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81 화
새벽이 되자 천영은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부스스한 눈으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니 검은 우주를 관통하는 은하수가 시야에 들어왔 다.
세 개의 달과 수많은 별무리들이 반짝거리는 그 찬란한 광경은 바 쁘게 이동하는 새벽의 여행자조차 잠시 여유를 가지고 하늘을 올려 다볼 정도로 아름다운 것이었지만
천영은 그것을 보자마자 단 하나 의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 분명 집에서 자고 있던 것 같 은데……
왠지 팔을 빼려고 하니 누군가가 꽉 움켜쥐고 있어서 그러질 못했 다. 고개를 돌려보니 웬 은발의 미 인이 천영의 팔을 콱 붙들어 놓은 채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그것을 억지로 빼기 위해 반대쪽 팔을 꺼 내려고 했더니 그쪽 팔 역시 누군 가가 잡고 있었다.
“하아……
결국 발을 이용해 그들을 어거지
로 밀쳐낸 다음 일어나자 잠을 자 고 있는 와중에도 그들은 천영을 찾기 위해 허공에 팔을 휘적였다. 후다닥 그곳에서 벗어난 천영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왠지 화장실이 가고 싶어져서 잠에서 깨긴 했는 데 여긴 대체 화장실이 어디에 있 는지를 모르겠다.
‘나중에 천혜랑 씨한테 말해봐야 겠는데.’
이래서는 다음부터는 이종족 손 님이 찾아왔을 때 곤란해 할 것이 뻔했다.
적당히 생리 현상을 해결할 곳을 찾아 바람의 숲 이곳저곳을 기웃
거리고 있는데 저 멀리 절벽 쪽에 누군가가 앉아있는 것이 눈에 띄 었다. 천영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저기가 화장실인가?’
그건 아닐 테고. 호기심이 생긴 천영은 천천히 걸어서 그 사람에 게 다가갔다. 가까이 가보니 실루 옛이 눈에 들어왔다. 하성이었다.
그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더니 천영의 발소리를 듣고선 고개를 돌렸다.
“응? 너도 트리플 문워크(Triple Moonwalk) 구경하러 나온 거?”
“트리플 문워크?”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의 절반 을 가로지르는 찬란한 은하수 너 머로 세 개의 아름다운 달이 삼각 의 형태로 모여서 마치 회전하듯 바퀴가 굴러가듯 움직이고 있었다. 지구로 따지면 슈퍼 문 현상과도 비슷한 것인지 달의 크기는 이전 에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거대 했다.
‘저게 트리플 문워크…… 오늘이 그 날이었던가.’
트리플 문워크는 7년에 한 번 찾 아오는 현상이라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날이 되면 그리 픈의 전 국가에서는 마치 이벤트
라도 되는 것처럼 신문에다가 대 문짝만하게 트리플 문워크를 실어 놓는다. 그럼 주민들은 새벽에도 잠을 자지 않고 밤하늘을 올려다 본다.
천 년 전 처음으로 트리플 문워 크 현상이 발견된 날 그리픈을 구 해낸 영웅이 탄생한 날,그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인간들 사이에서는 트리플 문워 크를 보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 진다는 이야기가 있다지?”
천영은 인간이 아니다. 하성도 천 영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 실은 알아챘을 것이지만 아직 나
이가 어린 유니콘들은 그가 드래 곤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는 못 했다. 하지만 인간 취급을 받는 것 이 오히려 더 괜찮은 느낌이 들었 기 때문에 천영은 딱히 그 부분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전부 미신이지만.”
“하하. 나는 미신을 좋아해. 뭔가, 뭔가…… 미지의 존재를 믿는 다는 건,정말 신념이 강한 종족만이 할 수 있잖아? 우리 유니콘들은 그런 게 없어.”
천영은 천천히 걸어서 하성에게 다가가 그의 옆에 털썩 앉았다. 그 러자 하성은 고개를 내려 천영의
옆모습을,아니 정확히는 그의 입 술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쉽네……
드래곤이 된 이후로는 키스를 한 적이 없기에 아직 신품 입술이라 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던 시 절에는 이미 중고였기에 천영은 딱히 누군가와 입맞춤을 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유니콘의 눈물만 얻을 수 있다면 키스 정도는 가뿐히 해버릴 생각 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유니콘의 눈 물은 그리 쉽게 구할 수 있는 것
이 아닌 모양이었다.
결국 천영은 유니콘의 눈물을 구 하지 못했다. 아무도 눈물을 홀리 지 못하고 그저 어거지로라도 눈 물을 짜내기 위한 시늉만 했을 뿐 이었다.
“그나저나 새벽에 이렇게 깨있어 도 되는 거냐? 너 내일 어디 간다 며.”
