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 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123화 (122/219)

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23화

객관적으로 봤을 때 하성은 아주 뛰어난 인력이었다. 200년이나 살아 온 신성한 생명체답게 하지 못하는 일을 찾는 것이 드물 정도였고 마법 실력 또한 어디 가서 ‘나 마탑주 함 시켜주오.’라고 말을 넌지시 꺼내면 그 누구도 우스갯소리로 듣고 넘기 지 못할 정도로 뛰어났다.

비록 패션 감각이 매우 절망적이라 매번 서천영이 그를 데리고 쇼핑을

하러 나가야만 했지만 하성은 그 점 에 대해 너무 완벽하면 질투를 살 것 같으니 일부러 오점을 내놓고 다 니는 것이라 말했다. 아니,실은 그 저 서천영과의 쇼핑이 즐거워서 고 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제쳐두고서 하 여튼 하성은 굉장히 대단한 마법사 이자 유니콘이었다. 임무 완수율 백 퍼센트. 그런 하성에게 위기가 찾아 왔다.

“이건…… 내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군.”

홀로 오지를 탐험하여 마탑주 레이 븐이 조사해달라고 부탁한 부분을

샅샅이 뒤지던 하성은 자신의 능력 외라고 볼 수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유니콘이기에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는 물건.

‘만추의 기둥’이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무풍사막’의 중심지에 떡하니 꽂혀있었다.

뜨거운 뙤약볕 녹아내릴 둣 이글거 리는 모래알,구름 한 점 없는 새파 란 하늘까지. 보통의 인간이라면 미 쳐버릴 정도의 더위 따위는 전혀 신 경 쓰이지 않는다는 둣 하성은 입을 꾹 다물고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장 소에서 만추의 기둥을 주시했다.

그곳에서는 벌써부터 흉흉한 기운 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것에 대해 문외한인 하성이 보아도 지금 당장 이라도 ‘게이트’가 열릴 것처럼 위 험천만한 상태.

‘이 기운은 혼란이 아닌가?’

바람의 숲에 설치되었던 만추의 기 둥에서는 사충계의 기운이 넘실거렸 다. 하지만 저 기둥에서는 그것과는 또 다른 기운이 흘러나왔다.

“차갑고 달콤하군. 나조차도 현혹 될 정도로.”

어쩌면 저 정도의 기운은 유니콘인 하성이 견뎌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섣불리 그것에 접근하 지 않았다.

강한 자가 강한 이유는 약점이 없 기 때문이 아니라 약점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성은 그런 면에서 강한 축에 속했다. 그는 스 스로 약점 속으로 걸어 들어갈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천영이 준 스크롤을 써야겠 어.”

하성은 품에서 기다란 두루마리를 하나 꺼냈다. 그것에다가 마나를 불 어넣자 허공에 마법진이 두둥실 떠 올랐다. 그것은 일종의 마킹이었다. 이 좌표를 기록하는 마킹. 하지만

단순한 마킹에 무려 서천영이 만든 스크롤이 필요할 리는 없다.

이것은 무려 즉시 텔레포트를 해서 이동해올 수 있는 상당히 고등급의 마킹이 었다.

“후우…… 얼굴도 볼 겸 만나러 가 볼까.”

그는 임무 도중 자신의 능력 외의 상황이 닥쳤음에도 전혀 절망스러운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상황 덕분에 누군가를 만나러 갈 수 있다 는 사실이 너무나도 즐거운지 입이 찢어질 정도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성이 사라진 뒤,얼마 지나지 않 아 두 명의 마법사가 그 자리에 모 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모두 두 눈 을 꿰맨 상태였다. 만추의 기둥을 직접 연 시전자는 그것을 직접 보게 될 경우 그 차원계로 강제로 끌려가 버리기 때문에 이렇게 두 눈을 봉할 수밖에 없었던 것.

마법사 중 한 명이 보이지도 않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하늘을 올려 다보았다.

“끌끌,다크룰 디멘션 (Dark Rule

Dimension)과 빙제현 차원(장:합몇 次元)이 하늘의 도움을 받아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다크룰 차원은 그들이 몇 십 년이 라는 긴 세월 동안 준비했기에 이번 시기에 딱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빙제현의 차원은 그저 부속으로 열 리는 차원이었을 뿐인데 이렇게 강 력한 공명을 할 줄은 그들조차 생각 하지 못했다.

“예,아주 천운이군요.”

단어 의미 그대로 천운(天運)이 그 들을 돕고 있었다.

“……사실 저희 교단의 사정이 생 각보다 좋지 못합니다.”

교황 리우펠리우스가 입을 열자 천 영은 차를 마시며 조용히 경청했다. 적당히 구워삶아서 용의 큐브 가지 고 냅다 튀어버릴 생각이었는데 하 도 서럽게 울어대니 신경 쓰이지 않 을 리가 없었다.

