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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2. 요즘 현하빈은 학교를 마치면 무엇을 하는가 (9) (254/268)

외전2. 요즘 현하빈은 학교를 마치면 무엇을 하는가 (9)

하빈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나는 말이지, 저승사자 신분으로 조용히 살면서, 너희 같이 막 나가는 애들 가끔 지옥 구경 시켜주는 업무를 한다고.”

“업무……?”

무슨 그런 걸 업무로 해?

“그런데 왜 하필 학생 신분으로…….”

의문을 품은 학생의 중얼거림. 그걸 들은 하빈은 발끈했다.

“아잇, 나도 수험생인 거 짜증나는데 굳이 그걸 걸고넘어지고 있어? 조용히 해!”

고딩으로 회귀한 것 때문에 쌓인 게 많았던 하빈. 그녀가 팔짱을 끼며 변명을 덧붙였다.

“뭐, 말단 저승사자란 원래 그런 법이지. 그래서 너희 같은 애들이나 자잘하게 뒤치다꺼리나 하는 거고.”

‘말단?’

‘말단이라고?’

학생들은 재빠르게 눈빛을 주고받았다.

‘말단치고는 이곳의 실세 같지 않아?’

‘다들 저 사람 말이면 껌뻑 죽는데?’

‘사실 염라대왕 포지션 아니야?’

“어허, 너희 계속 의심할래?!”

하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의심하지? 나 연기 되게 잘 하는데?’

[그걸 잘 한다고 하는 것이냐?]

“어쨌든 여기 지옥 맞는다고, 얘들아. 우리 귀여운 켈베 못 봤어? 켈베로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을 지키는 문지기로 나오잖아.”

‘오, 현하빈. 제법인데.’

논리적인 이유에, 지석이 감탄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미미했다.

“네? 그랬어요?”

“켈베로스? 그게 저승의 상징이야?”

긴가민가하는 반응들. 하빈이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허, 너희 그리스‧로마 신화도 몰라?”

얼마나 공부를 안 하고 산 거야?

[……사실 나도 모른다.]

‘잘잘이 넌 다른 세계에서 왔으니 그렇다 쳐도 말이야.’

아헤자르는 내심 찔렸는지 한마디 더 덧붙였다.

[사실 나도…… 우리 쪽 신화 같은 거 모르는데.]

‘흐음.’

생각해 보니 아헤자르는 본인 세계 역사도 잘 몰라서 ‘황길때’를 읽었어야 했지. 본인에 대한 신화도 잘 몰라서 헤자라토 제국을 놓칠 뻔했고.

‘뭐, 웹소라도 잘 읽는 게 어디야?’

하빈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어쨌든 나 저승사자 맞으니 조심하라구. 언제든 수틀리면 너희를 여기로 데려올 수 있어!”

“히익.”

하빈이 옆에 켜져 있는 마왕성의 인테리어용 초를 훅 불며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

“항상 조심해! 너희, 드라마 봤지! 저승사자는 촛불 꺼질 때마다 나타나고? 어? 그런다고.”

채지석이 귓속말로 다급히 지적했다.

“그건 도깨비 아냐?”

“아, 도깨비인가? 사실 아직 안 봤어.”

“다른 드라마는 다 봤는데 그걸 안 보다니 말이 돼?”

“아 몰라! 원래 재밌는 건 아껴 뒀다가 봐야 해. 다 봐 버리면 볼 게 없다니까?”

“그건 맞는 말이지.”

“그럼그럼.”

채지석의 동의에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인 하빈이 다시 학생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쨌든 너희! 앞으로도 지켜보고 있다!”

“흑, 넵. 알겠습니다.”

“못된 짓 하고 살면 죽어서도 이런 데 오는 거야. 여기 지하 감옥엔 켈베보다 더 무서운 마물들도 많다고!”

“히익.”

이후로도 몇 번 겁을 준 하빈. 그녀는 학생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 어디 가서 말하지 말라는 당부까지 하고서 그들을 한국에 돌려보냈다.

“얘넨 길거리에 데려다 두자고. 알아서 집 가겠지.”

처음 온 거면 보건소까지 데려다줄 친절을 베풀었겠지만, 두 번씩이나 찾아온 이번엔 그런 거 없다.

“애초에 이 시간엔 보건소 문 닫았을 거잖아?”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구!

하빈은 어깨를 으쓱하며 마왕성의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도 빨리 밥 먹어야지. 내가 쟤네 때문에 스테이크를 포기하고 와야 했다니까!”

그 발언에 이프시네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마신님께서 밥을 거르다니 안 될 일이죠!”

“빨리 음식을 대령하겠습니다!”

