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93화
캐이시의 상태는 생각보다도 더욱 안 좋았다. 상체를 슬쩍 들춰보자 이미 전신에 ‘균열’이 퍼져 있었다. 그리고 체력은 바닥을 기고 있는지 제대로 서있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여태껏 버티고 있는 게 용할 정도였 다.
다행이도 캐이시가 멍청한 아이는 아니었다. 어디 비련의 여주인공마 냥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끙끙 앓
고 있었으면 정말 큰일이었겠지만 그녀는 학교 내에 있는 친한 교수와 의사에게 자신의 상태를 말해둔 상 태라고 한다.
“메이지 서천영은 이러한 병을 본 적이 있소?”
의사가 안경을 슬쩍 올리며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천영은 대답하지 않 았다. 하지만 분명 본적은 있었다. 로드웰 마법전 당시 ‘예런’이 용언 을 잘못 사용하다가 이런 꼴이 되어 버렸지 않던가. 하지만 그때의 예런 은 용언에 노출된 지 얼마 되지 않 은 상태였다. 인간의 분수에 맞지 않는 마법을 사용해서 몸에 균열이
생기긴 했지만 천영이 그것을 즉시 멈추고 기운을 흡수해준 덕분에 금 세 회복될 수 있었다.
하지만 캐이시는 예런 때보다도 상 태가 좋지 않았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조금씩 그리고 많이 용 의 기운이 누적되어 있었다.
“저희는 도저히 손을 쓸 방법이 없 어,이렇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 소.”
어떤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캐이시 는 자신의 병을 불치병이라고 확정 한 모양이었고 몇몇 교수와 의사들 은 안타깝지만 그녀가 얼마 가지 않 아서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
다. 그런 캐이시는 모든 것을 포기 했던 것만 같았던 그녀는 마지막 희 망의 끈이라도 붙잡겠다는 것처럼 힘겹게 천영을 찾아갔다.
“방법이 있겠습니까?”
그녀가 어째서 천영을 찾아갔는가.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 그저 병이 치료만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 다.
천영은 캐이시의 이마에 손을 짚었 다. 기운을 흡수하려고 했지만 이미 그것들은 캐이시의 몸에 진득하게 달라붙어서 평범한 방법으로는 불가 능했다. 완전한 드래곤이 된 상태라 면 손쉽게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천영은 캐이시의 몸속에 퍼 져있는 용의 기운들과 술래잡기를 해야만 했다.
‘이거 골 때리네.’
예런 때는 그야말로 스펀지처럼 천 영이 손을 댄 즉시 흡수되듯 쭉쭉 빨려 들어왔는데 캐이시의 것은 아 예 천영을 피해 도망치지 방법이 없 었다. 캐이시가 힘겹게 눈을 뜬다.
그녀가 억지로 움직이려 하자 천영 이 이마를 단단히 붙잡아 고정시켰 다.
“가만히 있어.”
그렇게 캐이시를 고정시킨 천영은 묵묵히 캐이시를 바라보았다. 금색 의 빛나는 눈동자로 마치 스캔을 하 둣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 한참이나 그렇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병실의 문이 열리며 백하란과 리엔이 들어왔다. 백하란의 손에는 붉은색의 큐브가 들려있었다.
"간신히 찾았습니다."
"어디에 있었는데?"
"북쪽 언덕 끄트머리에 있는 비밀 공간이었습니다."
리엔은 자신이 찾았다는 것을 자랑
하고 싶은 것인지 어깨를 으쪽했다. 천영은 슬프게도 자신보다 키가 큰 리엔의 머리에 손을 뻗어 쓰다듬어 준 다음 큐브를 받았다.
‘이게 있으니 임시방편으로 응급처 치는 되겠군.’
천영은 용의 큐브를 왼손에 들고 캐이시의 머리카락을 양옆으로 걷어 냈다. 음침하게 항상 온몸을 가리고 다녀서 잘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꽤 나 예쁘장하게 생겼다. 맥골라스 머 치팽은 캐이시의 얼굴을 보고 살짝 굳었다. 이마에도 역시 균열이 살짝 나있는 상태였다.
