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05화
2장 독서와 레벨 업의 상관관계
호수의 주변은 완전히 초토화 되었 다. 뒤집힌 땅거죽,넘쳐버린 호수, 휘몰아친 바람에 나뭇잎을 떨어뜨린 나무들,반쯤 불탄 대지. 그리고 그 위를 덮는 수많은 원시 부족들의 시 체들.
[레벨 업!]
천영은 잡몹 정도의 수준밖에 안 되는 부족들을 모조리 처리한 다음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미약한 숨을 내뱉고 있던 부족장을 마무리하자 대량의 경험치를 얻으며 레벨 업을 했다.
예칸타 부족을 처치하던 도중에 1 번,보스를 처치하여 1번으로 총 2 번의 레벨 업을 한 천영은 만족스러 운 미소를 흘렸다.
“역시 레벨 업에는 닥사가 답이
넥스트를 플레이할 때도 레벨 업이 하고 싶을 때는 이런 식으로 한곳에 몰려있는 몬스터들을 처리해서 경험 치를 쌓았다. 게다가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가진 놈들을 잡을 경우 동 레벨대의 몬스터에 비해 더 높은 경 험치를 준다. 그만큼 상대하기 악랄 하고 까다로웠기 때문. 하지만 이 예칸타 부족을 상대할 때에는 한 번 에 많은 수를 상대할 필요가 없었 다.
혼란이 일어난 것과 둘째로 호수를 끼고 천영이 빙글빙글 돌고 있으면 몬스터들이 그를 공격할 방법이 없
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상 성.
‘비행 타입이 이래서 사기라는 거 야.’
부족장의 목에 박아 넣은 앞발을 빼내자 슈르륵 하며 피부가 갈라지 는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천영은 살짝 눈가를 찌푸렸다. 이 런 현실적인 소리는 처음 들어본다. 별로 비위에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어린 아이들도 플레이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던 넥스트와는 달리 이곳은 리얼한 현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 다고는 쳐도 기분이 찝찝한 것은 어 쩔 수 없었다.
피가 잔뜩 묻은 몸을 닦기 위해 물속에 몸을 빠뜨린 다음 가볍게 유 영을 하여 기둥 쪽으로 접근하자마 자 다시금 위로 솟구쳐 기둥 위에 안착한 천영은 물을 일으켜 불꽃을 전부 꺼버렸다. 그 다음 발톱으로 살짝 밧줄을 긁어내자 인간들이 풀 려나며 땅에 내려올 수 있었다.
남자는 아직까지도 얼떨떨한 표정 이었다.
“가,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요정님……
천영은 기둥 위에 가만히 앉아서
그들의 인사를 들었다. 방금 전까지 찜찜했던 기분은 완전히 사라졌다. 살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다 른 사람의 목숨을 구해준다는 것. 그것은 꽤나 뿌듯한 일이었다.
“저,저희가 뭔가 보답이라도 해드 리고 싶은데……
“엉? 보답을 바라고 한 건 아닌데 말이야."
“저희가 너무 고마워서……
“뭐 그렇다면야. 으음, 나도 궁금한 게 조금 있기도 하고.”
천영은 내심 미심쩍던 부분을 물었 다.
“너희는…… 사람이 맞는 거지? NPC 명령어 호출 코드를 말해봐.”
“네,네? 코,코두?”
“흠. 역시 평범한 사람이네. 아냐, 됐어. 그럼 뭐 다른 질문. 여기서 가장 가까운 도시에 대해서 들을 수 있을까?”
그러자 남자가 눈빛을 빛냈다.
“예,이곳이 숲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북쪽으로 쭉 올라가면 도시가 있습니다. 레덕슨 항구라고,무역으로 아주 유명한 도 시인데. 혹시 들어본 적 있으십니 까?”
고개를 젓는다. 그런 도시 들어봤 을 리가 없다. 애초에 이곳이 어떻 게 생겨먹은 세계인지도 모르는 천 영이다.
“역시…… 다행이야. 인간들이 사 는 도시가 있어서.”
“예?”
“아냐,신경 안 써도 돼.”
