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 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150화 (149/219)

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50화

39장 황제가 되고 싶나?

기분 나쁜 축축한 습기와 악취,독 소가 가득한 깊은 숲 속 어딘가. 웨 지스턴은 그곳을 걷고 있었다. 온몸 이 상처투성이에다가 뼈가 몇 군데 는 맛이 간 상태이며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다가 마나 또한 회복

되지 않아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건 없어 보이는 상태였다. 하지만 본능 적으로 살기 위해 어딘가를 계속해 서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의문이 든다.

굳이 이렇게 살아봐야 뭐하나.

웨지스턴은 눈물을 홀리지 않는다. 이제는 피눈물마저 멎어버렸다. 그 에게는 죄책감을 가질 자격 따위도 없었다. 너무나도 큰 죄를 저질러온 탓이다.

웨지스턴은 단 한 사람도 잊지 않 았다. 여태까지 자신이 죽여 온 모 든 이들의 얼굴을. 비명을 지르던

그 끔찍한 광경을. 그리고 웃으면서 그들을 살해하던 자신의 표정조차

도.

그 모든 기억들이 매 순간마다 떠 올라 웨지스턴의 마음을 상처 입히 고 고통스럽게 했다. 그 스스로가 괴로워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팠다. 너무나도 아프 고 또 아파서 죽어버릴 것만 같았 다.

‘차라리 그때 죽였더라면.’

유적지,람테르필에서의 전투.

서천영과의 싸음이 생각났다. 아니, 그건 싸음이 아니었다. 그저 어린애

를 어른이 놀아준 것에 불과했다. 어째서 자신이 ‘넥스터’들 중에서 가장 강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 지? 드래곤으로 탈태했다고 해서 레 벨의 절대적인 법칙을 비껴갈 수 없 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난 정말 병신이군.’

혹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슬 슬 지쳐서,죽으러 갔을지도 모른다.

그랬다. 웨지스턴은 그때 죽는 걸 바랬을지도 모른다. 그는 최후의 반 항을 하지 않았다. 그저 죽음에 대 해 체념한 채,묵묵히 기다리고 있 었다. 서천영이 자신을 죽이는 것을. 이곳에서 죽음이란 그렇게도 쉽게

찾아오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서천영은 웨지스턴을 살렸 다. 자신이 생각해도 미치광이에다 가 싸이코에다가 정신 나간 살인마 를 살려뒀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고 있음에도 그는 자신을 살렸 다. 어떤 이유에선지.

그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웨지스턴은 검을 빼들었다. 더 이 상 인간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살아 갈 자신이 없었다. 날카로운 검에 남은 모든 마나를 불어넣어 스스로

의 목에 겨누었다. 이대로 긋기만 하면 끝난다. 덜덜 떨리는 손에 의 해 목의 피부가 갈라져 피가 살짝 스며 나온다.

긋기만 하면 정말 모두 끝인데. 그 럴 수가 없었다. 결국 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누군가가 비웃 었다.

“병신. 어차피 뒈지지도 못할 거면 서,혼자 쌩쇼를 하고 앉았네.”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웨지스 턴이 고개를 돌렸다. 나무 사이에 누군가가 앉아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팔뚝에는 기분 나쁜 척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팔리 다리에르. 그들의 새로운 수 장,킨토르.

웨지스턴은 킨토르를 홀깃 쳐다보 더니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흐. 맞는 말이다. 그러니까, 너】가 나 좀 죽여줘라.”

“내가? 너를? 말이 되는 소리를.”

킨토르는 웨지스턴을 죽일 수 없 다. 물리적으로는. 애초에 그의 공격 력으로 웨지스턴의 방어력을 뚫는 것은 불가능했다.

“죽어서 편해지려고? 만화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중2병의 끝은 결국 자살이라는 건가? 돈 주고도 쉽게 실험하지 못하는 걸 내 눈으로 본 건 굉장히 기분 좋다만 넌 그래 선 안 되지. 쓰레기 새끼야.”

