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37화
칼라할 교단의 신전에는 신도가 아 닌 일반인들도 자주 찾아오곤 했다. 이유는 거의 ‘관광’에 가까웠지만 교단은 그들을 내치지 않았다.
천영의 방식대로 말하자면 관광객 들에게 덤태기 씌워서 드래곤 관련 상품 팔아먹어야 해서라는 이유가 있겠지만 교황 리우펠리우스가 말하 길 단지 모두에게 열린 교단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일지는 모르 는 일이다.
왜 칼라할 교단에 사람들이 그렇게 나 몰려들까? 다른 4개의 교단에 비해 칼라할 신전이 인기가 많은 이 유는 다름 아닌 신전 그 자체가 너 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새하얀 벽을 지나 내부로 진입하면 신전으로 들어가기 위한 기나긴 다 리가 나타난다. 다리에는 이름도 붙 어 있었는데 ‘하늘로 향하는 길’이 라는 거창한 이름이었다.
하늘로 향하는 길의 양 옆에는 지
구의 나이아가라 폭포를 연상케 하 는 거대하고 기다란 폭포가 흘러내 리고 있었으며 그 위쪽으로는 거대 한 흰색 깃털의 새가 날아다닌다. 하늘 위에는 아무리 서천영이라 할 지라도 쉽사리 건들기 힘들 정도로 견고한 신성결계가 쳐져 있어 신성 진이 어른거렸고 그 아래로 햇볕이 역광으로 반사되어 신전을 더욱 아 름답게 만들었다.
새하얀 신전은 사실 말이 신전이지 거대한 성이나 다름없었고 그 중심 에는 골드 드래곤의 조각상이 날개 를 펼친 채 포효하고 있었다.
최근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그
조각상의 옆에 서천영의 조각상을 하나 더 세울 것 같다고 한다.
칼라할 신전을 가로지는 다리의 양 옆에 있는 폭포의 위쪽에는 아주 거 대한 광장이 나있었다. 그곳은 주로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장소였고 상당 히 개방된 이미지였지만 지금은 달 랐다.
무려 수천 혹은 수만 명 이상의 군중들이 바글바글 몰려들어있었다. 그들은 어딘가 기대어린 표정으로 누군가를 기다렸다.
사방에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폭죽
이 터지고 교단을 수호하는 신조(神 鳥)가 날아다녔으며 평소와는 달리 하늘로 향하는 길이라는 이름의 다 리에는 새빨간 레드 카펫이 깔려있 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 땅을 밟지 못하도록 통제받고 있었다.
군중들이 숨죽인 채 신전의 입구를 주목하였다.
하늘로 향하는 길의 끄트머리에 있 는 상석에 앉아있는 교황의 주변에 는 호화스러운 의자에 착석한 각 국 가의 왕이나 황제가 함께하고 있었 다.
원래 같았으면 절대 참석하지 않았 을 이들이 여기까지 온 이유.
무려 용의 등장과 함께 성녀로 지 목된 여인 ‘안시르엘’의 성녀 즉위 식이기 때문이었다.
강대국인 마그아티온 제국은 용을 숭배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황제가 직접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했고 그에 주변 국가들이나 마그아티온과 의 관계를 원하는 대규모 그룹에서 칼라할 교단으로 우르르 몰려와 있 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들 역시 상석에 앉아 있음에도 부족함이 없었겠지만 워낙 쟁쟁한 이들이 모여 있는 바람 에 대기업의 회장 정도는 그저 의자 에 앉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해야만
할 정도로 참여한 인원들이 어마어 마했다.
이렇게나 다시없을 호화스러운 관 심을 받으며 안시르엘이 입구에 등 장한다.
“와아아아!”
“나오셨다!”
“성녀님이야!”
마치 이 대지에 갑작스레 충격파가 터지면 이런 느낌일가 싶은 환호성 이 터져 나온다.
