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 브레이커-622화 (622/923)

0622 / 0923 ----------------------------------------------

10장

"케…헥……."

철퍽!

마지막으로 꼬리가 3개 달려있던 여우를 일도양단 하자, 반으로 쪼개진 요괴는 피 웅덩이 위로 쓰러지면서 듣기 싫은 소리를 자아냈다.

자신들 외의 기운은 더이상 느껴지지 않게 되자, 신은 쌍용검에 묻은 피와 살점을 털어내고자 허공에다가 몇번 거칠게 칼질을 하였다.

"스읍- 후우……."

그리고 크게 심호흡 한번.

"끝난건가요?"

뒤쪽에서 도윤을 호위하던 아키는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기운을 감지해내는 신을 향해 끝난거냐고 물어오자, 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예. 현재로선 우리외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 해도 완전히 마음을 놓는건 위험하다. 이 곳은 적의 본진의 중심부터 마찬가지니까.

그래도 어느정도 여유를 가져도 될만한 상황임은 분명하였다.

1층의 절반을 차지하는 요괴들의 시체로 이루어진 산을 보면, 여기서 추가로 적이 더 튀어나와도 문제 없을것 같은 느낌이였으니까.

개의 몸통을 하고 있지만 중년 남성의 얼굴을 가진 인면견, 꼬리가 여러개인 구미호가 되다만 여우, 용이나 원숭이 머리를 하고선 옛 무장의 갑옷을 입고 있는 이족 보행형 요괴들.

거의 300이 넘는 숫자의 요괴들 중에서 몇십은 온 몸이 불타올라 있었고, 몇몇은 거칠게 난도질 당해 있거나 급소 부위만 잘려나가 있는 시체도 있었지만, 그 외에는 매우 날카로운 검날에 잘려나간 시체가 대부분이였다.

즉, 남궁 신 혼자서 대다수의 요괴들을 처리했다는 뜻.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잭은 황당함과 경악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본 신의 힘은 비상식적인 부분이 강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 이전에,

'이능력의 기운 자체가 잡히지 않아.'

실은 잭에겐 다른 능력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상대방의 이능력을 감지할 수 있는것,

문제는 그 능력의 수준이 낮은편인지라 힘의 강약만을 측정하는게 전부였다.

복합 능력자나 다중 능력 사용자처럼 여러가지 능력을 가진 것까진 알아낼 순 없어도, 힘의 크기만 알아낸 후에 이능력에 대해 조심스럽게 알아내면 삼태극의 간부들이 지닌 힘과 위험성을 파악하여 대책을 내놓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남궁 신이라는 남자의 힘을 믿을 수 없었다.

삼태극의 다른 이들은 모두 나름 강한 이능력자들이였으나, 아크로스에도 저정도 수준의 이능력자들은 몇 배는 더 많았기에 이쪽에 대한 문제는 패스.

하지만, 남궁 신에겐 아무런 이능력의 파동이 잡히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랜드 아크와 치우가 함께 싸워도 위험할 만큼의 강자라고 소개되었으니, 잭의 입장으로선 허세라고 밖에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같이 싸워보니 정말로 신기한 능력을 마구잡이로 펑펑 사용해댄다.

산성비와 번개를 적에게 꽂아넣는 먹구름을 소환하고, 신체 강화자인 그랜드 아크와 치우와 비등한 속도로 내달리질 않나, 검에 기이한 기운을 덮더니 팔이 보이지 않을 속도로 적을 베어내질 않나, 잭의 상식선에선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이능異能의 세계에서도 이능의 존재라는 것.

그리고 저 능력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아크로스와 삼태극이 맞붙게 되었을때 큰 문제로 두각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아아악---

그 때, 요괴들이 내려온 계단 쪽에서 검은색의 연기가 드라이아이스의 연기 마냥 흘러내려오기 시작하였다.

-멍청한 놈들……. 겨우 이깟 인간들을 처리하지 못해서 내가 직접 내려와야 한단 말이냐.-

중후함과 음산함이 혼합된 남성의 목소리.