킨토르의 말에 웨지스턴은 대답할 수 없었다.

“지 혼자 쓰레기짓 쳐하고 다니다 가 막상 힘드니까 자살해서 끝내겠 다? 서천영이 널 왜 살렸는지 알 것 같군. 넌 자살도 못하는 병신 겁 쟁이야. 그래서 남에게 의지해서 죽 고 싶었나 본데……

나무 위에서 웨지스턴을 비웃던 킨 토르는 주머니에서 얇은 바늘 하나

를 꺼내 웨지스턴에게 날렸다. 그러 자,웨지스턴 본인이 반응하기도 전 에 그 본능이 먼저 나서서 작은 마 나 실드를 펼쳐냈다. 쨍 하고 바늘 이 부러진다.

“……누가 널 죽이려 해도 년 결국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겠지.”

저도 모르게 마나 실드를 펼친 웨 지스턴은 멍한 얼굴로 부러진 바늘 을 쳐다보고 있었다. 설마 본인이 그럴 줄은 몰랐다는 둣. 킨토르는 쯧,혀를 찼다. 서천영이 웨지스턴을 살려놓은 이유를 뻔히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대체 뭐하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천영도 상당히 위험한 놈이군.’

팔리 다리에르. 무법자 집단인 그 들의 수장이 되기 위해서는 단 하나 의 조건이 필요하다.

싸움을 제일 잘할 것.

그리고 킨토르는 싸움을 굉장히 못 한다.

모든 넥스터가 싸움을 잘하지는 않 는다. 킨토르는 아무리 레벨을 높여 도,싸움을 못하는 축에 속했다. 레 벨값 못한다는 소리를 굉장히 많이 듣고 살았을 정도로. 하지만 그는 머리가 굉장히 좋다. 그러니까 킨토 르는 어떤 의미에서 굉장한 부류였

다.

주먹 하나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집단에서 두뇌 하나로 우두머리를 먹은 인간이었으니까.

그런 킨토르였기에 서천영을 경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부터 킨 토르는 웨지스턴을 지켜봤기 때문에 그의 상태를 어림짐작 할 수 있었 다. 하지만 서천영은 웨지스턴을 처 음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 봤음에도 불구하고 웨 지스턴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결국 놓아주기까지 했다. 미친 것처럼 보 이는 가면을 꿰뚫어보고 죄책감에 매일 매일을 악몽에 시달리는 그 내

면을. 그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절망까지도.

“넌 구제불능이야.”

킨토르는 문득 그렇게 말을 내던졌 다.

“이대로 살아서 돌아가면 넌 또 살 인을 저지르겠지.”

웨지스턴은 부정할 수 없었다. 킨 토르는 담배를 하나 꺼내서 피웠다. 물론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피우는 행위 하나에 만족을 느낀다.

“너 주제에 미안함을 느껴? 말로 만? 그러기엔 년 너무 쓰레기야. 죗 값이라도 치르라고.”

대체 뭘 어떻게 하란 말인가? 웨 지스턴이 고개를 들어 그런 의문을 표하자. 킨토르가 표정 하나 없는 얼굴로 말했다.

“너 평소에 제일 띠꺼웠던 놈들이 누구야?”

그렇게 말한 뒤,킨토르는 돌연 사 라져버렸다. 웨지스턴은 아직까지도 멍한 얼굴로 킨토르의 말을 되새겼 다. 그러다 문득 떠올린다.

일곱 다리의 연결자.

그리고 그 거대한 그룹을 거미줄처 럼 하나로 옭아매는 수많은 그룹들

을. 웨지스턴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정보의 바다가 파도처럼 몰아친다. 일곱 다리의 연결자들을 구성하는 수많은 그룹의 우두머리들의 이름과 얼굴,거주지와 행적이 떠오르고 사 라진다.

죄책감.