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뢰를 받고 온 마법사니까.”
“마법사라. 순수함과는 거리가 제 일 먼 존재인데 말이지……
넌 정말 볼수록 신기해. 하성이
그렇게 말을 흐렸다. 천영은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내일 따라갈래.”
“……왜?”
뜬금없는 하성의 말에 천영이 고 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뭔가 재미있는 장난감을 눈앞에 두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네가 가니까.”
“너 같이 허약해빠진 유니콘한테 는 위험한 곳이야.”
“나 엄청 강하거든?”
그 말대로 사실 ‘순수함’을 강함 의 기준치로 따지는 이곳에서 하 성은 꽤나 강한 편이었다. 하지만 천영의 기준으로는 ‘절대적’이 아 닌 ‘상대적’ 지표가 따라온다. 절대 적으로 봤을 때 하성은 강한 편이 지만 상대적으로 천영에 비해서는 약할 것이다.
“그리고 요 근래에 들어서 숲 이…… 비명을 지르고 있어. 내 눈 으로 직접 보고 싶어.”
호기심이 사람을 잡는 법이라고 천영은 팩트를 날리려다가 참았다. 하성에게서 뭔가 이유를 알 수 없 는 진지함이 순수하게 숲을 사랑
하는 그 마음이 느껴졌다.
“그러시던가……
결국 마지못해 수락한 천영은 또 다시 고개를 들어 달을 쳐다보았 다.
저런 별자리가 펼쳐진 밤하늘을 볼 때마다 여러 가지의 생각이 들 곤 한다. 원래의 지구는 어떻게 되 었을까? 우주를 바라보면 저 멀리 지구가 보일수도 있을까? 저 하늘 의 별자리는 지구의 별자리와는 다를까?
적어도 에니안에게 들어서 이곳 이 단순한 지구의 평행세계 같은
곳은 아니란 것을 알았다. 이곳은 명백히 다른 세계이다. 하지만 그 렇다면 어떤 식으로 지구와 그리 픈이 연결되었단 말인가. 지구에 딱히 미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 지만 만약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생긴다면? 그때 천영은 지구로 다 시 돌아갈 것인가?
‘글세…….,
영화 속,소설 속 수많은 주인공 들은 타차원에 떨어진 이후 원래 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천영은 지구에 미련을 가질 이유 가 없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게임으로 번 돈을 현금화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이 그리픈이라는 세 계에서 규모가 제일 큰 마탑에 정 직원(?)으로 취직하기도 했다. 또 한 이곳에서는 그가 가진 마법이 라는 재주는 엄청나게 대우를 받 는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돌아갈 이유 가 전혀 없다. 그곳에는 가족도 없 고 연락되는 친구 또한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만 왠지 이렇게 밤하 늘을 쳐다보고 있자면 향수가 온 다. 괜히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과 맥주 한 캔을 사오고 싶고 괜히
노래방에 가서 서비스 시간을 받 아보고 싶고,괜히…….
왠지 지구를 생각하면 우울해진 다.
아침이 되자 유니콘들은 또다시 분주히 천영을 찾기 위해 바람의 숲을 헤집으며 돌아다녔지만 그는 이미 천혜랑을 찾아간 뒤였다.
천혜랑이 훌륭한 방패라는 것을
알아버린 이상 이용하지 않을 이 유는 없다.
“지금 바로 가시는 겁니까?”
“네.”
이른 아침이었지만 지체할 이유 는 없었다. 천영이 한복을 입고 지 도를 훌어보는 동안 천혜랑의 집 밖에는 유니콘의 모습으로 돌아온 하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아,저 말썽꾸러기는 정말 말 을 듣지 않는군요.”
“저러다 한대 얻어 터져야 정신 차리는데.”
네청 역시 깔끔하게 차려입은 상
태였다. 그녀의 복장은 가벼운 여 행객의 옷이었는데 마치 신비로운 선녀처럼 입고 다니는 그녀의 패 션을 보다 못한 천영이 사다준 것 이다.
“그럼 바로 갔다 오겠습니다.”
준비가 끝나자마자 밖으로 나온 천영은 하성의 등 위에 올라탔다. 그 다음 네청이 천영의 뒤에 타자, 하성이 몸을 움찔 떨었다.
“왜? 무거워?”
“아니…… 그냥. 저 여자는 뭔가 무섭다. 우리 아빠를 보는 느낌이 라고 해야 하나..
네청의 순수한 기운은 유니콘과 여러모로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 기운은 웬만한 유니콘보다 강한 편이었다.
“겁만 많기는.”
