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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58화 (57/219)

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58화

신선,가리카케. 그저 평범한 바위 덩어리에 불과했던 그는 하늘의 기 운을 잘 받는 양지에서 천 년 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킨 결과 의지를 가 질 수 있게 되었다. 무생물에서 생 물이 된 아니, 그 이상으로 신선 ‘영물’이 된 정말 드문 케이스 중 하나.

가리카케는 천 년을 넘도록 살아온 생명체답게 경험 또한 굉장히 풍부

했다.

하지만 이곳에 터를 잡은 이후로 저런 무식한 놈은 또 처음 본다. 아 주 오래 전에 ‘약속’을 이어 받고 또 그것을 지키기 위해 별과 호수의 숲에 함부로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세례를 내려주 는 역할을 해오던 가리카케는 그동 안 수많은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자들을 수두룩하게 봐왔다.

압도적인 무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겸손을 알고 있어 마음에 쏙 드는 젊은이도 있었다. 자신과 대화가 썩 잘 통하는 지혜로운 노인도 찾아오 기도 했다. 오랜 세월 수많은 인재

들이 이곳에 찾아와 별과 호수의 숲 에 들어가기 위해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가리카케는 그들 모두 약속 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에 한탄했다.

가리카케는 10m쯤 되는 자신의 거 대한 몸체를 슬쩍 움직여 시선을 내 렸다. 그의 몸체는 바위덩어리나 마 찬가지기에 움직이는 것이 꽤나 힘 들지만,그래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꼬맹이였다. 여태 이런 시련 을 통과한 이들 중에서 저렇게나 어 린 외모를 가진 아이는 없었다. 하 지만 가리카케는 그의 눈빛을 본 순 간 평범한 어린애가 아닌 자신보다

도 훨씬 뛰어난 존재 그리고 자신이 여태까지 기다리고 있던 존재가 드 디어 왔음을 직감했다.

‘그래,내가 여태 기다리던 놈인 건 다 좋은데……

왜 하필 저런 무식한 놈인 거냐!

온몸이 흙투성이에 머리카락 또한 산발인 채로 헤헤 웃고 있는 저 꼬 맹이는 그야말로 무식하기 짝이 없 었다.

시련이람시고 던전을 만들어 놓으 니 그걸 다 때려 부수고 올라오질 않나 함정이라고 준비한 것들은 모 조리 마법으로 엮어버린 다음 지나

치고 환영으로 가짜 문을 만들어서 혼동하게 만들어놨더니 그것들 또한 모조리 박살내고 올라왔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시련을 전부 어처구니 없게 통과해서 올라오더니 대뜸 하 는 말.

“세례 주세요.”

어쨌든 오긴 왔으니 안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심지어는 ‘용의 아 이’로 보이는 것이 약속된 그 놈이 맞는 모양이고.

하는 수 없이 카리카케는 시련을 통과해서 올라온 자들에게 으레 묻

는 질문을 던졌다.

“용기의 방에서 그대는 무엇을 느 꼈는가?”

“모조리 박살내면 된다고 생각했습 니다.”

“지혜의 방에서 그대는 무엇을 느 꼈는가?”

“몸이 안 좋으면 머리가 고생한다 고 생각했습니다.”

“임기응변의 방에서 그대는 무엇을 느꼈는가?”

“그냥 모조리 박살내면 애초에 임 기응변이 필요할 일이 없다고 생각 했습니다.”

“무(武)의 방에서 그대는 무엇을 느꼈는가?”

“난 역시 굉장해.”

아이구야.

가리카케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돌 부스러기가 후두둑 떨어진다. 여러 의미로는 굉장한 놈이었다. 과연 예 로부터 드래곤은 절대 평범하지 않 은 종족이라고 했다. 태어나기 이전 부터 또는 드래곤이 되기 이전부터 범인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많은 역경과 고난, 시련을 거쳐서 마침내 ‘용’이 된 그들은 이미 정상인의 범 주에 넣기는 힘든 자들이라고 했다.