‘난생 처음 보는 병이다. 저런 것
이 이 세상에 실존한단 말인가?’
병보다는 오히려 마법에 의한 오염 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정도로 기묘 하고 복잡한 기운을 띄고 있었다.
체일룬 역시 자신이 가지고 온 마 법서적을 뒤적거리며 저것과 관련된 병을 찾으려고 했지만 그런 기록이 존재할 리가 없었다.
수많은 교수진들 역시 저 병의 정 체에 대해 찾기 위한 노력을 했지만 찾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의문이 생긴다.
캐이시가 아무리 다급한 마음에 천 영을 찾아갔다 하더라도 과연 그가
저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인가? 서천영이 천재 마법사라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마법사일 뿐 의사가 아 니다. 저주에 관해서는 능통할 수도 있겠다만 그래도 저런 정체불명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인가?
주변에 있는 의사와 마법사들이 의 문을 품고 있을 때 그녀의 얼굴을 보며 잠시 고민하던 천영은 캐이시 가 누워있는 침대 위에 한쪽 무릎을 걸치고 상체를 가까이 했다.
“음? ”
누군가가 의문을 표했다. 캐이시 역시 그림자가 드리우자 눈을 떴다.
“아……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금색의 아름 다운 보석이었다. 곧이어 그것이 눈 동자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서천영은 큼지막한 눈동자를 깜빡이 며 캐이시의 바로 위에서 그녀를 내 려다보았다.
사르륵,천영의 흑단 같은 머리카 락이 캐이시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 향기로운 냄새가 퍼지자 캐이시는 마치 엄마의 품속에 들어가서 냄새 를 맡는 것처럼 숨을 들이켰다. 하 지만 천영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슬쩍 걷어내 자신의 어깨 뒤로 넘겨 버렸다.
아쉽다는 마음도 잠시 천영의 얼굴 이 점차 가까워지자 캐이시는 무언 가를 예상해버렸다. 눈을 크게 뜨고 뭔가를 말하기 위해 입을 여는 순간 천영이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입술에서 느껴지는 부드러 움,촉촉함 그리고 말랑말랑하게. 이 세상 그 어떤 케이크보다도 달콤하 고 부드럽고 상큼한 무언가가 입에 닿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몸에 퍼 져있던 징글맞은 기운들이 빠져나가 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천영이 무언가를 삼켰다. 이윽고 고개를 들어 목을 젖히더니 혀로 자 신의 입술을 할았다. 몸속에는 용의 큐브에서 빠져나온 기운이 넘실거리 고 있었다. 억겁의 세월 동안 쌓이 고 쌓였을 드래곤들의 기운. 천영조 차 감당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것을 모두 붉은색의 큐브에 옮겨 담았다. 캐이시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훨씬 낫네.’
여자애의 입술을 마음대로 흠친 것 은 미안하지만 이것이 최선의 방법 이었다.
‘그래도 부족해.’
팔을 걷어보니 균열처럼 생긴 핏줄 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몇몇 교수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랐 다는 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저럴 수가.’
‘대체 어떻게 한 거지?’
‘부럽다…….,
뭔가 불순한 생각을 한 사람도 있 는 모양이다.
천영은 푸 하고 입술을 삐죽 내밀 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교수들에게 말했다.
“몇 가지 필요한 도구들이 있습니
다. 제 연구실로 돌아가기엔 시간이 촉박하니 혹시 여기서 준비해주실 수 있습니까? 구하기 어려운 것들도 조금 있는데……
“예,물론입니다.”
그는 종이에 필요한 것들을 적어서 교수에게 주었다. 그것을 받아든 교 수는 훔 하고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 덕였다.
“당장 이곳에 없는 것들도 있지만 마침 유명한 어떤 분 덕분에 이곳에 모인 마법 관계자들이 많으니 충분 할 것 같습니다.”
“시간은 어느 정도나 걸리죠?”
“여섯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그렇게 빨리요?”
꽤나 비싼 장비도 적혀있는데,그 걸 그렇게나 금방 구할 수 있단 말 인가. 천영이 고개를 갸웃하자 교수 는 어째선지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 개를 끄덕인다.
