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85화
저벅.
보라색으로 물든 숲을 누군가가 걷 는다. 그는 잘생기고 꽃 같은 외모 를 음침한 검은색의 로브로 감춘 채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흑마법사 난페르. 팔리 다리에르를 방패막이로 삼아 이곳을 조사하고 있는 마법사.
‘흐음,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
라……
그저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숲이 정화될 정도로 깨끗하고 순 결한 기운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흑 마법사에게 있어서 상당히 탐스러운 먹잇감이나 다름없었다. 예로부터 흑마법사들이 처녀를 납치하는 이유 가 무엇이던가. 깨끗한 존재를 더럽 힘으로써 그들은 더욱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참는다. 아직은 굳 이 모습을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라고는 해도 애송이는 애송이. 끝없이 깨끗한 기 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신기했지만
고작 그 정도일 뿐이다. 난페르의 상대는 되지 않는다.
“저런 숲과 한 몸이 되고 있군.”
나무 줄기에 둘러싸여 이미 모든 생기가 빨린 그의 옛 동료 6명을 바라보며 난페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차피 그들의 목숨에 대해 서는 별 관심도 없었으니 상관은 없 었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던 난페르 는 흐음 하고 고민을 하더니 어딘가 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착! 하는 소리와 함께 카메 라가 날아와 그의 손아귀에 쥐어졌 다.
“그래,쓸모는 없었지만 제 나름대 로 노력은 했나보군.”
암살자가 들고 있던 카메라였다. 비록 제 목숨을 지키진 못했지만 암 살자는 자신의 비전 마법 스크롤까 지 찢어가며 어떻게든 카메라를 숨 긴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 마법은 절대 저런 애송이가 알아차릴 수 없 는 종류의 것이기도 했다.
난페르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곳에 는 만추의 기둥에 대한 사진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흑마법사의 연합에 가져가게 되면 일종의 ‘증거 물’로 남게 된다. 사진,난페르가 지 금 당장 유일하게 제출할 수 있는
증거물. 이것만 있으면 만추의 기둥 을 더욱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법이 연구될 것이다.
‘만추의 기둥이라. 어떻게 생겼는 지 궁금하군.’
그들은 사정에 의해 만추의 기둥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가 없다. 그 나마 난페르라서 이곳까지 직접 찾 아오는 것이 가능했을 정도로.
처음엔 본인이 직접 움직이는 것이 불만이었으나 고용한 이들이 이렇게 까지 일처리를 못할 줄은 몰랐다.
‘흐흐,내가 와서 정말 다행이지!’
난페르는 카메라를 조작했다. 그
다음 필름을 꺼내어 사진을 출력하 는 장치에 연결하였다. 비록 임시로 ‘미리 보기’ 형태로밖에는 볼 수 없 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자아,어떻게 생겼느냐.’
탈칵.
버튼을 누르자 지이이잉 하는 효과 음이 울려 퍼지더니 이윽고 난페르 가 들고 있는 기계의 화면에 무언가 가 출력되었다.
“오오,이것이 바로…… 응?”
사진이 출력된 순간 감탄사를 내뱉 기 위해 준비하던 난페르는 멍청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화면에 이상한
문양과 글자 하나만이 등장했기 때 문이다.
“아,암살자가 잘못 찍었나? 다음 페이지……
난페르는 암살자가 잘못 찍은 사진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페이지를 넘 기기 위해 조작했지만 다음 페이지 는 없었다.
사진은 [1/1]이라고 표시되어 이것 단 한 장만이 전부였다. 난페르는 아연실색한 얼굴로 화면을 확인했 다. 그곳에는 깜찍하고 귀여운 이모 티콘과 함께 글자 하나만이 둥둥 뜬 채로 난페르를 약 올리고 있었다.
[메롱!]
“……지금,뭐라고 했느냐? 그곳에 천영을 혼자 두고 왔다고?”
천혜랑이 손을 덜덜 떨면서 하성에 게 물었다. 그는 정말 죽을죄를 지 었다는 듯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 며 고개를 숙였다. 평소 천혜랑을 향해 건방지게 대들던 모습과는 달 리 정말로 죽을 것만 같은 표정으로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은 주변의 다 른 유니콘들로 하여금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뭐야,무슨 일이래?”