막상 카리카케만 해도 직접 용의 아 이를 만나본 것은 처음이지 않는가.

‘용이란 놈들은 원래 다 이런 놈들 뿐인가?’

물론 그럴 리가 없다. 천영은 지금 드래곤의 이미지를 완전히 깎아내리 고 있었다.

“후우…… 그래,어쨌든 통과는 했 으니 세례는 주도록 하마. 너는 이 것으로 ‘별과 호수의 숲’에서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가리카케는 팔을 쭉 뻗었다. 거대 하고 두꺼운 바위덩어리가 움직이자 우드드드 하며 어마어마한 굉음이

울렸다.

천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바위덩어리로 만들어진 손 가락이 자신의 머리를 꾹 누르자 그 는 얼굴을 찡그리고 이마를 붙잡았 다. 하지만 이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자 눈을 감고 그 기운을 받아들였다.

“이만하면 됐다. 너에게는 딱히 세 례가 필요할 것 같지도 않군.”

그렇게 말하며 가리카케가 손을 떼 자 천영은 헝클어진 머리칼을 정리 했다.

“숲에 가 보거라. 길이 보일 것이

다.”

그리 말한 뒤 팔을 휘이 젓자,천 영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그대로 뒤 돌아 밖으로 빠져나갔다. 천영이 사 라진 것을 확인한 가리카케는 자리 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 다음 구석에 쪼그려 앉은 가리카케는 망 가진 자신의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 다.

“내 집……

별과 호수의 숲에는 왜 그런 이름

이 붙어 있을까? 숲 안쪽에 자그마 한 호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 면 큰 오산이다. 별과 호수의 숲은 태초부터 ‘단 한 그루의 나무’로 이 루어진 숲이다. 어떻게 한 그루의 나무로 숲이 만들어 지냐고 묻는다 면 그냥 그렇다고밖에 대답할 길이 없다.

단 한 그루. 그것뿐이지만 그 나무 의 크기는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라 고 불릴 정도로 그 크기가 어마어마 했다. 지름 50km,높이 측정 불가능. 다만 과거의 전쟁에 의한 여파로 기 둥이 무너져 내려 현재에 와서는 높 이가 l,000m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그 무너진 나무의 위쪽이 움푹 파여 있는데 그 부분에 몇 백년간 물이 고이고 고여 호수를 이루었고 나무 에서 솟아나오는 생명의 기운에 의 해 수많은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거대한 나무 기 둥 위에 거대한 호수가 있다는 소리 다. 그 호수는 어찌나 거대한지 하 늘의 별자리를 모두 담을 수 있을 정도였고 그 별자리에 따라 나무의 ‘내부’ 환경이 달라진다고 한다.

무너진 나무,그 내부가 바로 천영 이 향하는 목적지였다. 별과 호수의 나무 안쪽에는 수많은 작은 나뭇가

지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고작 나뭇 가지일 뿐이지만 이 또한 어지간한 고목(古木) 저리가라 할 정도로 거 대했으며 평범하게 자라지 않은 나 무인 덕분에 방향성 없이 이리저리 마구잡이로 솟아나 있었다.

게다가 별자리에 따라 내부의 길이 변화하는데다가 침입자를 판별할 줄 알아 무단으로 누군가가 들어오면 내부에 가둬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 하게 만든다고 한다.

과거 ‘용의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 에 찾아와 빠져나가지 못했고 그 이 유 때문에 영물들이 나발카 평원에

자리를 잡아 ‘세례’를 주는 것으로 인정받은 자들에 한해서 숲을 탐험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나도 이곳을 직접 와본 것은 세 번 뿐이다.”

“어땠나요?”

“아름다운 곳임다. 근데 보물은 없 담니 다.”

돌쇠가 실실 웃으며 말한다. 천영 은 보물이라는 단어를 되새겼다. 모 두 헛소문일 뿐이지만 천영 한정으 로는 진실이었으니까.

