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2. 요즘 현하빈은 학교를 마치면 무엇을 하는가 (6)
하빈의 아이템 덕분에, 순식간에 저녁을 먹을 수 있었던 시우와 지세. 그들은 방탈출 카페에 도착해 점원에게 설명을 들었다.
“저희 방탈출 카페 처음이신가요?”
“네.”
“보시면 여러 컨셉이 있는데요…….”
직원은 친절하게 설명하며 책자를 넘겨주었다. 책자에는 방탈출 카페에서 제공하는 여러 테마가 있었다.
“저건 ‘루돌프 실종사건’이라는 테마예요.”
직원이 산타와 루돌프가 그려진 그림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실종된 루돌프를 찾기 위해 산타와 함께 오두막을 뒤지며 현장을 수사하는 스토리죠.”
[그건 그냥 루돌프가 선물 나르기 힘들어서 도망간 게 아닐까?]
루돌프의 파업 선언일지도…….
“그 옆의 그림은요?”
루돌프 옆에 그려진 건 기계 장치들이 가득차 있었다.
“‘기괴한 실험실’ 테마 말씀이군요.”
“기괴한 실험실?”
“연구소에서 일하던 연구원이 되어 탐험하는 테마예요. 어느 날 연구소 벽에 숨겨진 비밀 문을 발견하고, 그 안에 들어갔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한다는 내용이죠.”
“오…….”
“다른 방들도 있으니 천천히 살펴보세요. 오늘은 평일이라 예약 다 비어 있어요.”
직원의 말에 따라 시우와 지세는 천천히 책자를 넘겨보았다. 카페에는 폐가 컨셉, 탐정 컨셉 등등의 방들이 있었지만-
[어차피 다 할 거니까 1번부터 해! 그냥 가자!]
네아이바는 고민할 것 없다는 듯 소리쳤다.
‘이걸 다 한다고요?’
[1등 하면 공짜 이용권 준다며? 그럼 그걸로 바로 옆 방 들어가는 거지!]
“…….”
[하자, 하자!]
[성좌, ‘가장 가까운 빛’이 본인도 1번 방 좋다며, 셜록 같은 탐정 컨셉 좋아한다고 손을 듭니다!]
“……그럼 1번으로 할까?”
1번 방은 셜록 홈즈에서 따온 컨셉의 방탈출 테마. 1,800년대의 영국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스토리였다.
현시우는 ‘가장 가까운 빛’의 ‘탐정 컨셉 좋아한다’는 의견에 속으로 의문을 품었다.
‘저 성좌님은 어떻게 셜록이나 탐정을 아는 거지?’
저쪽도 현하빈처럼 네풀릭스 보나?
아무튼, 결정을 내린 그들은 입을 열었다.
“저희 일단 한 방당 10분 간격으로 예약 잡을게요. 모두 다요.”
“네?”
직원은 당황한 듯 반문했다.
“한 방당 10분씩이요? 진짜 그렇게 잡으셔도 되겠어요?”
‘설마 각각 10분 만에 다 깨고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물론 방탈출 알바를 1년 넘게 하면서 점원은 이런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10분 만에 깨고 나올 거라며 호기롭게 외치는 사람들.
하지만 진짜로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모든 방을 예약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없었고!
“그럼 다 해서 50분 안에 여기 테마를 다 깨시겠다고요?”
“아무래도 그래야 동아리 시간에 맞을 것 같아서요.”
의외로 진지한 대답. 결국 점원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잡아는 드릴 텐데…… 나중에 다른 손님들도 올 수 있어서 정말로 딱 10분 넘으면 바로 그분들에게 안내할 거예요.”
“네, 그러셔도 돼요. 결제는 미리 할게요.”
쿨하게 5개 테마를 모두 결제하는 현시우의 태도에, 그동안 안절부절못하던 알바생의 표정이 비로소 밝아졌다. 네아이바가 지적했다.
[왜 미리 결제해? 방 한 개 1등으로 깨면 어차피 무료 이용권 주잖아? 그걸로 다음 방 깨면 공짜인데!]
‘그거야 저희 생각이고, 이분이 보기엔 이상한 사람들로밖에 안 보일 거거든요?’
뭘 믿고 각 방을 10분 안에 깰 거라 믿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용료라도 제대로 드려서 안심시키는 게 맞다.
“그럼 따라오시겠어요? 첫 번째 테마는 셜록이라서…… 이걸 입고 하셔야 해요.”
