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66화
17장 화가,피렌체
용언이란 무엇인가. 마법진을 입 체적으로 구사할 수 있다는 건, 무 엇을 의미하는가.
단순히 강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단순히 미래의 기술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단순히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 문이 아니다.
그저 모든 신선들이 꿈꾸는 경지, 역사 속 모든 마법사들이 불가능 으로만 생각했던 환상 속의 기술, 인간의 두뇌로는 절대로 이해할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으며 오 로지 드래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인 3D입체 마법진. 그것은 그 저 목표인 것이다.
학자들이 ‘마법’이라는 학문을 접 하는 순간 공통적으로 꿈꾸게 되 는 그런 목표.
지금 이 순간 그 위대한 마법이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 픽업 트
럭 뒷좌석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위이잉!
천영이 들고 있는 큐브 위에 둥 그런 마법진이 생성된다. 붉은색의 서클이 겹치고 겹쳐 원의 형태를 이루고 안쪽에 있는 작은 마법진 에 기둥처럼 연결되었다. 이윽고 거대한 불꽃의 구체가 하늘 높이 퍼펑! 소리를 내며 발사된다. 그리 고 3초 뒤 폭죽처럼 화려하고 아 름답게 터져버리는 그것을 보며 로비탄은 턱을 쓰다듬었다.
“과연 용의 마법이란 저렇게 단순 한 것이라도 이해할 수가 없구나.”
하지만 네청은 고개를 저었다. 영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천영의 손바닥을 살포시 잡고 마나를 홀려 넣었다.
“너는 마나를 다루는 것이 매우 부드러우나 그 움직임이 서툴구나. 조금 더 효율적인 경로를 찾아내 면 좋을 것이다.”
“어렵네요.”
“그리고 너는 서클을 사용했던 ‘과거의 일’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 지금의 너는 드래곤이다. 굳이 마 나를 굴릴 필요가 없으니 그런 비 효율적인 행동은 하지 않아도 좋
“말은 그렇게 하셔도■
애초에 버릇대로 하던 것을 갑작 스레 멈추기란 어려운 일이다. 천 영 또한 이 쓸모없는 마나의 움직 임이 상당히 많은 양의 마나를 낭 비한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쉽사리 고치기는 힘들어보였다.
‘아직도 갈 길이 멀군.’
드래곤이 되었다고 다짜고짜 마 법의 마스터인 것은 아니다. 끝없 이 수련을 하고,공부를 하고 요행 을 거쳐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배울 수 있는 건
행운이지.’
이 자리에 있는 세 명의 인원 모 두 마법에 관해서는 일가견이 있 는 자들이었다. 고작 픽업 트럭 뒷 좌석에 실려 있다는 게 믿기지 않 을 정도로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 들조차 한 수 접어주고 들어갈 정 도로 위대한 존재들. 하지만 그런 그들은 다른 마법사들이 억만금을 갖다 바치고서라도 듣고 싶은 마 법 수업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 었다.
“끄응, 이거…… 너무 골치 아픈 데.”
입체 마법진에 관해서는 네청도
어떻게 해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드래곤만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 들어진 마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 만 네청은 천영보다도 마법에 관 해서 훨씬 뛰어나다. 비록 리스크 없이 입체 마법과 드래곤 하트만 을 믿고 무식하게 달려드는 ‘해킹’ 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만약 천영 과 네청이 서로 봐주지 않고 마법 전을 펼치면 단 5합 안에 천영이 패배할 정도로 그 차이는 명백했 다.
네청이 천영에게 ‘해킹’의 노하우 에 관해 물어보긴 했다. 하지만 천 영은 이것을 네청에게 가르쳐주기
가 곤란했다. 왜냐하면 순간적으로 적의 마법을 강탈하는 마법을 이 용하려면 용언 특유의 입체 마법 진을 응용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마법이란 원의 형태. 그것 을 구의 형태로 접근하면 훨씬 더 장악하기가 쉬워진다. 천영은 그 점을 이용했을 뿐이고 그렇기 때 문에 네청에게 가르칠 수가 없었 다.