벌써 20년이 넘도록 성녀의 자리 는 공석이었다. 흘렘의 모든 시민들 은 언제나 성녀가 나타나기만을 기
다렸고 그것은 교황 리우펠리우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누구라도 상관 없으니 제발 나타나주기만 했으면 하고 빌었던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 무려 신화 속 드래곤과 함께 그 이 름을 전 세계적으로 떨치며 등장한 이가 자신들의 성녀라니.
안시르엘이 서천영과 과거에 함께 행동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일파만파 로 퍼져나갔고 사실 그들은 파티를 한 상태에서 별로 크게 한 일도 없 었지만 어느 사이엔가 이야기는 각 색되어있었다.
사람의 입에서 입을 거칠 때마다 소문이라는 것은 변화되기 마련이고
하나의 뿌리를 가졌음에도 순식간에 진실은 우주 너머로 사라진 채 그저 소설 같은 이야기만이 남아있을 뿐 이다.
홀러 들어오는 이야기를 대충 듣자 면 안시르엘은 애초부터 드래곤에게 선택 받은 존재였네 뭐네 하는 말도 있었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하늘 에서 용이 직접 내려준 성녀라는 말 도 있었다.
하늘에서 난데없이 균열이 열리며 악마가 내려왔을 때,성녀 안시르엘 의 기도를 받아 드래곤 서천영이 등 장했다는 내용으로 유명한 음유시인 이 각색한 노래는 마치 그것이 진실
인 것 마냥 이야기가 번져나가기도 했다.
부정적인 소문은 순식간에 멀쩡한 사람 하나를 쓰레기로 만들기도 하 지만 긍정적인 소문은 순식간에 별 것도 아닌 무언가를 희망의 상징으 로 만들기도 했다.
용이 눈에 보이지 않는 희망의 상 징이라면 성녀는 눈에 곧바로 보이 고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있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안시르엘이 새하얀 제복을 입은 성 기사 2명의 에스코트를 받아 사뿐사 뿐 걷기 시작하자 그녀가 신고 있던 구두 굽에서 빛으로 만들어진 꽃이
피어올랐다가 빛가루로 화해 사라진 다. 한두 번이 아니라 걸을 때마다 계속. 이 구두는 서천영이 선물해준 것으로 특수한 마법 장치가 걸려 있 어 이 다리에 설치되어 있는 레드 카펫을 밟으면 발동되는 것이었는데 안시르엘은 그 기능을 알지 못했다.
거기다가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작 은 무지갯빛 오로라가 조금씩 어른 거렸으며 화사한 빛무리가 그녀의 주위를 조금씩 감싸고돌았다.
모두 서천영이 고안한 아주 기가 막히는 마법 장치였으나 어지간한 수준의 마법사들조차 그것이 마법이 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안시르엘에게서 나타나는 어떤 특별 한 현상이라고 생각할 뿐.
곧 그것이 그녀를 신비롭게 만들어 주었다. 결코 의도치 않고 천영 또 한 다른 성녀들이 즉위식을 어떻게 하는지 본 적이 없으니 어디 가서 창피 당하지나 말라고 대충 아티팩 트 몇 개 던져준 게 전부였지만 사 실상 이렇게 화려한 즉위식은 역사 전체를 뒤져보아도 없었다.
물론 하늘로 향하는 길의 제일 끝 교황의 바로 옆에 선 채 기다리고 있던 셀라임의 표정이 심각하게 일 그러 졌다.
‘윽,천영 오빠가 또 이상한 짓 해
안시르엘은 화려하고 눈에 띄는 것 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고 셀라임 또한 그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다 행스럽게도 현재 안시르엘은 본인에 게서 무슨 이펙트가 터지는지 모르 는 모양이었지만 나중에 저장된 영 상이라도 확인하는 날에는 아주 난 리가 날 터였다.
