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 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25화 (24/219)

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25화

7장 달리는 열차와 성실한 악당

늦은 새벽 레덕슨 항구에서 몇 십 km가량 떨어진 바닷속 깊은 곳.

그곳에는 몸 전체의 길이가 7m 나 되는 거대한 백색의 상어와 크 기가 lm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검은색의 생명체가 몸을 부딪치고

있었다. 금색의 눈동자와 금색의 뿔,검은색의 피부에 자신의 신체 만한 날개 한 쌍을 달고 있는 어 린 드래곤. 그 드래곤은 물속에서 도 숨을 쉴 필요가 없다는 듯 해 양생물체 못지않게 자유로운 움직 임을 구사하고 있었다.

[Lv. 176 자이언트 화이트 샤크]

지나가는 어선을 보이는 족족 습 격해대는 통에 상당한 골칫덩어리 였던 거대한 백상아리가 입을 쩍 벌리고 날카로운 이빨을 번뜩였다.

그 거체를 보게 되면 다른 해양생 물체들은 겁을 제리 먹고 도망쳐 야 정상이건만,이 조그만 생명체 는 도망치기는커녕 계속해서 덤벼 드니 백상아리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작고 날렵하고 힘도 무지막지하 게 강하며 눈치가 재빨랐으며 심 지어는 마법까지 구사한다. 백상아 리가 싫어하는 타입이 전부 모여 있는 완벽한 상성. 힘 대결로 밀어 붙이려고 달려들면 잽싸게 몸을 비틀어 피해버리며 옆구리를 물어 뜯어버리질 않나 도망치려고 하면 물의 흐름을 조작하여 어마 무시

한 속도로 쫓아오질 않나 간간히 발사해대는 날카로운 수류계열 마 법은 백상아리의 피부를 완전히 녹여버렸고 기습적으로 날아오는 발톱에 의해 한쪽 눈은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싸울수록 지친다. 이길 수 없는 상대이다. 본능적으로 퇴로를 찾기 위해 몸을 비틀었지만 백상아리는 이곳이 거대한 바위산으로 막혀있 는 장소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 았다. 막다른 길.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다. 결국 마지막 수단으로 자이언트 화이트 샤크는 혼신의 힘을 모아 입에다가 에너지를 응

집시켜 물대포를 발사했다.

수룡탄水龍彈! 이것에 당한 어부 들이 붙여놓은 이름. 물기둥이 마 치 하늘로 용이 승천하는 듯한 모 습을 취하며 배를 정확하게 두 동 강 내어버리는 무시무시한 기술. 하지만 저 작은 생물체는 이 기술 을 보고선 코웃음을 치더니 마찬 가지로 입에다가 에너지를 응집시 켰다.

직후 두 개의 힘이 충돌한다. 푸 른색의 기운이 응집된 물대포와 흰색 레이저가 맞부딪히자 처음 몇 초는 막상막하로 버티는 것처 럼 보였으나 이윽고 물속인데도

불구하고 주변에 있던 물이 순간 적으로 전부 증발하며 수룡탄 조 차 소멸해버린 뒤 백상아리의 몸 을 그대로 짓이겨버렸다.

쿠콰콰광!

백상아리의 몸을 관통한 것에도 모자라,뒤쪽에 있던 바위산에까지 거대한 흔적을 남긴 뒤 이윽고 레 이저는 모습을 감췄다.

[레벨 업!]

천영은 레벨 업 메세지를 보고선 무덤덤한 얼굴로 백상아리의 시체

흘겨봤다. 어부들이 꼴에 수룡

탄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은 듯싶지 만,우습기 짝이 없었다. 애초에 ‘용龍’이라는 단어를 저런 것 따위 에다가 같다 붙여 넣는 것이 마음 에 들지 않았다.

‘드디어 80레벨인가.’

게일리를 해치우고 그에게서 남 은 힘을 경험치화 시켜서 모조리 흡수한데다가 레벨이 400은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크라켄의 경험치 의 일부까지 흡수한 천영은 레벨

꽤 오른 상태였다. 거기에 금색

별의 마탑에 들어간 뒤로 수준 높 은 책들을 계속 읽어가며 사냥까

지 병행하니 꽤나 빠른 속도로 성 장할 수 있게 되었다.

레벨 업 메시지가 뜬 직후 천영 의 몸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동 안 차근차근 레벨 업을 할 때마다 커다래지고 있던 몸집은 순식간에 근육이 뒤틀리고 지방이 축소되고, 뼈에 에너지가 응집되더니 더욱 굵직해졌다. 풍선처럼 서서히 부풀 어 오르던 몸은 웬만한 성인 남자 의 덩치 정도의 크기까지 거대해 지더니 마침내 성장을 멈췄다.