“예,물론입니다.”
본인은 잘 모르는 모양이지만 천영 이 미치는 영향은 이미 마법계에선
절대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 다. 언령이라는 새로운 개념에 대해 천영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모든 마 법사들과 마법사 지망생들은 생각했 다. 이것으로 인해 마법이라는 학문 이 또다시 위대한 한 발자국을 내딛 게 되는 것이라고.
여태껏 중요한 발견과 발명으로 인 해 마법이라는 학문은 수도 없이 발 전해왔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너무나도 발전한 나머지 정체되어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 한 와중에 현재의 마법보다도 앞서 가는 개념을 도입한다고 하니 이미 모든 마법계는 비상사태에 걸렸다.
“‘언령’이 보편화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그렇다면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 마탑에서 먼 저 모든 마법체계를 바꿔야한다!”
“저작권을 살 수는 없나? 한 달 아니면 일주일 하다못해 하루만이라 도 먼저 저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마탑이 다른 놈들보다 훨씬 앞서갈 텐데!”
“크윽,아직도 언령에 대해 완전히 풀지 않았다고? 젠장,마음 같아서 는 정말 몰래 데려가서 정보를 캐내 고 싶을 지경이야.”
‘빨리 준비하라고 그래! 모든 마법
장비와 아티팩트를 포함해 마법서까 지 전부! 이제부터 우리가 알고 있 던 마법 지식을 수정해야할 차례 야.”
그들은 아직 언령이라는 마법의 맛 보기밖에 보지 못했다. 천영은 그들 에게 아주 언령에 대해 아주 살짝만 알려준 상태였다. 그로 인해 마법사 들은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마 치 좋아하는 썸녀에게 자신의 마음 이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밀고 당기기라도 당하는 마냥. 하지만 그 밀당의 대상이 수만 명 아니,전 세 계에 퍼져있는 모든 마법사 관계자 라는 것을 생각하면 천영의 밀당 실
력은 알아줘야만 했다.
그러던 도중 루클렌 마법 학교에서 체류하고 있던 마법사들에게 몇몇 교수들이 찾아와 이야기를 돌렸다.
“메이지 천영이 현재 어떤 사정에 의해 마법 장비가 좀 필요하다고 합 니다만. 그게 좀 구하기 어려워서 말이죠.”
그 즉시 마법사들은 눈에서 레이저 라도 쏘아낼 것처럼 그 목록을 달라 고 말했다. 종이에 써져있는 마법 장비들은 정말 하나같이 비싼데다가 구하기도 어렵다.
보통의 마법사는 평생 꿈도 못 꿀
법한 그런 것들이 가득했으나 지금 에 와서 그들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 빨리 연락해! 당장 돌아가서 장비를 구해오라고 말이야!”
“예? 이거 지금 저희가 쓰고 있는 데요? 코랄식 회로변형 장치……
“그딴 게 지금 무슨 상관이야! 빨 리 가져와!”
“뭐? 없다고? 하나 사오라고! 만들 어서라고 가져와!”
“그,그게 지금 갑작스레 재고가 순식간에 빠져나가서……
“젠장,다른 놈들이 선수 친 건
“뭐? 우리가 쓰던 건 가져오지 말 고! 더 비싼 거 있잖아! 나중에 발 표용으로 쓰려고 했던거!”
“그,그건 아직 마탑주 님도 한 번 도 못써본 물건이지 않습니까.”
“됐으니까 가져오라고.”
그렇게 천영의 부탁은 파도를 타고 점점 더 스케일이 커져가고 있었다.
저녁,슬슬 해가 지기 시작할 무
렵. 천영은 한복 외투의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 복도를 걸어갔 다.
“하교 시간 아닌가? 사람들이 꽤 많은데.”
천영의 말대로 수많은 학생들과 교 수들,외부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 이 꽤 많이 복도를 분주하게 돌아다 녔다. 그리고 그들은 천영이 지나칠 때마다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거기 까지는 상관없었는데 몇몇 학생들이 그에게 접근하기도 했다.
“아,안녕하세요!”
