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2. 요즘 현하빈은 학교를 마치면 무엇을 하는가 (10)
그로부터 몇 주의 시간이 지나고.
“자자, 이거 이쪽으로 옮기자.”
“마…… 아니, 하빈 님! 이건 어디 둘까요?”
“그건 3번 방에 둬야 해.”
“넵!”
부산스럽게 소품을 나르는 이프시네의 대답을 들으며, 하빈은 흡족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좋아, 이 정도면 이 일대 방탈출 카페는 다 제치겠어.’
여기가 바로, 시우와 지세가 만든 방탈출 카페, ‘킬스크린 이스케이프’ 홍대점이었다.
본점인 1호점은 소문 돌자마자 한국대 앞에 만들었고, 지금 만드는 건 직영 2호점.
“우와, 나 이렇게 스케일 큰 방탈출 카페 처음 봐.”
그녀의 곁에 서 있던 사람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빈이 어깨를 으쓱했다.
“야, 너 방탈출 알바도 해봤다며?”
“해봤으니까 하는 소리야!”
그의 정체는 바로 박원두였다. 회귀 전 하빈이 던전 짐꾼을 하며 만났던 친구이자, 알바 마스터 박원두.
현하빈에게 편의점 알바 대타를 맡겼다가 하빈이 좀도둑을 잡는 공로를 세우게 했던 그 친구!
물론 지금은 회귀하면서 그때의 기억은 없다. 그래도 둘은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현하빈이 다짜고짜 박원두를 찾아갔기 때문이었다.
‘휴, 박원두. 이 세계관에서도 열심히 살고 있군! 어떻게 고딩인데도 벌써 스타리너스에서 알바를 하고 있지?’
‘누구세요? 저 고딩인 거 어떻게 아세요?!’
‘내가 충고하는데 스타리너스 알바는 그만둬. 대신 더 좋은 알바 자리를 주선해 주지.’
‘네?!’
“나 진짜 그때 너 사기꾼인 줄 알았잖아.”
그때의 상황을 회상할 때면 박원두는 하빈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렸다.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다느니, 사기꾼인 줄 알았다느니.
[사실 사기도 많이 쳤다.]
‘쓰읍,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김잘잘? 조용히 안 해?’
야구 배트를 한 번 노려봐 준 하빈이 입을 열었다.
“어쨌든 내 말 듣길 잘 했지? 내가 주선해 주는 알바들, 진짜 다 괜찮았잖아!”
하빈은 시우와 지세가 하는 사업에 박원두를 알바생으로 추천해 주었다. 덕분에 원두는 꿀알바 잡무만 맡으며 편하게 돈을 벌 수 있었다.
“맞아. 게다가 틈날 때마다 너희 오빠랑 지세 누나가 대학 입시 공부도 가르쳐 주시더라니까. 다들 너무 잘해주셔서 믿기지가 않았어.”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생 때부터 알바를 하던 박원두로서는 너무나도 좋은 기회였다.
“그래. 너 계속 그렇게 커피 알바만 하다간 나중에 그 좋아하는 커피에 트라우마 생긴다니까? 내가 적절한 순간에 구해준 걸 감사하게 여기라구.”
하빈이 팔짱을 끼며 뿌듯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헌터물 세계관의 박원두는 스타리너스 커피를 굉장히 좋아했었지만, 스타리너스 알바를 질리도록 하는 바람에 그곳 커피에 트라우마가 생겼던 슬픈 과거가 있다.
하지만 이번엔 일찍 그만두었으니 그럴 일 없을 것이다!
‘완벽한 해피엔딩이지!’
지금도 박원두는 저렇게 스타리너스 커피를 마시고 있잖은가. 하빈은 그의 손에 들린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너 임마, 넌 진짜 나한테 감사해야 해. 예전에 편의점 대타 맡겼을 때도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응? 내가 편의점 대타를 맡긴 적이 있었나?”
“크흠! 아무튼 감사하라구!”
말을 돌린 하빈이 괜스레 옆을 돌아보았다. 아직 방에 다 배치되지 않아 한가득 쌓여 있는 소품들.
이건 모두 마계와 킬스크린 곳곳에서 가져온 소품들이었다. 방탈출 카페를 더욱 리얼하고 퀄리티 있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소품들.