천영은 묘하게 몸이 더 날렵해지 고 힘이 더욱 강해진 것을 느꼈다. 늦은 새벽 빛이 하나도 들지 않는

바닷속에서도 무리 없이 물체를 볼 수 있었던 시력은 더욱 더 좋 아져 마치 대낮인 것처럼 선명해 졌으며 마나의 흐름을 더욱 세밀 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덩치를 적당히 확인한 천 영은 백상아리의 시체를 입으로 콱 물고서 해수면을 향해 헤엄쳤 다. 몇 백 미터를 가볍게 주파한 다음 수면을 뚫고 공기가 있는 곳 으로 확 튀어 오른 뒤 주변을 둘 러보자 가까운 곳에 크기가 작은 어선 하나가 둥둥 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곳까지 백상아 리의 시체를 질질 끌며 다가간 천

영은 백상아리의 시체를 간신히 배의 뒤쪽에다가 실은 다음 휴먼 폼을 사용했다.

작은 빛무리와 함께 소년의 모습 이 된 천영은 코트를 몸에 걸치고 선 머리끈을 꺼내 머리카락을 뒤 로 올려서 묶었다. 그다음 흰색의 빵모자를 하나 걸치자 위로 틀어 을렸던 머리카락이 어느 정도 숨 겨졌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정 돈까지 하자 천영의 모습은 이제 꽤나 남자 같은 모습으로 변해있 었다.

방금 전 레벨 업을 한 탓에 정말 미세하게 머리카락까지 감추니 이

제는 소년티를 제법 낼 수 있게 되었다.

‘이 짓도 귀찮은데.’

하도 여자로 오해를 받는 통에 머리카락을 홧김에 잘라버리려고 했다가 안시르엘과 셀라임이 오열 을 하며 제발 그러지 말라며 사정 을 하는 바람에 그만두었다. 대신 이렇게 평소에는 숨기고 다니는 쪽으로 선택했다. 여자로 오해받는 것도 이제는 슬슬 짜증이 나다못 해 스트레스를 받는 참이었다.

“아저씨,돌아가요.”

“허,으음? 흐으음……

작은 선실의 낡은 문을 퉁퉁 두 드리며 그렇게 말하자 안쪽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노인 한 명이 스르르 잠에서 깨어났다. 늘어지게 하품을 한 노인은 눈을 껌백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슬슬 동이 뜰 참이었다. 노 인은 느릿한 움직임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선실 바깥으로 나왔다.

자신의 할 일을 끝마친 천영은 뱃머리에 걸터앉아 빵을 하나 꺼 내서 먹고 있는 중이었다. 그 모습 이 퍽 동화 속에서나 나올 것처럼 예술적이고 비현실적인 광경이라 노인은 잠시 자신이 꿈을 꾸나 하

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배의 뒤편에 실려 있는 거 대한 시체를 보고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이쿠야.”

7m가 넘는 거대한 상어의 시체 가 배에 간신히 실려 있었다. 당장 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그 상어는 입부터 꼬리까지 뭔가에 의해 깔끔하게 관통되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노인은 새삼스 러운 눈으로 천영을 흘깃 쳐다보 았다. 마탑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돈을 주며 ‘저 분께서 자이언트 화 이트 샤크를 처리할 테니 원하시

는 시간에 배를 띄워 주시오.’라는 말을 할 때까지만 해도 정말 잡을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고작 해야 동네에서 뛰어놀 것 같은 어 린 모습이었기 때문에 당연했다.

하지만 마탑의 마법사들이 천영 에게 극존칭까지 사용해가며 돈까 지 가득 쥐어주니 결국 거절하지 못하고 속는 셈 치고 배를 띄웠는 데 정말로 이 괴물 상어를 사냥해 왔다. 그것도 상처 하나 없는 모습 으로.

‘어떻게 잡은 걸까…… 물에 젖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고……

하도 피곤한 탓에 졸아버린 것을

탓했지만 이미 늦었다. 저 신비로 운 분위기로 볼 때 물어봐도 대답 해줄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결국 노인은 오늘의 일을 깔끔하 게 잊어버리자며 뱃머리를 뒤로 돌렸다.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날이었다.

