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56화
14장 별과 호수의 객잔
지상낙원을 상상해본 적 있는가?
모든 생명체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장소. 푸르른 초원 과 허공을 수놓는 아름다운 꽃봉오 리,그곳에서 흘러내리는 맑고 투명 한 꿀과 그것을 마시며 자라나는 곤
충들. 하늘에는 금가루를 흩뿌리며 다니는 작은 새의 무리가 있었으며 들판에는 듬성듬성 빌딩만한 높이의 초록색의 식물이 드높이 자라 있다. 거기에 허공에 두둥실 떠있는 거대 한 3개의 바위에서는 끝없이 폭포가 떨어져 내리는데 그것이 모여 호수 를 이룬다.
이곳은 나발카 평원.
멀리서 보면 낙원 가까이서 보면 지옥인 장소.
공중에 저 혼자 떡하니 떠서 날아 다니던 꽃봉오리는 꿀 냄새를 맡고 접근하는 생명체를 가차 없이 집어 삼켰으며 작은 새가 흩뿌리는 금가
루에 몸을 오래 노출시키면 중독 증 세가 나타난다. 하늘에 떠있는 절벽 위에는 거대 괴수가 자리하고 있었 으며 호수의 아래에는 식인 물고기 가 떼거지로 몰려다닌다. 곤충들 또 한 그 크기가 상상을 초월하여 인간 따위는 다리 한쪽으로 우습게 부러 뜨릴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이곳엔 희귀한 생명체가 많다. 나발카 평원 곳곳에 는 쉽사리 볼 수 없는 이종족이 터 전을 잡고 살아가고 있었으며 사냥 꾼들 또한 일확천금을 노리기 위해 하루에도 수백 명씩 이곳을 왕복한
덕분에 생겨난 장소가 ‘별과 호수 의 객잔’이다. 나발카 평원 한가운 데에 떡하니 세워진 별과 호수의 객 잔은 수많은 사냥꾼들이 쉼터로 사 용할 수 있도록 그 출입에 제한이 없었으며 종족 또한 가리지 않는다. 범죄자도 상관없고 식인 종족도 상 관없다. 그저 객잔 내에서 행패만 부리지 않으면 누구든 0K라는 조 건으로 이용이 가능한 곳.
우르릉,콰쾅!
“으아아! 젠장,또 천둥치네.”
“빨리빨리 들어가세. 난 저 놈들
귀찮아서 안 되겠어.”
나발카 평원에 소나기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반드시 천둥벼락이 동반한 다. 지면이 패이고 나무가 사방에서 불타오르는 벼락이 마구 내리치는데 이것은 자연 현상보다는 나발카 평 원에 소나기가 내릴 때면 항상 출몰 하는 ‘천둥괴조’의 영향이 더 컸다. 비를 맞으면 힘이 솟아나는 거대한 괴조들인데 심지어 번개 속성의 마 나까지 다룰 줄 알아 사냥꾼들로서 는 상당히 귀찮은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덕분에 나발카 평원에 비가 내리는 날이면 별과 호수의 객잔은 언제나
사냥꾼들이 붐빈다. 천둥괴조는 상 당히 상대하기 귀찮은 존재인데다가 잡아봐야 손해가 더 크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수많은 사냥 꾼들이 사방에서 객잔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객잔 내부에 있는 술집은 금세 가득 차서 북적이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하늘 때문에 축 쳐진 분위기였지만 이들은 하루하루를 유 쾌하게 살아가기를 원했기에 그런 것을 원치 않았다. 억지로 웃고 떠 들며 대낮부터 술을 들이키는 모습 은 썩 보기 좋았으나 그들의 얼굴에 는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결국 누군가가 그 주제를 꺼냈다.
“근데 말이야. 요 근래에 들어서 천둥괴조가 유난히 난리법석이지 않 은가?”
이 말을 꺼낸 사냥꾼은 나발카 평 원에 온지 얼마 안 된 신참이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객잔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 자가 신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그 점 때문에 저 이야기를 꺼 낸 것에 대해 별 달리 지적을 하진 않았다.
“자넨 모르는 모양이군. 나발카 평 원에는 몇 년에 한 번씩 이런 때가 찾아오거든.”
“천둥괴조가 저 난리를 피우는 게 주기적으로 있었던 일이라고?”
“그래,요 10년간 잠잠하기에 괜찮 을 줄 알았더니…… 아무래도 ‘천둥 대괴조’가 깨어난 모양이야.”