“모르겠어. 하성이 저렇게 천혜랑 님께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처음 봐……
“그,그러니까 말이야. 하성이 원래 저렇게 예의가 바르던가?”
주변에서 무슨 말이 들려오든 신경 쓰지 않는다. 하성은 지금 당장이라 도 다시 그곳으로 뛰어가고 싶지만 천영의 도움이 없는 이상 유니콘의 몸으로는 그곳에 절대로 들어갈 수 가 없었다. 정작 도움을 줄 수 있는 네청은 이곳에 하성을 데려다주자
마자 하늘 높이 모습을 감춰버렸다.
“맙소사……
천혜랑은 이마를 부여잡으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런 위험한 곳에 천영을 그냥 두고 나오다니. 천혜랑 은 이마를 있는 힘껏 찡그리더니 하 성에게 상황을 물었다.
“지금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 고 있느냐.”
“……그곳엔 ‘만추의 기둥’이라는 것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숲을 오염 시키는 기운의 정체는 ‘혼란’이라고 하여 현재 그것이 폭발하기 직전에 놓여 있습니다.”
그 말에 유니콘들이 눈에 띄게 당 황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조금씩 새어 나오는 혼란에도 얼마나 많은 유니콘들 및 신수가 상처입고 숲이 오염되었는가. 헌데 저것이 폭발해 서 터져나온다? 그럼 그것은 그야말 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말도 안 돼……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돼?”
“모,몰라……
천혜랑이 손을 척 들었다.
“조용!”
마치 메아리처럼 ‘소리’라는 개념 이 깨어지는 것처럼 그들의 고막을 자극한다. 순식간에 유니콘들이 조 용해지자 천혜랑이 고개를 까딱했 다.
“그래서 천영은 어디에 있지? 대체 왜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이냐.”
“그,그게……
하성은 우물쭈물 하더니 이윽고 말 했다.
“그곳 혼란의 중심에…… 천영이 혼자 남아 그것을 막겠다고 했습니 다.”
천혜랑이 눈을 부릅뜨는 것과 동시 에 인간의 형태로 옹기종기 모여서 이야기를 듣던 유니콘들이 순식간에 본체로 변신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들의 머릿속은 지금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서,설마 우리를 위해 남겠다고 한 거야?”
“맙소사……
“인간들은 이기적인 거 아니었어?”
“여길 버리고 혼자 도망치면 될 텐 데……
“우리들을 위해서……
유니콘들에게 있어서 천영은 그저 기운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그런 순 수한 ‘밥 배달부’ 정도의 인식이었 다. 그렇기에 유니콘들에게 수많은 기운을 마음껏 나눠주더라도 별 다 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고마움을 느끼긴 했지만 그 뿐.
하지만 지금 유니콘들은 그 생각이 글러먹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 다. 애초에 라며. 천영이 그들에게 기운을 나눠준 이유조차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래…… 기운을 나눠주는 것은 굉장히 피곤한 일인데……
“하루 종일 우리들의 투정을 받아 줬어……
“정작 우리가 돌려주는 건 없었는 데……
그들의 마음속에서 작은 파장이 일 어난다. 그것은 ‘착각’이라는 이름의 파장이었다. 파트라슈는 네청의 어 깨 위에 앉아 그들이 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세상에 우리 주인은 마법사가 아 니라 사기꾼으로 전직했어야 했어.
그 파장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쳐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해진다. 유니콘 들은 순식간에 날개를 펼쳐 바람의
숲 저 위까지 날아올라 하늘로 솟구 쳤다. 천혜랑 역시 하성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본체로 변신해 하늘 위 로 날아올랐다.
진작 하늘 위에 둥둥 떠서 어딘가 를 주시하고 있는 네청이 눈에 띄었 다. 천혜랑은 그녀의 옆에 가서 나 란히 섰다.
“어떤가?”
“후후,재미있군.”
“……후우.”