그녀는 아쉬워하면서도 천영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가르쳤 다.
여태 천영은 모든 마법을 독학했 다고 볼 수 있었으니 슬슬 입체
마법진에 관해 도저히 진전이 보 이지 않자 자신보다 뛰어난 존재 에게 배우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 에 초등학교부터 다시 배운다는 느낌으로 하나하나 그녀의 기술을 배워나갔다.
네청은 천영에게 자신의 노하우 를 아낌없이 가르쳐주었다. 어떻게 하면 더욱 편리하게 마법을 사용 할 수 있는지 어떤 마법은 굳이 마법진을 전부 그리지 않아도 된 다는 것. 어떤 마법은 시동어 만으 로 발동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그 둘이 사이좋게 손을 붙잡고
마법을 배우고 있자 픽업 트럭의 제일 끝 쪽에서 쩍벌 다리를 한 채로 담배를 뻐끔뻐끔 피고 있던 로비탄이 휘파람을 불었다.
“이야〜 이렇게 보니까 아주 그림 인데? 선녀자매 납셨어.”
빠직,이마에 힘줄을 그린 천영이 로비탄을 쏘아보았다.
“남매도 아니고 왜 자매죠?”
“응? 네청은 여자인데 왜 남매
야?”
“제가 남자니까요.”
그러자 로비탄은 물론이요,네청 까지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천
영을 쳐다보았다.
“야야,잠깐,기다려봐. 드래곤은 성체가 되면 성별을 선택할 수 있 다고 들었는데…… 너 설마 남성으 로 갈 생각이냐?”
“당연한 거 아니에요?”
“안 돼! 절대 안 돼. 아깝잖아,그 얼굴은!”
무엇이 그리고 안타까운지 로비 탄은 턱을 덜덜 떨면서 버럭 외쳤 다. 네청 조차도 천영의 손등을 살 살 어루만지며 그를 달랬다.
“천영,아무리 그래도 그건 옳지 않은 선택인 것 같다.”
“아니 뭐가요……
이들의 반응에 어이가 없어진 천 영이 말문을 잃고 가만히 있자,잠 시 고민하던 로비탄이 손가락을 딱 튀기며 말했다.
“좋아,엄청난 제안이 있어.”
“뭔데요?”
“만약 여성체를 선택하게 되면, 내 신부가 될 기회를 주지. 어때?”
“……차라리 죽을래.”
로비탄은 고개를 갸웃했다.
“나 그래도 꽤 대단한 놈이라고? 후후,만약 내 신부가 되면 매일
밤 황홀한 밤을 보내게 해주지.”
그 말에 천영이 질겁하여 뒤로 슬쩍 물러났다. 네청은 이해하지 못했는지 물었다.
“어떤 황홀한 밤을 보내겠다는 거 냐?”
“아니,잠깐,네청 님 그건……
설마 그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 기에 천영이 다급하게 손을 뻗었 지만 그보다도 먼저 로비탄이 대 답했다.
“매일 밤 나와 ‘갈렌타의 해적’을 하게 해주지! 후후후,어때?”
“흠,과연. 딱 자기만 좋은 ‘황홀 한 밤’이군.”
천영은 정말로 이런 특이한 사람 들 틈에서 평범하게 지낼 수 있을 지 걱정이 생겼다. 그런 천영의 반 응을 보던 로비탄도 아쉬움이 가 득한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깝군. 드래곤만 아니었어도 목 덜미를 물어 종속시킨 다음 강제 로 성별을 선택하게 했을 텐데
그리고 천영 또한 이런 정신 나 간 녀석이 직접 동행하겠다고 할 줄은 몰랐기에 큐브를 만지작대며
한숨을 쉬었다.