상다리가 부러져라 헐레벌떡 음식을 나르는 마족들. 그걸 보던 지석이 물었다.

“그런데 하빈이 넌 집에 안 가도 돼?”

“응?”

“너도 집에 들어가긴 늦은 시간이잖아?”

“뭐, 그 정도야 이미 수를 써 뒀지! 아이큐 187을 뭘로 보고?”

하빈은 식탁에 턱을 괴며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까 현시우랑 밥 먹으러 간다고 한 데다, 집에 같이 들어간다고 부모님께 말해 뒀으니 나중에 합류해서 돌아가면 문제없어. 알아서 연락 주겠지.”

그때까지 마계에서 호캉스 즐기면 된다고.

하빈은 식탁 위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오늘 일은 해피엔딩! 이번에도 잘 해결되었다구! 빨리 밥이나 먹자!”

* * *

그러나, 며칠 뒤.

하빈은 학교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을 겪게 된다.

“……현하빈.”

“오? 민수? 저번에 기절한 건 괜찮아?”

하빈의 자리로 찾아온 민수. 그를 보며 하빈은 상냥한 목소리로 제안했다.

“다음에 한번 정밀검사 받아 봐! 기절을 너무 자주 해서 걱정되더라고. 건강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건 네가……! 아니다. 어쨌든 그게 아니라.”

민수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너, 옆 학교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던데.”

“소문?”

하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민수는 창백한 얼굴로 덧붙였다.

“네가 저승사자라는 소문.”

“뭐어?”

“이 일대 일진들을 다 꿇렸다는 소문이랑…….”

“잠깐, 잠깐!”

하빈이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누가 또! 입단속을 못 해서!”

“이, 입단속?”

‘그럼 사실이라는 거야?’

민수의 얼굴에서 점점 더 핏기가 가시는 것도 모른 채, 하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역시 묵비의 저주를 걸 걸 그랬나?’

말을 못 하게 하는 저주를 걸면 그게 더 큰일이 될 것 같아서 대충 넘겼는데.

게다가 마계 방문은 너무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걔네가 떠들어 봤자 별일이야 있겠어? 싶었는데!

‘하…….’

그 와중 민수는 홀로 감탄하고 있었다.

“저승사자라는 호칭이라니, 대체 얼마나 엄청난 싸움 실력을 보였으면…….”

“그거 아니라고!”

‘에잇, 괜히 저승사자라고 했나?’

생각해 보니 여러 매체에서 ‘저승사자’라고 하면 비유적인 표현으로 잘 쓰였던 것 같다. 저승에 데려갈 정도의 무시무시한 싸움꾼 같아 보였을 듯.

“아니 그걸 의도한 건 아닌데 그래도 어감이 그렇게 되네? 역시 도깨비를 했어야 했는데!”

“도깨비?”

“하아, 도깨비가 좀 더 무해해 보였을 텐데, 이럴 수가. 직업 선택을 잘못했어!”

뒤늦게 후회해 봤자 소용없었다. 그다음 날, 하빈은 결국 담임선생님께 불려 갔다.

“음, 하빈아.”

“네에.”

“그러니까…….”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난감한 표정을 짓던 선생님. 그녀는 조심스럽게 하빈에게 물었다.

“지금…… 믿기 어렵겠지만 좀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거든.”

“흉흉한 소문이라뇨?”

하빈은 서글픈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처연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로 늘어뜨린 눈썹, 여린 목소리.

누가 봐도 ‘피해자는 나예요!’라고 외칠 법한 모습에 선생님은 주춤했다.

“그, 놀라지 말고 들으렴. 다른 학교에서 번진 소문인데……. 방과 후에 이 주변의…….”

말을 하다가 선생님은 멈칫했다. 본인이 입으로 꺼내기에도 믿기지가 않는 듯했다.

“일진들을…… 네가 혼내 줬다니, 그게 사실이니?”

“네에……? 제가요?”

하빈은 정말 금시초문이라는 듯 눈을 크게 뜨며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제가 어떻게 혼을 내요? 저는 그런 거 무서워서 못 해요. 애초에 다른 학교랑 인연도 없고…….”

“그, 그렇지? 선생님이 듣기에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단다.”

“어떻게 그런 소문이 돌 수 있죠? 혹시 저랑 다른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요? 동명이인이라던가.”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동명이인이라는 설에 고개를 끄덕이던 선생님. 그녀는 순간 납득하려다 멈칫했다.

‘그런데…… 현하빈이라는 이름은 흔하지 않은데?’

그렇게 겹치는 우연도 있나?

그 기색을 눈치챘는지 하빈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전하빈’같은 이름이었는데 성을 헷갈렸거나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하빈은 뭔가 떠올랐다는 듯 슬픈 표정을 지었다.

