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 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34화 (33/219)

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34화

9장 드래곤의 약속

“야채 호빵에서 야채 빼고 주세

요.”

그것이 10분 내내 호빵을 보며 고 민하던 작은 소년이 내뱉은 주문이 었다.

호빵 장사 경력 17년차 동네 사람

들에게 호빵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베이커리 호’는 적잖게 당황했다. 살면서 이런 황당한 주문은 처음 받 아본다.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다시 말해줄 수 있겠니?”

“야채 호빵에서 야채 빼고 주세 요.”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흑발의 긴 생머리에 금색 눈동자를 가진 소 년은 꿋꿋한 표정으로 그리 주문했 다. 장난이 아니라는 둣 또렷한 눈 빛을 내보이는 소년의 주문에 베이

커리 호는 결국 야채 호빵에서 야채 를 빼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야채 호빵에서 야채를 빼면 남는 건 빵밖 에 없다.

“가격은 똑같이 받을 거란다.”

“괜찮아요.”

그렇게 야채 뺀 야채 호빵이 4개 들어있는 봉투를 받아든 소년,천영 은 호빵을 하나 집어 들고 입에 물 었다. 상당히 작은 입이었기에 많이 물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행복한 표정으로 그것을 마구마구 먹고 있 자 안시르엘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오빠,취향 특이해.”

“나도 알아,”

“왜 그렇게 먹는 거야?”

“한 번쯤은 이렇게 먹어보고 싶었 거든.”

그의 말에 셀라임은 양손 가득 들 려있는 간식 더미들을 슬쩍 보았다 가 다시 내려놓았다. 봉투 한 가득 들어있는 이것들은 천영이 로드웰 아카데미를 사방팔방 누비고 다니며 구입한 간식들이었다.

순식간에 야채 호빵을 모두 위장 속에 집어넣은 천영은 포장되어 있 던 별모양 솜사탕을 잡았다. 손으로

하나씩 하나씩 솜사탕을 떼어먹는 그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한 모습은 여느 또래의 어린아이처럼 보였지만 그 속내가 굉장히 새까맣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매력적인 외모에 잠깐잠깐 혹하는 것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 는 것이리라.

“그나저나 여기 신기한 거 되게 많 다.”

셀라임은 로드웰 아카데미 전역에 퍼져있는 신비로운 마법의 향연들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늘 높 이 건물들 사이를 굴러다니며 스스 로를 조각내서 맞추는 큐브 덩어리

나 풍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비가 오면 하늘을 막아주는 거대한 칸막 이라든지 거대한 구체가 허공에 떠 서 전기를 뿜어내는 마력 장치라든 지 양손에서 불꽃을 뿜어내며 포션 의 위력을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학 생도 있었다. 강철로 이루어진 바퀴 를 마구 굴리며 신세대 마차에는 이 것들이 쓰일 것이라며 홍보를 하는 마법사도 있었다.

헤이지는 그녀들이 호기심 어린 눈 빛으로 그것들을 보면 간간히 설명 을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저건 차세대 마법사들의 지팡이 야. 본인의 마나를 저장하는 기능까

지 있어서 준비 시간을 더욱 절약하 고 한 번에 큰 마법을 사용할 수 있지. 대신 마정석이 너무 빨리 닮 아서 돈이 많이 깨진다는 단점이 있 다더라.”

“맙소사. 그런 아이템이 있다면 마 법사들은 완전 난리나겠는데?”

“아이템? 너희들은 그렇게 부른다 고 했던가. 흐응 그러고 보면 여기 에도 넥스터 마법사들이 조금 와있 다는 모양인데.”

지구인들이 그리픈에 떨어진지 벌 써 2달이 훌쩍 넘어가고 대부분이 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상태였다. 당연하게도 가

장 중요한 것은 신분증이다.

셀라임과 안시르엘은 아직까지 임 시 신분중으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마법사라는 직업을 가진 자들은 간 단한 시험을 통과하기만 하면 마법 사의 신분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쉽게 사회에 녹아들 수 있었다.

“그런 것 같네요.”

몇몇 젊은 마법사들이 안시르엘과 셸라임을 알아보고 시선을 두는 것 이 느껴진다. 다시 말하지만 안시르 엘과 셀라임은 넥스트에서 굉장히 유명했던 최상위 탑급 탱커들이었 다. 심지어 아름다운 외모까지 합쳐

져 그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아웃사이더로 활동하던 천영 조차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안시르엘을 알아차렸을 정도이니 그 명성이 얼 마나 큰 것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다.

그런 이유로 넥스트 출신 마법사들 은 안시르엘과 셀라임을 알아보고선 ‘같은 지구 출신이니 조금쯤은 친해 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접근을 몇 번 정도 했었다. 어느 나 라인지 몇 살인지 직업이 뭔지는 신 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같은 세계 에서 살다가 왔다는 이유만으로 동

질감이 느껴지게 만들기엔 충분했 다.