왕궁 테마가 있는 곳엔 헤자라토와 체칼라다임 등에서 가져온 예쁜 소품을 놓았고, 마계 테마가 있는 곳엔 마계의 장인들이 직접 조각한 장식품들을 들여놓았다.
물론 안전상의 이유로 마법적인 효과 없는 것들만 골라 왔다. 이것들로 인해 일반인들이 마계의 존재를 눈치채면 안 되니까.
“오, 저건 뭐지? 방에 놓을 소품 같지는 않은데, 개업 축하 화분인가?”
하빈이 옆에 놓인 화분을 쳐다보았다. 다른 소품과 다르게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어서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꽃이 한 송이뿐인가? 그래도 예쁘네?”
하빈이 화분에 핀 꽃을 툭툭 건드렸다.
그 순간이었다.
-키에에엑! 감히 나를 건드리다니!
“응?”
화분에서 들리는 섬뜩한 목소리.
-끼이익! 넌 뭐지? 인간이냐? 인간이면 가만두지 않…….
흙이 들썩들썩 움직이는 걸 보아하니 보통 식물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시네? 김릭샤? 빨리 와 봐! 이거 뭐야?”
“아 그건 말입죠…….”
재빨리 달려온 크릭샤가 설명했다.
“아마…… 신장개업 축하 화분이 실수로 소품에 섞여왔나 본데.”
“축하 화분?”
마침 아헤자르가 생각났다는 듯 외쳤다.
[알겠다! 맨드레이크 종류인가? 그쪽 계열 식물은 마계에서 축하의 의미로 쓰인다고 들었다.]
‘뭐어?’
하빈이 어이없단 표정을 지었다. 축하 화분이 왜 저런 말을 하는데?
‘이왕 말할 거면 ‘짜잔 축하합니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같은 말을 하는 착한 식물을 보내야 하는 거 아냐?’
무슨 저런 성깔 더러운 식물이 축하 선물로 와?
[원래 맨드레이크 종들은 성격이 좋지 않다. 하지만 건강에 좋기 때문에…… 아마 말하는 건 듣지 말고 그냥 잡아먹으라는 의미로 보낸 모양이다.]
“흐음, 건강에 좋다고?”
그 작은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맨드레이크가 움찔했다.
-키…… 키이, 나, 나는 맛이 없다! 독이 있다! 관상용! 관상용이다!
“호오.”
하빈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꽃을 툭툭 건드렸다.
“관상용이면 꽃이 더 예뻐야 할 것 같은데……? 뭘 믿고 관상용인 거지?”
-키에에……!
당황한 듯 흔들리는 꽃잎.
‘얘 재밌네. 좀 더 놀려 볼까?’
하빈이 꿍꿍이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건 오래 가지 않았다.
“헉, 화분이 말을 하네……?”
곁에 있던 평범한 시민, 박원두 때문이었다. 원두는 놀란 표정으로 화분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거 뭐야? 스피커라도 안에 있는 건가? 어떤 원리로 저렇게 말을 하지?”
원두가 화분에 손을 뻗으려는 순간, 하빈은 재빨리 화분을 낚아채 등 뒤로 숨겼다.
“앗, 별거 아니야. 이거 소품이야, 소품!”
“그래……?”
-키이, 난 소품이 아니라! 컥!
“소품이야! 응, 소품이 좀 고장 났나 보네!”
화분 흙에 주먹을 꽂아 잠잠하게 만든 하빈. 그녀가 다급히 그걸 들고 문을 향했다.
“그럼 이거 고쳐야 하니까 밖에 두고 올게!
“어? 어어, 응.”
하빈은 방탈출 카페를 나와 화분을 살폈다.
‘다행히 살살 때려서 기절만 했네.’
화분에 회복 포션을 꼴꼴꼴 부어준 하빈이 쏘옥 인벤토리 안에 화분을 넣었다.
“흐음, 오픈 전에도 한 번씩 소품들을 다 확인해야겠어. 실수로 요런 애들이 섞여 들어가면 난리가 날 테니까.”
마계 컨셉 방탈출이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컨셉! 진짜로 마계의 실사판을 체험시켜 줄 생각은 없다. 이곳의 고객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니, 안전이 제일이니까.
‘게다가 실수로라도 마계의 존재가 알려지는 건 절대 안 될 일이고 말이지.’
얼마나 어렵게 평범한 일상을 손에 넣었는데. 생각만 해도 귀찮은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하빈이 손을 털며 다시 카페로 들어갔다.