“안녕.”
“서천영 교수님,저,저 악수 한 번만……
“어…… 그래.”
이렇듯 학생들은 천영에게 다가와 괜히 말을 걸거나,악수를 하는 등 눈을 반짝이며 접근했다. 심지어는 풋풋하고 귀여운 여학생 무리가 달 려들기도 했다.
“까아,어떡해!”
꽤나 귀여운 여학생들이었기에 귀 엽다고 말해주려고 하려는 순간 선 수를 빼앗겼다.
“완전 귀여워!”
여학생들에게 귀엽다는 말을 들어 버리자 뭔가 굉장히 자괴감이 들어 버린 천영은 그대로 입을 꾹 다물었 다. 하지만 그녀들은 그런 천영조차 도 좋다는 둣 방방 뛰더니 다른 사 람들이 접근하자 사라져버 렸다.
몇몇 외부인은 아예 마법사가 아니 기도 했다.
키가 180은 가뿐히 넘는데다가 온 몸이 근육질인 1〜20대의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들은 얼굴을 붉 게 물들인 채 마치 연모하던 짝사랑 을 만난 것만 같은 수줍은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천영은 저 표정을 잘 안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인기 최절정을 찍던 여자 아이돌이 군대에 위문 공 연을 왔을 때,동기들이 짓던 표정 과 똑같았다.
“마법사는 아닌 것 같은데……
“아,네. 저희는 나이트 지망생입니 다.”
“으음,분명 수업 시간에 있지 않 았나?”
“물론이죠!”
“알아듣기는 한 거야?”
“아뇨? 메이지 서천영의 얼굴 보려 고 수업 들은 건데요!”
이런저런 특이한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며 지나치다보니 거의 한 시간 이 소모되었다. 간신히 이사장이 알 려준 연구실에 도착한 천영은 고개 를 갸웃했다.
“여긴 왜 이렇게 문이 크지?”
-방이 크니까 그렇겠지.
“그니까, 그냥 병실에서 진행해도 되는데.”
막대사탕을 입 안에 굴리며 고민하
던 천영은 무슨 상관이 있겠냐며 문 에 다가갔다. 맥골라스는 어쩐지 흥 분된 얼굴이었다.
“장난 없겠는데요,이거.”
체일룬이 그렇게 중얼거린다. 천영 은 그게 무슨 의민지 알 수 없었다. 체일룬과 맥골라스는 일찍이 교수들 과 함께 어딘가를 열심히 돌아다니 면서 무언가를 구경하던 모양이지만 천영은 캐이시를 간호하느라 그럴 수가 없었다.
‘뭐,비싼 장비라도 챙겨온 건가?’
라는 생각을 하며 천영은 가볍게 문을 열었다. 끼이익 하고 내부가
드러난다.
“……뭐야 이게.”
그것이 천영의 첫 번째 감탄사였 다.
연구실은 엄청 거대한 공동과도 비 슷했다. 천장이 저 하늘 높이까지 솟아있었고 공간 또한 새하얗게 꽤 나 널따랬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 니었다. 이 공간에 여기저기 설비되 어있는 수많은 마법 장치를 보라. 이곳에는 수십,수백의 마법사들이 새하얀 가운을 입은 채 저들의 마법 장비를 설치하고 있었다.
천영은 그저 마법 장비 몇 개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작은 방 안에도 들어갈 수 있을 정 도로 성능이 뛰어난 것까지는 원하 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 공간이,분명 천영 이 주문했던 것이 틀림없는 그 장비 들로 가득하게 들어차 있었다. 거의 농구경기장만한 이 공간이 작다고 느껴질 정도로.
“저,저건 R2c-2의 마지막 버전이 잖아. 맙소사,더 이상 제작 불가라 고 해서 볼 수 없을 줄 알았는 데……
“쿨링베리가 손수 제작한 양탄자도 있습니다. 저 위에서는 마나의 순환
이 배로 증폭되어 마법 수련에 큰 도움이 된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여기에……
“저 커다란 건…… 설마 안티 프로 매트릭스 블락 장치? 허,허억!”