하지만 그들을 받아주는 것도 한두 번이여야지 계속 아는 척을 하며 다 가오니 슬슬 피곤해지는 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다가오는 마 법사 무리를 보며 셀라임이 한숨을 내쉬고 ‘사람 잘못 보셨어요.’라고 선수를 쳐서 말한 것은 어쩌면 당연 한 일이다. 그들이 전혀 다른 목적 으로 다가왔다는 사실 조차 모른 채.

“아…… 네,잘못 본 것 같긴 한데

요.”

“네?”

“저희가 찾는 분은,뒤쪽에 계셔서

요.”

“그,그러시군요.”

묘하게 당황한 셀라임이 옆쪽으로 슬쩍 물러나자 4인의 중년 마법사들 이 천영과 헤이지에게 다가와서 짧 게 인사를 했다.

“금색 별 마탑분들을 뵈어서 영광 입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시죠?”

찾아온 사람들이 상당히 높은 마법 사인둣 헤이지가 평소와는 다르게 예의바른 어조로 그들을 대했다.

초록색의 로브를 입고 있던 마법사 가 큼큼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 다.

“실은 금색 별 마탑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꼭 있었는데 좀처럼 기회가 나지 않아서 말이죠.”

“이번에 발표회를 즐기러 오신 와 중에 이런 부탁을 드려서 정말 죄송 하지만 꼭 한 번 보셨으면 하는 물 건이 있습니다.”

“흠……

헤이지는 별로 내키지 않는단 표정 을 지었다. 그녀는 그저 천영과 셀 라임,안시르엘에게 로드웰 아카데

미의 화려한 구경거리를 보여주러 왔을 뿐 연구 작품이나 기묘한 발명 품을 보러 온 것이 아니었다.

고개를 살짝 저으며 헤이지가 거절 의사를 밝히려고 할 때 아직까지도 솜사탕을 우물거리고 있던 천영이 그녀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솜사탕 을 목 뒤로 넘긴 그는 뭔가 착 가 라앉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가요.”

“응? 그래도 괜찮겠어? 엄청 지루 할지도 모르는데.”

“아녜요. 안 그래도 이 아카데미에 서 꼭 찾고 싶은 게 하나 있었거든

요.”

척 봐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 내는 마법사들이 직접 헤이지와 천 영을 찾아와서 부탁할 정도면 뭔가 엄청난 물건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들의 수준으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이라든가 처치가 곤란한 것이라 든가. 어떤 것이든 상관없었다.

천영은 예런이라는 학생이 사용했 던 용언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용언을 길가다가 우연히 봤을 리 는 절대 없고. 아마 학교 내부에 있 겠지.’

천영은 내심 예런이 용언과 관련된 무언가를 손에 넣은 뒤 그것을 이곳 에 숨겨두고 남들 몰래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용언 에 대해 아는 사람이 극도로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추측은 천영의 큰 착 각에 불과했다.

“이건…… 대체 뭐죠?”

로드웰 아카데미의 중앙 회관에 있

는 지하에는 거대한 규모의 비밀 공 동이 있었다. 지하 깊숙이 자리한 그곳에는 각종 마법 연구 설비가 늘 어서 깨끗하고 깔끔한 다른 마법 실 험실과는 다르게 지저분하고 어지럽 혀져 있었다.

허공을 수놓은 수많은 마법진들이 응응거리며 마나 공명을 하는 그 기 묘한 공간 한 가운데에 거대한 상자 가 하나 둥둥 떠 있었다.

크기는 대략 가로세로 10m정도로 그렇게 큰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작다고 보기엔 애매했다. 하지만 마 법사들은 이것의 가치에 비해 그 크 기는 상당히 작은 편이라고 말하곤

했다.

자신을 ‘아카메쉬 김’이라고 소개 한 중년의 남자는 멍하니 정육면체 의 형태를 가진 박스를 쳐다보는 헤 이지와 천영에게 말했다.

“저건 저희들이 얼마 전에 ‘절망하 는 마녀의 협곡’에 갔다가 발견한 것입니다. 너무 깊숙한 곳에 묻혀 있어서 탐지 마법에도 걸리지 않던 것인데 정말 우연하게 찾을 수 있었

아카메쉬는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정육면체의 상자를 보며 콧등을 쓰 다듬었다. 그 상자의 표면에는 마법 진이 각인되어 있었는데 온통 알 수

없는 언어 천지였다.

“저희는 아직 저 물건이 어느 시대 의 것인지 조차 모릅니다. 다만 마 법진의 형태를 보시면 알겠지만 현 대의 마법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가 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원의 형 태를 그려서 ‘마나의 순환’을 형성 하고 그 안에 주문을 걸어 현대의 마법진과는 다르게 ‘언어’ 그 자체 에 마법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저것 을 해석만 한다면 현대의 마법이 최 소 100년 아니, 정말 과장을 보태서 500년은 발전할 수 있습니다.”