천영이 하성의 목을 손바닥으로 살살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하자 남자로서 자존심이 상할 만한 이 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분 이 좋은 둣 고개를 흔들었다. 참으 로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하성의 몸이 천천히 하늘로 떠올 라 급가속하며 날아가기 시작하자
천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성 의 등을 단단히 붙잡았다. 네청은 천영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단 사실을 깨닫자마자 양팔로 그의 몸을 감쌌다. 170 가까이 되는 네 청의 키는 천영의 몸을 자신의 품 속에 가볍게 넣을 정도였다.
네청과 하성의 배려로 인해 중심 을 잡기 쉬워지자 천영은 스스로 에 대해 한숨을 내쉬었다.
‘나 이래보여도 드래곤인데…… 비행으로 치면 일등인데……
그렇게 그들은 한참을 비행했다. 시속 200km를 가볍게 주파할 정도 로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달렸음
에도 불구하고 거의 점심이 될 쯤 에야 간신히 목적지가 느껴질 정
도로.
새하얀 바람의 숲이 점점 빛을 잃어가고 불쾌한 기운이 서서히 느껴질 무렵 천영은 코를 막았다.
“윽,이게 무슨 냄새야.”
하지만 네청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냄새가 나느냐?”
“크윽,무슨 보라색 썩은 냄새가 보이는데.”
‘‘.‘?,,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어의 조합
을 사용해버린 탓에 네청이 이해 를 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천영은 저 표현 말고는 더 정확한 말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불쾌하고,기분이 더러워지는 껍찜 한 감각이 온몸을 맴돌았다.
‘이건…… 유니콘들을 물들였던 그 기운인가……?’
하지만 그 유니콘들에게서 느꼈 던 순수한 ‘혼란’은 이 정도로 불 쾌하진 않았다. 그저 독한 술냄새 를 맡는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지 금은 마치 온 사방팔방에 천 년 정도 썩힌 술을 뿌려놓은 듯한 느 낌이 었다.
얼마간 더 달리자 네청과 하성 역시 반응하기 시작했다. 네청이 얼굴 표정을 어둡게 바꾸며 입을 열었다.
“숲의 상태가…… 말이 아니구나.”
마치 곰팡이가 핀 것만 같은 모 습이었다. 온통 흰색으로 가득했던 숲이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보라색의 점이 나무 곳곳에 박혀 있고 땅 역시 초등학생이 보라색 물감으로 대충 칠해놓은 것처럼 엉망으로 번져있었다.
하성이 당황하여 말했다.
“이상해 뭔가 이상해……
“뭐가?”
“이,이럴 리가 없는데. 얼마 전 에 울 아버지가 여기 와서 결계를 쳐놨다고 했어. 더 이상 우리들의 숲에 접근을 못하도록……
천영은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딜 봐도 결계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애초에 마법적인 느 낌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는 뜻은 진작 그 결계가 파괴된지 오래되 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저 기운은 결계를 무너뜨 릴 정도는 아닌데……
저것은 그저 혼란덩어리의 집합
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천영 이 보기에 저 기운 하나만으로 결 계를 부술 수는 없을 것이다.
‘생각보다 저 혼란이 더 강한 건 가? 아니면……
하성이 숨을 거칠게 골랐다. 지금 이곳은 유니콘에게 있어서는 지독 한 독가스가 퍼져있는 곳이나 마 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성은 돌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은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 며 분노했다.
“이럴, 수가…… 우리들의 숲 이……
이를 꽉 물고 하성이 욕지기를 내뱉자 천영은 그의 목에 손을 가 져다 대어 진정시켰다. 마음이 편 안해지고 몸속에 스며들던 ‘혼란’ 이 서서히 빠져나가자 하성은 간 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예상대로인가.’
천영은 혀로 입술을 할으며 하성 의 목을 조금씩 쓰다듬었다. 천영 의 기운은 저 혼란을 내쫓는 데에 아주 효과적이었다. 즉 천영만 있 으면 유니콘인 하성도 이 숲을 볼 수가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 런 천영의 노고를 아는지 모르는 지 하성은 그저 보라색으로 물들
어있는 숲을 바라보며 울 것만 같 은 표정을 지었다.
“나…… 더 안으로 데려가줄 수 있을까?”
“……그러지 뭐. 조금 따끔할 수도 있어.”
눈을 감고 하성의 목을 양팔로 감싼다. 그 다음 하성의 온몸에다 가 드래곤의 마나로 코팅을 하듯 에워싼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보 호막이 하성의 피부 위에 완성되 자,그는 지체하지 않고 숲의 안쪽 으로 진입했다.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하
얀색은 사라지고 온통 보라색만이 가득했다. 점점 더 식물들이 비명 을 지르고 괴로워하는 것이 보일 때마다 하성은 더욱 빠르게 안쪽 으로 진입했다.