웨지스턴이 행동하는 이유는 단지 죄책감 때문이었다. 죗값을 조금이 라도 덜기 위하여.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런 의미 도 없고 보상 또한 없겠지만. 그럼 에도 웨지스턴은 움직인다.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는 거대한 추를 제거 하기 위하여.

생기 하나 없이 죽어가던 웨지스턴 의 눈빛이 돌연 날카로워졌다.

마그아티온 제국에 돌연 폭풍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머나먼 타지로 돌연 탐사를 떠나버 린 3황자의 귀환. 계승권 싸움에서 전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던 3황자는 ‘용의 유물’을 가지고 돌아 오는 바람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이대로 가면 무조건적으로 황태자가 황제를 물려받게 되는 시나리오였는

데 설마 3황자가 용의 유물을 가지 고 돌아올 줄을 그 누가 알았겠는 가.

마그아티온 제국은 대대로 용과 관 련된 것에 굉장히 민감했다. 하물며 용의 유물을 직접 구해왔으니 3황자 의 계승권이 순식간에 높아지는 것 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얼마 전 실제 용이 직접 세계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이다.

서천영은 마그아티온 제국의 수도 ‘포나리온’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 했다.

“이게 진짜 대도시라는 건가……

나름 그리픈의 이곳저곳을 많이 다 녀봤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가장 화 려한 곳은 보지 못한 채였다.

제국의 수도란 그 위용만으로도 드 래곤의 입을 쩍 벌리고 놀라게 만들 기에 충분했다. 나름 금색 별 마탑 에서 거주하는데다가 신성제국도 몇 번 왔다갔다 해본 경험이 있기에 어 지간한 것에는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건만.

-저게 제국의 성 ‘포나리온’이야.

파트라슈는 어쩐지 그립다는 얼굴 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기억

속 포나리온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천 년의 세월이 흐르며 제 국 역시 끊임없이 발전하였고,그 결과 리오폰드 3세가 세웠던 ‘포나 리온 제 1황궁’은 진작 사라진지 오 래 였다.

지금 남아있는 것은 포나리온 제 9황궁부터 15황궁 뿐. 그 6채의 성 은,하늘에서 내려다보아도 한눈에 모두 집어넣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 로 거대했다.

포나리온 황궁을 중심으로 총 7개 의 성벽이 바깥으로 퍼져나갔으며 각 성벽 안쪽에 있는 도시는 계단식 으로 서서히 그 범위를 넓혀갔다.

추측컨대 그 어떤 강대국에서 모든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와도 제 7성벽 하나를 뚫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

2황자 러셀 리의 안내에 따라 서 천영은 아주 손쉽게 황궁 안으로 들 어설 수 있었다. 새하얀 제복 위에 금색의 용 문양을 수놓은 기사들이 그들을 안내했다.

천영의 작은 키로는 황궁 전체를 올려다보기도 힘들었다. 황제가 거 주하는 포나리온 제 13황궁은 거의 120층에 달하여 그 높이는 성이라 기 보단 탑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부 또한 거대한 정원과 새하얀 길이 펼쳐져 있어 걸어서 진입하기

엔 너무나도 멀었다. 미리 준비된 리무진 형태의 마차를 타고 제 13 황궁으로 이동하자 병사들이 나와 2 황자 러셀 리에게 예의를 갖추었다.

“폐하를 만나보아야겠다.

“예,헌데 뒤의 손님께서는……

병사들이 또렷한 눈빛으로 서천영 과 네청,백화연을 차례로 쳐다보았 다. 러셸 리가 대신 설명하려는 것 을 막은 천영이 입을 열었다.

“금색 별 마탑…… 아니지.”

그는 말을 정정했다.

“드래곤,서천영이다.”

