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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2. 요즘 현하빈은 학교를 마치면 무엇을 하는가 (14) (259/268)

외전2. 요즘 현하빈은 학교를 마치면 무엇을 하는가 (14)

“이게 그…… 나라의 전통 젤리인가요? 맛이 좀 묘한데.”

“그거 코딱지맛이야.”

“네엑?!”

이후 친절하게 설명해 준 하빈 덕분에 진상을 알게 된 레몬. 뒤늦게 젤리를 뱉어냈지만 이미 늦었다. 레몬이 배신감을 느낀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역시 마신 아니랄까 봐!’

한 명은 이런 음식을 선물이랍시고 주고, 다른 한 명은 너무 늦게 진상을 알려주었다.

‘생각해 보니 둘 다 위험한 인물들이지.’

한쪽은 오래전부터 잔악무도하단 전설을 가졌던 마신, 다른 한쪽은 심심하면 마계와 킬스크린의 여러 국가들을 공포에 떨게 할 수 있는 마신!

‘역시 이분들 틈에 끼어 있다 보면 심장이 남아나질 않는다니까!’

그러는 동안 하빈은 쇼핑백에 뭔가를 집어넣고 있었다.

“흠흠, 이거 정말 잘 구했어!”

화려한 실크로 정성스레 포장한 걸 보니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았다. 레몬은 무심코 물었다.

“그건 뭐예요?”

“아,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코니 할머니께 선물을 주려고.”

사실 하빈은 영국의 코니네 별장에 있다가 리베를 보러 체칼라다임으로 급하게 온 것이었다.

한국에 가기 전에,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서 마저 코니 할머니와 작별 인사를 할 예정이었다.

하빈이 뿌듯한 표정으로 선물을 들어 보였다.

“체칼라다임에 온 김에 구했어.”

“와…….”

하빈이 구한 건 예쁜 찻잔과 그릇들이었다.

“코니 할머니, 갈 때마다 차를 내주시는 게, 차 드시는 걸 좋아하고 그릇 모으는 것도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그동안 하빈과의 만남 때마다 다과를 내주었던 코니의 평소 모습. 하빈은 그걸 잊지 않았던 것이다.

“체칼라다임의 왕실에서 쓰던 거라니까, 품질이 아주 좋지!”

하빈이 그릇을 들어 보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릇들과 찻잔들은 모두 세트로 만들어졌는지 같은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장인이 하나하나 고심해서 그린 꽃과 나비 그림들, 가장자리에 발려 있는 금장까지.

당장 문화재나 유물로 지정한다 해도 납득할 만큼, 예술적인 아름다움이 풍겨 나오는 그릇들이었다. 레몬이 감탄의 얼굴로 중얼거렸다.

“와, 이거 무척 값비쌀 텐데요?”

“응응, 지구에서 구하려고 해도 힘들더라. 이 정도로 열심히 만든 건 박물관에 갈 만한 빈티지 그릇들밖에 없고, 그마저도 엄청 비싸더라고.”

하빈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체칼라다임에선 쉽게 내주던걸? 보석 몇 개만 줬는데 알아서 갖다 주더라니까?”

하빈은 마계에서 주기적으로 보석과 금을 조공받곤 했다. 주지 말라고 해도 억지로 받으셔야 한다며 주머니에 넣어 주는 마계의 마석과 보석들.

한국에서 바로바로 현금화하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킬스크린에선 쉽게 쓸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아무리 값을 치른다고 해도 이건 왕실의 재산이라 쉽게 내줄 수 없었을 텐데, 왕실 사람들이 하빈 님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나 봐요.”

“그러게나 말이야.”

하빈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도 체칼라다임이 이렇게나 잘 해줄 줄 몰랐다.

“솔직히, 내가 마신으로 불리는 걸 알면 속았다고 화낼 줄 알았는데.”

관리자의 멸망 공격 이후, 마계를 제집 드나들듯 오가는 하빈의 행보로 인해 킬스크린 주민들은 결국 하빈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물론 체칼라다임 측에서 가장 놀랐다.

‘아아니! 용신님의 왼팔로 소개하던 그분이 마신이었다고요!?’

‘어떻게 마신이 용신님의 곁에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릴 속인 건가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처음엔 기겁해서 우왕좌왕하던 체칼라다임.

그러나 그들은 곧 현실을 깨닫고 진정했다.

‘말이 마신이지, 딱히 우리한테 나쁜 일을 한 것도 없잖습니까?’

‘그렇지. 마계랑 동맹도 맺었고…… 이번에 멸망을 막아 주시기도 했고.’