‘그래도 저런 선물을 준비해준 덕 분에 효과는 있는 모양이지만……
안시르엘이 교황의 앞에 도달하자, 군중들이 침묵했다. 교황이 슬쩍 일 어서 계단을 걸어 내려와 안시르엘
에게 축복을 내린다. 교황이라는 존 재는 그들이 모시는 신의 대리자 그 리고 성녀는 신의 아내와 다름없는 존재로서 영원히 그들만을 모시며 살아가야 한다. 즉 성녀가 되는 순 간 결혼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안시 르엘은 성녀직을 받아들였다. 자신 이 성녀가 됨으로써 자신이 이끌던 수많은 넥스터들의 어깨에 힘이 들 어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 니까. 갈 곳 없이 헤매던 넥스터들 에게 머물 곳을 마련해주고 또한 그 들이 다시는 내쳐지지 않도록 보호 해줄 힘을 성녀만이 가지고 있었으
지금 이 자리에 수천 명 가량의 넥스터들이 감격에 찬 얼굴로 안시 르엘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구인,즉 넥스터들이 그리픈으로 이동한지 1년.
안시르엘은 넥스터 최초로 거대한 권력을 가진 집단의 우두머리나 다 름없는 직책을 꿰차게 된 것이다. 그것도 보통의 집단이 아닌 무려 5 대 교단 중 하나인 칼라할 교단의 자리이다. 용이 나타난 뒤로 마그아 티온 제국의 황제까지 칼라할 교황 을 뵙기 위해 손수 이곳까지 행차한 것을 생각하면 칼라할 교단의 힘은
더 이상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즉 이 사건은 넥스터가 가진 가능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사 건이기도 했다.
금색 별 마탑에 가입한 서천영과 백하란은 애초에 너무 머나먼 별나 라 같은 이야기라 별로 와닿지 않았 다. 하지만 그들이 직접 이렇게 ‘힘’ 과 ‘권력’을 체감할 수 있는 드넓은 신전에 서서 그 모든 것을 거머쥔 넥스터,안시르엘을 바라보고 있자 니 같은 지구인으로서 자동으로 어 깨에 힘이 들어갔다.
4대 교단의 교황 역시 이제는 칼 라할 교단을 인정하고 더 이상 그
무엇도 탐내지 않았다.
그들은 리우펠리우스가 안시르엘에 게 축복을 내리는 모습을 그저 지켜 보며 입을 열지 않았다. 사실 칼라 할 교단에 성녀가 없던 이유 중 하 나는 그들이 그런 인재가 나타날 때 마다 잽싸게 정보를 차단하고 몰래 빼돌렸던 것이 가장 컸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었고 그래봐야 의미도 없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자 신들로서는 넥스터까지 흡수한데다 가 드래곤의 출현까지 더해진 칼라 할 교단에게 어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용의 대리자로서
‘성녀 안시르엘’에게 축복을 부여하 나니 그녀는 하늘의 명에 따라 영원 히 용을 바라보고 살아야만 하며 또 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용의 곁으 로 가게 될 지어다.”
그렇게 해서 성녀 즉위식과 동시에 일주일간의 축제가 도시 흘렘에서 펼쳐지게 되었다.
서천영이 몰래 찾아온 것은 축제 사흘 차,신전 구석의 어딘가였다.
그 날 안시르엘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첫 날에는 교황들 및 마그 아티온 황제 등등 높으신 분들과 함 께 하느라 진이 다 빠질 지경이었고 둘째 날에는 여태까지 함께 해왔던 넥스터 성직자들과 파티를 벌이느라 온몸에 기운이 없었다.
그 다음 날에는 원래 셸라임과 단 둘이서 데이트를 할 예정이었는데 안시르엘이 생각보다 훨씬 더 지쳐 하는 것 같아서 셀라임이 그녀를 배 려해주어 적당히 놀고 있던 참이었 다.
신전의 뒤뜰에는 거대한 정원이 있 다. 이곳에 온지는 얼마 되지 않았 지만 안시르엘은 이 정원을 퍽 좋아
하는 편이었다. 마치 자연 그대로 놔둔 것 같으면서도 정원사들의 세 심한 관리에 의해 절대 모나지 않고 아름다운 정원. 새들이 지저귀고 다 람쥐와 토끼가 졸래졸래 뛰어다니는 것을 가만히 구경하고 있는데 나무 위에서 나뭇잎 하나가 톡 떨어져 내 렸다.
“응?”
