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06화
26장 골을 넣을 수 없다면,골대를 뽑아라
짙은 어둠이 드리운 절벽.
파사사삭!!
“헉,헉헉.”
한 남자가 발을 놀리며 잽싸게 절
벽 위를 가로질렀다. 그의 몸은 새 빨간 액체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이 것은 그의 피가 아니었다. 불과 10 분 전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고 있던 가장 절친한 동료의 피였다. 당연하 지만 이 정도나 피를 쏟으면 누구라 도 죽는다.
그의 동료는 아니,그의 동료들이 었던 ‘푸른 번개’파티의 스무 명 가 량은 10분도 되지 않아 단 하나의 개체에게 모두 전멸을 당하고 말았 다.
“말도 안 돼,말도, 안 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십 년이 넘도록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베테랑 모험가들이었다. 웬만한 대 형 몬스터가 나와도 겁먹지 않고 가 뿐히 사냥해내는 푸른 번개 파티원 들이,고작 키가 2〜3m쯤 되는 중 소형 몬스터 한 마리에게 모조리 사 냥 당하다니.
‘젠장,그때 그 남자의 말이 맞았 어.’
어떤 모험가가 바닥을 뒹굴며 말했 다. 근처에 ‘흑기사’가 있다고. 하지 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악 귀가 울부짖는 절벽에 있는 모험가 들은 모두 그 이름만 대면 어딜 가 도 알아주는 뛰어난 프로들이었다. 그런 프로 모험가들이 고작 하나의
몬스터에게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다 는 것은 도저히 믿기가 힘들었다.
‘도망쳐서,알려야 해.’
그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금 자 신의 처지가 당시 목격했던 모험가 와 똑같다는 것을. 이대로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알려도 아무도 믿지 않 을 것이라는 사실을.
“..억!”
남자는 우뚝 몸을 멈춰 세웠다. 불 쾌한 감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 다. 눈을 부릅뜨고, 눈앞에 서있는 검은색의 누군가를 쳐다본다. 온몸 이 단단한 검은색의 갑옷처럼 생긴
무언가로 이루어진 그것은 말없이 붉은 눈동자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언제? 어떻게? ……이렇게 빨리?’
마나까지 폭발시켜가며 전속력으로 도주했을 터인데 저것은 숨조차 고 르지 않고 어느 사이엔가 자신의 앞 까지 따라와 있었다. 남자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반대 방향으로 도주하 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뭔가가 이상 했다.
뭔가가.
“어…… 라……?”
몸을 돌렸을 터인데 상체만 돌아가 고 하체는 돌아가지 않았다. 남자의
시야가 뒤집힌다.
쿵!
바닥에 무너지고 나서야 남자는 이 상한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몸은 허리부터 해서 이미 반 토막이 난 지 오래였다. 그조차도 깨닫지 못하고 몸을 돌리려고 했으 니 그대로 무너져 내리는 것은 당연 했다.
‘이럴…… 수 가…….,
검은색의 갑옷 덩어리가 사라지는 것을 끝으로 남자의 의식은 끊어졌 다.
갑작스러웠다. 호수의 표면 위에서 춤을 추던 요정이 사라진 것은. 총 알이 날아와도 그 옆면에 새겨진 상 표조차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동체시력을 가진 백화연이었다. 하 지만 그런 그녀도 넋을 놓고 있을 때면 아주 단순한 움직임이라도 놓 치게 된다.
그녀는 다급히 호숫가로 달려갔다. 화려한 불꽃과 고리를 만들며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휘날리던 물길 역시도 사라졌다. 사라지고 나서야 아쉬운 마음이 파도처럼 몰아쳤다.
조금은 더 보고 싶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호숫가에 멍하니 서있는데 찰랑 소리가 나며 바로 근 처에 있는 물가에서 누군가가 기어 나왔다. 검은색 머리칼에 옷을 하나 도 입지 않은 방금 전의 그 요정이 었다.
‘……요정이 아닌 건가?’
그는 엉금엉금 호숫가로 기어 나오 더니 콜록대며 기침을 했다. 그러다 가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카락의 물
기를 쥐어짰다. 그 순간이었다. 백화 연과 천영의 눈이 마주친 것은.
고작 3초뿐이었지만. 백화연은 그 의 털끝 하나하나까지 모조리 눈에 새길 수 있었다.
‘없어……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천영이 당 황하여 전투태세를 취했다. 손끝에 서 이글거리는 마법진이 번쩍이고 무형의 기운으로 인해 잔뜩 젖은 머 리카락이 살짝 공중으로 뜬다.
하지만,
“……엣취!”