롱슨 은행 레덕슨 지부. 아무래도 무역의 중심지가 되는 곳이라 보 니 전 세계에 있는 거대 규모의 은행 본부가 몰려있었다. 거대 규

모 은행 지부가 어마어마한 크기 로 지어져 있었다. 천영은 그 중에 서도 롱슨 은행에다가 자신의 통 장을 만들었다. 이유는 정말로 별 것 없이 셀라임이 이곳에다가 자 신의 돈을 보관하기 때문이었다.

“오빠,얼마 전에 마탑에 들었다 면서. 월급은 얼만 준대?”

“월급 안 줘. 성과제라는데.”

“에에. 뭐야 그게. 마탑은 원래 막 클래스 높으면 월급도 빵빵하 게 주고 그런 데 아니었어?”

“그러게.”

셀라임이 상당히 이상한 마탑이

라며 고개를 갸웃했다. 천영도 그 녀의 생각에 동감했다. 물론 천영 도 금색 별 마탑의 입사 서류에 지장을 찍으면서 여러 가지 조건 을 묻긴 했었다.

‘초봉이 어떻게 되죠? 사대 보험 은 되는 거예요? 인센티브는 얼마 나 주죠?’

‘초봉 없는데요. 보험이 뭡니까?’

‘월차에 연차는 보장되긴 해요?’

‘저희는 출근을 하는 직업이 아니 라 그런 건 없습니다. 그냥 얼굴 도장만 적당히 찍어주다가 일 하 고 싶을 때 골라서 하면 되죠.’

‘우와 겁나 편리해. 저 그냥 이름 만 올려두고 먹고 놀아도 되는 겁 니까?’

‘네,근데 돈은 못 받겠죠.’

‘쳇…… 막 월급에서 세금 떼이고 그러는 건 아니죠? 퇴직금도 줘 요?’

‘저희는 국가 소속이 아니라 세금 은 없습니다. 퇴직금은…… 생각해 본 적 없군요. 저보다 오래 사실 테니 그때 가서 금색 별 마탑의 법을 바꾸든지 알아서 하시기 바 랍니다.’

‘와,마탑주라는 사람이 무책임한

거 보소. 나 이 회사 믿고 들어가 도 되는 거야?’

‘하하! 당신은 이미 늦었어! 지장 을 찍어버렸지!’

“후우.”

한숨만 절로 나오는 회상이다. 금 색 별 마탑에 가입한지 이제 일주 일 째 천영은 그 동안 임무 한 개 를 간신히 수행했다. 그마저도 천 영이 할 만한 일을 하나 골라서 했을 뿐이지 다른 임무는 엄두도 나지 않았다.

‘추운 겨울에 바다 생명체를 잡는 임무라 아무도 안 했던 모양이라

망정이지. 하마터면 진짜 아무것도 못하고 손가락만 빨고 있을 뻔했 어.’

넥스터식 표현으로 천영은 이 임 무들을 ‘퀘스트’라는 단어로 말하 기로 했다. 천영이 이번에 수행한 퀘스트처럼 자잘하고 굳이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들이 나서야할 필요가 없는 것들은 하청 업체에 맡겨져 그곳의 용병들이 처리한다 고 한다. 굳이 고급 인력을 여기저 기 낭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 하 지만 천영은 금색 별 마탑에 들어 갔다고는 해도 아직까지는 실력이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아 다른 용병 집단 에게 퀘스트가 팔려나갈 뻔한 것 을 간신히 붙잡아 수행하는 것 말 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쨌든 임무를 완수했다고 그에 합당한 보상은 은행에 가서 받을 수 있다. 당연하게도 이곳의 통장 시스템은 컴퓨터가 없기 때문에 생각보다 편리하지 못하다. 다만 돈을 보관하고 이체하는 것의 정 보를 저장해서 관리하고 전화라는 연락 수단을 통해 지속적으로 정 보를 주고받으며 돈을 움직이게 된다.

천영의 경우엔 임무를 완수하면

마탑에서 액수가 적힌 수표를 하 나 주게 되는데 그것을 은행에다 가 갖다 주면 돈으로 환전할 수 있게 된다. 백상아리를 잡아다가 마탑에 질질 끌고 가서 안에다가 집어 던져 넣으니 마법사들이 기 겁하며 굳이 시체를 전부 끌고 올 필요는 없다며 새하얗게 질린 얼 굴로 천영에게 수표를 건네주며 내쫓아버렸다.

“그럼 오빠 이번이 은행은 처음이 네.”

“응,통장을 만들긴 했었는데,돈 이 있어야 말이지.”