천영은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로 내심 불안했던 부분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인간 종족 부재의 가능성이 었다. 애초에 ‘그리픈’이라는 이곳은 지구가 아니다. 그리고 몬스터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 혹시나 인간
이 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빠르게 사 람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태어나고 얼마 안 돼서 그러 는데 인간들의 문화에 대해서 물어 봐도 될까?”
그 질문에도 역시 남자는 스스럼없 이 대답했다. 직접 보지는 못해서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대충 이야기 만 들어보면 지구의 인간들과 거의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둣싶었 다.
성이 어쩌니,귀족이 어쩌니 하는 걸 들어보면 조선 시대 혹은 중세 시대의 계급 제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마나로 인해 움직이는 열 차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과학 기술이 막 뒤떨어지는 것 은 아닌 모양이다.
“인간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것 같 은데 혹시 레덕슨에 방문해보시겠습 니까?”
“아…… 아냐. 별로 좋은 일이 일 어날 것 같지는 않거든.”
솔직히 가고는 싶었다. 하지만 이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렇게 날개가 달린 도마뱀 같은 생물체는 그리 흔하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이 세계에도 역시 드래곤이 존재하 는 모양이었는지 남자는 천영에게
마치 드래곤처럼 생겼다며 감탄사를 뱉었다.
‘사실은 드래곤이 맞는데 말이지.’
큼큼,헛기침을 한 천영이 하늘로 살짝 날아올랐다.
“북쪽이라고 했지? 나는 방향 보는 법 모르는데. 너희는 알아?”
“네,별자리를 보면 알 수 있거든 요.”
“안내해. 호위해줄게.”
“예? 그,그렇지만 그러면 저희가 너무 실례가 아닐지……
“괜찮아. 인간을 만나서 나도 기분
이 좋거든.”
그렇게 말한 다음 앞서나가자 남자 가 동생들을 데리고 허겁지겁 뒤따 라왔다.
천영은 방향을 모른다고 말한 뒤에 깨달은 사실이 있다. 본능적으로 동 서남북을 구분할 수가 있었던 것.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어쨌든 알 수가 있 었다.
‘드래곤의 방향 감각이란 건가. 대 단한데.’
비록 약하고 작고 여린 신체이지만 드래곤으로써 고작 하루밖에 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움만 가득 했다.
남자는 하늘을 쳐다보며 방향을 잡 은 다음 숲 속을 헤치며 나아갔다. 그 도중에 등장하는 짐승이나 개별 적으로 행동하는 약한 몬스터들은 모두 천영의 경험치가 되어 사라졌 다.
“저…… 실례지만 성함을 여줘 봐 도 되겠습니까?”
대략 한 시간 정도를 말없이 걷고 있던 남자가 천영에게 물었다. 딱히 대답하지 못할 것도 없었기에 고개 를 끄덕인다.
“서천영.”
“저는 튀브 데이브라고 합니다. 이 대로 은인의 성함을 모르는 것도 실 레인 것 같아서 말이죠. 하하.”
특이한 이름이다. 이 지방의 풍습 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질문 하지 않았다. 그런 세세한 부분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도시로 귀환하는 길에 데이브는 천 영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혹시 어떤 종류의 요정인지,얼마나 오래 살았 는지,혹시 어디에서 지내는지 등의 것들을. 그에 천영은 ‘그냥 요정. 별
로 안 살았음. 여기에서 지냄.’이라 는 별 다른 정보조차 되지 않는 대 답을 했다. 요정이라는 것을 제외하 고선 딱히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었 다.
그렇게 한 시간을 또 걷자 숲이 끝나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도로가 나타났다. 그저 흙바닥이 고르게 포 장되어 있을 뿐이었지만 마차 같은 것들이 지나다니기 위해서인지 꽤나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 도로에 가까이 올 때부터는 몬 스터가 나타나지 않았기에 천영은 데이브의 어깨에 앉았다. 오래 날아 다니는 것은 생각보다도 피로했다.
“저깁니다.”