크흠,흠흠. 다른 사냥꾼들이 헛기 침을 내뱉었다. 듣기 싫은 주제가 나와 버렸지만 이미 객잔 내부는 조 용해진지 오래다. 오로지 저 사내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이 남자는 이야기를 꺼낸 참에 끝까지 말할 참 이었다.
“천둥대괴조라 함은.. 천둥괴조
의 어미새 같은 존재인가?”
“비슷하지만 약간 다르지. 여왕벌 같은 존재라고 보면 된다. 가장 강 한 천둥괴조가 우두머리를 차지하거 든. 그리고 천둥대괴조가 태어나면 천둥괴조들이 힘을 얻고 날뛰기 시 작하지. 백 년 전 ‘천둥거대괴조’가 깨어났을 땐 일 년 내내 소나기와 천둥벼락이 그치지 않은 적도 있었 다고 한다.”
그리고…….
“……천둥대괴조가 출몰하면,별과 호수의 객잔에 등록한 모든 사냥꾼 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그놈을 잡 으러 가야한다.”
“뭐어?”
그 신참 사냥꾼은 잠시 놀라더니 이내 뭔가를 떠올렸는지 표정을 일 그러뜨렸다.
“그러고 보면 그런 조항을 본 것 같기도……
“신경 안 썼을 게 뻔하지. 그런 처 음 들어보는 몬스터,나도 지나쳤으 니까.”
“……대체 왜 사냥꾼들이 그걸 잡 는 거유?”
“‘왜’는 중요하지 않아. 아무튼 잡 아야한다는 거지.”
끙,신참 사냥꾼이 표정을 굳히자 다른 사냥꾼들 역시 떨떠름한 얼굴 로 술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객잔에 는 사냥꾼뿐만이 아니라 여행객이나 떠돌이 용병,마법사,상인 등등이 있었는데 그들은 이 사실에 대해 모 르기 때문에 서로서로 쑥덕거리기에 바빴다.
“생각해보면 그건 다 옛 조항이란 말이야. 이제 와서 우리가 그걸 잡 아야할 이유가 있나?”
“이유라면 있지. 우리가 놈을 잡지 않으면 또다시 재앙이 닥친다. 나발 카 평원의 수많은 부족들이 천둥괴 조들의 습격에 목숨을 잃고 인근에
있는 인간들의 마을 또한 위험해.”
“흥. 정의의 사도 납셨네. 그렇다고 우리 목숨 바쳐가며 싸워? 저기 라 폴탄 안 보여? 벌써 30년이나 나발 카 평원에서 살아온 베테랑인데 10 년 전 천둥괴조에게 물려 한쪽 팔이 잘렸다구.”
그들의 대화에 표적이 돌아온 라폴 탄이라는 남자는 자신의 텅 비어있 는 팔을 딱히 숨기진 않았다. 다만 씁쓸한 표정으로 독한 술을 홀짝였 다.
“그때에도 쟁쟁한 사냥꾼들이 얼마 나 죽고 불구가 되었는지 알잖아?”
“그렇다고 천둥대괴조가 탄생할 때 까지 내버려두면 더 위험해진다고!”
“쳇,몰라. 난 여기서 그냥 나가겠 어.”
“이봐 자네는 돌아갈 곳이 있어서 그렇게 태평한 소릴 하겠지만 나는 근처에 가족이 살고 있다구!”
하나둘 사냥꾼들이 자신의 의견을 던지기 시작했고 그것은 눈 없는 화 살이 되어 마구잡이로 쏘아졌다. 이 곳에 잠시 머무르기 위해 찾아온 용 병들과 마법사들 또한 논쟁을 벌이 기 시작했고 사제들까지 합세하니 ‘윤리적으로……‘우리가 그래야할
이유는 없……‘너는 피도 눈물도 없냐 이 개자식……등등으로 싸 움이 번져버렸다.
비록 몸싸움을 시작하면 ‘객잔주’ 가 직접 나서서 싸음을 중재하는 통 에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 지만 당장 소나기가 그치면 각자 무 기를 꺼내들고 밖으로 뛰쳐나가서 결투를 벌일 기세로 사람들의 언성 이 높아졌다.
“개죽음을 당하려면 너나 가서 죽 어!”
“맞아!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 놈을 뭔 수로 잡으라고! 젠장! 나는 근접 격투를 주력으로 배웠단 말이다.”