“저를 일부러 괴롭히려고 누군가 일부러…… 그랬나 봐요.”

“……!”

하빈의 말에 선생님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럴 수 있겠어!’

그녀가 보기에 하빈은 훌륭한 모범생이었다. 수업 태도도 좋고, 누군가를 때리거나 괴롭히기엔 평범하다 못해 연약해 보였다.

가끔 기절한 민수를 보건실에 데려다준다는, 따뜻한 미담도 있지 않았는가?

“그래,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구나. 하빈이 네가 제일 상심이 클 텐데.”

“괜찮아요…….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죠.”

살다 보면 등급이 들키기도 하고, 공개방송에서 뜬금없이 가족의 정체가 까발려지기도 하고, 어쩌다 보니 마신이 될 수도 있지. 하빈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전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이고……. 그래도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렴. 선생님이 도와줄 건 더 없니?”

“그럼 저 생……!”

생활기록부 잘 써 주세요, 하고 냉큼 대답할 뻔한 하빈은 가까스로 표정을 갈무리하고 예쁜 미소를 지었다.

“네! 없어요.”

“방금 생, 이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생, 생일 때 축하한다고 말해 주세요!”

“그, 그래. 알았다.”

* * *

“그렇게 정말로 진짜로 잘 끝났다구!”

“……그날, 주변 학교 학생들을 마계에 데려갔었다고?”

뒤늦게 상황을 들은 현시우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내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거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은데?”

“뭐가?”

“마계 체험.”

“……?”

현시우는 저번 영상통화 때, 하빈의 영상통화를 급히 ‘방탈출 카페’라 둘러댔던 걸 떠올렸다.

“사실 그날 방탈출 카페에 간 이후로 여러 일이 생겼었거든.”

모든 테마를 10분 만에 클리어한 괴물 같은 실력을 보여준 시우와 지세 콤비.

그 일은 꽤 입소문을 타게 되었다. 한국대 학생들이 이후 글을 올렸기 때문이었다.

-학교 앞 방탈출 카페 뭐임??

죄다 10분컷으로 깼는데? 그것도 전부 동일인들.

댓글: ??? 사진 보니까 채지세같은데?

└ 여기 어디임?

└ 학교 맞은편의 ‘이스케이프어겐’이라는 방탈출카페인데 여기 어려움

└ 이걸 10분만에 깼다고? 말도안됨

“기념사진 찍어준대서 찍었는데 그걸 명예의 전당에 떡하니 올려놓을 줄은 몰랐지.”

이후 채지세가 방탈출도 잘한다는 소문이 퍼지는 바람에, 각종 관련 예능에 섭외가 되었다고 한다. 현시우도 같이.

“뭐어? 둘이서 ‘지니어스 게임’에 출연한다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어쨌든 그게 문제가 아니라.”

현시우는 들고 있던 사업계획서를 넘겼다.

“지세가 한 번 해보니 재밌었다고 방탈출 카페도 체인으로 차려 보자던데. 마침 너랑 영상통화 했을 때 알바생한테 곧 론칭할 방탈출 카페라고 말을 해버렸단 말이지.”

당시 마왕성의 모습에 충격받은 알바생도 방탈출 동호회 게시판에 글을 썼다고 한다.

-10분컷으로 털렸다고 유명한 방탈출 카페 알바생입니다!

저는 채지세를 몰라서 그런 분인 줄 몰랐는데 찾아보니 유명하시더라고요...어쩐지 연예인 포스가 나더라니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분들 말씀하시는 거 보니까 새로 방탈출 차리려던 모양이더라고요. 본인들이 아니라 지인이 차린다고 말은 하는데, 뉘앙스가 좀 달랐어요.

찾아보니 사업도 종류별로 한다는데 우리 방탈출 카페를 굳이 빠르게 다 깨고 간 거 보면 시장조사를 하고 간 것 같아요

조만간 대박 날 방탈출 카페 차릴 듯.

“시장조사 아니었는데…….”

단단히 오해를 받아 버린 둘.

“하지만 이렇게 입소문도 나고, 방송 출연도 하게 된 김에 그냥 차리는 게 사업상 굉장히 좋은 타이밍이지. 안 그래도 우린 던전에 대한 경험이 많잖아? 킬스크린도 있고.”

이야기를 듣던 네아이바가 끼어들었다.

[역시 너희 인간들은 평화로운 세계관에서도 던전을 찾는다니까?]

“오…….”

“어쨌든 그런 테마로 방 탈출 카페를 차려도 재밌을 것 같아서. 괜찮으면 너희 마계에 있는 인테리어 소품 좀 빌려줘도 좋고.”

“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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