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0 / 0923 ----------------------------------------------
10장
하린의 몸을 잠식한 이무기는 조심스럽게 주변의 기운을 탐지하면서 밖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시작하였다.
다행히도 이 곳까지 적의 스파이가 침투해 올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이무기의 전리품을 이동시키기 위해서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상태였다.
'윽…춥다……. 인간의 몸은 너무나 연약하구나.'
겨우 밤공기 수준의 싸늘함에 추위를 호소하는 하린의 몸.
그녀의 몸을 통제하고 있는 이무기는, 겨우 이정도 싸늘함조차 이겨내지 못하는 연약한 인간의 몸에서 빨리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 뿐이였다.
'빨리 이 연약한 몸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일단은 자신의 새로운 몸을 차지하기만 할 수 있다면, 이 굴욕, 수치, 분노를 모두 다 되갚아 줄 수 있다.
게다가 이 몸(하린)은 자신이 새 몸을 차지한 이후에 부족한 영양분을 공급해줄 먹잇감으로 섭취할 생각이였기에, 불편함을 호소하면서도 하린의 몸을 이용하여 지하 창고로 향하였다.
다행히도 지하드는 창고와 지근거리에 있었기에, 조금만 가면…….
자박-
"큭!?"
순간, 지하드에서 나와 밖으로 한 걸음을 옮긴 그녀는 흙과 모래, 그리고 작은 자갈로 가득찬 땅바닥을 밟은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통어린 신음을 내뱉고 말았다.
'바…발이 아파!'
그렇다.
익숙해져서 발바닥에 굳은 살이 박혀있다면 또 모를까, 하린의 발바닥은 맨발로 자갈밭을 오가기엔 너무나 부드러웠던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발걸음을 옮겼다가 예상외의 고통을 느낀 이무기는, 생소한 고통에 눈쌀을 찌푸리면서도 여기서 멈출 수 없다고 판단, 약간 엉거주춤한 자세로 거친 흙자갈밭을 지나서 간신히 동굴 입구까지 향하였다.
'빌어먹을! 어떻게 이런 연약한 종족이……!'
하지만, 그녀에게 분노를 불러일으킨 것은 발바닥의 고통도, 이런 연약한 몸을 차지했다는 짜증도 아니였다.
겨우 이런 자갈조차 맨발로 제대로 밟지 못하는 연약한 인간 따위에게 당해버렸다는 수치심이 바로 그것이였다.
어찌됐든간에 간신히 동굴 입구의 차가운 돌바닥을 밟으면서 안심한 그녀는, 긴 계단을 타고 내려가 자신의 전리품이 모아져 있는 창고로 향하였다.
끄득-
창고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그녀의 입장에서)이였다.
자신이 직접 위치를 조율하면서 정리해두었던 박제된 적들은 아무렇게 대충 모아둔 상태였고, 인간형 적들이 착용하고 있던 무구들은 모두 회수된 뒤였다.
처음엔 열이 머리 끝까지 뻗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어차피 자신이 힘을 되찾으면 다시 인간놈들을 모조리 쳐 죽인 후에 되찾아 올 수 있으니 일단은 숨겨진 2층의 문을 개방하기로 결정하였다.
우우웅--
여의주에서 공명음이 울려퍼지며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였고, 빛은 정면에 위치한 벽면을 비추더니 '그르릉' 거리며 돌과 돌끼리 마찰되는 소리가 작게 울려퍼지며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열려지게 되었다.
'이제 여기만 들어가면……!'
본래의 몸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이무기로서 돌아갈 수 있게 된 그녀는 열려진 문을 향해 달려나…
콰드득!!
…가려던 순간에, 열려진 입구쪽으로 거대한 얼음의 장벽이 깔리면서 길이 막히게 되었다.
"헤에~ 그렇구나아~ 저기에도 비밀 문이 있었구마안~?"
"!!"
그와 동시에, 뒤쪽에서 절대 잊지 못할 증오스런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무기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고, 거기에는 진우와 남궁 신, 그리고 다른 노예들이 자신을 구경하듯이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어떻게……!?"
자신은 인기척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조용히 빠져나왔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자신이 빠져나온줄 알았단 말인가? 게다가 저렇게 많은 인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이미 자신의 행동을 눈치채고 있었다는 뜻이 분명하다.
"큭큭큭! 야, 신. 어떻게냐고 묻는데? 이거 솔직하게 말해줄까?"
"…저 건들지 마십쇼. 지금 욕나오기 직전이니까."
진우는 신의 옆구리를 툭툭 건들면서 장난기 어린 반응을 보이자, 평소에는 그 장난을 받아주던 신이 까칠하게 대꾸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아, 거 새끼 존나 소심하네. 아무리 CCTV 덕분에 알게 됐다지만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거 아냐?"
"제가 진짜…후우……. 진짜 얼마나 열심히…저 년의 존재를 알아내려고 삽질을 얼마나 해댔는데…크흐음……!"
심기 불편한 신은 욕이 나오려는 타이밍에 크게 심호흡을 한다던가, 신경질적인 헛기침을 토해내면서 쌍욕을 참아냈다.