그와 동시에 남궁 신과 모두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며 계단쪽으로 시선이 모이게 되었다.

드라이아이스 연기 처럼 흘러내려오던 검은색 연기는, 이내 형태를 만들기 시작하더니 얼굴이 안보일정도로 후드를 깊숙하게 쓴 옛 중세시대의 수도승 같은 모습을 이루었다.

-내 이름은 흑영黑影. 건방지게 그 분의 집을 마음대로 들락날락 거리는 네 놈들을 처단하고자 내려왔다.-

'강한 기운을 가지고 있다. 충분히 처리할 순 있지만…이들의 보스격인 대요괴를 처리하기 위해선 소모율을 최대한으로 줄여야만 해. 하지만 어떻게?'

아무리 마나와 내공 관리를 철저하게 한다 해도, 수백마리의 요괴를 베어낸 신은 더 이상의 극심한 소모는 피해야만 하였다.

거기다가 상대방의 능력이 어떤건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시 못 할 기운을 가진 요괴의 등장은 그에게 매우 껄끄러운 상황.

'내게 필요한건 단기결전. 녀석에게 빈틈을 만들 수 있으면 더더욱 좋다. 빈틈…빈틈…아! 그거다!'

문득, 진우가 탑 안을 가리키면서 '복고풍으로 갈까?' 라고 제안하던 것이 생각난 신은, 흑영이라는 요괴의 빈틈을 만들어낼 방안을 찾아냈다.

"큭…크크큭…푸하하하하핫!!"

-…음……?-

그리고선 그는 웃음을 참으려고 하다가, 이내 참지 못하고선 폭발하듯이 웃음을 터트리는게 아닌가?

"하~ 씨발, 말투 졸라 오그라드네. 대체 언제적 말투야 이거? 왜 말하는건데 넌데 부끄러움은 내 몫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구만."

신은 너무나 고전적인 말투를 사용하는 흑영의 모습을 대놓고 비웃기 시작했다.

"흑여엉~? 혹시 방금처럼 검은색 연기에서 형태를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다고 그딴식으로 지은거냐? 그런거라면 하얀색 개는 백구, 검은색 개는 검둥이라고 짓는거랑 다를게 뭐가 있는거냐? 느그 엄마 작명 센스가 그것밖에 안 돼?"

진우와 함께 어울린 시간이 많다보니, 평소에 진중한 남궁 신조차 어느새 도발의 달인이 되어버렸다.

처음엔 좀 어색했지만, 계속 입을 열다보니 진우가 어떻게 상대방을 열받게 만들었는지를 기억해내면서 그 모습을 따라한 것이다.

'이런 고루한 생각과 말투를 가진 놈들은 쉽게 흥분하지 않지만, 일단 흥분만 시키면 제대로 폭발하지. 그것도 은유적으로 비꼬는게 아니라 시정잡배처럼 저열한 도발이면 더더욱! 형님의 평소 말투를 기억해두길 잘했어.'

아직 싸워야 할 강대한 적이 있기에, 최소한의 체력 소모를 위하여 상대방이 빈틈을 노리게끔 도발을 가하는 남궁 신.

수백의 요괴들을 문답무용으로 썰어버리던 그가 이런 도발을 한다는 것 자체가, 방금전 처럼 그냥 썰어버리면 되는 요괴들과는 급이 다른 기운을 가진 상대라는 뜻이다.

-놈! 나를 모욕하는 거냐!?-

"크키키키킥! 놈! 놈이래! 요즘 누가 그딴 말투를 써? 요즘 인간들은 그렇게 욕을 안해요, 이 양반아. 부끄러운줄 알면 저~~쪽 구석에서 좆잡고 반성이나 해라."

-크아아아아아!!-

흑영은 자신의 말투를 트집 잡으며 도발하는 신의 모습에 분노를 하였고, 그 여파로 수도승 모습이 들쑥날쑥 거리며 날카롭게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이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런 그를 향해 시선이 모아졌다.

'…엄청 진중한 성격인줄 알았는데…내가 잘 못 봤나?'