안시르엘은 머리에 붙은 나뭇잎을 떼어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가 나 뭇가지에 앉아 있는 세 명의 인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서천영과 새하얀 머리칼을 가진 두 명의 여인이었다.
“왜 그렇게 죽을상이야?”
“어,오빠!”
내심 성녀 즉위식 때 천영이 찾아 오지 않아서 조금 서운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이렇게 난데없이 찾 아올 줄은 몰랐다.
안시르엘의 얼굴에 미소가 활짝 만 개했다.
“여긴 어떻게 온 거야?”
“경비원이 나 보니까 엎드려 절하 면서 비켜주던데.”
천영은 그렇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해석을 하자면 경비를 매수해서 아 무도 모르게 이곳에 몰래 잠입해온 참이었다. 물론 교황은 잠깐 만나고 오긴 했지만 그는 이곳에 자신이 등 장했다는 사실을 별로 알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 만 천영은 아무리 잘생긴 얼굴을 선 물 받아도 연예인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목받는 것은 영 타입이 아니었다.
“얼굴이나 잠깐 보려고 왔지. 셀라 임은?”
“지금 놀러 나갔어. 어젯밤에도 엄 청 마시더라……
성기사 아냐? 그래도 돼?”
“뭐 어때. 우리가 ‘모시는 분’도 만 날 퍼마시는 걸.”
그렇다. 안시르엘과 셀라임은 자주 겪어봐서 안다. 숙취에 찌들어 뒹굴 거리던 서천영의 그 모습을.
안시르엘과 셀라임은 이제 서천영 을 숭배하는 입장이 되었지만 그럼 에도 여전히 거리낌이 없었다. 거리 감은 전혀 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여 태까지 유지해온 그 ‘친밀감’의 끈 이 그들의 신성력을 더욱 강하고 견 고하게 만들어 주었다. 서천영을 아 니까. 드래곤의 원래 모습을 아니까.
덕분일까. 안 그래도 굉장했던 안
시르엘의 신성력은 아예 태양불처럼 타올랐고 티끌조차 남아있지 않던 셀라임의 신성력은 어지간한 나이트 가 와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굉 장한 힘을 자랑했다.
“그나저나 옆에 계신 분은……?”
백발의 여인,백화연은 저번의 전 투 때 봐서 알고는 있었다. 백화연 이 슬쩍 목례를 하자 안시르엘도 얼 멸결에 목례를 했다. 묘한 예를 차 리는 여자였다.
“이 분께서는 내 스승님이나 다름 없는 네청 님이셔.”
“반갑구나,용을 모시는 아이야.”
네청은 나무 위에서 인사하지 않고 바람을 타고 땅으로 내려와 안시르 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너무나도 다정하고 따스해 안시르엘 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아,안녕하세요……
“후후.”
어쩐지 네청은 칼라할 교단이 굉장 히 마음에 드는 둣,이곳에 온 뒤부 터 줄곧 미소를 지은 채였다. 반대 로 백화연은 뭐가 그리도 불안한지 눈을 어디다 제대로 고정시키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이었다.
상극이나 다름없는 둘의 반응에 천 영은 빨리 이곳에서 나가야할지 더 오래 머물러야할지 판단할 수가 없 었다.
안시르엘과 네청은 어느덧 말을 텄 고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었 다. 천영은 백화연의 옆에 착 달라 붙은 채 그들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 았다. 만약 네청이 용이 되었다면 안시르엘이 숭배하는 대상은 네청일 것이다. 질투가 날 법도 했다. 용이 되었다면 이 수많은 사람들의 숭배 를 한 몸에 받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천영은 알 수 있다. 네청의 감정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다.
그녀에게서 ‘질투’ 따위의 어두운 감정은 티끌만큼도 없다. 네청이 야 망이 없느냐? 그건 절대로 아니다. 무려 용이 되려는 이무기에게 야망 이 없을 리가 없다. 그럼 욕심이 있 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용이라 는 것,그 모든 것을 갖고 싶어 하 는 그녀가 이 순간 아무것도 질투하 지 않는다니.