그도 그럴것이, 이무기의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려고 시간이란 시간은 다 낭비했건만, 자신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이토록 허망하게 밝혀져버렸으니 심기가 불편할 수 밖에.
"씨씨…티비…?"
하지만, 앞뒤 사정을 모르는 이무기는 '씨씨티비' 가 뭔 말인가 싶어 당황하면서도 의문을 감추지 못하였다.
진우는 그런 그녀를 놀려먹을 생각으로 낄낄 거리며, 명백하게 비웃는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우리 고~귀하신 요괴님은 잘 모르시나 보네~? 네가 알아먹을 수 있게 쉽게 얘기해주자면, 인간들은 과학이란게 발전되어서 기계로 인간이 볼 수 없는 부분을 볼 수 있거나, 특정 장소를 계속해서 감시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이지."
"뭐…뭣……?!"
인간들과 수 세기동안 단절하였던 그녀는, 현대 문명과 과학에 당연하게도 문외한인 상태였다.
설마 그런게 있을거라곤 상상도 못했었던 이무기는 당황할 수 밖에.
"아아~ 정말로 재밌었어~ 딴에는 기척을 지운답시고 조용히 움직이는 모습은 진짜 웃기드라고. 내 인내심이 조금만 더 약했더라면 미친듯이 바닥을 구르며 웃었을 정도?"
"크읏……!"
"언제부터 알았냐고 묻는다면 네 여의주가 있던 연구실에서부터 라고 설명해두지. 그 문은 일정 시간동안 오래 열려있으면 경고가 전해지도록 되어 있거든. 즉, 우리는 처음부터 네 년의 움직임을 다 보고 있었다는 뜻이란 말씀이다."
즉, 자신은 기척을 지우고 조용하게 이동하고 있을 때, 눈 앞의 증오스런 인간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씨씨티비라는 것을 통해 비웃고 있었던 것이다.
자율 인공지능, 마스지드의 존재와 현대 과학의 존재를 알 수 없었던 그녀는, 자기 딴에는 최고의 기회라 여겼던 것이 오히려 자신의 목을 죄어오게 되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낼 순 없다!
하린의 몸을 장악한 이무기는 재빨리 몸을 돌려 얼음 장벽을 향해 돌진하였다.
'저것만 부수면!'
저 장벽만 부숴서 안으로 들어가면 어떻게든 된다고 판단한 이무기는 여의주를 앞으로 내밀면서 물리력을 행사하려던 찰나,
스팟-
특유의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알몸의 동양인 여성, 아키가 빛에 반짝이는 검은 머리를 휘날리며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빡!
"윽!"
뒤이어 하린의 손목을 손날로 후려쳤지만, 이무기는 하린의 손목이 부러지든 말든간에 여의주를 붙잡으며 그 안에 담겨진 힘을 사용하고자 하였다.
'너희 인간들은 친한 동료끼리 싸운다면 어떻게든 상처를 입히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그 기회를 노려주마!'
그녀는 자신을 토벌하러 온 인간들과의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아키에게 틈을 만들어서 여의주의 힘을 사용하려 하였지만,
퍼억!
"컥……!"
아키는 발등으로 하린의 배를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걷어찼다.
그것도 몸이 허공에 부웅 떠오를 정도의 힘으로.
스팟-
그와 동시에 텔레포트를 한 아키는 하린의 몸 위에서 나타나 팔꿈치로 등을 내리찍었고, 다시 텔레포트를 하여 아래로 추락하는 하린의 머리 위에서 나타나, 두 발로 관자놀이를 붙잡고선 허공에서 몸을 회전하였다.
스팟-
그리고 다시 텔레포트하면서 회전하면서 추락하던 하린의 손목을 발꿈치로 내리찍었다.
우드득!
"!!"
그 충격으로 하린의 손목뼈가 부러졌지만, 손목뼈가 부러지면서 아귀힘으로 강하게 붙잡고 있던 여의주가 놓아짐과 동시에 하린은 의식을 잃고 쓰러지게 되었다.
"잘했어, 아키."
진우는 느긋하게 걸어나와, 자신과 함께 침대에서 구르다가 몸만 대충 씻고 알몸으로 나와야만 했던 아키의 살냄새를 맡으며 부드럽게 자신의 품 안에 당겨주었다.
"후훗. 별거 아니였어요."
방금전만 해도 무섭게 공세를 퍼부었던 그녀는, 사랑에 빠진 여자의 얼굴이 되면서 진우의 품 안에 안겨들었고, 진우는 그녀와 함께 느긋하게 여의주 쪽으로 다가갔다.
"자아~ 이제 너를 어떻게 요리할지 궁리를 좀 해볼까?"
우웅- 우웅-
하린이라는 숙주를 잃어버린 이무기는, 공포에 떨듯이 어두운 색의 빛이 흘러나오면서 귀에 거슬리는 공명을 내뿜었다.
'차라리 저 인간 암컷의 몸에 틀어박혔어야 했는데!'