마침내 흰색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온 세상이 보랏빛으로 가득 찼을 때 천영은 이 숲을 이렇게 만든 원흉지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기둥이었다. 수상한 문양 이 가득 새겨진 5m쯤 되어 보이 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 보라 색의 기운이 스멀거리는 그 기둥 의 중심부는 보라색으로 물들다 못해 아예 썩어버린 것처럼 거무
튀튀한 색이 더 강했다. 하성은 아 연실색한 얼굴로 그곳을 바라보았 다.
“……숲이 아예 죽은 것처럼 말이 없어.”
숲의 말을 이해할 정도로 외국어 에 능숙하지 않았던 천영은 그저 ‘그러냐,’라며 묵묵히 대답했다. 하 성이 바닥에 내려서자 네청이 가 볍게 착지하여 천천히 걸어 기둥 의 중심부에 다가갔다.
워낙에 지독한 기운 때문에 천영 은 차마 하성을 데리고 그곳에 들 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데 네청은 그 기둥에서 스며나오
는 혼란조차 즉시 정화해버릴 정 도로 강력한 순수함을 가지고 있 었다.
그 기둥을 손바닥으로 살살 쓰다 듬던 네청은 한숨을 내쉬더니 천 영을 쳐다보았다.
“그게 뭔지 알아보시겠습니까?”
난생 처음 보는 물건이었기에 천 영으로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 네 청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이건…… 일종의 ‘문’으로 보이는 구나. 아니면 ‘좌표’라고 볼 수도 있고…… 그 두 가지가 전부 합쳐 졌을 수도 있다.”
“문…… 이요?”
“그래.”
“문이라면 무엇을 위한 문이죠?”
“그건 나도 알 수가 없구나.”
네청이 고개를 젓자 천영은 하는 수 없이 노트를 꺼내들었다. 우선 저 기둥에 적혀있는 문자를 전부 노트에 옮겨 적은 다음 가지고 돌 아가 연구할 생각이었다. 하나씩 하나씩 문양과 문자를 똑같이 베 껴서 쓰기 시작하자 네청은 기둥 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며 그것 을 살펴보았다.
‘기운은 분명 처음 느껴보지만.
이 기둥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데……
한참 동안 기둥에 대해 노트에다 가 필기를 하던 천영은 펜을 입가 에 가져가 살짝 물고서 고민을 했 다.
‘이 기운은 하나의 색이나 마찬가 지야. 바람의 숲은 하얀색이고 혼 란은 보라색. 하얀색에 보라색이 물드는 것은 당연하지만 내가 가 진 기운은 그 보라색보다 더 진해. 그렇다면……
어쩌면 이 기운이 더 퍼져나오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 성에게 말했다.
“이 주변을 조금 날아다녀봐.” “그래.”
하늘로 날아오른 하성은 기둥의 중심부에서 멀어져 원을 그리듯 주변을 돌아다녔다. 천영은 360도 로 퍼져 나오는 기운 중에서도 유 독 약한 부위를 찾기 위해 눈을 감고 집중했다.
‘정말, 신성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순수하구만.’
흔히 악마가 내뿜는 기운은 사악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 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악마들이 사는 세계로 가면 그 기운은 사악
하고 탁한 기운이 아니라 오히려 이 세상에서 제일 순수한 기운이 아닐까?
천영은 그 아이러니함을 깨우치 고 있었다. 유니콘에게 있어서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럽고 끔찍한 기운이겠건만 천영은 그 모든 것 들이 순수하다고 느낄 뿐이었다.
“좋아,여기서 멈춰봐.”
꽤 괜찮은 장소를 발견한 천영은 손바닥을 바닥으로 펼쳤다. 이곳부 터 시작해 거대한 마법진을 완성 시킬 생각으로. 하지만 그 순간 천 영은 또다시 누군가의 시선을 느 꼈다.
흠칫 본능적인 감각을 느낀 천영 은 어딘가를 쳐다보았다.
‘분명 이 숲에 처음 들어왔을 때 도 이 느낌이었는데……
멀리서 누군가가 바라보는 느낌 이었다. 그땐 그저 기분 탓이니 하 고 넘겼지만 지금은 달랐다. 확실 하게 누군가가 정확히 천영을 주 시하고 있었다.
“하성,이 숲은 유니콘들이 완벽 하게 지키고 있는 거 아니었어?”
“……그게 숲이 이렇게 오염되어 버린 이후로는 제대로 그러질 못 하고 있다. 이렇게 탁한 기운이 넘
실거려서야. 우리들의 시야가 제한 된다.”
“역시 그렇겠지……
천영은 한숨을 내쉬더니 머리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여기에 우리 말고 침입 자가 있는 모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