‘용신님과의 사이도 굉장히 좋아 보이시는 게, 나쁜 뜻으로 왼팔을 자처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애초에 마신의 눈 밖에 나면 우리도 큰일 나는 거 아냐?’

‘엄청 세다던데…….’

여러 의견이 오간 끝에, 하빈을 맞이하는 체칼라다임의 태도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눈치를 보게 되었다.

‘아이고, 용신님의 왼팔님 오셨습니까!’

‘……근데 우리, 왼팔이라 불러드려도 되는 건가? 원래 정체는 마신님이라면서?’

‘마신님으로 불러드려야 되나?'’

‘그럼 국빈 아니야?’

‘뭘 어떻게 해야 해?’

‘눈 밖에 나면 우리나라도 슥삭 되는 거 아냐?’

‘히이익.’

호칭 정정부터가 미궁으로 빠졌던 그동안의 상황. 결국 그들은 요즘 하빈을 마신이자 국빈으로 모시고 있었다.

‘아이고, 마신님이 여기까지 행차하시다니, 어서 오십시오! 또 용신님과 만나러 오셨지요?’

‘그래그래, 근데 너희도 꽃가루를 뿌려?’

‘예? 혹시 꽃가루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니? 그냥 이게 요즘 유행인가 해서.’

하빈이 오자 기다렸다는 듯 꽃가루를 뿌리며 맞이하는 체칼라다임.

‘킬스크린은 꽃가루 뿌리는 게 유행인가? 흐음, 여기도 안 뿌려도 되는데. 예산 아깝게.’

‘저희 예산까지 신경을 써 주시는 겁니까?!’

“……어쨌든 전보다도 더 잘 대해 주더라고.”

“아무래도 마신이니까 겁을 먹은 게 아닐까요?”

레몬이 조용히 추측했다. 약소국인 체칼라다임의 입장에서, 마계의 주인이자 멸망을 막아낸 주역은 엄청난 존재로 느껴질 것이다.

“게다가 하빈 님은 헤자라토 제국에서도 극진히 대하고 있잖아요? 계승권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쫙 퍼졌어요!”

이 정도면 절대 눈 밖에 나서는 안 될, 거물 중 거물로 보이지 않을까?

그러나 하빈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뭐? 무슨 소리야. 그걸로 겁을 먹다니. 애초에 난 여기저기 겁주고 다니는 스타일이 아닌걸? 설마 나한테 겁을 먹겠어? 내 인상이 얼마나 순한데! 그치 리베야?”

-삐이!

“인상의 문제가 아닌데요…….”

레몬의 소심한 중얼거림은 하빈이 그릇을 집어넣는 소음 사이로 조용히 묻혔다.

하빈은 그릇의 포장을 확인하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좋은 선물을 구해서 참 다행이야! 체칼라다임 이분들이 손재주가 좋으시네. 저번 방탈출 카페 소품 공수할 때도 체칼라다임 소품들이 참 괜찮더라고.”

이 그릇도 할머니가 좋아하면 좋을 텐데.

* * *

“어머, 언제 이런 그릇들을 구한 건가요? 무척 귀해 보이는데…….”

하빈의 바람대로, 코니는 체칼라다임의 그릇을 보며 감탄을 흘렸다.

“이렇게 귀한 걸 어떻게 받죠?”

“에이, 제게 도움을 주신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새벽에 덩그러니 영국에 떨어진 하빈을 나서서 챙겨 주고, 잘 곳도 제공해 줬으며, 제자에게 부탁해 알차게 여행까지 시켜 준 코니다.

하빈은 그에 대한 보답을 제대로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하빈 양에게 무리가 되는 게 아닌지.”

코니는 머뭇거리며 그릇을 쓸었다. 아무리 봐도 이 정도의 그릇은 보통 가격이 아닐 것 같은데, 하빈이 과소비를 한 것 같아 마음이 쓰이는 모양.

그걸 구석에서 지켜보던 올리비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코니 님은 하빈 씨가 얼마나 부자인지 모르시는 건가?’

세컨드 하우스에 영화관을 차릴 계획을 세우고, 사용인까지 부리는 거물이던데.

‘그런 분이라면 저 정도의 그릇을 선물로 주실 능력이 있으실지도.’

알아서 납득하고 있는 올리비아. 그 와중, 하빈은 코니를 설득하기 위해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실은 빈티지 제품으로 구한 거라 그렇게 비싸지 않았어요. 부담 가지지 마세요! 제가 정말 고마워서 그래요.”

“……그럼 나도 고맙게 받도록 하죠.”