그에 병사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더 니 허겁지겁 문을 열었다. 성 내부 역시 천장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끝없이 높았으며 벽과 창문에는 수 많은 드래곤들이 그려져 있었다. 금 색,흑색,갈색,붉은색,푸른색의 드래곤들은 모두 전설이나 역사 속 에서 전승되어오는 이야기를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천영은 그런 그림들을 보며 뭔가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드래곤은 대체 뭘까.’

대체 어디서 왔으며 무얼 해야만 하는 걸까.

유적지에서 웨지스턴을 놓아준 것 이 또다시 생각난다. 그렇게까지 파 트라슈가 굳은 표정으로 천영을 말 렸던 적이 여태 있었던가. 당연히도 서천영 역시 여태까지 살인을 한 번 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꽤나 많이 한 편이다. 하지만 파트 라슈는 단 한 번도 서천영을 말린 적이 없었다. 서천영이 누굴 죽이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태도로 일관했 다.

하지만 웨지스턴을 죽이려고 했을 때에는 필사적으로 말렸다. 서천영 은 그 이유를 아직까지도 모른다.

‘주인의 인격은 아직까지도 상상

이상으로 연약해. 드래곤은 그 어떤 상황이 닥쳐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강철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지.,

그 일 직후 파트라슈가 그런 말을 했었다. 천영은 아직까지도 어린 드 래곤일 뿐이다. 그리고 어린 드래곤 은 모든 면에서 미숙하다. 아직까지 도 성장 중일뿐이라고.

물론 그 말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 은 아니다. 다만 파트라슈가 웨지스 턴은 더 이상 무고한 사람을 죽일 수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하는 통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

병사의 안내를 받아 천천히 이동한

천영 일행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 라가기 시작했다. 목표 층은 110층. 굉장히 높았다.

딩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수많은 시녀들이 다가 와 그들을 안내해주었다. 어쩐지 엄 청난 대우를 받는 것 같아서 어색했 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기나긴 복도를 지나,꽤나 고급스 러운 문 하나가 나타났다. 그 앞에 어떤 노인 한 명이 황급히 나온 둣 당황한 얼굴로 서있었다.

‘누구지?’

뭔가 엉망진창인 차림새를 보아한

데 높은 사람은 아닌 듯 싶었다. 그 렇게 생각하며 천영에 그 노인에게 다가가자 2황자 러셀 리가 갑작스레 무릎을 꿇었다.

“어라?”

천영을 안내하던 시녀와 병사,기 사들 역시 모조리 무릎을 꿇었다. 이 자리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 는 사람은 천영과 백화연,네청 뿐 이었다. 노인은 다른 사람들이 무릎 을 꿇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천영에게 다가와 양손을 내밀었다.

“짙은 어둠으로부터 한 줄기 빛을 세상에 비춰주는 위대한 용이시여. 부족하지만 용의 축복을 받아 세워

진 마그아티온 제국을 이끌고 있는 ‘셈블랑’이라고 합니다.”

“셈블랑?”

복잡하게 얽힌 천영의 기억이 마구 뒤집어지다가 무언가를 떠올렸다.

셈블랑을 왜 모르겠는가. 이 노인 이 바로 그 유명한 마그아티온 제국 의 유일무이한,

“……황제?”

“부족하지만 그렇습니다.”

천영은 얼떨떨한 얼굴로 아직까지 도 공손하게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 는 황제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그래 도 이 거대한 제국의 황제라는 사람

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낮춰도 되는 지 모르겠다.

-마그아티온 제국은 용의 축복을 받아 건국되었으니 저럴 수 있지.

“그런가……

아무튼 황제까지 나서서 이렇게 맞 이해주니 일이 꽤 잘 풀리는 모양이 다.

“저도 영광입니다 황제 폐하. 그나 저나 제가 여기에 찾아온 이유 말인 데……

어쩐지 셈블랑도 서천영이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서천 영은 씩 웃으며 아니,사실 굉장히

무시무시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폐하의 아들내미가 제 물건 하나 를 흠쳐가서 아주 조금 곤란하거든 요.”

아주 조금 정말 조금 곤란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