‘……대체 얼마나 깨끗하고,얼마 나 높은 곳에 계시는 건가.’
천영은 감히 네청이 있는 곳을 바 라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녀는 말하자면 모든 것에 해탈한 신선이 나 다름없었다.
용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용이 된 천영보다 하찮은 것이 아니었다. 아 니,오히려 모든 면에서 천영보다 훨씬 더 우월하고 대단했다. 천영의 가슴 속 어딘가에서 네청에 대한 경 외심이 피어올랐다.
그러면서 의문이 든다.
어찌하여 저토록 대단하고 저토록 깨끗하고 저토록 아름다우며 저토록 선하고 정의로운 이무기가 용이 되 지 못하고 있을까.
그에 대해 물어보아도 네청은 그저 웃을 뿐이며 파트라슈는 침묵한다.
“그나저나 오빠,혜림 언니 이야기
는 들었어?”
“아니,요새 뭐하고 산대?”
“……너무 관심이 없는 거 아냐?”
그러면서 안시르엘은 이혜림의 근 황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녀가 갑 작스레 마법 연구소를 차린 것과, 그 연구소가 이 도시에 위치해 있다 는 것. 그 설명을 듣자마자 천영은 입을 쩍 벌렸다.
“미쳤군……
이곳은 ‘성지’이다. 성지란 즉,신 성스러운 장소. 마법 따위는 허락받 지 못한 곳. 그런 곳에다가 마법 연 구소를 떡하니 세웠으니 어지간히
미친 짓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오빠도 마법은 쓰잖아?”
“……그건 그렇지?”
“칼라할 교단은 원래 마법에 대해 굉장히 좋게 생각하는 편이야.”
“아, 그러면……
칼라할 교단의 힘이 강해진 지금 이제는 더 이상 다른 교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 여전히 다른 마탑들은 4대 교단의 눈치를 보며 쉽사리 이곳으로 들어오기 힘들 테 지만 애초에 무소속이었던 이혜림은 그런 눈치 따위 전혀 보지 않았고, 그저 당당히 마법 연구소를 성지에
차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행동은 일종의 발화제에 불을 붙인 행위나 마찬가 지일 것이다. 칼라할 교단이 마법에 대해 허락하였고 당당히 마법 연구 소를 차린 이가 최초로 등장했으니 너도나도 마탑들이 서로 칼라할 교 단과 교류하기 위해 애를 쓰겠지. 이혜림은 마법사와 성직자들이 갖는 교류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뭐 니 뭐니 해도 안시르엘이라는 든든 한 뒷배가 그녀를 봐주고 있었고 또 한 이혜림 그녀 자체의 능력도 굉장 했으니까.
‘진짜 장난 아니네,이 여자들.’
왠지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상 이상의 행보를 보여주고 있었 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던 천영은 백 화연이 자신의 옷자락을 움켜쥐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언제나 차갑 고 도도하며 당당하고 강하고 우직 한 백화연이 마치 길 잃은 소녀마냥 울상을 지은 채 덜덜 떨면서 천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여기서 언제 나가?”
“고,곧 나갈게.”
새삼 미인이라고 해서,어떤 다른 감정이 깃들지는 않지만 이미지의
차이에서 보여주는 그 ‘갭’이 천영 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천영 역시 나뭇가지 아래로 폴짝 뛰어내려 안 시르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당연 하지만 키가 작은 편인 안시르엘은 여전히 천영보다 키가 컸다.
“우리 이만 가볼게. 너 얼굴 잠깐 보러 온 거야.”
“벌써? 아직 축제도 많이 남았는 데……
“시간이 별로 없거든. 용의 큐브를 또 찾으러 가야해서.”
“으응,그럼 어쩔 수 없네.”
짧지만 강렬하게 등장했던 천영은
다시금 그렇게 사라졌고,뒤늦게 찾 아온 셀라임은 어쩐지 표정이 편안 해진 안시르엘을 보며 고개를 갸웃 했다.
“누구 왔다갔어?”
“응,오빠.”
“앵? 난 못 봤는데.”