“……고대의 마법이란 소린가요?”

헤이지가 굳은 표정으로 묻자 아카

메쉬는 고개를 저었다.

“옛 물건이니 그런 추측은 저희도 했습니다만 저 상자를 구성하는 물 질조차 처음 보는 것입니다. 정말 상상하기도 버거울 정도로 역사에도 기록되지 않은 시대 이전에 마도 문 명이 발달했다면 모를까. 저 정도의 기술력을 가진 마법 시대를 저희들 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첫 번째 추측 아카메쉬는 그렇게 말했다.

“저것은 미래에서 온 물건이다. 그 런 추측을 했습니다.”

“……미래요? 시간 여행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렇죠. 아무런 증거도 근거도 없 는 그냥 추측일 뿐입니다. 허무맹랑 한 소설을 써놓고 ‘추리’라는 허울 좋은 단어를 가져다 붙여놓으면 보 기엔 좋으니까요.”

“그런……

“그리고 두 번째 입니다만 다른 차 원에 저희들을 뛰어넘는 마도 문명 을 가진 존재가 있다는 것이죠. 아 직까지도 차원학은 그 원리조차 제 대로 밝혀내지 못한 미스터리니까 가장 신빙성이 있는 소설이라고 합 니다.”

아카메쉬는 자신의 입으로 직접 ‘소설’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 추측 또한 말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더 듣기 싫으실 지도 모르 겠습니다만 세 번째 추측입니다. 지 하,혹은 하늘에 압도적인 마법 문 명을 가진 존재들이 살고 있다.”

“그것도…… 믿기는 힘들군요.”

“그렇죠.”

헤이지는 왜 이 마법사들이 자신들 을 데리고 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에서 실험과 연구를 진 행하는 마법사는 극소수에 불과하

다. 아무래도 마탑이 아닌 아카데미 인지라 실험에 참여할 인원이 턱없 이 부족했다. 그 때문에 지금 당장 마탑에 들어가도 이상이 없을 정도 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학생들까지 동원해 고급 장비를 이용해서 저 상 자를 연구했다고 한다.

“벌써 1년입니다. 그 동안 저희는 아무것도 밝혀낸 것이 없습니다.”

그는 헤이지를 향해 물었다.

“어떻습니까,뭔가 혹시 떠오르는 건 없으십니까?”

하지만 헤이지 역시 이런 마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헤이지 역시도 고작 잠 깐 봤다고 저 정체불명의 물체에 대 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카메쉬는 그런 헤이지의 반응에 조금 침울해진 표정을 지었으나 이 내 미소를 지었다.

“뭐…… 언젠간 밝혀내지 않겠습니 까? 전혀 진전이 없는 것은 아닙니 다. 일부 문자를 특정 마법과 연계 해서 사용하면,그것이 몇 단계나 증폭된다는 사실은 알아냈으니까

요.”

그렇게 말하는 아카메쉬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다만 그것을 억지로 사용하려고

하면 마나가 폭주하게 됩니다. 벌써 3명 정도 희생자가 나왔고요.”

“마나가 폭주한다구요? 얼마나 대 단한 마법을 사용했기에.”

“대단한 마법은 아니었습니다. 그 저 손끝에 불을 붙이거나 빛을 내는 정도의 마법이었죠. 그 결과가 작은 태양을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상상 을 초월하는 위력이어서 놀랐지만 말이죠.”

농담조로 말을 했지만 그 내용은 결코 농담으로 넘기기엔 힘든 것이 었다. 헤이지는 말없이 저 상자를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천영이 생각 나서 고개를 돌렸다.

천영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 묵묵히 상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때 신참. 뭐라도 알 수 있겠 어?”

별 기대는 하지 않고 그냥 물어본 것이었다. 아무리 영물에다가 천재 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천영이라 지만 저런 기괴한 마법 문자를 한 번 본다고 바로 해석할 수 있을 리 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그 예상대 로 천영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래? 후 정말 마법은 아무리 배

워도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야.”

하지만 해이지는 눈치 채지 못했 다.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천 영의 눈빛이 묘하게 살아있다는 사 실을. 천영은 남들에게 들키지 않도 록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아쉽지만 아저씨들의 추측 3개 전 부 틀렸어.’

천영은 상자에 더욱 더 가까이 다 가갔다. 10m정도의 크기를 가진 상 자에는 빼곡하게 문자가 적혀 있었 다. 아무리 기형적인 문자라도 언어 학자가 오면 금세 해석되고 만다. 그것이 보통일 것인데 마법사와 학 자들이 힘을 합쳐도 1년이 넘도록

밝혀낼 수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건 인간의 뇌로는 절대로 이해 할 수 없고 인간의 연약한 신체로는 절대 사용할 수 없는……

드래곤의 약속,용언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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