“세례를 받았으니 숲이 가로막을 일도 없다. ‘숲의 길잡이’인 돌쇠도

함께하니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다만 이 안에서 자네가 찾을 만한 뭔가가 있을지,나는 솔직히 의문이 로군.”

말 레프로스는 솔직히 천영에게 ‘천둥대괴조’의 처치를 대가로 숲에 들여보내준다고 했을 때 그가 거절 할 줄 알았다. 왜냐면 별과 호수의 숲에는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말 레 프로스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라면 천둥대 괴조 쯤이야 손쉽게 처리할 수 있겠 지만 그래도 위험 부담을 감수할 정 도는 아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제 안을 건넸지만 천영이 고민도 하지

않고 수락하는 바람에 조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천둥대괴조는 왜 잡으시는 건가

요?’

‘.내 삶의 낙이 되는 사냥꾼들

이 다쳐봐야,내게 좋을 것은 없다.’

그녀의 그 말을 듣고 천영은 흔쾌 히 수락했고 결국 여기까지 와버렸 다.

“들어가 보면 알겠죠.”

정말 거대한 나무 뿌리였다. 천영 은 성큼성큼 뿌리 사이에 사람의 흔 적이 조금 나있는 길목을 통해 진입 했다. 내부는 정말로 ‘숲’이라고 표

현할 수 있을 정도로 초록색의 향연 이었다. 그저 초록색만 가득했다. 다 른 생명체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알록달록하고 예쁘장한 야생 동물이 사는 그런 장소는 바라지 않 았지만 설마 이 정도로 식물의 기운 밖에 느껴지지 않을 줄은 몰랐다.

“이곳은 감각을 모두 차단한다. 아 마 자네라고 해도 쉽게 쉽게 이곳을 통과할 수는 없을 것이야.”

말 레프로스가 그렇게 말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 숲에서 벌써 30년이나 살아온 오우거 돌쇠조차 도 번번이 길을 잃기도 하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세 번이나 이곳에

찾아왔던 말 레프로스 또한 어지러 이 규칙이 없는 이곳에서 결국 아무 것도 찾지 못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 었다.

‘보물 따위는,헛소문이지.’

과거부터 별과 호수의 숲에는 한 가지 소문이 돌고 있었다. 용이 남 겨둔 보물이 존재한다!

그러나 말 레프로스는 별과 호수의 객잔주인 만큼 한 가지를 더 알고 있었다. 용과 약속된 누군가가 이곳 을 찾아온다면 숲이 스스로 문을 열 고 길을 틀 것이리라. 하지만 말 레 프로스는 그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 각했다. 용은 이미 천 년도 더 전에

자취를 감추었고 그런 존재와 약속 할 만한 존재는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녀는 천영이 찾아왔을지라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뭐지?”

말 레프로스가 멍청한 감탄사를 뱉 었다.

숲이 길을 열고 있었다. 나무들이, 뿌리가,초록빛이 그 모든 것들이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며 길 을 만들었다. 천영이 쉽게 지나갈 수 있도록. 천영이 오기만을 기다렸 던 것처럼. 천영을 감히 방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이,이건 말도 안 됨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 다.”

30년이나 숲에서 살아온 돌쇠조차 눈을 부릅뜨고 숲을 노려보았다. 이 곳의 주민이나 다름없는 돌쇠에게조 차 보이지 않던 길이 난생 처음 찾 아온 천영을 위해 열리고 있는 것은 정말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말 레프로스는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꼈다. 말 레프로스 즉 ‘레프 로스’가문은 선조부터 대대로 이 숲 을 지켜왔다. 약속된 누군가가 이곳 을 찾아오는 것을 기다리며 사냥꾼

들에게 쉼터를 제공한다는 명목 하 에 언젠가 찾아올 누군가가 잠시 쉬 어갈 장소를 마련해주기 위해.

하지만 몇 세대가 지나도록 그 존 재는 찾아오지 않았고 그저 선조들 이 만들어낸 전설 속 이야기일 뿐이 라고 생각했다. 말 레프로스는 현실 적인 여자이다. 그런 허구의 이야기 따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누구보다도 현실적 이었기 때문에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 아이가 오래 전부터 약속되어왔던……

별과 호수의 숲이 스스로 길을 열 어줄 것이다.