“그래? 너도 잠깐 보고 간다고 도 시 쪽으로 갔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엇갈렸다는 의미이다. 셀 라임도 천영이 왔다가 다시 사라졌 다는 말에 굉장히 아쉬운 둣 입맛을 다셨지만 어쨌든 안시르엘의 피곤한 기색이 완전히 가신 것을 보며 활기
차게 웃었다.
“그럼 우리 놀러 가볼까?”
그렇게 축제 7일차.
마지막 날 밤.
칼라할 신전을 중심으로 온 사방에 폭죽을 터뜨리고 성가를 가장한 신 나는 노래를 부르면서 축제는 마무 리 된다.
셀라임은 멍하니 신전의 테라스에 서서 저 아래에 아주 자그맣게 보이
는 도시를 쳐다보았다. 어쩐지 굉장 히 묘한 느낌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제대로 된 신분증조차 발급되지 않아 이 대륙을 정처 없이 떠도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칼라할 교단에서 무려 성녀를 지키는 직책 을 부여받게 되었다. 비록 그 성녀 가 안시르엘이라 별로 하는 일이 달 라지지는 않았지만.
가만히 도시를 내려다보던 셀라임 은 불현 듯 불길한 감각을 느꼈다.
‘뭐지?’
주변을 둘러본다. 어쩐지,신전 내 부가 고요했다. 기분 탓이라고 치부 할 수도 있겠지만 나이트급 성기사
가 되었기에 셀라임은 알 수 있다. 나이트에게 기분 탓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이트가 불길하다고 느끼 면 정말 불길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셀라임은 황급히 신성 도구 하나를 꺼냈다. 만약 신전 내부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면 요란한 알람이 울린 다. 하지만 그 신성 도구는 잠잠했 다.
‘아니야. 분명 뭔가 있어.’
테라스에서 땅으로 폴짝 뛰어내린 셀라임은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바닥 에 착지했다. 그 다음 상체를 숙이 고 쓴살같은 속도로 뛰자 그녀의 몸
이 바람과 동화되어 순식간에 신전 내부를 주파했다.
‘어디지? 어디서 뭐가……
흠칫.
오싹한 기분에 셀라임은 걸음을 멈 춰 세웠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곧이어 셀라임은 이곳이 어딘지 기 억해냈다.
서천영이 맡겨둔 용의 성물이 전부 보관되어있는 장소였다. 본디 이곳 은 겹겹이 중첩된 신성결계로 가로 막혀 있으며 경비원이 번갈아가며 지속적으로 지키는 장소였다. 셀라 임은 그곳으로 잽싸게 뛰어가 입구
를 확인했다. 안쪽으로 핏방울이 점 점이 이어져 있었다.
황급히 안쪽을 확인해보니 병사 한 명이 기둥에 기댄 채 죽어있었다. 즉사는 하지 않은 모양이었는지 저 기까지 어찌저찌 기어간 모양이었지 만 결국 숨을 거둔 모양.
“누가 대체 이런……
저벅.
인기척조차 느끼지 못했거늘 갑자 기 울린 발소리에 셀라임은 인벤토 리에서 무기를 빼냈다. 새하얀 검날 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림자
속에 가려져 있던 인물은 발소리를 내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을 본 셀라임은 입을 쩍 벌리고 경악했다.
붉은 번개 모양이 인상적인 남자, 마검사 웨지스턴이었다.
“하하,역시 단순히 잠입만으로 끝 나는 퀘스트는 아니라 이거지. 역시 나 보스몹 등장! 같은 이벤트인가? 흠흠,뭐. 그다지 강해보이지는 않는 데…… 쪼랩 던전인 걸까나. 확실히 한국 양산형 게임답게 던전 보스몹 주제에 예쁘단 말이지.”
그러면서 웨지스턴은 들고 있던 검
을 어깨에 걸쳤다. 그의 검에서 핏 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셀라임의 안 색이 창백해졌다. 나이트급으로 성 장했기에 알 수 있었다.
상대방과 자신이 가진 힘의 명백한 차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