“교단의 사정이 좋지 못하다니요?”

천영이 흰색 소매를 꼼지락대며 묻 자 리우펠리우스가 어두운 표정으로 답했다.

“저희 교단을 제외한 4개의 교단은 모두 각각의 신을 믿습니다.”

세상을 365일 간 잉태하여 낳았다 는 창조신 하에얀을 모시는 하에얀 교.

빛의 신,루몬을 포함하여 12명의 신을 동시에 모시는 소일레스 교.

총 109명에 달하는 신들이 존재했 었다는 신화를 승상하는 기레알-희 릴 교.

절망을 모두 걷어내기 위해,직접 태양이 되어버린 신 썬 제스트를 모 시는 썬 제스트 교.

그 신들이 실재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누구도 직접 신을 눈으 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가슴 속에 그들은 실재한다. 신은 언제나 그들과 함께 하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존재였고,언제나 완벽하며,세상에 구원을 가져다 줄 존재라고 믿고 있 었다.

각각 다른 신을 모시지만 그들에게 도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으니.

“……숭배의 대상이 모두 ‘신’이군 요.”

“그렇습니다……

그들은 신을 모신다. 또한 과거 신

이 존재했었다는 증거와 함께 ‘성 물’이 있다. 그것은 성배의 형태로 도,창의 형태로도,검의 형태로도 남아 있었다. 그것이 바로 신이 실 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물이 되기도 했다.

그럼 드래곤은 어떤가.

그들 또한 과거에는 분명 실존했 다. 하지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다.

마지막 드래곤이 자취를 감춘 지 어언 천 년. 더 이상 드래곤은 그리 픈 대륙에 남아있지 않았고 마지막 성물이라 할 수 있는 용의 성물 또 한 그 힘을 잃은 채 조용히 잠들어

있을 뿐이다.

교황들의 피땀 나는 노력 덕분에 교단이 휘청거리는 것은 어찌저찌 막을 수 있었고 여전히 5대 교단에 속할 수는 있었지만 문제는 다른 교 단의 시선이었다.

타 교단은 이 드래곤을 숭상하는 교단을 고깝게 보지 않았다.

“이 장소가 성역이라는 사실을 잘 아실 겁니다.”

“그렇죠……

언젠가 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마치 하늘이 열린 것처럼 푸르른 빛 과 함께 한 마리의 용과 용사가 강

림하여 세상을 구원해낸 이야기. 그 것은 너무나도 오래 된 과거의 전설 일 뿐이라 그저 이야기로 치부했지 만 아직까지도 이 지방에서는 그것 을 믿고 있었고 또한 ‘성역’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다른 교단에서도 또한 이 곳은 성역입니다.”

“……네?”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하늘이 열 리면서 강림한 것은 분명 드래곤이 다. 그럼 드래곤을 모시는 칼라할 교단의 성역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들이 기록을 위조했습니다. 저

희 교단에 남겨진 마지막 용의 성물 이 힘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 자 활동을 시작하더군요. 예로부터 이곳은 수많은 교회가 탐내던 신성 스러운 장소. 그런 곳을 피로 물들 일 수는 없으니 저희 교단을 서서히 끌어내리려 하고 있습니다.”

4개의 교단이 각각 주장한다.

지금에 와서는 입에서 입으로 이야 기로 전해질 뿐인 까마득한 과거에 있었던 그 전설 속에 등장하는 것이 ‘드래곤’이 아닌 자신들의 신이었다 고.

구색은 어디든 끼워 맞추면 그만이 다.

하늘이 열리며 창조신이 강림했다.

하늘이 열리며 12명의 신이 구름 을 타고 내려왔다.

하늘이 열리며 109명의 신이 머무 는 고성 기레알이 등장했다.

하늘이 열리며 최초로 태양이 나타 났다.

“하지만 저희의 기록은 틀림없습니 다. 분명 그 당시에 등장했던 것은 드래곤과 영웅이었고 아직까지도 문 헌에 남아있습니다만……

교황이 분노에 파르르 떨며 탁자를 내리쳤다.

“……그 자들이 저희 교단을 몰아 내고 이 성역을 차지하기 위해 그 더럽고 치졸한 혀를 내밀고 있습니 다.”

어찌나 분노했던 것인지 이를 아득 바득 갈던 교황은 차를 홀짝였다. 그러면서 가슴을 진정시키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그들은 저희들의 존엄성 그 자체 를 짓밟고 있습니다. 존재의의를 부 정하고 있습니다. 드래곤이 아예 세 상에서 사라지고 성물조차 힘을 잃

은 지금 정말로 교단이 존재해야만 하느냐고 묻는 그 더러운 논리에 도 저히 반박할 수 없었던 제 자신이 너무나도 화가 났습니다.”