그런 문장이 있다. 소설의 한 글귀 또는 시집에나 실려 있을 법한 불가 능한 문장.

천영은 그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 어 숲이 스스로 길을 열고 있는 것 이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성큼성큼 걸어 나가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그의 표 정을 보며 말 레프로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생각보다도 더 굉장한 귀인이다. 애초에 제안 따위를 하는 게 아니었

자신의 땅에 자신이 직접 찾아가겠 다는데 거기다 대고 몬스터를 처치 해달라는 제안을 해버리다니. 살면 서 해왔던 그 어떤 거래보다도 부끄 러운 거래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 만 천영은 그조차도 마음에 담아두 지 않고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대인배였던 것이다.

한참을 걸었다. 숲은 넓었고 갈 길 은 멀었다. 하지만 말 레프로스와 돌쇠는 묵묵히 천영의 뒤를 쫓았다. 이 여정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숲은 한 걸음마다 그 모습이 변화했 고 그것은 살면서 본 어떠한 것들보

다도 아름다운 빛을 내며 천영을 반 겨주고 있었다. 이 숲이 천영 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이 위대 한 발자취를 몇 발자국 뒤에서 쫓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영광스러 웠다.

우뚝.

천영이 멈춰 섰다. 넝쿨이 가득 내 려앉은 공간이었다. 하늘에서 웅웅 대며 노란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어 느덧 해가 중천에 떴는지 구멍이 송 송 뚫린 나무기둥 사이로 햇살이 스 며들어왔다. 전혀 눈부시지 않았다. 말 레프로스는 그저 가만히 천영이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천영은 허공에서 정체를 알 수 없 는 큐브를 꺼내들더니 허공에 둥둥 띄웠다. 그러자 스스로 사락사락 소 리를 내며 돌아가던 큐브가 점차 하 늘 위로 떠오르더니 숲의 한 가운데 에서 작은 빛이 터져 나왔다.

‘저게,설마……

너무나도 알기 쉬운 장소에 놓여 있었다. 그저 길 한복판에 뎅그러니 놓여 있는 것처럼 저 ‘큐브’는 그저 그렇게 오래 전부터 가만히. 움직이 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하지만 그 누구도 발견할 수 없도록. 오로 지 천영을 기다려왔던 그 큐브가 하 늘로 둥실 떠올라 천영의 큐브와 부

딪혔다.

드르륵,드록!

서로 맞물리고,겹쳐지고,합체되더 니 이윽고 하나가 된 큐브가 천영의 품에 돌아왔다. 숲의 빛이 더욱 진 해졌다. 알록달록한 빛을 내던 숲은 진한 노란색으로 바뀌어갔고 말 레 프로스는 그것이 ‘정령의 기운’이라 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이렇게 농도가 짙은 정령의 기운 이라니…….,

말 레프로스는 돌쇠와 함께 한 발 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정령의 기운이 기다렸다는 듯 천영에게 밀

집되기 시작했다. 마치 스펀지에 스 며드는 물 마냥 천영에게 스며들기 시작하는 정령의 기운은 그야말로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농도가 진했다.

‘대체 어떤 정령을 소환되려고 하 기에……

변화는 천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말 레프로스는 간신히 눈치첼 수 있 었다. 천영의 키가 아주 미세하게 자라났고 머리칼이 더 길어졌으며 이목구비가 더욱 성숙해지고 아직 어린애 같았던 젖살이 조금씩 빠지 고 있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 어떤 방법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말 레프

로스는 천영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 실을 알았다.

한참이나 눈을 감고 정령의 기운을 만끽하던 천영이 눈을 뜨고 손바닥 을 바라보았다. 말 레프로스는 그제 야 눈치 첼 수 있었다. 그곳에는 금 색의 아주 자그마한 정령 하나가 잠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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