“오……
가장 먼저 어둠에 물든 바다가 눈 에 들어왔다. 그리고 새하얀 해안가 그 뒤쪽으로 줄줄이 아름다운 건물 이 세워져있는 거대한 도시. 마치 계단처럼 지어진 이 항구 도시에는 거대한 무역선이 질서정련하게 늘어 서 있었으며 등대가 눈부신 빛을 뿜 어내며 바다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안전하겠지. 나 는 이만 가볼게.”
들어가 보고 싶지만 아직은 참는 다. 괜히 위험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천영은 타인에게 자신이 드래곤이 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숨길 생각이 었다. 이것을 밝히는 날이 온다면 그건 천영이 누가 덤벼들든 상대해 서 이길 수 있을 정도의 무력을 얻 었을 때이다. 그래서 자신을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하며 깎듯이 따르고 있는 데이브 같은 인간이 아닌,모 르는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여줄 수 는 없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까.’
하지만 데이브는 이대로 천영을 돌 려보내기가 아쉬웠는지 재차 붙잡았 다.
“정말 원하시는 건 없습니까? 너무 도움만 받아서……
“진짜 없는데.”
돈이라도 받을까? 그런 생각을 했 지만 천영은 데이브의 옷차림을 보 고선 고개를 저었다.
이 남자 일단 부유한 집안은 아닐 것이다. 그랬기에 일단은 괜찮다며 한사코 사양을 하는데 문득 어떤 생 각이 떠올랐다.
‘가만 드래곤은 책을 읽을수록 경 험치를 많이 얻는다고 하지 않았 나?’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천영이 눈동
자를 조금 굴렸다. 달빛을 받아 황 금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눈동자의 속에는 경험치를 갈구하는 욕망이 어려 있었다.
“혹시 책을 구할 수는 있나?”
“책이라면 저희 집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응,그럼 책을 구해다 줘. 역사책 이나 지리에 관련 된 책,소설책. 아무거나 좋아. 많으면 많을수록 좋 고.”
“물론이죠!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아 그리고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 도 못 먹었거든. 간단한 요깃거리도
부탁해.”
“알겠습니다!”
데이브는 그렇게 말한 뒤 동생들을 데리고 허겁지겁 도시로 달려갔다. 도시의 입구엔 갑옷을 입은 경비병 들이 있었는데 서로 잘 아는 얼굴인 지 별 다른 검문을 하지 않고 통과 해서 들어갔다.
천영은 근처에 있던 바위 위에 몸 을 눕혀 휴식을 취했다. 슬슬 피로 가 몰려온다.
“하암……
하품을 쩍쩍 내뱉으며 기다리길 30여 분. 도시 안쪽에서 데이브가
웬 수레를 이끌고 이쪽으로 달려오 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수레 안에 는 끈으로 단단히 묶여있는 책들이 가득했다.
“많이도 가져왔네……
예상하건데 집에 있던 책을 모조리 긁어서 가져왔으리라. 데이브는 천 영의 앞까지 달려와서는 쿵 하고 그 것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헉,허억……. 일단 최대한 많이 가져왔습니다만…… 여기서 읽으시 겠습니까? 따로 보관할 방법은 없어 보이는데……
“아냐,괜찮아. 다 읽고 나중에 찾
아가서 돌려줄게.”
천영은 그 보따리를 입으로 물고 인벤토리를 열어 획 집어던졌다. 그 러자 인밴토리의 칸에 맞춰 책들이 착착 수납된다. 타인이 보기엔 허공 에 물건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 것 이므로 데이브가 눈을 동그랗게 뜨 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고마워.”
“아,요깃거리는 어떤 걸 좋아하시 는지 잘 몰라서 빵과 고기,우유를 가져왔습니다.”
“오,잘 가져왔네.”
빵과 고기를 먹게 될 줄은 몰랐기
에 천영은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데이브에게서 받은 음식 보따리까지 인밴토리에 수납한 천영은 몸을 돌 렸다.
“그럼 가볼게.”
“예! 부디 몸조심 하십시오!”
상체를 90도로 꺾어서 인사를 하 는 데이브의 모습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예의를 차리고 있었지만 천 영은 딱히 부담스럽거나 하지 않았 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책을 읽을 생각만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천영 은 몸을 가볍게 띄워 거처로 정했던
폐허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