“우리는 무슨 수가 있는 줄 알고! 그래서 천둥대괴조를 잡기 위해 마 법사를 고용하는 거 아니겠냐고.”
“그 마법사들 지키려다 몇 놈이 죽 어나갈지도 의문인데.”
결국 말다툼의 결과는 한쪽으로 치 우치는 듯 했다.
“흥,우리는 이 나발카 평원이 불 바다가 되든 천둥바다가 되든 알 바 없다. 젠장할,그냥 고향으로 돌아가 야겠……
그 순간이었다. 사냥꾼들이 천둥대 괴조를 처치하는 것에 대해 회의감 을 느껴 그 모든 것을 포기하자는
결론을 내리려는 순간 구석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테이블을 넘어뜨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까지 몸을 과격하게 쓴 사람은 없어서 그 소리는 꽤나 요란하게 들렸기에 사 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곳에는 자그마한 소녀 또는 소년 으로도 보이는 아름다운 아이가 있 었다. 보는 순간 지금까지 격렬하게 논쟁을 벌여왔던 주제에 대해 망각 할 정도로 넋을 잃게 만드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그 아이. 흑단 같은 긴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늘어 뜨린 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홀 리고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도 서러웠던 것일까, 무엇이도 그렇게 슬폈던 것일까. 녹 아내릴 것 같은 금색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뚝 떨어져 나와 새하얀 턱 선을 타고 흐르더니 테이블에 똑 떨 어져 내렸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가슴 이 미어졌다. 저 아이는 왠지 모르 게 감정을 공유하게 만드는 힘이 있 었다. 저도 모르게 저 아이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니 심장이 아파왔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그치게 해주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는 것이 천추의 한이 될 정도로. 평소 남들에게 감 정을 주지 않는 것을 신조로 삼는
사냥꾼들 또한 냉랭했던 심장이 녹 아내렸고,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안 전을 추구하려던 사냥꾼 또한 원인 모르게 양심이 아파왔다.
‘혹시 우리들이 천둥대괴조의 사냥 을 포기한 탓에?’
천둥대괴조의 사냥을 포기하자고 생각했던 사냥꾼들은 뉘우쳤다.
‘아,내가 무슨 생각을……
‘저 아이는 이 근방에 사는 아이인 걸까…….,
‘천둥대괴조가 나타나서 우리만을 믿고 이곳까지 찾아왔을 텐데……
‘그런데,그런데 우리는 저런 아이
조차 몰라라 내쳐두고 도망치려 고……
테이블 위에 손을 얹어놓고 눈물을 흘리던 그 소년은 갑작스레 어딘가 로 도망쳤다. 뒤늦게 현실을 상기해 낸 사냥꾼들은 큼큼 헛기침을 내뱉 으며 말을 꺼냈다.
“그래,이번 한 번만…… 참여해보 도록 함세.”
“젠장. 나는 처음부터 그런 건방진 참새놈 잡으러 가려고 했었다고.”
“저런 아이도 살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오는 마당에 우리가 도망칠 수 는 없지.”
하지만 이 객잔에 있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저 소년의 테이블 위에 올려 있는 음식이 ‘받아라! 핏빛 지옥불 스파 게티 3연타!’라는 이름의 메뉴라는 것을.
“헤엑……
천영은 혀를 길게 내빼고 구석에 눌러 앉아 차가운 바람을 입 안에 집어넣었다. 정말 죽어버릴 정도로
고통스러운 맛이었다. 애초에 이름 부터 ‘지옥불’이나 ‘핏빛’이 들어갈 때부터 알아봤어야 한다. 나름대로 한국인이람시고 매운맛엔 익숙하다 고 생각하여 주문했는데 이건 정말 그냥 지옥으로 보내버리겠다고 작정 하고 만든 음식이 틀림없다고 생각 했다.
“젠장,이건 다 눈깔이 노랗게 변 해서 한국인 버프가 사라진 탓이 야.”
화장실 앞에 쪼그려 앉아 멍하니 혀를 식히고 있는데 점원이 천영에 게 다가와 볼에다가 푸른색 별무늬 스티커를 붙여줬다. 입안의 열기를
식혀주는 물건이라고 한다. 그러고 선 소스통 같은 것을 꺼내들었다.
“혀를 쭉,내빼세요.”