여태까지는 무일푼의 빈털터리

신세였다. 밥을 먹는 것도 셀라임 이나 안시르엘에게 얻어먹으며 살 았다. 숙소도 그녀들이 지내는 곳 에 얹혀서 살았으니까. 그럴 때면 새삼 이 어리고 중성적인 신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자들에게 있어서 합방을 하는 것에 대한 저항감이 적었으니까. 아니,오히려 자고 있을 때 껴안고 자면 부드럽다며 자꾸 베개 삼아 껴안으려는 것에 도망치느라 매일 밤이 두려울 지경이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고객님?”

“이 수표에 있는 돈을 제 통장에 집어넣고 일부만 꺼내고 싶은데

요.”

깔끔한 정복을 입은 여직원이 천 영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어보이 며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자리에 서 일어났다. 현대였다면 컴퓨터 몇 번 두드리면 끝이겠지만 이곳 은 역시 산더미처럼 쌓인 마법적 으로 포장된 서류를 하나하나 정 리해서 정보를 찾아야하는 모양이 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온 여직원이 종이 하나와 마법적인 인천트가 잔뜩 내장되어있는 석판 하나를 건넸다.

“금색 별 마탑의 수표군요. 혹시 신분증을 보여주시겠어요?”

여직원의 말에 천영이 왼쪽 팔목 에 있는 금색의 화려하지도 않으 면서 상당히 예술적으로 디자인 되어있는 손목시계를 보여주자 짧 게 감탄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곳에다가 암호를 적어주 시겠어요?”

천영이 검지를 가져다 대고 터치 패드처럼 생긴 석판에 사인을 하 자 작게 빛이 뿜어졌다. 고개를 끄 덕인 여직원이 그것을 다시 자신 의 서랍으로 집어넣고 종이에다가 도 사인을 해달라며 건넸다. 그것 들을 하나하나 읽어보며 대충 사 인을 하려는데 잔여 액수에 시야

가 돌아갔다. 천영은 고개를 갸웃 했다.

“저기 이거 잘못된 것 같은데요.”

“네?”

천영은 종이를 거꾸로 뒤집어 여 직원이 잘 볼 수 있도록 했다.

“저 통장만 만들고 돈은 하나도 없었는데요. 여기 10만 골드라고 적혀있는 건 뭐죠?”

“어……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

요?”

m만 골드. 절대로 적은 액수가 아니다. 이곳의 금전 가치에 대해 잘 모르는 천영도 저 돈이면 집

한 채를 바로 구입할 수 있을 정 도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런 어마어마한 금액이 통장에 잘못 적혀있다면 굉장한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여직원은 ‘그럴 리가 없 는데’를 혼잣말로 연발하며 당황한 채로 동료 직원들까지 불러서 금 품이 보관된 서랍과 서류 더미를 마구잡이로 뒤집어엎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10만 골드라는 거대한 액수에 어깨가 짓눌린 모양이었다.

그 안쓰러운 모습에 천영은 잠자 코 그들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 다. 이후 10분 쯤 지나자 땀을 뻘 뻘 흘리며 여직원이 다시 돌아왔

다. 뭔가 서류더미와 작은 편지 봉 투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그게…… 잘못된 액수가 아닙니 다,고객님.”

"네? 그럴 리가요?"

천영은 스스로의 입에 담지는 않 았지만 스스로가 굉장히 가난하다 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태어나 서 넥스트를 플레이 하는 동안에 도 심지어는 그리픈 세계로 넘어 와서도 단 한 번도 여유로운 돈을 갖고 풍요롭게 살아본 적이 없었 다.

알바를 통해 간신히 끼니를 때울

정도로 연연했고 넥스트를 시작한 이후로는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수준’이 되기 위해 정말 시간도 아 껴가고 돈은 모조리 드래곤 탈태 에 쏟아 부으며 살았다. 그리픈에 와서는 또 어떠랴 자신의 손으로 제대로 된 사탕 하나도 사보지 못 한 게 현실이다.

그런데 10만 골드라니.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그 액수에 천영은 그 냥 전산상의 실수라고 생각했다.

“그 금액을 손님의 통장에 입금하 면서 남긴 메시지가 있는데. 읽어 보시겠어요?”

여직원이 그렇게 말하며 화려하

게 포장된 편지 봉투를 건넸다. 그 것을 받아서 뒤집어보자,발신자가 ‘금색 별 마탑주 레이븐 생텀’이라 고 되어 있었다.

‘뭐야 이거.’

그것을 뜯어 내용을 살펴보니 정 말 심플하고 간단명료하게 목적만 적혀있었다.