뒤쫓아서 들어오던 교수들과 맥골 라스,체일룬이 입을 쩍 벌리고 연 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심상찮은 물 건들이 속속히 도착하고 있단 사실 은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로 엄청난 장비가 들어설 줄은 몰랐다.
“잠시만 지나갑니다.”
작업복을 입은 남자들이 무언가를 이끌고 천영의 곁을 지나갔다. 그것
을 확인한 교수 한 명이 눈이 튀어 나올 듯 얼굴을 쭉 내밀었다.
“젝스 주식회사에서 개발한 전 세 계에 단 세 대밖에 없다는 ‘마나 바 이스터’입니다……!”
천영은 그저 이 광경을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맥골라스는 어이가 없 다는 듯 그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 다.
“메이지 서천영은 굳이 마법을 사 용하지 않아도 말 한 마디로 산도 옮길 수 있겠습니다.”
그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실제로 그 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생
각했다. 만약 서천영이 ‘저 산이 마 음에 들지 않는구나.’라고 장난으로 이야기했다가는 마법사들이 우르르 몰려와 난데없이 삽질을 하기 시작 하는 기묘한 광경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천영이 이곳에 입장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고위급 마법사들이 몰려들 었지만 이사장은 그들을 모두 제지 하더니 어깨를 쫙 폈다. 어째선지 천영이 이곳에 온 뒤로 본인이 이들 중에서 제일가는 갑이 된 느낌이라 기분이 상당히 좋은 모양이었다.
“메이지 서천영,제가 하나씩 안내 해드려도 되겠습니까?”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예의까지 굳 이 갖춰가며 천영에게 말하자 그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사장은 신난다는 듯 천영 을 데리고 하나씩 하나씩 장비들에 대해 소개시켜주었다.
“이건 푸른 하늘 마탑에서 야심차 게 준비한 ‘에너지 플루밍
X-By-Y’ 장치라고 합니다. 메이지 천영께서 원하신 ‘지정 물체 고정 장치’가 다섯 단계나 업그레이드되 어 생명체에게 사용해도 무난하다고 합니다. 거기에 좌표를 설정하여 밀 리미터(■)단위로 옮기는 것도 가능 하여……
앞서 나온 마법사들 대신 이사장이 설명을 끝마치자 파트라슈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겁나 뭐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 는걸.
“나도 그래.”
지구에서 전기공학자가 자기 부상 열차의 설계도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처럼 천영 또한 이 마 법 도구들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사장과 함께 이것 을 설명하게 위해 대표로 나온 마법 사는 마치 서천영이 모든 것을 꿰뚫 어볼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러이러한 부분에는 어떠한 기술이 사용되었고 같은 느낌으로 설명을 했다.
-해석 좀 해줘라 주인.
“하여튼 존나 비싸다고.”
-그렇군! 확실하게 이해된다.
천영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영혼 없이 말한다.
“대단해요.”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 렇게 말하자 어째선지 뒤에서 묵묵 히 지켜보던 푸른 하늘 마탑의 마법 사들이 주먹을 말아 쥐고 소리 없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자,그 다음은 회색 바위 마탑에 서 즉시 가져온……
그렇게 천영이 이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사용할 만한 마법 장비를 하 나씩 선택했다.
선택받은 마법사들은 흡사 커다란 스포츠 대회에서 승리한 것처럼 서 로를 부둥켜안고 기삐했으며,선택 받지 못한 자들은 마치 좀비마냥 축 처진 채 힘겨운 발걸음을 떼었다.
체일룬은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정말,정말로…… 메이지 서천영 을 따라온 건 제 인생 최고의 선택
입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맥골라스와 체일룬이 뭐라고 말을 하던 서천영은 피곤해 죽을 지경이 었다. 솔직히 캐이시를 치료 하는데 이 정도 규모의 마법 장비는 전혀 필요치 않았다. 그저 간단한 휴대용 장치만 있어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이거 원…… 벌레 한 마리 잡는 데 드래곤 수십 마리가 몰려와 브레 스를 갈기는 격이로군.
천영 역시 파트라슈의 그 말에 동 감했다.
“그냥…… 집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