그녀는 마음만 먹었다면 하린의 인격을 소멸시키고 자신이 그녀의 몸을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고귀한 자신이 겨우 한낱 인간의 몸을 사용할 수 없다는 자만심, 그리고 지하 2층에 또다른 이무기의 몸이 있는데 괜히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하린의 몸에 자리잡는 작업도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고, 그 상태에서 이무기의 몸으로 다시 돌아가려면 안전하게 나오는 작업과 또다시 새로운 육체를 차지하면서 작업량이 2배가 되어버린다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더욱이나 그 작업 중에는 모든 힘을 집중하느라 무방비 상태가 될 수 밖에 없기에, 괜한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은 그녀의 입장으로선 하린의 심신만을 제압한채로 인형처럼 사용하는게 최선이였다.
그 망할 '씨씨티비' 라는 것만 없었더라면.
차라리 하린의 몸에 자리잡았더라면 그 육체를 인질 삼을 수 있었겠지만, 당시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터라 인간의 몸을 새로운 본체로 삼는다는 선택지는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아직 회심의 한 수가 남아 있었다.
후우웅!!
여의주 안에서 일부러 바람을 일으킨 이무기는, 재빨리 요괴들이 모여있는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야만 한다!'
이무기가 아닌 다른 몸이라도 좋다.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야만 훗날을 위해 힘을 기르든, 숨어 지내든 뭐든 할 수 있다.
그녀는 짐승형 요괴들 중에서 붉은 털을 가진 5m의 거대한 몸을 가진 적랑의 몸 속으로 파고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박제된 적랑의 몸은 살아있는것 마냥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입구쪽에서 구경하듯이 있던 인간 암컷들을 향해 달리면서 포효를 내질렀다.
"크아아앙!"
어느정도의 힘이 실린 포효성.
사람보다 더 거대한 늑대가 살기어린 포효를 내지르며 달려온다면, 왠만한 일반인들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소변을 지리거나 패닉에 빠져버리겠지만,
"얍."
"엽."
쿠드득!
이미 수많은 실전 경험을 통해 단련된 이실리아와 노아 모녀가 장난스러운 기합성과 함께 염동력을 사용하여 적랑의 몸을 강하게 내리 눌렀다.
얼마나 강하게 내리 눌렀는지, 적랑의 중심으로 크레이터가 형성될 정도였다.
"흡."
촤카카칵!
그리고, 남궁 신이 빠르게 달려나와 쌍용검을 검집에서 꺼내듬과 동시에 적랑의 네 발과 머리, 몸통이 사람 머리통만한 굵기로 토막났다.
전투에 단련되어 동체 시력과 감각이 발달된 이능력자들의 눈으로도 '뭔가 번쩍였다' 라는 수준밖에 인지하지 못하는 가공할 속도였지만, 심기가 불편해 있었던 신은 여의주의 기운이 느껴지는 심장 부위의 고기 덩어리를 잘개 썰어서 피가 흥건하게 묻어나온 여의주를 잡아들었다.
"후…후후…후후후후후……. 내가 그렇게 네 년의 존재를 알아내려고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건만…겨우 CCTV한테 걸렸다 이거지?"
자신의 노력과 소비한 시간을 '헛고생' , '시간 낭비' 라는 단어로 만들어버린 이무기의 여의주를 집어든 신은 '이걸 어떻게 씹어먹어야 할까?' 라는 가학적인 표정으로 여의주를 노려보았다.
"응?"
그 때, 진우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무기가 탈주하려고 노력해봤자 노예들의 힘이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것이라 생각하면서 한 발 물러나 구경하고 있었던 진우는, 적랑의 시체에서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피……? 내장……?"
분명 방금전까지만 해도 속은 텅텅비어 있던 박제에 불과했건만, 이무기가 들어간 적랑의 시체는 방금까지 살아있었던 생물체의 피와 내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썩은게 아니라 싱싱한 피와 내장이.
씨익-
좋은 생각이 나게 된 진우는 악당의 미소를 지어보이며 신의 손에 붙잡힌 여의주를 향해 혀를 날름거리기 시작하였다.
============================ 작품 후기 ============================
세월이 흐르면서 저 또한 점점 취향이 '넓어져' 가고 있습니다.
예전엔 후타나리와 낭자애(여자처럼 생긴 남자아이)를 혐오했습니다만, 이제는 이것도 이것만의 맛이 있다며 거부감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특히 가녀리고 귀여운 여자처럼 생긴 남자 아이는...뭐랄까...묘한 가학심을 부추키더군요.
어디선가 '다들 그렇게 게이가 되어가는거야' 라고 말하는게 느껴지긴 하지만, 게이물과는 다릅니다!
근육질 몸매에다가 남자 특유의 각지고 굵은 얼굴들끼리 맨살로 부대끼고 있어봐야 혐오감밖에 더 줍니까!
귀여워야 한다고! 여자처럼 생겨야 한다고! 여성스러워야 한다고!
마초같은 남자끼리 붙어있는건 그냥 혐오물이야! 핵폐기물이라고!
......(현자타임중)
아아...씨발 나는 대체 어디까지 가는걸까...분명 맹장전을 쓰기 전만 해도 나는 그냥 성욕만 좀 왕성한 청년에 불과했는데…….
이젠 나도 내가 어디까지 갈지 감이 안 잡힌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