[To. 메이지 천영]

[급한 일로 돌아가게 되어 메시 지를 남겨둡니다.

아마 기억하는지 모르겠는데 메 이지 천영이 얼마 전에 게일리를

잡으면서 같이 눕혔던 크라켄의 시체를 금색 마탑 측에서 처분하 게 되었거든요. 당시에 자리에 있 던 원정 대장을 직접 찾아가서 크 라켄의 시체에 대한 소유권을 어 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보니 단 독 결정으로 메이지 천영의 소유 로 돌리라고 하더군요.

뭐 사냥에 대한 지분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서도 럼 펠 제국 공식 ‘파티 룰’까지 언급 하면서 메이지 천영에게 넘기라고 하니 일단은 크라켄 시체의 30% 를 제외한 소유권을 메이지 천영 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금색 마탑 측에서 크라켄의 시체 를 처분하고 나온 액수를 통장에 입금 시켜놨습니다. 처분하지 못한 남은 시체의 일부는 메이지 천영 의 명의로 된 금색 별 마탑의 공 식 창고에 보관되어 있으니 시간 나면 한 번 확인해보시길.]

[From. 메이지 레이븐]

천영은 그제야 크라켄이라는 몬 스터의 존재를 떠올렸다. 생각해보 면 크라켄에게서 경험치를 상당량 흡수해 레벨 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대

형 해양 몬스터의 시체. 그것도 굉 장히 생생하고 멀쩡한. 크라켄이 사냥당하는 경우는 꽤나 있지만 그만큼이나 멀쩡한 시체는 정말로 보기 드물다고 한다.

간혹 지상에 올라와서 죽는 크라 켄들은 사망하는 즉시 시체가 녹 아내린다고 하니 이번에 게일리가 잡아둔 크라켄의 가치가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새삼 깨달을 수 있 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돈이 들어온 건가?’

당분간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펑펑 놀아도 될 정도의 돈이었다.

사실 천영은 크라켄의 시체에 대 한 소유권을 주장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을 사냥한 것은 따지고 보면 천영이 아니었 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 생각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마탑 측에 서는 원정대의 의견을 듣고 크라 켄의 시체에 대한 소유권을 천영 의 것이라고 판단한 다음 통장에 돈을 넣어둔 모양이다.

“그렇군요……

천영은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으 로 손을 이용해 부채질을 하고 있 는 여직원에게 눈짓을 했다.

“그럼 일단 이 수표만 보관하고. 1,000골드 정도만 꺼내주세요.”

“네…… 네,고객님.”

여직원이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 하기 시작하자 천영은 입술을 잘 근잘근 씹었다.

‘갑자기 많은 돈이 들어오니 조금 당황스럽네.’

m만 골드라는 액수는 은행 직원 들이 당황할 정도로 꽤나 거대한 액수다.

한 마디로 천영은 지금 꽤나 부 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막상 돈이 생기니 어떻게 써야할지 감

이 제대로 오지 않았다. 어렸을 때 부터 ‘돈이 많아지면 요플레를 사 서 뚜껑을 안 핥아 먹고 버릴 거 야!’라든지 ‘스테이크 집에 찾아가 서 샐러드만 먹고 나올 거야!’라든 지 소박한 꿈을 이야기하곤 했지 만 점차 철이 들면서 그런 꿈은 꾸지 않게 되었다.

난데없이 부자가 될 일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 다.

그렇기에 천영은 지금 당장 수중 에 들어온 천 골드만 해도 들고 있는 것이 덜덜 떨릴 정도의 거액 이었다.

여직원이 일처리를 끝내며 건네 준 돈주머니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셀라임이 빙그레 미소를 지 으며 천영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 다.

“오예! 우리 파티의 마법사가 부 자가 됐어! 이제 좀 뜯어먹어야겠 어.”

“으흐흐. 그래,그냥 산채만한 스 테이크로 하나 갖다 사줄게.”

셀라임의 가벼운 농담에 부담감 은 저 멀리 사라지고 천영의 입가 에 음흉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 정 도의 돈이면 뭐든 할 수 있었다.

술,담배,여자. 그냥 돈 드는 나 쁜 짓은 전부 다!