‘나 앞으로 잘 할 수 있을까……
그는 바로 어젯밤을 생각했다. 로 비탄과의 게임에서 깨끗하게 패배 했을 때. 비록 게임에서 졌지만 로 비탄이 말했다. 너는 내 마음에 쏙 들었다고. 그 말에 천영은 바로 용 의 큐브를 받을 수 있을 줄 알았 으나 그것은 자신의 고향에 있다 고 한다.
‘지금은 그냥 귀농해서 오두막집 에서 지내고 있을 뿐이었지.’
‘귀농이라기엔,30분 거리에 어마 어마한 규모의 도시가 있는데요?’
‘응? 그거 나 좋다고 따라온 제자 놈이 심심하다면서 바로 옆에다가 도시 세우더니 한 백 년쯤 지나니 까 그 정도 크기 되더라. 원래는 평균 가구 10채도 안 되는 시골이 었어.’
그러고 보면 이곳에 막 도착했던 네청이 그런 이야기를 하긴 했었 다. 이전에 왔을 때보다 훨씬 많이 변해있는 것 같다고. 설마 ‘변했다’ 라는 단어가 그런 것일 줄은 몰랐 다.
“음?”
갑작스레 픽업 트럭이 멈춰 섰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은 한적한 시골길 멈출만한 이유는 딱히 보 이지 않았다. 슬쩍 바깥쪽으로 고 개를 내미니 트럭 운전수가 벌벌 떨면서 앞을 쳐다보고 있었다.
“후후후,멈춰라! 우리 동료들의 복수를 하러 왔다!”
“내 이름은 워니스!”
“내 이름은 투니스!”
“지금부터 우리 팔리 다리에…… 공!
야생적인 사냥꾼 복장을 입고 있 는 남자 2명이 뭐라고 말하며 자 신들의 소개를 하는 것 같았다. 하 지만 로비탄이 가볍게 손짓하자 땅 속으로 꺼지고 말았다. 그대로 구덩이는 꾸물꾸물 대더니 서서히 메워졌다.
“운전수,출발하게.”
“예,앱!”
천영은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빠 르게 발동된 마법이었다. 눈을 동 그랗게 뜨고 로비탄을 쳐다보자 그것을 다른 의미로 생각했는지 그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손을 저
“안 죽였어. 거 참,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종족 아니랄까봐.”
“아,예……
그런 의미로 본 것은 아니지만 하여튼 천영은 고개를 돌렸다. 괜 히 귀찮은 것들이 끼어들어봐야 본인한테도 좋을 것은 없었으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흡혈귀들의 도시, ‘검은 구름이
당신을 지켜보는 밤’은 그리픈 대 륙의 거의 최남단에 위치해 있었 다. 나발카 평원을 관통해 또다시 더 남쪽으로 이동해야만 했을 정 도로 기나긴 루트였다. 하지만 천 영은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가 가 질 수 있는 특권인 텔레포트 게이 트를 두 번이나 사용해 일주일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그곳으 로 이동할 수 있었다.
흡혈귀가 사는 동네라기에 어떤 곳일지 궁금하긴 했었는데 천영은 이곳이 생각보다도 훨씬 더 음침 하고 퇴폐적이지만 오히려 그와 반대로 활기차고 여유가 넘치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시 자체만 보면 흡사 유흥거리가 늘 어져 있는 것 같은 분위기에 길거 리마다 술에 취한 자들이 돌아다 니며 뒷골목에선 마약을 팔고,여 자들이 남자들을 유혹할 것만 같 은 거리였지만 실상 팔고 있는 것 은 빵이나 사과였고 가끔은 딸기 우유도 팔았다.
“꼬마야,너의 허기짐이 내 마음 의 숲을 누비는 듯하구나. 가엾게 도 과일 맛을 모르는 거니? 내게 오거라. 펼쳐진 야자나무 숲과,뛰 노는 원숭이들,그 사이에서 인간 들이 재배한 바나나. 이것에 검은
색의 사랑을 듬북 칠했단다.”