코니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하지만 나도 받은 만큼 또 돌려주는 성격이랍니다. 다음을 기대하세요.”

조심스럽게 그릇을 보관하는 코니. 하빈은 곁에 있던 올리비아에게 몸을 돌렸다.

“아, 올리비아!”

“……?”

“올리비아도 여행 내내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어. 이건 네 선물!”

“헉, 고마워.”

하빈은 올리비아의 선물도 챙겼다.

“뭘 좋아할지 잘 몰라서 키링 같은 걸로 챙겼어.”

[그것도 체칼라다임에서 받은 거니까, 금으로 된 거 아니냐?]

‘음? 금으로 된 거였나?’

반짝이는 키링을 보며 하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올리비아는 키링의 소재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크게 놀라지 않고 인사를 했다.

“고마워! 앞으로도 자주 연락할게!”

“그래그래.”

안 그래도 둘은 여행 동안 친해지면서 말을 놓고 친구가 되기로 한 상황이었다.

‘이런 친구도 있으면 좋지.’

보아하니 코니 할머니 따라 세계 각지로 출장을 다니는 모양인데, 방학 때 세계 여행 할 때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을지도.

“좋아, 완벽한 여행이었어. 이제 집으로 돌아가 볼까?”

하빈은 콧노래를 부르며 짐을 마저 챙겼다.

오늘 있었던 일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는 상상도 못한 채.

* * *

그렇게 영국 여행이 끝나고 며칠 뒤,

하빈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업을 잘 듣고 있었다.

“헉! 졸아버렸다. 태서야, 혹시 방금 들은 거 필기했어?”

“……빌려 줄게.”

“크으 넌 정말 최고의 친구야! 복 많이 많이 받으렴! 나도 다음에 너 졸면 필기 빌려 줄게!”

신이 나서 태서에게 갖고 있던 빵을 주고 공책을 빌린 하빈.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급하게 공책 필기를 촬영했다.

“태서 너도 공부 요즘 열심히 하는구나? 다음 시험 기간 때 같이 도서관 가자.”

“그래.”

수업이 끝나고 잡담을 하며 학교 정문을 향하던 그때.

하빈은 뭔가 평소와는 다른,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수군수군.

‘뭐지? 학교 정문이 왜 저렇게 어수선하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수군거리고 있는 광경. 그들의 관심이 무엇 때문에 쏠려 있는지 궁금했던 하빈은 까치발을 들어 빼꼼 상황을 살폈다.

마침내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광경은.

‘저건……!’

리무진들이잖아?

‘나, 나 왠지 이 상황, 너무 익숙한데!’

저도 모르게 주춤주춤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는 하빈. 바로 그때, 리무진 옆에 서 있던 슈트 차림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저기 나오신다!”

“현하빈 아가씨?”

“으아악! 왜 이번에도 또!”

하빈을 보며 '아가씨'라고 반갑게 부르는 사람들의 정체를 파악한 하빈이 작게 비명을 질렀다.

“아악, 할머니! 이번에도 이러시기에요?!”

코니 할머니는 왜 회귀를 해도 바뀌시질 않는 거냐고!

그랬다. 이번에도 코니 할머니가 보낸 사람들이었다. 순간 하빈의 머릿속에, 코니의 작별 인사가 스쳤다.

‘하지만 나도 받은 만큼 또 돌려주는 성격이랍니다. 다음을 기대하세요.’

“이런 식으로 돌려주지 말라고요!”

사람들의 이목을 너무 끌잖아!

안 그래도 교문의 학생들은 하빈과 경호원의 대치를 보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현하빈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래!’

‘뭐야? 현하빈 정체 뭔데?’

‘재벌집 딸인가?’

‘나 쟤 집 아는데, 재벌 아닌데?’

‘아니면 무슨 조직 딸 아님? 저번에 마포구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있다고 들었는데.’

“……하, 젠장.”

한숨을 푹 내쉬는 하빈.

‘내 이미지 어쩔 거야? 조용하고 소심하고 평범한 모범생 이미지 어쩔 거냐고!’

[별로 조용하지도 소심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았다만…….]

‘잘잘이 조용히 못 해?’

“현하빈……?”

그때, 문득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드니, 태서도 동공에 지진이 난 눈빛으로 하빈을 쳐다보고 있었다. 입을 열지 않아도 눈빛에서 혼란과 당황이 느껴졌다.

‘진짜 재벌 딸이야? 조직 딸이야?’

같은 의문이 담긴, 혼란의 눈빛.

하빈은 재빨리 해명했다.

“아니야. 아니라고! 뭘 생각하든 그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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