점원의 그 말에 천영은 그녀를 물 끄러미 올려 보았다. 그 시선을 받 은 점원은 어쩐지 안절부절 하는지 무릎을 꿇고 앉아서 천영과 시선을 맞췄다. 그제야 뭔가 안심이 된 천 영이 혀를 내밀자 그곳에 새하얀 물 방울을 몇 방울 떨어뜨렸다.
“으,차가.”
그것을 입안에 머금고 몇 초 지나 자 고통스러웠던 혀가 서서히 가라 앉는 것이 느껴졌다. 가끔 뭣도 모
르고 저 음식에 도전하는 손님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치료제라고 한 다. 하지만 고작 이 정도로 사라질 매운맛이 아니었기에 천영은 여전히 썩은 표정을 유지한 채 혀를 손가락 으로 꾹꾹 눌렀다.
“……저기 저도 만져 봐도 돼요?”
“네? 뭐를요?”
“아,아무것도 아녜요!”
이상한 여자네. 천영은 그녀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으려다가 복장을 보고선 눈빛이 반짝였다. 어디서 많 이 봤다 했더니 지구의 차이나 드레 스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혹시 객잔주가 지구인?”
“에? 아닙니다. 저희 객잔주 말 레 프로스 님은 이 객잔을 이어 받은 지 벌써 10년이나 되셨는걸요.”
“엥? 그럼 그 복장은……
점원은 자신의 복장을 내려 보더니 미묘한 웃음을 홀렸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리픈은 유독 차원 경계가 허술했거든요. 그 여파 로 여러 차원에서 수많은 사람이 건 너왔는데 저희 말 레프로스 님의 오 랜 조상님이 지구인이라는 소문이 있어요. 아마 그 영향이지 않을까
요?”
그러고 보면 아주 먼 과거에 드래 곤이 지구에도 그 손길을 뻗쳤던 가 능성을 생각하면 아주 가능성이 없 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천영은 점원 의 차이나 드레스를 보다가 방금 전 끝까지 다 먹지 못한 음식을 떠올렸 다.
“그러고 보면 음식 쏟으니까 사냥 꾼 아저씨들 막 입 다물고 노려보던 데 여긴 음식 남기면 벌 받는 풍습 이라도 있는 건가?”
천영의 그 말에 점원은 어쩐지 어 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 참,객잔주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혹시 만나볼 수 있을까요?”
“네? 그 저희 객잔주님은 아무나 독대하시지 않는……
그 즉시 천영은 왼쪽 팔목을 걷어 냈다.
“저 이런 사람이니까. 만나게 해주 세요.”
“앗,네.”
점원은 허둥지둥 대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앞서가기 시작했다. 천영 역 시 뒤따라서 계단을 몇 층 정도 타 고 올라가자 중국풍에 가까운 하지 만 조금 중세 느낌이 섞여있는 고급
스러운 문이 나타났다.
“말 레프로스 님,금색 별 마탑에 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들여보내거라.”
생각보다도 꽤 젊고 꽤 우아하고 꽤 아름다운 목소리가 홀러나왔다. 귓가를 청량하게 울리는 여인의 목 소리였다. 점원은 옆쪽에 서서 문을 조심히 열었고 천영이 안쪽으로 들 어가자 닫혔다. 점원이 멀리 사라지 는 발소리가 들린다.
“어서 오시게 금색 별 마탑에서 손 님이 찾아온 적은 정말 드문 일이 라.”
말 레프로스는 한 마디로 말해서 우아한 여인이었다. 객잔이 워낙 중 국풍이라 이 여인 역시 동양인에다 가 차이나 드레스를 입고 있을 줄 알았는데 외모는 오히려 서양 쪽에 가까웠다. 복장 또한 발목까지 닿는 펑퍼짐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너 무 사치스럽지 않게 그러나 너무 싸 게 보이지 않게. 적당히 자신을 내 세울 수 있도록 그러나 얕보이지 않 도록.
시가를 한손에 들고 있던 그녀는 천영이 들어오자 급하게 불을 비벼 서 꼈다. 척 봐도 비싸 보이는 시가 였건만 예의를 차리기 위해서인지
망설임 없이 버린다. 그러나 여전히 은은한 시가의 향기가 내부에 남아 있자 말 레프로스는 자리에서 일어 나 우아한 손짓으로 창문을 활짝 열 었다. 시원하고 습기 가득한 바람이 느껴진다.
“앉으시게.”
“예.”