네청이 바라보는 장소를 보자 저 멀리 ‘만추의 기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가 보인다. 그 어느
장소보다도 진한 혼란으로 물든 장 소. 보라색의 기운이 이제는 아예 눈에 보일 정도로 사방팔방으로 번 지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있는 그들의 피부까지 따끔거릴 정도로 정말 순수할 정도 로 혼란스러운 기운이었다.
천혜랑은 말없이 그곳을 주시했다.
‘그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드래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단 하나만은 알고 있다. 드래곤들은 지나치게 합리적 인 존재라는 것. 절대로 무언가를
실행함에 있어서 ‘감정’을 담지 않 는다. 수많은 고행과 시련을 걸친 그들은 감정이라는 것이 메말라 버 렸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그 드래곤이 맞는지 의 심스러울 정도군.’
그리고 그 생각은 네청 역시 똑같 이 하고 있었다. 천영은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 합리적이지 않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했 다. 언제나 제멋대로 행동한다. 말없 고,과묵하고 절대로 속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네청이 알고 있는 그 드래곤이 아니었다.
“음,기운이 강해지는군.”
혼란이 아예 화산이 폭발한 것처럼 마구 쏟아진다. 일부 어린 유니콘은 더 이상 바라보는 것이 힘들 정도 로. 하지만 눈이 뜯겨져 나갈 것처 럼 따가워도 피부가 짓이겨질 것처 럼 괴로워도 유니콘들은 그 자리를 끝까지 유지했다.
그 동안 얼마나 수없이 많은 배신 을 당했던가. 타종족에 대한 불신이 쌓이고 쌓여 결국 여기까지 도망쳐 오지 않았던가. 그들은 절대로 타종 족을 신뢰하지 않는다. 오로지 유니 콘들만의 새장 안에 갇혀 서로의 상 처를 보듬어주며 살아간다. 그것이 순수함의 비결이고,그것이 바로 유
니콘이다.
그렇기에 이런 배려가 자신들을 위 해 저 한 몸을 기꺼이 희생하는 누 군가의 존재가 너무나도 낯설었다.
파앙!!
마침내 혼란이 폭발한다. 일부 유 니콘들이 기절하여 바닥으로 떨어진 다. 천혜랑 역시 두 눈을 부릅뜨고 힘껏 결계를 치면서까지 이 자리를 지켜냈다. 점점,점점 더더욱 강하게 보라색의 기둥이 선명하게 보일 정 도로 강해지더니 어느 순간 갑작스 ᄅ11—.
“……기운이 끊어졌어?”
그리고 그 ‘혼란’은 순식간에 유니 콘들에게 익숙한 ‘순수함’으로 변질 되기 시작했다. 능구렁이처럼 보라 색의 기운을 감싸고돌던 그 순수함 은 혼란에 의해 오염되었던 숲 전체 에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마치 숨구 멍이 트인 둣 따가운 감각이 모두 소멸되자 유니콘들은 그제야 깨달을 수가 있었다.
혼란이 무언가에 의해 제지되었다 는 사실을.
“맙소사……
더 이상 혼란은 흘러나오지 않았 다. 그곳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순수
하고 찬란하고 깨끗한,새하얀 빛이 퍼져 나왔다. 흡사 천사라도 강림한 것처럼. 지금까지는 버티기 힘들고 따가웠을 뿐인 그 기운은 포근하고 달콤하고 갖고 싶은 기운으로 변질 되었다.
이것은 유니콘들에게 아주 익숙했 다. 불과 바로 몇 시간 전 천영이 그들에게 나눠주었던 기운이 아니던 가?
문득 유니콘 한 마리가 눈물을 홀 렸다.
一저,저건……!
파트라슈는 잽싸게 품에서 약병 하
나를 꺼냈다. 천영이 옛날에 들고 다니기 귀찮다며 파트라슈에게 대충 넘긴 것이었지만 파트라슈 역시 깜 빡하고 계속 들고 다니던 그냥 잡동 사니. 하지만 파트라슈는 천영이 유 니콘의 눈물을 구해야한단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네청은 살짝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 다.
“유니콘이 눈물을 홀릴 때는 사랑 에 빠졌을 때라고 알고 있는데…… 신기하군.”
