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96화
하성은 마법적,전략적,전투적인 면에서 상당히 완벽한 면모를 지니 고 있었다. 거기에 어지간한 인간의 배는 살아온 삶의 경험과 빼어난 외 모,깨끗하고 순도 높은 마음씨 (?) 까지 갖춘 그는 상당히 완벽한 캐릭 터였다.
허나,그런 하성에게도 단점이 하 나 있었으니.
대체 뭘 걸치고 나온 거야?”
“후후,월간 패션 잡지를 완벽하게 마스터한 내게 패션은 더 이상 두려 운 과목이 아니야.”
그는 아주 심각한,정말 최악의 패 션스타였다.
1990년대에서나 유행했을 법한 헐 렁이는 일명 똥싼바지에 하와이 반 팔 셔츠,거기에 반투명한 장미무늬 고글과 밀짚모자를 쓴 하성은 천영 의 눈을 실시간으로 녹이고 있었다.
“넌 어떻게 된 게……
“어때,멋지지?”
“응……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패션이었 다. 필리어스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눈에 띄는 옷 아무거나 를 주워 입는 정도에 그쳤지만,하 성은 자신의 패션 감각을 지나치게 과신하여 독특한 의류를 이것저것 조합해버린 모양이다.
차라리 크린네처럼 정장 하나를 대 충 걸치고 나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나마 여기에 모인 삼인방(하성, 크린네,필리어스) 중에서는 정신머 리가 똑바로 박혀있었다.
“너 그거 입은 대신 반경 100m 이내로 접근 하지 마.”
천영은 필리어스와 크린네의 팔을 이끌고 잽싸게 하성에게서 떨어졌 다. 하이 엘프들은 천영의 손길을 뿌리칠 수 없었는지 종종걸음으로 따라왔다. 기럭지가 상당한 그들이 었기에,천영의 짧은 보폭은 영 맞 지 않았지만 그래도 뭐가 좋은지 그 들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었다.
건물 바깥으로 거의 도주하다시피 나가자,그곳에는 주한성이 기다리 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의 자가용에 기댄 채. 살짝 흩날리는 눈꽃까지 합쳐져 고독을 씹고 있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이나 다름
없었으나,천영의 눈에는 영 고깝게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잘생겼기 때문이다.
“로맨스 소설 남주세요?”
“네?”
“아니야. 것보다 거기서 뭐하는 데?”
“천영 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호칭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날? 왜?”
“어차피 갈 곳도 없으시지 않습니 까?”
“음…… 아니,우리 집이 있긴 있 는데……
생각해보면,30년이나 지났다. 아 직까지 천영이 지냈던 집이 무사할 지,혹은 다른 사람 명의로 넘어갔 을지 어떨지는 모르는 일이다.
주한성은 그런 천영의 고민을 눈치 채고 살짝 미소를 그렸다.
“제가 근처에 오피스텔을 구해뒀습 니다.”
“이렇게 금방?”
“사실 예전부터 제가 쓰려고 구비 해둔 곳입니다. 제가 잘 쓰지 않으 니,천영 씨에게 드리도록 하겠습니
다.”
천영은 슬쩍 주머니에 들어있는 카 드를 만졌다.
사냥꾼 협회에서는 기본적으로 등 급에 따른 괴수를 처치했을 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준다.
천영은 s등급의 괴수를 사냥한 대 가로 국가에서 어마어마한 액수를 지불해주기로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는 약속 단계일 뿐이고 천영이 당장 지급 받은 ‘사냥꾼 신용 카드’로는 사용할 수 있는 한도에 한계가 있었 다.
“좋네. 어딘데?”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주한성이 그리 말하며 차의 문을 열었다. 척 봐도 굉장히 비싸 보이 는 차였다.
“워우. 그거 무슨 뭐…… 롤스? 로 이스? 뭐시기 하는 그런 차야?”
“하하…… 롤스와 로이스는 붙여 쓰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그 차량을 만들던 회사는 30년 전 파업했습니 다. 본사가 게이트에 직격 당했거든
요.”
“그거 안됐네.”
물론 딱히 불쌍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왜냐?
남의 일이니까.
“제 차는 그것보다는 조금 더 좋을 겁니다.”
“일단 타보면 알겠지.”
지구에서 살던 시절의 천영은 상당 히 가난했기 때문에 차량에 큰 관심 이 없었다. 그러므로 주한성이 저렇 게 말해봐야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자고로 차량이라는 것은 그저 탑승 했을 때 잠이 잘 오면 좋은 차량이 다.
