 그렇다면 차라리…….’
피할 수 없으면 부딪히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지금의 자신이 가진 힘은 많이 부족하다.
체질과 재능이 받쳐준다지만, 수련을 한지 얼마 안 된 그녀가 아무리 강해져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싸울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마법사는 언제나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줄 존재가 필요하다…….’
도윤은 신이 말한 대사를 읊조리며,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자신의 방으로 향하였다.
지잉-
슬라이드로 열리는 문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자신의 안방에 있는 최고로 감미로운 자장가를 불러주는 존재를 향해 다가갔다.
“그…으으…….”
“어…어어어…….”
거기에는 자신을 미치도록 괴롭힌 존재와, 그 존재를 일방적으로 편들어준 고깃덩어리가 존재하였다.
온 몸에 링겔이 꽂혀 있고, 전신이 망가진 상태인 두 남녀의 모습을 확인한 도윤은, 정신이 붕괴할 정도로 절망에 빠져있는 최고의 상태임을 직감했다.
흑마법이란, 그릇된 기운이 강할수록 그 효과가 강해지는 법이기에, 도윤은 최고치로 익은 재료들을 수확하기로 결정하면서 자신의 부모님들을 죽인 이들을 향해 혀를 할짝이며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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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여기선 일단 삼태극과 공조를 해야…….”
“삼태극? 그 미치광이들을 믿으란 말이오?”
“그보다 칼리 제국이 결국 지구로 내려왔소! 그들이 먼저 움직이기 전에 지구의 모든 군사력을 동원하여 공격해야만 하오!”
“그건 최후의 최후에나 선택해야 하는 방법 아니요?”
“내가 알기론 펜타곤의 이지스는 대파되어 삼태극의 도움으로 간신히 귀환할 수 있었다고 들었소. 군사력을 동원한 싸움은 매우 위험하다고 판단되지 않소?”
당연한 이야기지만, 페리샤가 제안한 소수 정예에 대한 논의는 상당한 시간을 소모시켰다.
누군가는 삼태극을 믿을 수 없으니 자신들끼리 소수 정예를 짜서 치우의 이름만 빌리자 말하고, 누군가는 지구의 모든 전력을 집중하여 칼리 제국을 공격하자고 주장하였다.
그 밖에도 여러 소소한 의견들이 있었지만, 크게 보자면 현재 의견은 3개로 나뉘어져 있다고 봐도 된다.
삼태극과 함께 한다.
삼태극의 이름만 빌린다.
삼태극을 무시하고 지구의 모든 군사력을 집결시킨다.
평소 같았으면 첫번째 선택지는 간단히 무시했겠지만, 의외로 삼태극은 그 악명과 다르게 위험에 빠진 이지스의 크루들을 구해주었고, 거기에 아무런 보상도 요구하지 않았다.
거기다 어떠한 배신이나 뒷공작도 펼치지 않아, 일단 동맹만 맺으면 생각보다 괜찮은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조금씩 생겨난 것이다.
또한, 삼태극은 여제의 처분 권한만 자신들에게 주면 칼리 제국의 전함들을 알아서 분배해도 좋다는 선언을 하였다.
대체 왜 여제를 원하는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까지 삼태극이 보여준 신뢰 덕분에 이쪽으로 마음이 흔들린 이들도 조금씩 생겨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이들은 삼태극을 믿지 못하니 그들의 이름만을 빌려 여제를 공격한다는 계획을 꾸몄지만, 삼태극이 보유한 전력이 일개 조직의 수준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지라 이 주장을 하는 이들도 내부적으로 삼태극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 무시해야 하나를 두고 갑론을박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지구의 모든 군사력을 동원하여 칼리 제국을 공격하자는 과격파들은 러시아 대통령인 알렉산드로를 필두로 강하게 주장하였다.
특히, 자국 내의 영토에 여제가 마음대로 자리를 깐 모습에 분노하고 있었던 그는, 러시아 내의 군대를 총동원해서라도 칼리 제국을 공격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미국의 주도로 모인 각 국의 수장들은 자기들끼리 토론을 벌였고, 수장들과 함께 온 보좌관들이나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 세가지 선택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난리통 속에서 조용히 분노를 띄우고 있는 존재, 러시아의 알렉산드로 대통령은 흘러가는 분위기로 보니 지구의 모든 군사력을 동원하다는 것은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될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다짜고짜 최후의 수단을 쓰기보단, 일단 해볼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사용한 다음에 최후의 수단을 쓰는 것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상식이나 마찬가지.
‘그때 동안 저 빌어먹을 외계인 놈들을 뱃속에 품고 있어야 한단 뜻이잖나!!’
러시아의, 자신의 영역 안에 적이 자리를 잡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당장 놈들을 쳐 죽이고 싶은데, 다른 녀석들은 자신들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토론이나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에게 있어 분노 그 자체였고, 그 분노가 알렉산드로 대통령의 이성을 잠식해나갔다.
‘어차피 삼태극 놈들에게 패배해서 지구로 도망친 놈들이 아닌가! 애초에 이지스 전함이 아무리 강해도 겨우 2대였다. 똑같은 칼리 제국의 함선을 이용한 삼태극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어.’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점점 기정사실화 하였다.
특히, 삼태극에서 여제가 맨 몸으로 우주로 튀어나와, 엄청난 크기의 운석을 부수고 날려보낸 모습을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여제의 강력함을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칼리 제국 놈들은 생각보다 약하다. 그렇기에 무장을 충실히 한 삼태극의 공격에 당한거야.’
물론, 이지스가 대파되어 우주의 잔여물이 되었으니 칼리 제국 자체가 가진 기술력은 대단할 것이다.
‘게다가 우주에서의 싸움이라면 모를까, 지구에서의 싸움이라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군사력을 지닌 러시아의 힘을 100% 활용할 수 있다.’
군사 순위는 미국이 1위, 러시아가 2위이긴 하지만, 알렉산드로는 전쟁이란 무기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람도 중요한 법이기에 러시아가 미국을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 오만함을 가진 그는, 지지부진한 회의 내용에 눈빛을 가라앉히며 칼리 제국의 함대를 러시아의 것으로 바꿀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 작품 후기 ============================
옛날 판타지 소설을 볼 때마다 악당들보다 짜증나는 존재들이 있음.
천계 세력이 그 놈들임.
악마 새끼들은 툭하면 중간계에 튀어나와 지랄을 하는데, 그 적대 세력이나 마찬가지인 천계쪽 놈들은 재능있는 인간 영웅들만 적당히 각성시켜줌. 그것도 아니면 이차원의 용사를 소환해주거나.
아니, 인간들만 보내지 말고 니들도 좀 싸우세요 천사님들아. 이 새끼들 존나 재수없는게 대놓고 자기네들 세력을 최대한 보존하겠다는 심보가 아주 노골적이여.
전술, 전략적으로 보자면 전력을 집중하는게 좋은데 이 새끼들은 병신들처럼 각개격파 당하려고 작정을 함. 인간이 버텨서 다행이지, 버티지 못했더라면 악마들이 세력좀 회복시키면서 힘의 균형이 깨졌을걸?
그러고선 인간의 가능성을 믿는다고 개소리 지껄이면서 자기 합리화 존나 개쩜. 그냥 인간을 고기 방패로 세워서 조금이라도 마계측 전력을 깍아먹겠다는 심보가 아주 노골적이더구만.
내가 판타지 세계로 갔는데 마족은 쳐들어오고 천사들은 농땡이 피우면 존나 이완용급으로 배신 해버릴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