당연하다. 그들의 말에 반박할 수 있을 리가 없다. 4개의 교단에는 여 전히 신이 살아 숨 쉰다는 증거인 ‘성물’이 온전하게 남아있는데 드래 곤은 천 년 전을 마지막으로 세상에 서 모습을 감추고 심지어는 그 성물 마저 힘을 잃은 채 방치되어 있었 다.

심지어는 교황의 신성력 또한 점차 약해지고 최근 몇 년 동안은 교단의 상징이 되는 ‘성녀’조차 등장하지

않게 되었다. 겉보기에 칼라할 교단 이 여전히 건재해보일지 몰라도 실 은 사방에서 지속적인 압력을 받고 있었다.

그 과정이 벌써 수십 년째. 5개의 교단이 모두 동맹을 맺고 있는 와중 칼라할 교단은 발언권을 비롯하여 힘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었다.

특히나 4개의 교단이 칼라할 교단 을 아예 대놓고 왕따시키기 시작한 것은,작 년 대회의 때 더욱 커졌 다.

“‘넥스트’에서 건너온 무신론자 사 제들을 제가 지지했기 때문이죠.”

넥스트에서 넘어온 사제들은 대부 분이 신을 믿지 않는 사제들이다. 그들은 신을 믿어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선행을 함으로써 힘을 얻는다. 하지만 4개의 교단은 그런 넥스터 사제들을 모두 근본도 없는 것들이라며 이단으로 몰아가기 시작 했다는 것. 덕분에 넥스터 사제들이 지금 굉장히 고생하고 있다는 모양 이다.

“사실 얼마 전부터 ‘안시르엘’이라 는 대표를 내세워서 무신론자 사제 들 역시 그룹을 형성하여 활동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들만의 힘

으로는 신전을 세울 수도 없고,자 체 무력을 기를 수도 없습니다. 그 래서 제가 제안했습니다. 그들이 원 한다면, 각자의 교단에 그들을 받아 주는 것이 어떠냐고.”

칼라할 교단의 교황,리우펠리우스 의 말에 수많은 넥스터 사제들이 환 호했다. 그들도 이런 핍박받고 배척 받는 생활에 질렸을 것이다. 차라리 교단을 선택해 그곳에 소속되어 사 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것을 넥스터들 또한 알고 있다.

“당연하지만 저를 제외한 교단의 과반수로 인해 그 안건은 묵살되었 습니다.”

천영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몇 없는 넥스터 사제들 을 데리고 자신들 또한 그리픈 대륙 의 당당한 사제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안시르엘을 떠올렸다. 그와 함께하는 성기사 셀 라임과 이혜림 또한 안시르엘을 도 우며 고생하고 있겠지.

그나마 안시르엘이 만든 집단에게 ‘이단 심판관’이 출동하지 않은 이 유는 그녀의 신성력이 너무나도 강 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기형 적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넥스터 들 중에서는 최고로 또한 그리픈의

4대 교단에 소속된 성녀들조차도 아 우를 정도로 엄청난 신성력을 안시 르엘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은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제’임에도 불구 하고 정식 사제 신분증을 1년이 지 난 지금까지 여전히 얻지 못하고 있 다고 한다. 즉 그리픈 대륙에서 사 제로서 받는 대우를 전혀 받지 못한 다는 것.

‘4개의 교단에서 전부 넥스터 사제 들을 반대한다니. 상당히 골치 아픈 데…….,

교황은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이다 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괜찮습니다.”

분노를 모두 떨쳐낸 둣,교황은 울 음기 가득 찬 눈으로 천영의 양손을 살며시 쥐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간 절함이 가득 묻어나왔다.

“이렇게 보이는 중거가 저희의 앞 에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지금까지의 설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교황이 그렇게 말했다. 만약 드래곤이 실재한다는 것이 증 명되기만 하면 그들의 발언권과 영 향력은 지금보다 몇 배는 상승할 것 이다. 5개의 교단 중 유일하게 자신 들이 숭배하는 존재가 이 대륙에 모

습을 드러낸 교단이나 마찬가지이니 까.

천영은 식은땀을 뻘뻘 홀렸다.

‘지금 이 할아버지…… 뭔가 단단 히 오해하고 있는 모양인데.’

오자마자 부담스러울 정도로 극진 한 대우를 해주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교황은 바라는 것이다. 자신들 의 신이 되어, 이 세상에 그 위용을 드러내달라고. 자신들이 소속되어있 는 교단의 존재의의를 온 세상에 퍼 뜨려 달라고.

