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2. 요즘 현하빈은 학교를 마치면 무엇을 하는가 (11)
“미안해. 네발제희, 아아니, 송제희야.”
“자꾸 그러실 거예요?”
제희가 기분이 상한 듯 눈을 흘겼다. 하빈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었다.
‘회귀 전이나 후나 성격은 죽지 않았군.’
물론 둘 다 기억을 가지고 회귀한 건 아니었다. 대신, 하빈은 회귀 후에 둘을 찾아갔다.
‘안녕, 얘들아. 내가 떡볶이 사 줄까?’
‘헉, 엄마가 모르는 사람이 사 주는 거 먹지 말랬어요!’
‘맞아, 여서윤. 저런 사람 따라가는 거 아냐.’
‘뭐야, 너희 둘은 또 언제 친해졌대?’
하빈이 회귀 후 일상을 보내는 동안, 제희랑 서윤은 같은 동네 출신에, 우연히 같은 학원을 다니며 꽤 친해진 모양이었다.
회귀 전의 인연을 다시 만날 확률. 그걸 높여두었던 게 이렇게 되다니?
어쨌든 이번엔 고등학교 입학생이 아닌 중학교 입학 예정 초등학생이 된 둘. 하빈은 경계심 강한 녀석들이랑 다시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느냐?]
‘아니? 사실 노력 안 했어!’
그냥 ‘만능 지세 언니’ 카드를 썼다. TV에 나오는 유명인에, 보장된 엄친딸 한국대생 신분 채지세!
지세를 앞세워 서윤의 부모님을 먼저 설득한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희 재단에서 멘토링을 해보려고 하는데 혹시 무료로 참여해 보실 수 있으신지…….’
이번에도 이 비서와 함께 교육재단을 만든 채지세. 재단에서 운영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에 서윤이도 참여하면 어떻겠냐, 하는 제안을 했는데.
‘어머, 지세 씨 아니에요?’
‘김퀴즈 온더스트릿에서 봤는데?’
‘비디오스타에서도 봤어요. 대학생 CEO 겸 모델이라고 나오던데.’
다행히 서윤의 부모는 채지세를 TV에서 본 분들이셨고, 서윤이가 지세, 하빈과 어울리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안녕, 서윤아! 만나서 반가워!’
‘어? 언니는 저번에 그 떡볶이 사 준다고 했던……?’
‘맞아! 욥떡 좋아하니? 아님 다른 거 시켜도 돼. 치킨 시킬까?’
그래서 하빈은 서윤과 다시 친해지게 된 것이었다.
“언니, 그런데 이 방탈출 카페, 완성되면 저희도 해도 돼요?”
“어? 되던가?”
하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인테리어를 도와주고는 있지만 하빈은 귀찮아서 운영에는 손을 뗐기 때문에 이곳 테마를 잘 몰랐다.
“여기 테마는 현시우가 짰던 것 같은데.”
흐음, 어디 보자.
하빈은 안내용 책자를 팔락팔락 넘겼다.
“마계 테마들이랑 좀비 테마는 너무 무서울 것 같고……. 산타클로스 테마는 너희가 해도 되겠다.”
“오오.”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서윤. 그러나 옆에 있는 제희는 마음에 차지 않는 듯 입을 내밀었다.
“저희를 너무 어린애 취급하는 거 아니에요? 산타클로스 테마라니, 유치해. 산타 믿을 나이도 한참 지났는데.”
“뭐라구? 너 몇 살인데?”
“12살이요!”
“아, 12살……. 하, 하.”
턱을 한껏 치켜세운 제희. 하빈은 헛웃음 몇 모금 내뱉곤 이어 말했다.
“너 그렇게 산타 무시하면 안 돼! 진짜로 있으면 어떡하려고 그래?”
하빈이 짐짓 엄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용도 있고, 맵찔이 마신도 있는 세상인데! 날아다니는 순록을 타고 다니는 할아버지 정돈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뭐,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용이랑 맵찔이 마신? 그런 게 어딨어?
제희는 하빈이 자신을 놀린다 생각했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어쨌든 산타클로스 테마는 안 해요. 저는 좀비 테마나 깰래요.”
“안 돼, 좀비탈출 테마는 15세 미만은 안 된다구. 게다가 그 테마엔 탈출을 위해 네발로 기어가는 코스가 있는데, 흠…. 괜찮겠어?”
“네……?”
“제희는 언제나 네발 걷기에 진심이구나?”
“아니거든요!”
저도 모르게 발끈해서 아니라고 외쳐 버린 제희. 하빈은 이죽거리며 덧붙였다.
“송제희, 이번에도 넌 세금 낼 나이 되려면 한참 멀었어! 더 크고 다시 도전해라.”
“본인도 미성년자인 건 똑같으면서!”