점원이 그들에게 탐정 망토와 탐정 모자를 건넸다.
“진짜 이거 입고 해요?”
“네? 네.”
직원이 해맑은 표정으로 옷장을 가리켰다.
“나중에 산타 테마에서는 산타복을 입고, 연구실 테마에서는 연구복을, 마법학교 테마에서는 마법사 옷 입어요.”
“오…….”
여기, 컨셉에 좀 진심이네.
* * *
한편.
“너네나 컴백 홈 해! 남의 집 앞에서 뻘짓 하지 말고!”
고등학생 패거리를 향해 위협적으로 아헤자르를 치켜든 현하빈. 그 모습을 본 채지석은 다급히 하빈을 말렸다.
“잠깐, 잠깐, 하빈아.”
“또 왜?”
“진짜 싸울 거야?”
아헤자르도 끼어들었다.
[그래, 진짜로 싸우면 큰일이다! 그, 생기부 같은 거에도 중요한 거 아니냐?]
“에휴.”
‘잘잘이, 생기부는 언제부터 알았대?’
생활기록부, 줄여서 생기부.
‘대학 가려면 생기부 중요하긴 하지.’
저런 애들이랑 싸우다 잘못 걸려서 경찰서라도 가면? 혹은 이 사건이 학교에 잘못 소문나기라도 하면?
‘내가 쌓아온 완벽한 모범생의 이미지가 와장창 깨지잖아!’
[뭐, 딱히 모범생은 아니었다만…….]
어쨌든 그녀의 대학 입시와 진로를 생각했을 때, 아주 곤란한 일이었다. 하빈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래그래. 나도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은 없다니까?”
하빈이 자신을 믿어 달라는 듯 당당한 표정으로 채지석 쪽을 돌아보았다.
“내가 무사히 과외 하러 카페 갔던 거 잊었어? 그때도 잘 처리하고 갔다고!”
“어떻게 처리했는데?”
“바로 수면 가스를 썼지!”
코니 할머니의 특제 수면 가스.
덕분에 녀석들을 바로 잠재워 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써야겠어.”
얌전히 재우고, 기억까지 지우는 바람에 하빈에게 달려든 걸 까먹고 또 왔잖아.
‘흐음, 다시 안 오게 하려면 어쩌는 게 좋담?’
* * *
한편, 하빈과 지석, 아헤자르가 떠드는 동안, 고등학생 패거리들은 글리치, 크릭샤, 이프시네와 대치하고 있었다.
하빈이 ‘절대 죽이거나 상처 입히지 말라’고 영상통화 때 미리 신신당부를 해두었기에, 마계 일행은 겨우 선공을 날리지 않을 수 있었다.
패거리들 역시 본능적으로 만만치 않단 느낌을 받았는지, 섣불리 공격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직도 대화 중이었다.
“헤이! 컴백 홈!”
“왜 자꾸 집에 가라는 거지? 나 집 없어.”
글리치가 짜증 섞인 대답을 했다. 이프시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엥, 리치 씨 집이 없으셔요?”
“그래. 원래 살던 곳이 있긴 했는데…… 넘겨줬어.”
“원래 살던 곳이 어디였는데요?”
‘마왕성이라고 대답할 수도 없고.’
원래 마신으로서 마왕성에 방이 있었던 글리치.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그건 현하빈의 것이 되어 버렸다.
“뭐, 사실 있어도 원래 여기저기 나다니는 편이라. 딱히 정해진 거처는 없어.”
마왕성에 그의 자리가 있었을 때도 마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전설로만 남아 있었던 글리치였다. 그동안 여러 세계를 여행하며 살았기에 딱히 정해진 거처는 없다.
“그렇군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이프시네를 향해, 이번엔 글리치가 물었다.
“그러는 너희는 진짜로 주민등록증 딸 건가?”
“따면 좋을 것 같은데요? 여기 살아보니까 좋던데요? 신분 하나 등록해 놓고 왔다 갔다 해도 좋고.”
“수명은 어쩌고?”
“수명이요?”
“너희는 인간보다 한참 오래 살잖아. 노화도 더디고.”
“네? 그래요?”
아무래도 이프시네는 마계에서 평생 살아왔다 보니, 인간계에 어떻게 섞여야 하는지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리치 씨는 어떻게 그런 걸 알아요?”
“그야 나는 인간계 여행을 많이 했기 때문이지.”