그러므로 천영의 기준에서는 동서
울 역에 수십 대씩 구비되어있는 고 속버스가 제일 좋은 차량이었다.
주한성 자칭 고급차라는 것에 탑승 한 뒤 출발하자, 엔진음부터가 달랐 다. 굉장히 부드럽고,뭔가 가슴을 감싸는 듯한 푹신한 감촉이 귓가를 울린다. 30년이나 발전한 세계의 자 동차는 그리픈과 비교하는 것 자체 가 송구스러워질 정도로 급이 달랐 다.
“와아,이곳의 마차는 굉장히 편하 네요.”
“마나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것 같 진 않은데.”
“몸이 녹는다아……
하성과 하이 엘프들이 늘어져있는 모습을 보며 천영은 슬쩍 운전을 하 고 있는 주한성 쪽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야.”
“……심장 떨어질 뻔했습니다.”
“지랄. 준나이트급이 고작 이정도 가지고 엄살은.”
“나이트가 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에게는 충분히 자극이 컸습니다.”
“암튼. 쓸데없는 소리는 됐고,용건 이 뭐야?”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천영이 지구에서 27년을 살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이고,대가 없이 베푸는 호의가 썩어빠진 서울 사회 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공짜를 좋아하면서도,동시에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로 인해 너 무나도 많은 눈물을 홀려야만 했으 니까.
“용건이라…… 사실,용건이 있다 면 있겠지요.”
“뭔데. 빨리 말해. 들어줄 수 있는 것들이면 해줄 테니까.”
그 말에 주한성이 고개를 돌려 천 영을 빤히 쳐다보았다. 뒤를 바라본 채로 운전을 하는 아찔한 상황임에 도 주한성은 천영과 눈을 마주했다.
“……정말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만약 여기서 ‘그렇다’라고 대답할 경우 뭔가 굉장히 찜찜한 일이 일어 날 것만 같았다. 천영은 썩은 표정 을 지었다.
“취소. 그냥 안 들어줄래.”
“다행이군요. 사실 저도 뭘 부탁해 야할지 못 정했거든요.”
“참나. 일단 호의를 베풀고 뭘 받 을지 결정하는 게 말이냐?”
“후후. 천영 씨에게라면 그래도 될 것 같았습니다.”
“잘 됐네.”
천영은 턱을 쓰다듬다가,방긋 웃 었다.
“이왕 나한테 호의 베푸는 거 조금 더 선심 써라.”
“네?”
“나 배고파. 밥 사줘.”
“하하하.”
생각해보면 카나라시움에서 시작하 여 지금까지 한 끼도 못 먹었다. 원 체 식욕이 왕성한 천영이었기에 굶
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참을 수 없었다.
주한성은 이 근처에서 가장 뛰어난 칠성급 호텔과 레스토랑을 떠올렸 다. 천영에게 딱 맞는 의상을 준비 해주고,지금 당장 전화를 걸면 그 즉시 VIP석에 자리가 날 것이다.
“근처에 좋은 레스토랑이 하나 있 습니다.”
그리 말하자,천영이 표정을 와락 구겼다.
“아 그런 거 말고. 삼겹살에 소주 나 한 장 땡기러 가자.”
“아주머니가 해주는 된장찌개도 먹 고 싶어.”
“그,그런 것보다는 더 좋은 곳 이……
“싫어?”
천영이 빤히 쳐다보며 그리 말하 자,주한성은 울상을 지으며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습니 다.”
“그렇게 나오셔야지.”
정말로 너무나도 오랜만에 지구의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천영
의 표정이 화사하게 펴졌다.
"꼬마야,네가 스물아흡이라고? 민 증이 없으면 술을 못 마신단다."
결국 그날 저녁 천영은 소주를 마 시지 못했다.
이튿날 아침.
가장 먼저,천영은 지구의 마법 수 준을 알아야만 했다.
좋은 방법으로는 이곳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마법서를 살펴보는 것. 그 것만으로도 천영은 얼추 수준을 알 아볼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마법서라는 게 없다고?”
-예, 마법서가 대체 뭐죠?
“아니,그럼 마법사들은 대체 뭘로 마법을 배우는데?”
침대에서 몸을 뒹굴 거리며 천영은 스마트 폰을 통해 전해 들려오는 주
한성의 목소리를 들었다.