“후우……

천영은 교황이 직접 선물해준 새하

얀 옷자락을 만지작거렸다. 이것은, 교황이 ‘성자’ 혹은 ‘성녀’급의 존재 들만이 입을 수 있는 신도복이라고 말했다. 말하기를 ‘마른하늘에 날벼 락을 7회나 맞은 밤나무의 수액에 백 년 묵은 누에가 일 년에 한 번 뽑는 실에다가 엮어서 신성제를 치 른 금가루를 묻혀……라며 뭔가 장황하게 설명하긴 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옷이 너무 촌스러워……

그렇다. 21세기의 진보된 시선으로 냉정하게 바라봤을 때,패션이 심각 하게 구렸다. 천영 표 점수를 매기 자면 10점 만점에 2점. 그나마 2점

을 준 이유는 거지같은 색상을 고르 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동양의 무복처럼 보이기도 하 는 이 옷은 양팔의 소맷자락이 손목 언저리에서 펄럭일 정도로 통이 넓 었고 아래쪽은 뭔 앞치마를 입은 것 처럼 거추장스러운 것이 나풀거렸 다. 그 앞치마가 한 개면 다행이다. 제대로 된 하의는 무슨 핫팬츠 같은 것 하나 입혀놓은 주제에 앞으로 하 나 뒤로 하나가 간신히 사타구니를 가릴 정도의 면적으로 걸을 때마다 펄럭거리니 거슬려서 죽을 지경이었 다.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이 짜중나

는 신도복을 만지작대던 천영이 깊 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일단 교황이 이렇게까지 부탁하는 데 거절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예 대놓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생각 은 추호도 없었다.

‘내가 미쳤다고……

교황은 그런 천영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 했다.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예언이 하나 있습니다.”

“예언이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기에 천영이 되 묻자 교황이 끄덕였다.

“오래 된 이야기죠. 골드 드래곤 레가로스가 마지막 여행을 하면서 남긴 예언입니다.”

‘천 년 뒤 하늘의 세 수호자가 모 였을 때 하늘이 열리며 용이 강림할 것이다.’

레가로스가 말한 하늘의 세 수호자 는 보름달이다. 그냥 달이 아닌 보 름달이 모두 모인다는 이야기는 다 름 아닌.

“……설마 ‘삼대월식(三大月齡)’을 말하는 겁니까?”

삼대월식이란 하늘에 떠 있는 세 개의 달이 모두 보름달이 되었을 때 그것들이 모두 겹쳐지는 현상을 말 한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리 깊은 밤이라 할지라도 온 세상이 마치 대낮인 것 처럼 찬란하게 빛난다고 한다. 게다 가 그 현상은 몇 백 년에 한 번씩 드물게 일어나는 현상인데다가 그러 한 현상 자체에 신성스러운 의미가 부여되어있다고 하였다.

“그렇습니다. 사실 저 또한 그 예 언은 전혀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럴 만도 하다. 천 년 전에 자취

를 이미 감춰버린 드래곤이 난데없 이 삼대월식에 하늘을 열며 나타날 리가 없지 않은가?

“얼마 뒤,신성대회의가 있을 예정 입니다. 절대 4대 교단은 이런 ‘대 예언’같은 중요한 건을 놓치려고 하 지 않을 것입니다. 무조건 예언을 들먹이겠지요. 과연 칼라할 교단의 정체성을 증명할 ‘드래곤’이 나타날 것인지 아닌지.”

칼라할 교단을 제외한 4대 교단은 말할 것이다. 이번 삼대월식 때,예 언대로 드래곤이 나타나지 않으면 교단 자체의 정체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며. 벌써 지금부터 그들

은 밑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 람들이 예언에 관심을 갖도록 사방 으로 소문을 퍼뜨리는 중이고,만약 드래곤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칼라 할 교단이 큰 타격을 입도록.

교황이 천영을 보자마자 서럽게도 울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알았던 것이다. 삼대월식 때 이 칼라할 교단이 크게 위험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교황은 이제야 마음을 놓 은 것이다. 자신들의 신격 존재인 서천영이 예언의 날짜에 딱 맞춰 이 렇게 나타났기 때문에!

천영이 얼떨떨한 얼굴로 손을 들었 다. 땀을 뻘뻘 홀리며 물었다.

“그,그래서 저더러 뭘 하라구요?”

그 질문에 교황이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말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예언을 이 행해주시 겠습니까?”

그 말뜻은 즉 천영보고 예언처럼 하늘을 열어서 등장해달라는 소리. 교황은 천영이 아주 당연하게 "하늘" 을 열어서 등장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당연히도 천영은 하늘을 열 줄 모른다. 그런 원맨쇼는 정말 해

주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나더러 대체 뭘 어쩌라고

왠지 상황이 더 좋지 않게 흘러가 는 것만 같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