마침 이프시네, 크릭샤, 박원두가 로비 공간에 앉아 있었다. 물건을 나르다 좀 쉬려는 모양. 박원두가 하빈에게 물었다.
“여긴 그럼 직영점인 거지?”
“응, 한국대점은 지세 언니가 맡고, 여긴 현시우가 맡기로 했어.”
“그럼 너희 오빠가 사장인 거야?”
“음, 그렇지? 생각해 보니 너도 여기서 알바하기로 했구나. 그래도 너무 신경 쓰지 마.”
하빈은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박원두는 이 카페가 개업하고 나면 알바생으로 와서 일하기로 약속한 참이었다. 사장이 어떤 인물인지 중요할 법하지.
“혹시 현시우가 너한테 갑질하면 꼭 말해! 내가 혼내줄게!”
이프시네도 끼어들었다.
“그죠! 이 카페도 결국은 하빈 님 덕분에 차리게 된 거라면서요. 물건도 하빈 님 덕분에 공수했고. 그러니 원래는 하빈 님이 사장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빈이 안타깝단 표정을 지었다.
“나 사장 못 해. 미성년자란 말이야.”
물론 친권자 동의 있으면 될지도 모르지만 부모님이 해주실 것 같지도 않고.
‘게다가 사업장을 떠맡는 것도 무지 귀찮은 일이고 말이지!’
현시우가 잘 하겠다는데 알아서 하게 두지, 뭐.
하빈은 슬쩍 도와만 주고 가만히 앉아 보상만 받을 것이다. 이번 방탈출 인테리어도 하빈이 도와주는 대신 쏠쏠한 용돈을 받기로 한 참이었다.
그사이, 이프시네는 박원두를 향해 묻고 있었다.
“박원두 님은 앞으로 여기 ‘알바’라는 직책으로 일하시게 되는 건가요?”
“네? 아, 넵.”
“오, 부러워요. 저도 여기 일하면 재밌을 것 같은데.”
“그러게 말이야.”
이프시네와 크릭샤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인테리어를 보고 깜짝 놀라는 장면이라던가, 수수께끼를 풀지 못해 방을 탈출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는 일도 나름의 재미가 있을 터였다.
‘특히 크릭샤는 던전 보스 역할도 해본 적 있으니 나름 경력직일지도?’
그러나 이들은 여기서 일할 수 없다. 하빈은 중요한 사실을 지적했다.
“안 돼, 너희는 주민등록증이 없잖아? 일하는 거 불법이라고.”
이프시네가 깨달았단 표정을 지었다.
“큽, 역시 그래서 주민등록증이 필요한 거군요. 박원두 씨는 주민등록증이 있으신 거죠?”
“네? 네……. 미성년자라 알바하려고 부모님 허락도 받았어요.”
“아하, 이런 걸 알바라고 하는 거구나?”
“알바라는 거 꽤 괜찮은 거였네?”
수군대는 크릭샤와 이프시네. 그들의 모습을 보던 원두가 하빈에게 물었다.
“두 분은 주민등록증이 없으셔? 외국인 같긴 한데.”
하빈은 능숙하게 둘러대었다.
“응. 원래 외국인은 취업비자 없으면 함부로 알바 같은 거 못 하는 거지.”
“그렇구나…….”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박원두. 하빈은 이프시네를 다독이며 덧붙였다.
“그래. 너희 원래 일도 바쁜데 알바까지 할 필요는 없다구.”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일손이 필요하면 꼭 불러주세요! 제가 뭐든 해볼게요!”
‘잘 할 수 있을까?’
마계의 상식으로 안 통하는 일들도 많을 텐데 불법으로 일 맡겼다가 큰일이 나면 어떡한담.
하빈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이었다.
“언니! 아직도 일하고 계세요? 우와, 신기하다.”
입구에서 딸랑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빼꼼 카페 안으로 고개를 내민 여자애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하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 서윤아!”
“안녕하세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는 여자애. 딱 봐도 얼굴이 앳된 게 초등학생으로 보였다.
‘바로, 5년 회귀한 여서윤이지!’
그리고 그 옆에 선 다른 학생도.
“제갈네희 안녕?”
“아, 왜 자꾸 제갈네희라고 부르세요? 저 이름 송제희라니까요?”
하빈의 인사에, 서윤이 옆에 서 있던 제희가 발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