“호오, 똑똑한데? 어떻게 알았지?”
계속 툭탁거리며 말을 이어나가던 하빈. 그녀는 시계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상대해 주고 싶긴 하지만, 난 이제 가 봐야 할 시간이 되어서 말이야.”
“어디 가는데?”
“유리버셜 스튜디오! 내가 여기 가려고 얼마나 손꼽아 기다린 줄 알아? 일단 원두, 이시네, 김릭샤도 퇴근해. 서윤이랑 제희도 이만 집에 돌아가고.”
신이 나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하빈. 그 모습을 본 원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유리버셜 스튜디오는 여기서 멀지 않아? 지금 가면 학교는 어떡해? 모레 학교 가잖아.”
“그…… 그건!”
하빈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 일본에도 유리버셜 있어! 일본은 비행기 타면 두 시간밖에 안 걸린다고!”
물론 하빈은 미국에 있는 곳을 갈 생각이었다. 순간이동을 쓰면 장시간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되니까!
‘기다려라, 할리우드!’
회귀 직후부터 성실히 공부하고, 방탈출 카페 오픈까지 도와준 현하빈.
‘휴, 나처럼 열심히 산 사람 또 어디 있나 나와 보라 해. 나도 더 이상은 못 참는다구!’
방학 때 지세 언니랑 세계 여행을 하기로 약속했지만, 그전에 놀지 않고서는 못 배겼던 것이다.
‘방학 시작되면 유우니 사막도 가고, 제주에서 한 달 살기도 하고, 세계 여행도 한 달 하고, 크루즈 여행도 하고, 마계 호캉스도 하고…….’
[그러면 방학 기간이 한참 넘지 않느냐?]
‘당연히 시간 돌려야지!’
관리자 모드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 아니겠어?
[그 힘을 그렇게 개인적인 일로 쓰다니?]
‘쉿! 관리자 녀석도 개인적인 일로 마구 썼는데 나는 왜 안 돼? 그것도 겨우 방학 늘리는 정도로만 쓰겠다는데!’
[겨우 그 이유로 쓰는 게 문제 아닌가?]
‘방학은 아주 중요한 거라고!’
“어쨌든 이번 유리버셜 스튜디오 여행은 현시우랑 지세 언니도 도와주겠다 했다구. 숙소도 잡아 주고 표도 끊어 줬지 뭐람!”
좋은 언니 오빠들을 뒀다. 덕분에 매번 귀찮고 힘겨운 일들을 겪지 않아도 되어 얼마나 편한지.
“물론 내가 한 공로가 큰 덕이 있지만 말이야. 이 소품들, 다 내가 공수한 거니까.”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하빈. 원두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하빈이 넌 이런 소품들을 어디서 구한 거야?”
헤자라토와 체칼라다임에서 구해 온 왕실과 황실의 소품들은 일반인이 보기에도 퀄리티가 수준급이었다.
진짜 금과 은으로 정교하게 세공된 거울과 램프, 시계. 박혀 있는 보석들도 모두 진짜 보석들이라 광채와 컬러감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런 건 유럽에서 빈티지로 구하려고 해도 못 구할 것 같은데…….”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포스가 풍기는 물건들.
“그렇다고 유럽 제품도 아닌 것 같고.”
특히 마계에서 공수한 것들은 이 세상 물건이 아닌 분위기의 물건들도 많았다. 정교하게 장식된 해골 조각과 괴물 조각들. 시커먼 흑요석으로 꾸며진 소품들까지.
그러나 하빈은 뻔뻔하게 변명했다.
“당연히 이것들도 다 산 거지!”
“샀다고?”
“크흠! 주문제작이야! 요즘 주문제작이 안 되는 데가 어딨어?”
물론 그 주문제작이 마족한테 맡긴 주문제작이라는 점은 비밀이지만!
“그, 그렇구나……? 되게 비쌌을 것 같은데.”
“생각보다 안 비쌌어. 아는 사람이 하는 거라 싸게 했지.”
그 아는 사람들도 전부 마족들이지만.
“그래? 요즘 기술이 많이 좋아졌나?”
고개를 갸웃하는 박원두. 그 어색한 상황에서 하빈을 구해준 건 서윤과 제희였다.
“언니, 진짜 유리버셜 스튜디오 가요? 재밌겠다.”
부러움의 표정으로 바라보는 서윤. 그 얼굴을 본 하빈이 당황했다.
“앗, 그러고 보니 나만 놀러 간다고 하니까 좀 미안하네.”
그렇다고 얘네들까지 순간이동으로 유리버셜 스튜디오에 데려가는 건 곤란했다.
‘순간이동에 대해 뭐라 설명해? 어쩔 수 없이 이번엔 나 혼자만 다녀오는 거지.’
“내가 사전답사라 생각하고 잘 다녀올게. 대신, 방학 때 우리 다 함께 가자.”