잭은 '이 남자 또한 치우와 같은 성격인걸까?' 라는 의문의 눈빛을, 아키는 '남편 때문에 사람 하나 인격이 망가지는것도 한순간이구나' 라면서 한 숨을, 도윤은 '내가 알던 사람하고 동일인물 맞아?' 라면서 경악의 눈빛을 내보냈다.

-용서치 않겠다!!-

지금껏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자신이라는 압도적인 공포에 질려 악에 받치듯이 욕설을 내뱉는 인간이나 요괴들은 봤어도, 이딴식으로 도발하는 인간은 처음이였던 흑영은 분노로 얼룩진 목소리와 함께 한 쪽 팔이 길쭉해지면서 날카로운 창이 되어 남궁 신에게 날렸다.

하지만, 분노로 인해 속도는 빨라졌어도 단순화된 공격 루트에 당할리 없는 남궁 신은 살짝 거리를 벌리면서 계속해서 도발을 가하였다.

"좆까는 소리하고 앉았네! 아, 미안! 연기로 이루어져 있어서 좆을 깔 수 없을텐데 내가 너무 무심했구만! 무심해서 정말 미안하드아아!!"

대국민 사과를 하는 국회의원처럼 손바닥을 펼치며 과장된 목소리로 미안하다를 외치는 남궁 신.

-죽어라아아아아!!-

오랜 세월을 살면서 지금까지 자신을 이렇게까지 조롱하는 존재를 처음 겪은 흑영은, 몸을 연기로 만들며 남궁 신을 포위하듯이 덮쳐들어갔다.

"이딴 유치한 방법에 내가 걸려들것 같냐!? 몸이 연기로 만들어져 있다보니 뇌까지 연기로 가득찬거 아냐? 겨우 그정도 능력으로 어떻게 이 탑의 고층까지 올라간거지? 혹시 이 탑의 주인한테 엉덩이라도 벌린거 아냐?"

-이…이놈이……! 닥쳐라! 닥치란 말이다!!-

보법을 밟으며 간단하게 회피한 남궁 신은, 교묘하게도 아군이 있는 방향과 먼 방향으로 이동을 하였다.

'몸의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꾸어 적을 공격하는 형식이다. 놈의 몸체를 넓게 퍼트리면 이쪽은 더더욱 힘들어져.'

도발에 성공하면서 상대의 능력이 무엇인지 파악한 신은, 너무 오래 도발하면 효과가 떨어지니 단기 결전을 위해 상대방의 빈틈을 찾아내고자 흑영의 몸을 이리저리 피해다녔다.

'실체가 없는건가?'

-갈기갈기 찢어 없애주마!!-

분노한 흑영은 연기와도 같은 자신의 몸을 칼, 창, 낫같은 무기로 마음대로 구현화시키며 물리력을 행사하였다.

쒜에엑-!

화살 모양의 연기가 자신의 몸통을 노리며 날아오자 몸을 살짝 틀어주면서 회피한 신은, 자신을 찢겨내기 위해 공격해오는 흑영의 공격을 계속해서 맞대응하지 않고 피하였다.

"신!"

'살기!'

그 때, 도윤이 신의 이름을 외치자마자 등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필사적으로 상체를 크게 꺽으며, 거의 뒹구르듯이 몸을 날렸다.

픽!

"큭!"

회피하면서 연기가 되는 모습을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었던 신은, 설마 몸에서 떨어진 연기조차 조종할 수 있을거라곤 예상치 못하였기에 옆구리에 작은 상처를 허락하고 말았다.

-크흐흐!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지금부터 네 놈의 몸뚱아리는 조금씩 조금씩 찢어 발겨주마!-

"하! 겨우 기습으로 운좋게 한 방 맞춰놓고선 좋텐다! 오구오구~ 우리 흑영찡~ 요거 맞춰놓고 신났쪄요~?"

-이 인간 놈이 계속……!-

지금까지 자신이 농락하면 농락하던 쪽이였지, 절대 농락당하던 쪽이 아니였던 흑영은 도발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지라 남궁 신의 지속적인 도발에 더더욱 분노를 키워갔다.