안 그래도 없던 마나를 쥐어짜낸 건데 그마저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니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천영이 당황하여 마법진을 재구성하려고 했 는데 산들바람이 코끝에 흔들거리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었다. 꽤나 멀리 떨어져있던 정체불명의 여인이 인지하지도 못할 정도로 기척 없이 접근해 있었다.
누구냐고 물으며 뒷걸음질을 치기 도 전에 백화연은 천영의 몸에 겉옷 을 둘렀다. 꽁꽁 싸맨 다음 품에서 수건을 꺼내 그의 머리에 둘렀다. 그러면서 말없이 물기를 털어낸다.
난데없이 낯선 여자에게 머리를 말 려지는 상황에 이리저리 혼들리는 머리에 힘을 줄 생각도 못한 채 가 만히 그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어느 정도 머리카락이 마르자 천영 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번뜩였다.
“앗,내 옷……
그제야 반대쪽에 벗어뒀던 장비가 생각난 천영은 파트라슈를 불렀다. 그러자 머리카락 사이에 숨어있던 금빛의 정령이 튀어나왔다. 뭐라고 속삭이자 파트라슈는 귀찮다는 둣 하늘 높이 사라졌다.
천영은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백화연을 올려다보았다. 키가 170 중반대는 가뿐히 되어 보이는 늘씬 한 체형의 미인이었다.
말없이 천영을 노려보던 백화연은 갑작스레 손을 뻗어 그의 겨드랑이 에 양팔을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번 쩍 들어서 자신과 시야를 맞춘다.
“으응?”
양팔에 대롱대롱 매달린 천영이 멀 뚱멀뚱 그녀를 쳐다보자 시리도록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던 백화연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그러더니 그대 로 그를 품에 폭 끌어안은 채 어디
론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으으응?”
상황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호숫가 의 구석으로 이동한 백화연은 천영 을 바위 위에 앉혀놓았다. 팔의 소 매가 손보다도 훨씬 길었기 때문에 그것을 주섬주섬 정리하던 천영은 나뭇가지 등을 끌어 모으며 무언가 를 준비하고 있는 백화연을 뚫어져 라 쳐다보았다.
난데없이 나타나 뜬금없이 천영에 게 옷도 입혀주고 머리를 말리더니 이번에는 또 뭘 하려는 걸까.
‘그러고 보면 저 인상착의……
우유처럼 새하얀 머리칼에 차가운 인상 그리고 허리춤에 착용되어있는 검 한 자루까지. 어디선가 들어본 듯 했다. 혼자서 행동하는 백발의 여검사는 흔하지 않으니까.
뭔가를 하던 백화연은 다시 천영에 게 돌아와 그의 겨드랑이에 손을 집 어넣어 어린애를 다루는 것처럼 들 어 올리더니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뭐지,이 상황……
천영은 자신의 등 뒤에 앉은 백화 연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그녀가 머리를 고정시켜버려서 그럴 수 없었다. 가만히 있는데 그녀가
천영의 머리카락을 빗어주기 시작했 다. 이 행위가 꽤나 익숙한 것처럼. 옆에서 보면 마치 언니가 여동생의 머리를 빗어주는 것만 같은 기묘한 시추에이션에 천영은 뭐라 반박도 하지 못한 채 그녀가 하는 대로 몸 을 맡겼다.
‘공격도 안 하고,느껴지는 기운으 로 봐서는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 고……
얌전히 머리카락을 맡기고 있는데 방금 전 옆에 세워놓은 백화연의 검 한 자루가 눈에 띈다. 저런 한쪽 날 만 쓰는 도(刀)는 흔하지 않다.
‘분명 이름이……
“백화연.” “헉.”
마치 독심술이라도 쓴 것처럼,그 녀가 난데없이 입을 열었다. 천영의 머리카락이 조금 정리되자 백화연은 그의 몸이 자신을 향하도록 돌렸다. 백화연과 눈을 마주하게 된 천영이 가만히 그녀를 응시하자 뭐가 좋은 지 생긋 웃는다. 갑자기 검지와 엄 지를 들어 천영의 볼을 잡아 살짝 잡아당겼다.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운 피부가 그녀의 차가운 가슴을 사르 르 녹아내리게 만들었다.
‘역시 요정은 아닌 것 같네.’
하지만 정말 요정이라고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귀여운 외모였다. 한참 이나 천영을 품 안에 데리고 가지고 놀던 백화연은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에 힘이 없기도 하고 드래곤 특 유의 감각으로 확인했을 때 그녀의 몸에서 ‘선(善)’의 기운이 엄청나게 뿜어져 나와서 가만히 몸을 맡기고 있던 천영은 눈을 게슴츠레 떴다.