풀어서 말하면 초코 바나나를 팔 겠다는 뜻이다.
-오오,주인. 저기 봐! 바나나에 초코를 칠해서 팔아! 저건 혁명이 야!
“혁명……?”
그냥 대도시만 가도 흔히 보이는 초코 바나나였다. 천영은 초코 바 나나보다도 가게 주인의 말투가 신경 쓰였다. 과일장수뿐만이 아니 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런 시 적인 말투를 사용하고 있었다.
“뭐,보면 알겠지만. 흡혈귀들은
감성이 상당히 풍부한 종족이거든. 그래서인지 도시 이름도 저렇게 개같이 지어놨다만…… 나쁜 건 아 니니까 그냥 그렇게 알아둬.”
그렇게 설명해주는 흡혈귀 중에 서도 상당히 오래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로비탄은 전혀 그런 말 투를 사용하지 않았다.
“귀찮게 왜 그래야해?”
맞는 말이었다.
한참이나 검은 도시를 돌아다니 던 천영은 시끄럽게 떠드는 파트 라슈에게 초코 바나나를 하나 물
려준 뒤 자신의 입에도 하나 물었 다.
거리에는 조각품이나 그림 등의 예술품이 한가득했다. 그것만 따지 고 보면 ‘흡혈귀는 원래부터 예술 적인 종족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 금의 흡혈귀들이 예술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오로지 현재의 ‘왕’이 그랬기 때문이라고 한다.
흡혈귀들은 왕에게 절대복종을 한다. 그리고 그런 왕을 따라 하기 를 원한다. 현재 흡혈귀들의 왕 피 렌체는 화가였고 많은 흡혈귀들이 그를 따라서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멋진 일이구나.”
네청이 그렇게 말했다. 왕이 예술 가이기 때문에 백성들까지 예술을 사랑하게 되다니. 동화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였다.
한참이나 거리를 구경하던 천영 이 말했다.
“우선 숙소를 잡아야하지 않을까
요?”
“그럴 필요는 없어. 우리는 저기 서 지낸다.”
로비탄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은 하늘 위에 펼쳐
진 먹구름까지 닿을 정도로 높이 지어진 거대한 고성이었다. 로비탄 은 담배를 뻐끔대며 말했다.
“저기가 내 집이야. 우린 저기서 지낸다.”
“와우.”
천영은 내심 감탄했다. 로비탄이 오래 살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 만,설마 흡혈귀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계층이 살법한 저런 곳이,그 의 집이라니.
“크크크,어때. 나 옛날엔 나름 부자였다고?”
‘근데 지금은 거지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렇게 말하자 묘하게 로비탄은 시무룩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나저나 내가 막 이 도시를 떠 날 때만 해도 후계자놈 상당히 또 라이였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 네.”
“또라이요?”
“응,약간 미친놈이었어. 나는 그 심상세계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 거든.”
천영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로비 탄은 뭐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걸 어 나갔다. 어쩐지 그와는 반대로
네청은 뭔가가 찜찜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알 수가 없구나.”
“뭐가요?”
“로비탄은,이 도시를 한 번 버리 고 떠난 사람이다. 아마도,저 성 에 살고 있는 현재의 ‘왕’은 로비 탄을 무척이나 싫어하고 있을 것 이다.”
떠나면 떠난 거지 싫어할 건 또 뭔가. 하지만 네청은 눈을 감고 한 숨을 쉬었다.
“하필이면 로비탄이 떠난 시기가 흡혈귀들에게 있어서 가장 혼란스
러운 시기인 ‘대통합’ 때였다. 정말 타이밍 안 좋게 자신만의 길을 찾 겠다며 떠나버린 거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저 아저씨도 상당히 또라이구만. 남말할 처지가 아닐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