-사람들을 통한 ‘스킬 전수’ 뿐이 죠. 그래서 희귀한 마법은 그 값어 치가 굉장히 비싸구요. 대다수의 사 람들은 자신의 히든 마법을 공개하 지 않으려고 하죠.
“나 참……
마법의 수준을 알아볼 필요조차 없 었다.
이곳은,아예 마법의 기초조차 완 성되어있지 않았다.
본디 마법이라는 것은 과학과도 비 숫하여 끊임없이 발전하고 하나의 마법에서 수천 개의 마법이 파생되
기 마련이거늘,지구의 마법은 그저 스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돌아버리겠네.”
이정도로 처참한 수준일 줄 알았으 면 그냥 마법 같은 거 말고 다른 정보로 딜을 할 걸 그랬다.
통화를 끊은 천영은 푹신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의 풍성한 머리 칼이 사방으로 퍼졌다.
‘설마,설마 했지만 지구에서는 마 법이 그저 초능력 취급을 받을 뿐인 가…….,
마법은 사실 초능력이라는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웠다. 그리픈에서 마
법이란 곧 학문이었으니까.
전투 마법을 배우는 마법사가 전체 마법사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픈과 지구의 마 법 인식 자체가 완전히 판이하게 다 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곤란한데…….,
이렇게 되면,여섯 번째 클래스의 마법을 지구의 마법사에게 전수할 수가 없다.
그리픈에 넘어간 모든 넥스터 마법 사들이 6서클의 경지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300레벨을 달성하여 5
서클을 달성한 이들도 반드시 공부 를 통해 5서클,즉 5번째 클래스의 마법을 이해해야만 했고 그로 인해 깨달음을 얻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레벨을 올려야 만이 여섯 번째의 서 클을 심장에 새길 수 있었다.
그러니 지구처럼 마법에 대한 기초 가 아예 없을 경우엔 6클래스의 마 법을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 곳부터는 진정한 학자들의 영역이었 으니까.
‘……예상 못했던 것도 아니긴 하 지만.’
애초에 지구에 마법이라는 것이 생 겨난 이유는 단 하나. 게임 ‘넥스트’
를 통해서일 뿐이다. 고작 반쪽짜리 의 지식밖에 배울 수 없는 넥스트에 서 제대로 된 마법 학문이 나왔을 리가 없다.
-그럼 어쩌게?
“……일단 마법을 가르치기로 했는 데 그만 둘 수는 없겠지.”
그 높으신 분들 앞에서 큰소리를 떵떵 쳤는데 이제 와서 쪽팔리게 말 을 바꿀 수는 없었다. 천영은 인벤 토리에 수납되어있는 6클래스의 마 법서 몇 개를 만지작댔다.
처음엔 이것들을 대충 복사해서 넘 길 생각이었는데,마법의 기초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넘겨봐야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이다.
그러다 문득,천영은 머리맡에 있 는 노트북을 발견했다. 주한성이 구 비해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용된 흔적이 하나도 없는 노트북이었다.
“흐음……
이불에 머리를 파묻은 채 온몸을 비틀던 천영은 머리카락을 손바닥으 로 한 옹큼 움켜쥐고 배배 꼬기 시 작했다.
-정신 사납게 뭐 해?
“가만있어봐. 나 지금 미치겠으니 까.”
-이미 미친 것 같은데…….
천영은 침대 위를 한참이나 뒹굴었 다. 생각이 괜히 복잡해진다. 결국 보다못한 파트라슈가 말을 꺼냈다.
-그냥 처음부터 가르치던가.
“뭘?”
-마법.
“……마법을? 처음부터?”
-그래,그냥 마법 수련생이라고 생 각하고 기초부터 천천히 가르쳐.
그의 시선이 또다시 노트북으로 향 했다.
그리픈과는 달리 지구에는 훌륭한
기록 수단이 있었다. 과정이 귀찮은 데다가 느리기까지 한,직접 팬을 사용한 집필 방식이 아닌 노트북을 이용한 타이핑이라면 엄청난 속도로 교과서 정도는 하나 완성시킬 수 있 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 좋네.”
천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결국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마법에 대해 무지한 지구에게 6클 래스의 마법을 가르칠 가장 좋은 방 법.
그것은 기초부터 한꺼번에 대가리 에 쑤셔 박는 ‘주입식 교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