묘하게 무거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 기 때문에 천영은 조금 자세를 단정 히 했다. 왠지 압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뭐지,귀족인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말 레프로
스의 몸짓 하나하나에는 기품이 깃 들어 있었다. 도저히 야생적이고 자 유분방한 사냥꾼들이 머물다 가는 객잔의 주인이라고 보기는 힘들 정 도로. 무겁게 내려앉은 분위기에 천 영이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자 말 레프로스가 먼저 작은 웃음을 터뜨 렸다.
“아무래도 이번 신제품을 맛본 모 양이구려.”
“예? 아……
천영은 그제야 자신의 눈가에 아직 눈물이 조금 맺혀있는데다가 뺨에 별무늬 스티커가 붙어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허겁지겁 스티커를 떼어
냈지만 이미 늦었다.
“하하하,요리사들이 워낙 강력하 게 추천하는 바람에 메뉴에 추가하 긴 했다만 아무래도 글러먹은 모양 이군. 내 당장 빼도록 말해보겠네.”
그녀의 말에 천영은 고맙다고 해야 할지 가만히 있어야할지 알 수가 없 었다. 어차피 이 객잔에 찾아올 일 도 거의 없을 텐데.
"최연소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라. 소문으로는 익히 들었네."
"그런가요;
설마 이런 외지까지 소문이 퍼질 줄은 몰랐다. 천영의 존재를 정말
많은 사람이 알게 됐다던가 혹은 별 과 호수의 객잔의 정보력이 뛰어난 덕분일 수도 있다. 어쨌든 천영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직접 찾아온 이유가 뭔가?”
근처에서 주전자를 꺼내온 말 레프 로스는 천영에게 초록빛을 띈 차를 건넸다. 언뜻 보면 녹차처럼 보이지 만 그 분위기만 비슷할 뿐 향이 많 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천영은 그 차를 받아서 양손으로 잡 아 조금 홀짝인 다음 말했다.
“찾는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 찾는 것이라 함은?”
“……이곳의 토템이나 마찬가지인, ‘별과 호수의 숲’에 출입하고 싶습 니다.”
별과 호수의 숲,아주 오래 전 드 래곤이 보물을 숨겨두고 사라졌다는 전설이 내려져 오는 곳. 별이 눈을 반짝이는 밤에는 나무들 역시 그 별 빛을 따라 움직이고 호수에는 별자 리가 그대로 새겨진다는 말이 있는 곳이지만 ’별과 호수의 미로’라고 불리는 장소이다. 숲이 스스로 의지 를 가지고 움직이는 턱에 그곳에 함 부로 발을 들였다가 빠져나올 수 있 는 자는 몇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어린 드래곤이라 할지 라도.
말 레프로스를 찾아온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천영이 찾는 물건은 당 연하게도 ‘수호의 정령’이 봉인되어 있는 큐브를 찾기 위해서이다. 하지 만 천영은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 알 수 있었다. 악명 높은 별과 호수의 숲에 그 큐브가 보관되어 있다는 사 실을. 그래서 이렇게 직접 객잔까지 찾아온 것이고.
“흐음……
별과 호수의 숲에 보관되어 있는 보물은 사실상 전설로 내려올 뿐이
고,그것을 찾은 사람은 여태 단 한 명도 없다.
‘왜냐면 헛소문이니까.’
드래곤이 드래곤에게 물려주는 큐 브는 보물 따위가 아니다. 다른 누 군가가 집으면 그저 쓸모없는 돌덩 어리가 될 뿐이다. 하지만 드래곤이 왔다갔다는 것 하나만으로 저 장소 는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되기 충분 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 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그곳이 우리 별과 호수의 객잔을 상징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 나?”
“……일단은 그렇습니다.”
말 레프로스의 선조는 이 별과 호 수의 숲을 대대로 관리해왔다고 전 해진다. 얼마나 오래 전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맥이 지금까지 이 어져 말 레프로스의 세대까지 닿은 것이고. 천영은 지금 당당하게 그곳 에 출입해서 뭔가를 찾고 있다고 말 하고 있는 것이다.
말 레프로스는 입을 다물고 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천영은 그것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별 대수롭 지 않다는 듯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 다.
“좋네. 하지만 장소가 장소인 만큼 나도 조건을 하나 걸어야겠어.”
“조건이라면 어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숲에 다녀온 뒤,‘천둥대괴조’를 처치해주게. 이게 내 조건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