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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2. 요즘 현하빈은 학교를 마치면 무엇을 하는가 (12) (257/268)

외전2. 요즘 현하빈은 학교를 마치면 무엇을 하는가 (12)

“할머니, 오랜만이에요!”

“지난주에도 봤던 것 같은데…….”

“일주일이면 오랜만이죠!”

하빈은 반가운 얼굴로 코니에게 인사했다. 코니는 이 세계관에서도 유명한 디자이너 브랜드를 차려서 이름을 날리는 중이었다.

‘알고 보니 각성 전에도 잘 되시던 분이셨지 뭐람?’

원래도 패션 사업을 하던 코니. 하빈과 다시 친해지게 된 계기는 채지세 덕분이었다. 이번엔 지세가 직접 나서서 코니와 하빈의 연결 다리를 만들어주었다.

‘역시 만능 지세 언니라니까.’

지세는 자신의 사업과 협업하자며 코니에게 접근했고, 그 와중에 하빈이도 꼽사리 껴서 인사를 몇 번 갔었다.

그리고 지금은 여전히 전처럼 펜팔 관계고 말이다.

“이 시간에 갑자기 찾아오다니, 무슨 일인가요?”

코니는 얼떨떨한 얼굴로 묻고 있었다. 하빈은 끄응, 한숨을 삼켰다.

‘일단 여기가 몇 시인지도 지금 모른다고.’

그래도 ‘이 시간에’라는 말을 붙인 걸 보니 멀쩡한 시간은 아닌 모양.

‘아무 때나 실례되는 시간에 방문하는 무례한 사람으로 보일 순 없지!’

하빈은 침착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아, 하하. 그게 할머니를 뵈러 오려던 게 아니라, 우연히! 지나던 길에 길을 잃어서!”

거짓말은 아니었다. 순간이동 하려다 좌표 잘못 줘서 코니 할머니네 집으로 오게 된 거였으니까.

‘근데 여기가 어느 집이더라?’

코니 할머니는 지난번 한국 별장에 찾아왔던 것처럼 세계 각지에 집을 두고 있었다.

‘주변 간판이 영어인 걸 보니 여기도 미국인가?’

그럼 여기서 원래 목적지인 유리버셜 스튜디오까지 멀지 않을지도.

하빈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코니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길을 잃었다니, 그거 큰일이군요. 어딜 가려던 길이었나요?”

“아, 원래는 할리우드에 있는 유리버셜 스튜디오에 가려 했는데…….”

“뭐라고요?! 거긴 미국인데?”

“엥.”

“여긴 영국인걸요?”

“……!”

생각해 보자. 지금 한국은 낮, 미국은 밤, 영국은 새벽!

‘새벽에 왔으니 당황하실 만도 하지!’

하빈은 찔린 표정으로 눈을 굴렸다. 코니는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쩌다 길을 잃어서 영국에…….”

미국에 가려던 사람이 길을 잃어 영국에 오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 하빈은 다급히 변명했다.

“비, 비행기! 비행기를 잘못 탔어요! 미국에 가는 비행기를 타려다 영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탔지 뭐람!”

“저런, 그거 큰일이군요!”

다행히 의심 없이 믿어주는 듯했다. 코니는 하빈의 곁에 있던 글리치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이분은 하빈 양과 무슨 관계죠?”

‘왠지 저번 일의 데자뷰를 겪는 것 같은데.’

예전에도 글리치와 단둘이 코니 할머니를 독대한 적 있었던 하빈. 이번은 두 번째인 덕에 더 수월하게 둘러댈 수 있었다.

“아는 선배예요. 이쪽도 할리우드에 가기로 했는데 제 실수로 같이 길을 잃었지 뭐예요?”

“용케도 네 실수인 걸 인정하는군?”

글리치가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하빈이 어이없단 얼굴로 받아쳤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선배! 난 언제나 나의 실수를 흔쾌히 인정하는 대인배지!”

하빈이 글리치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살벌하게 덧붙였다.

‘코니 할머니도 있는데 내 이미지를 망칠 셈이야? 망치면 가만 안 둬.’

그러나 글리치는 지지 않고 한마디를 더 얹었다. 그동안의 설움이 담긴 듯 진지한 표정.

“……제가 이래서 고생을 좀 많이 합니다.”

‘뭐야, 선배? 욥떡이 궁금하다고?’

둘이 툭탁대며 눈빛을 주고받을 때였다. 코니가 문을 열며 손짓했다.

“우선, 바람도 찬데 안에 와서 마저 이야기해요.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도울게요.”

“앗, 감사합니다, 할머니!”

* * *

응접실로 둘을 안내하던 코니는 하빈과 글리치의 행색을 보고 의아한 낯을 했다.

“그런데, 여행 짐이나 수화물은 없었던 모양이군요?”

“아, 그게…….”

‘인벤토리가 있다 보니 가방 같은 거 안 챙겼는데.’

그래도 해외까지 오는데 빈손으로 덜렁 오다니, 타인이 보기에 의아할 법했다. 하빈은 급히 변명거리를 생각했다.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있죠.”

“그렇군요……. 여권은 있는 거지요?”

“네? 네!”

[……사실 여권도 안 챙겼잖느냐?]

‘그렇지……. 필요해지면 다시 한국 가서 챙겨올 생각이었는데.’

“그럼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다시 알아봐 줄까요?”

“아, 그럴 필요는 없어요!”

하빈이 손을 내저었다. 솔직히 지금 다시 미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는 건 바보짓이었다.

‘영국에 입국한 기록도 없는데 갑자기 출국하면 걸리는 거 아냐?’

여권도 없고 말이다!

“그럼 유리버셜 스튜디오는 어떻게 가려고…….”

“으음. 사실 안 가도 상관없어요.”

다음 주에 가면 되지, 뭐.

원래 놀 수 있는 방법은 많이 남겨두는 게 좋은 법이니까.

“이왕 여기 온 김에 영국 투어나 할까? 해X포터 스튜디오도 여기 있을 텐데.”

거기도 도비 이즈 프리 아이템을 팔면 좋겠네.

‘사실 본 목적이 그거였거든!’

‘해X포터’ 코너는 오히려 유리버셜보다 아예 대놓고 ‘해X포터’ 스튜디오인 곳이 더 본격적일지도?

하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핸드폰을 열어 카톡창을 켰다.

오빠

나 유리버셜 가기로 한 거

취소임

현시우

?

실수로 영국 왔어

그래서 걍

해X포터 스튜디오 갈거임

현시우

????

뭔 소리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됨

길을 잃어서

암튼 그런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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