그 분노가 커지면서 빈틈 또한 늘어갔고, 그 와중에 검은 연기 너머에서 반짝이는 한 줄기의 빛을 발견한 신은 온 몸의 신경과 뇌세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조여지는 느낌을 느꼈다.

그의 세포와 감각 전부가 '지금!' 을 외친 것이다.

그리고 그야말로 전광석화라는게 무엇인지 똑똑히 알려주겠다는 듯이, 거의 텔레포트 하듯이 쏘아져나간 그는 흑영의 바로 앞쪽으로 나타났다.

"잡았다."

-엇……?-

상대방의 도발에 넘어가면서 아슬아슬하게 잡힐듯 말듯한 속도를 유지했다는 사실을 모르던 흑영은, 자신조차 인식하지 못한 속도로 다가온 남궁 신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바보같은 신음성을 내뱉었다.

스컥- 사사삭--

그와 동시에 신은, 반사적으로 자그마한 검붉은색 보석의 위치를 바꾸려는 흑영의 모습에 쌍용검을 빠르게 휘둘러 연기속에 있던 검붉은색의 손톱만한 보석을 먼지 단위로 토막냈다.

-끄…끄아아악!? 마…말도 안 돼……! 내가…내가…인간 따위에게……!!-

그 손톱만한 보석이 흑영이라는 요괴를 존재케 하는 근원이자 생명력이였던 것이다.

리치의 라이프 배슬과도 같은 효과를 지니던 보석이 부서지면서 요력이 흐트러지자, 자신정도 되는 요괴가 이토록 허무하게 당하리라곤 조금도 상상치 못했던 흑영은 비명을 지르며 발악하였다.

-이…딴…죽음…이라니…….-

하지만, 흑영은 부서진 요력을 복구하지 못하면서 생명력을 잃게 되어버렸고, 검은색의 연기는 허망한 목소리와 함께 힘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훗. 별거 아니군."

"……."

"……."

"……."

신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멋들어지게 손목을 돌리며 쌍용검을 검집에 집어넣었지만,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잭, 아키, 도윤은 잠시동안 못 볼 꼴을 봤다는 듯한 눈빛이 되었다.

뭐랄까…….

이기긴 이겼는데…평소의 이미지를 다 까먹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신은 최소한의 소모로 적을 처치하는데 성공하였지만, 이들로부터 자신에 대한 평가가 곤두박질 치고 있다곤 상상하지도 못했다는 듯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 작품 후기 ============================

지금와서 고백하자면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되는 대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적에게 도발을 하면 거기에 걸려든 적이 내뱉는 대사들이 그것입니다.

"놈! 반드시 죽이겠다!"

"놈! 감히 나를 모욕하다니!"

뭔 놈들의 적들이 한결같이 '놈!' 이라고 외치냐 ㅡㅡ;;

아, 그래. 판타지랑 무협까진 어찌어찌 인정한다.

옛날 마인드 캐릭터들이니까 이런게 일반적으로 쓰겠지.

근데 현대물에서 악당이 저런 말투를 쓰는건 도저히 적응이 안되요.

물론 너무 현실적이면 소설적인 재미가 없으니까 약간 소설풍의 느낌이 나게끔 고풍적인 대사를 쓰는건 나름대로의 운치같은게 있긴 있어요.

그런데 대체 어떤 놈들이 열받을때 "놈! 가만 두지 않겠다!" 라고 소리치냐곸ㅋㅋㅋㅋ

진짜 열받으면 "하, 이 씨발새끼가. 뒤질래? 씨발 뒈지고 싶냐고. 개새끼야." 이런식으로 욕을 하지 "놈! 죽고싶으냐!" 어떤 미친놈이 저런식으로 지껄옄ㅋㅋㅋ

뭐, 요즘 현대물은 당연히 저런거 없지만, 그래도 시간좀 지난 현대물 소설에서는 생각보다 많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옛날 현대물은 도저히 못 봄. 대사에서 적이나 아군이 '놈!' 이라는 대사를 치는순간 손발이 오그라들어 책을 덮어버리거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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