하지만 한 마리가 아니었다. 숲 속 에서만 살던 유니콘들은 난생 처음 으로 자신들만을 위해 본인을 희생
한 순수한 존재에 대해 무언가의 감 정이 싹트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한명씩,한명씩 서서히 눈물을 홀리 기 시작했다.
-으,으아악! 뭐야! 이거 왜 이래!
파트라슈는 허겁지겁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니며 그들의 눈물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윽고 하늘에서 숲을 지켜보던 모 든 유니콘이 눈물을 홀리기 시작했 다.
“크크크크.”
따앙!
“크헤히히.”
따앙,땅!
곡괭이를 이용해 바닥 부분을 완전 히 박살내자 마침내 만추의 기둥이 무너졌다. 물론 단순한 곡괭이질이 아니다. 곡괭이의 끝에는 ‘결계 천 멸’이라는 초난도의 마법이 걸려있 었다. 이것에 닿는 순간 대부분의 결계는 무력화된다.
결계에 갇힌 채 천영을 바라보던 혼란의 괴수는 그의 탐욕스런 표정 을 보며 몸을 떨었다.
-저,저놈이야 말로 나보다 더한 미친놈이다!
혼란의 기운이 퍼져 나오는 가운데 에 만추의 기둥을 몰래 캐갈 생각을 하는 미친 마법사가 이 세상에 존재 할 줄은 몰랐다. 본디 ‘이계’에서 홀 러나오는 기운은 서로에게 해악한 기운이다.
비록 그리픈 차원의 인간들에게는 기본적으로 혼란 속성이 잠재되어 있어 괴수의 차원인 ‘사충계’의 기 운에 어느 정도 내성은 있는 모양이 지만 그것도 근원의 힘이 흘러나오 면 절대로 버틸 수 없다.
유니콘이 혼란에 약한 것처럼 사충 계의 존재 또한 순수함에 약하다. 서로간의 타차원의 기운은 절대로 쐬어서는 안 되는 탁한 기운일 지언 데 이 마법사는 그런 사실에 아랑곳 않고 만추의 기둥을 무너뜨리고 있 었다.
저것이 무너지면 벌어지는 일은 단 하나. 혼란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뒤 잠잠해진다. 하지만 평범한 존재 가 혼란의 기운을 받고 버틸 수 있
을까?
절대로 무리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자그마한
존재는 그런 정신 나간 짓을 뻔히 하고 말았다!
-미,미친놈이다. 자신의 기운으로 혼란을 뒤덮어서 잠재우다니. 그 정 도로 만추의 기둥이 갖고 싶단 말이 더냐…….
"후후후."
만추의 기둥이 무너지는 순간 혼란 이 갑작스레 폭발해버려 조금 당황 하긴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 이상 혼란은 그리픈으로 전송되지 못했다. 그리고 남은 혼란은 천영이 자신의 기운을 지속적으로 흩뿌리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이 정화되었다.
“사람은 역시 열심히 살고 봐야해. 하늘에서 이런 선물이 뚝 떨어질 줄 이야.”
그러다가 천영은 고개를 획 돌려 괴수를 쳐다보았다. 그는 천영과 눈 이 마주치자마자 길거리 강아지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다른 곳을 쳐다보 았다. 아까 전의 네청과 비교했을 때 눈앞에 있는 저 꼬맹이가 더욱 두려웠다.
“흐음……
괴수에게 가까이 다가간 천영은 곡 괭이를 바닥에 내려두고 결계와 관 련된 논문서를 둘둘 말아 겨드랑이
에 낀 채로 팔짱을 꼈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완벽하게 ‘예술 작 품을 감상하는 예술가’의 포즈가 되 었다.
하지만 천영이 감상하는 것은 괴수 의 아름다운 자태가 아닌 그의 껍데 기에 매길 가치였다.
“너,좀 비싸겠다?”
-아,아니다! 난 엄청 싸구려야! 피부도 그냥 장수풍뎅이랑 똑같다 귀
“아니야. 지금 보니까 너도 꽤 쓸 만해 보여.”
그러면서 천영은 악마에게 악마보 다 더 악마 같은 표정으로 씩 웃으 며 말했다.
“나랑 같이 가자.”
-시,싫어어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