‘뭐야 저 여자……
어느덧 백화연은 바닥에 마른 나뭇 가지를 잔뜩 모아둔 상태였다. 그녀 가 불을 피우려는 둣 막대 하나를
들고 비비적거리고 있자 천영은 고 개를 가웃했다.
‘불을 피우는 아티팩트도 없나?’
천영은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 가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마법으 로 불꽃을 피울 생각이었다.
“잠깐만 기다려봐.”
푸싁,푸쉬식…….
하지만 마나를 전부 뽑아낸 상태였 기 때문인지 불꽃조차 나오지 않았 다. 방금 전 도깨비 불을 내쫓으려
고 하다가 너무 무리를 한 모양이었 다.
백화연은 그런 천영을 뚫어져라 쳐 다보더니 다시 막대를 마구 비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불이 붙었 다.
‘쪽팔리 게……
나름 드래곤인데 고작 불꽃 하나 못 피우는 꼬락서니라니. 하지만 천 영은 일부러 내색하지 않고 멍하니 불꽃을 쳐다보았다.
“이름.”
“응?”
“네,이름 뭐야?”
“서천영.”
그 이름을 곱씹던 백화연은 짧게 말했다.
“네 동료들은?”
“없는데.”
천영의 말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백화연이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 다. 그러더니 천영의 몸 여기저기에 나있는 상처를 살펴본다. 아까 전 호숫가에서 그가 춤추고(?)있을 땐 몰랐지만 여태까지 숲에서 살아남았 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일 아침에 돌아가.”
그러면서 뒤쪽을 가리킨다. 그곳은 백화연이 지나쳐온 장소. 가까운 곳 에 다른 모험가들 역시 이 근처에서 머물고 있다. 이 근처에서 꽤나 유 명한 모험가들이었다. ‘푸른 번개’ 모험가 파티. 신망이 두터운 모험가 그룹이었던 그 사람들이라면 길 잃 은 미아 한 명쯤은 받아줄 수 있으 리라.
하지만 천영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은데.”
방금 전에는 솔직히 조금 당황했지 만 파트라슈의 힘도 남아있었고 비 장의 스킬 또한 남겨둔 상태였다.
게다가 장비를 입은 상태라면 쉽사 리 당할 일도 없을 터였다. 이렇게 오랫동안 싸워본 적은 처음이라 마 나를 과도하게 낭비한 경향이 없지 는 않았지만 이번 일을 밑거름으로 삼아 앞으로는 절대 이럴 일이 없을 것이다.
“여긴 위험해.”
“나 엄청 강해. 이런 사람이야.”
내일 아침이면 몸도 말짱해질 테니 문제는 없다. 천영은 자신의 팔목에 착용되어있는 금색 별 마탑의 시계 를 보여주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 것만 보면 깜짝 놀라 천영을 다르게 본다. 하지만 백화연은 그것을 멀뚱
멀뚱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몰라?”
끄덕끄덕.
“금색 별 마탑이야. 몰라?” 끄덕.
설마 금색 별 마탑을 모르는 사람 이 있을 줄이야.
‘백화연이라고 했던가…… 너무 사 회에 적응도 안 하고 숨어 산 모양 인데.’
하지만 안전이라는 치마폭에 휘둘 려 목숨을 건 전투의 경험도 적고
성장도 제대로 하지 못한 천영을 포 함한 다른 넥스터들에 비하면 백화 연은 상당히 강했다. 사회에 적응하 는 것을 포기한 대신 그녀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에휴,무슨 상관이야. 그냥 내일 적당히 헤어지고 따로 행동하면 되 겠…… 아니지. 잠깐.’
천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백화연 을 올려다보았다.
“화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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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
“이 근처에 있는 던전,혹시 알 아?”
그러자 이 질문의 의도를 고민하던 백화연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천영은 그렇게 말한 뒤,파트라슈 가 자신의 장비를 챙겨오자 그것을 잽싸게 착용한 다음 인벤토리에서 침낭을 꺼냈다.
“잘 자.”
“..‘?,,
백화연은 그런 천영을 빤히 바라보 다가 자신 역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돌아가.”
백화연의 말에 천영은 대답하지 않 았다. 벌써 해가 중천이다. 지금 출 발하지 않으면 모험가들의 그룹을 놓칠 터였다. 하지만 서천영은 그들 에게 돌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백화연을 졸졸 따라다녔다.