“와아, 정말요?”
“정말?”
박원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곁에 있던 이프시네와 김릭샤도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혹시 우리도 포함인가요? 저번에 레몬 씨도 거기 다녀왔다던데!”
“그랬습죠. 무척 재밌었다고 하던데…….”
반짝이는 눈을 본 하빈이 선심 쓴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알았어, 다들 와. 워크샵이라 생각해. 내가 쏜다!”
“와!”
“진짜 가도 되는 거야? 비용은 어쩌고?”
“아, 사실 비용은 현시우가 내지 않을까?”
지난번에 살짝 엿들어 보니, 로또 당첨된 게 한두 번이 아닌 모양이던데, 그 정도 비용은 있겠지, 현시우!
‘시간 되돌려 준 것도 나니까, 로또 당첨엔 내 지분도 있다고.’
그 정도 비용은 부담해 줄 거라 믿을게, 오빠!
뻔뻔한 표정을 지은 하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그래, 다들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안 되면 내가 되게 할 테니까!”
[어떻게 되게 한다는 건지 벌써부터 걱정된다만…….]
‘걱정되면 잘잘이는 혼자 여기 있어! 우린 다녀올게.’
[아, 아니다! 취소, 취소! 나 하나쯤은 데려가도 문제없지 않겠느냐?]
‘하긴. 잘잘이는 비행기에 타도 요금을 안 내서 괜찮을 것 같아.’
수하물로 부치거나, 가지고 타도 될 듯?
“어쨌든, 나는 이제 정말로 가볼게! 지금도 소중한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어서 말이야. 대신 기념품도 사 올 테니 기대하라구!”
하빈은 경쾌한 작별 인사와 함께 일어섰다.
* * *
“순간이동 진짜 최고야! 이번에도 잘 부탁해, 꼰대!”
“혼자 하면 될 걸, 또 나를 부르다니.”
하빈의 요청으로 소환된 글리치는 유리버셜 스튜디오에 데려다 달란 부탁에 인상을 썼다.
“매번 장거리 순간이동 할 때마다 소환할 건가? 대체 날 뭘로 생각하는 거지? 순간이동 셔틀?”
“어허, 셔틀이라니! 선배를 셔틀로 부릴 리가 있어? 내가 꼰대를 얼마나 땅 같은 선배로 생각하는데.”
“……땅? 하늘 같은 선배가 아니라?”
“흠흠! 아무튼! 원래 좋은 선배는 후배들이 여행할 때 도움을 주는 법이라고.”
끝까지 ‘하늘 같은 선배’로 정정하지 않는 하빈을 보며, 글리치가 흥 콧김을 뿜었다.
“혼자 해볼 생각은 정말 하나도 없는 건가?”
“아, 순간이동은 아직 안 익숙해서 곤란해. 실수로 좌표 잘못 설정해서 바다에라도 빠져 봐, 그럼 좋은 옷이 상한다고.”
“…….”
“아님 사람들이 가득한 시내 한복판이나 방송 촬영장에라도 떨어져 봐, 그럼 큰일 난다니까?”
“흠……. 그럴 수도 있겠군. 그래도 틈틈이 연습은 해.”
“그래그래. 일단 시험공부부터 하고. 아 참, 대학도 입학하고, 운전면허 딴 뒤에 생각해 볼게!”
“그럼 어느 세월에 한다는 거야?”
“에이, 마족은 수명도 길다던데 그거 하나 이해 못 해준담?”
하빈은 어깨를 으쓱하며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에는 좌표가 적혀 있었다. 순간이동을 할 때는 주소보다 좌표로 주는 게 더 편하다나.
“여기로 이동하면 되는 거야?”
“응.”
슈아아-
마법에 대해서는 베테랑 중 베테랑인 글리치의 스킬이라 그런지, 단번에 주변의 광경이 바뀌었다.
“도착하면 맛있는 것부터 사 먹어야지……. 아, 아니지!”
시차가 있으니 숙소부터 찾아가야 할 것이다.
도착한 하빈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호텔부터 찾아야 하는데.
‘……여긴 뭐야?’
눈앞에 펼쳐진 건 전혀 다른 광경이었다. 아무리 봐도 호텔이 있는 관광지라기보단 조용한 주택가에 가까운 모습.
“선배, 제대로 온 거 맞아?”
“네가 준 좌표대로 왔는데?”
글리치가 내민 종이를 받아든 하빈이 거기 적힌 좌표를 살펴보았다. 뭔가를 깨달은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앗, 좌표를 잘못 줬네.’
이건 유리버셜 스튜디오의 좌표가 아니었다.
[그럼 어디……?]
“……하빈 양? 이 시간에 여긴 웬일로?”
때마침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하빈은 재빨리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코니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