‘아니,가만 생각해보니 담배는 별로 당기지도 않고. 나 지금 꼬맹 이 모습이라 여자한테 작업도 못 걸잖아?’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천영은 즉 시 시무룩해졌다. 이 정도의 돈이 라면,남자로써 자신을 멋지게 치 장을 하고 싶은 욕구가 들기도 한 다. 하지만 이런 꼬맹이 모습의 천 영이 아무리 비싼 옷을 사고 멋진 장비를 착용해도 멋있기는커녕 그 저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큰 금액이

들어온 기념적인 날에 아무것도 안 하고 넘어가기는 조금 그랬다.

“오빠,이제 슬슬 장비 맞춰야하 지 않아?”

“그것도 그러네.”

천영은 자신이 입고 있는 자벤의 선물이나 다름없는 옷자락을 잡았 다.

다른 옷을 몇 번 갈아입긴 했지 만 아무래도 자벤이 만든 옷이 제 일 편했기 때문에 자주 입고 다녔 다. 하지만 이 옷은 어디까지나 평 상복이 다.

전투를 할 때에는 전투용 장비를

착용해야 했는데 천영은 아직까지 그런 장비가 없었다.

“여기서 얼마 안 걸리는 가까운 도시에,내가 넥스트에서 알고 지 내던 장인이 있다는 모양이야. 음…… 조금 많이 특이한 여자라서 오빠한테 소개시키기가 꺼려지긴 하지만 괜찮겠지.”

“특이해봐야 얼마나 특이하겠어.”

심드렁한 표정으로 천영이 대충 넘겨버리자 셀라임은 어색한 웃음 을 흘렸다.

‘그렇게 쉽게 넘길 수준은 아니지 만…… 상관없겠지?’

돈주머니를 인밴토리에 집어넣은 천영은 코트의 주머니에 손을 꽂 아 넣고 어딘가를 향해 걷기 시작 했다.

셸라임은 말없이 그의 뒤를 쫓았 다. 아무래도 상당히 많은 액수의 돈이 수중에 들어왔으니 어딘가로 가서 돈을 평펑 쓸 예정인 모양이 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셀라임의 예상과는 다르 게 천영이 향하는 곳은 별로 돈을 쓸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온갖 유 흥가를 무덤덤한 표정으로 지나친 천영이 마침내 도착한 곳은 낡은 간판이 간신히 걸려있는 술집이었

다. 그곳의 문을 망설임 없이 열고 들어간 천영은 잔잔한 음악을 틀 어놓고 책을 읽고 있는 노인에게 다가가 어떤 와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드래곤이 포효하고 있는 상표가 인상적인 싸구려 와인이었 다.

“할아버지, ‘드래곤 브레스’로 한 병 주세요.”

그러자 노인은 눈을 껌렉껌텍 뜨 더니 천영을 흘깃 내려 보았다. 그 눈빛을 이해한 천영은 엄지로 셀 라임을 가리켰다.

“이 아줌마는 성인이라 살 수 있 어요.”

“껄걸. 그러겠지.”

아줌마 소리를 들은 셀라임이 악 귀같은 표정으로 변하며 천영을 마구 흔드는 것을 뒤로한 노인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드래곤 브레 스를 한 병 꺼내 바(bar) 위에 올 려놓았다. 안 팔린지 꽤 됐는지, 마치 이 술집과 하나인 것처럼 자 연스럽게 놓여져 있던 와인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래,너무 마시진 말고.”

“하하……

왠지 속마음을 간파당한 것 같은 느낌에 어색한 웃음을 흘린 천영

은 대금을 지불한 다음 그것을 품 에 껴안고 후다닥 술집 밖으로 빠 져나왔다.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한적한 공원으로 이동한 천영은 적당한 벤치를 골라 자리에 앉았 다. 셀라임 역시 그의 옆에 앉아서 물끄러미 천영을 바라보는데,그는 약간 얼룩진 와인의 상표를 천천 히 쓰다듬으며 그곳에 적혀있는 글자를 읽어 내렸다.

Viva La Vida. 천영이 가장 좋아 하는 문구 중 하나였다.

“인생은 살고 봐이^ 알 수 있다니 까.”

천영은 코르크 마개를 퉁 튕겨내

고 그것을 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셀라임은 묘한 눈빛으로 천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만약 저런 돈 이 자신에게 갑자기 생긴다면 이 라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빈털터 리 아무것도 없던 자에게 갑작스 레 많은 돈이 생기게 되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게 될까?

값비싼 장비로 몸을 도배하기?

겉멋이 잔뜩 든 자가용 마련?

진귀한 보석?

그것도 아니면,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휘황찬란한 만찬?

천영은 그 무엇도 선택하지 않았

다. 그저 돈이 생기면 가장 먼저 사고 싶었던 것이 싸구려 와인이 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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