이대로 떼어놓으면 돌아가겠지 라 는 안일한 생각으로 백화연은 조금 스퍼트를 내서 10분 간 빠르게 질 주하여 도망까지 쳤지만 천영은 그 뒤를 헉헉대며 쫓아왔다. 솔직히 저
런 어린 꼬마가 자신을 쫓아왔다는 점은 놀라웠지만 그보다도 굳이 자 신을 쫓아왔다는 이유가 궁금해졌 다.
“왜 따라와?”
“던전.”
그녀는 말없이 몸을 돌려서 앞으로 나아갔다. 천영의 말대로 백화연은 던전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 지 천영을 데려갈 생각은 추호도 없 었다. 그리고 지금 돌아가려면 베이 스 캠프까지 천영을 바래다줘야하는 데 그러면 거의 닷새는 걸린다.
조용히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백화
연은 결국 천영이 따라오는 것을 신 경 쓰지 않고 앞으로 쭉쭉 전진했 다. 대신 그녀의 사냥은 더욱 과격 해졌다. 몬스터가 나오면 위협을 가 하기도 전에 베어버리고 뒤를 조금 더 자주 살펴보게 되었다.
천영은 백화연이 건네준 겉옷을 양 팔로 꼭 껴안은 채 백화연을 졸졸 쫓아다녔다. 이 옷을 돌려주고는 싶 었는데 옷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만 으로도 몬스터가 싫어하는 기운을 내뿜는다며 그냥 가지고 있으라고 백화연이 말했다.
‘내 옷이 더 좋은데……
적당히 안전한 자리를 잡고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백화연은 자리를 잡고 끼니를 때우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인벤토리에서 굵은 빵 덩어리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근처에 앉은 천영이 그것을 보더니 눈을 동 그랗게 떴다.
“그거 먹게?”
그러자 천영이 후다닥 달려와서 그 빵을 낚아챘다. 백화연은 가만히 천 영을 쳐다보았다. 그는 뭐가 불만인 지 그 빵을 노려보았다. 그냥 빵이 먹고 싶은 가 보다가 백화연은 빵을 하나 더 꺼냈다. 하지만 천영은 그 빵 역시 떳어갔다.
“……먹을 거 그게 끝인데.”
자신의 마지막 식량마저 천영에게 빼앗겼지만 그녀는 차마 돌려달란 말을 하지 못했다. 그냥 천영에게는 그러기가 싫어서 천영이 빵 먹는 거 나 구경하려고 했다.
그런데 천영은 그것을 바위 위에 올려놓고선 검지와 중지를 모아 코 앞에 손을 가져다 댄다. 그러면서 주문을 짧게 중얼거리더니 바닥을 푹 찍었다.
차랑!
백화연은 순식간에 주변에 결계가 쳐지는 것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슬쩍 결계의 근처에 손가락을 가져 다 댄다. 물리적인 방어막도 아니고 마법적인 방어막도 아니다.
“이건……
“냄새를 막아줘.”
그렇게 말하더니 천영은 주섬주섬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간 이 요리 도구 세트였다. 제일 먼저 천영은 새하얗고 큼지막한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냉동되어 있는 여러 요리 재료가 들어있었다. 이른바 간이 냉장고였다.
이것저것 꺼내들더니 뚝딱뚝딱 요 리를 시작하는 장면을 백화연은 얌
전히 지켜보았다. 한 30분쯤 기다렸 을까,김치찌개와 계란프라이,스램 등을 구운 천영은 밥그릇 하나를 백 화연에게 건네줬다. 그러더니 맞은 편으로 가서 털썩 주저앉은 천영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천영은 말없이 밥을 으적으적 먹다 가 아직까지도 가만히 앉아있는 백 화연에게 말했다.
“안 먹어?”
그제야 백화연도 찌개의 앞에 얌전 히 앉았다. 조심스레 김치찌개에 숟 가락을 가져다 대어 국물을 조금 뜬 다음 입에 가져간다.
직후 백화연은 전신의 모든 신경 세포가 깨어난 것처럼 전율이 일었 다.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린다.
“왜,왜 그래?”
도리도리.
백화연은 고개를 저었지만 천영은 ‘혹시 매운 걸 못 먹나?"하는 걱정 을 했다. 하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 었다. 백화연은 정말 그저 순수하게 요리가 너무 그리워서 그랬을 뿐이 다.
‘맛있어…….,
맵고,짜고,달다.
지구에 있을 땐 정말 흔하게 느껴 보았던 맛.
하지만 이곳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맛.
그리픈에 도착한지 1년.
사람다운 요리는,고향의 냄새가 나는 요리는 정말 오랜만에 먹어보 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