전문 분야가 나와 뿌듯했는지, 글리치의 어깨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인간계 여행에 대해서는 내가 너희보다 한참 선배다. 많은 일을 겪었지.”
“오, 우리 하빈 님께서 괜히 선배, 선배 하고 불러드리는 게 아니었군요?”
“그래……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불리는 거긴 하지만, 어쨌든.”
글리치는 차분하게 설명을 이었다.
“마족의 수명은 인간보다 길기 때문에 몇십 년 살다 보면 인간들이 이상함을 느끼고 의문을 가지지. 그래서 사는 곳을 옮겨 다니며 매번 새로 신분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프시네는 눈을 빛내며 그 말을 경청했다.
“그런 허점이 있었군요! 생각해 보니 레몬 씨도 인간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분한테도 말씀을 드려야겠어요.”
바로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크릭샤가 끼어들었다.
“뭐, 그게 어렵나? 안 늙는다고 의심하는 녀석이 생기면 그때그때 다 슥삭 처리하면 되지.”
손으로 목을 그어 보이는 크릭샤. 그 모습에 맞은편 학생들은 주춤했다.
‘뭐,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저 사람들은?’
‘몰라. 마족 어쩌고 이야기하던데.’
‘마족? 판타지 세계관도 아니고 마족이 왜 나와?’
‘조직원끼리 부르는 별명인가?’
‘불법 체류 범죄조직 아냐?’
그들이 수군대든 말든 이프시네는 크릭샤의 말에 당장 반박을 했다.
“아이, 참! 릭샤 씨! 그럼 하빈 님이 곤란해지잖아요! 누구 함부로 죽이거나 싸우지 말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으면서 왜 그러세요?”
“그러는 너도 방금은 마계대전 이야기 꺼냈잖아!”
“그거야 저놈들이 감히 하빈 님의 저녁 식사를 방해했고!”
“그 이유로 마계대전이라니? 진심으로 말이 된다 생각하는 거냐?”
툭탁거리는 둘을 보며 글리치는 가소롭단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그래. 너희들 때문에 앞으로도 후배님이 뒷목 잡을 일이 종종 있을 것 같다는 점은 확실히 알겠다. 주민등록은 포기하지 그래?”
“하지만 리치 씨도 저번에 실수하셨잖아요.”
“내가 뭘?”
“저번 주에 인간계에서 보석을 돈으로 바꾸려다 장물 의심받고 잡혀갈 뻔하셨으면서!”
“크흠.”
글리치는 시선을 피했다. 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건 이쪽 사람들이 좀 이상한 거다. 대부분 금이나 보석을 주면 신이 나 덥석 받는 게 일반적인 반응인데, 여긴 금붙이도 일일이 등록하고 관리하는 모양이더군.”
정말 귀찮은 세계관이야.
글리치가 느끼기에 지구, 그중에서도 대한민국은 참 번거로운 나라였다. 살고 있는 사람들과 거주지가 모두 전산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음은 물론, 가는 곳마다 영상이 녹화되고 있으니.
마족이 숨어들기에 최악의 환경!
‘살 만한 곳이 못 되지. 맛있는 건 많아서 고민되지만.’
다른 세계관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특한 식문화들이 많았기 때문에 관광을 오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빈이 마계에 설치해 준 네풀릭스 시청용 영화관도 꽤 좋았고.
글리치가 생각에 빠져 있는데, 하빈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뭐야, 근데 선배 진짜로 집이 없어? 선배씩이나 되는 데 집 마련 안 하고 뭐 했어?”
마계도 내 집 마련이 어려운 곳인가? 제2의 서울?
아마도 마계 3인방의 대화를 중간중간 들은 모양. 그 물음에 글리치가 어이가 없어 반박했다.
“애초에 날 사칭해서 내 집이었던 곳을 빼앗아 간 사람이 누구지?”
하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엥? 그런 사람이 있어? 누구지?”
“너잖아!”
“아하?”
“네가 마신 되면서 넘겨받은 거 아냐?”
“아, 그게 그렇게 되는 거였어? 그럼 선배 집 없어? 마왕성은 내 집이고?”
“하빈 님 집은 당연히 마왕성이죠!”
이프시네가 끼어들었다.
“언제든 모실 수 있게 항상 준비되어 있답니다! 요즘 학업 때문에 자주 안 들러주셔서 섭섭해요.”
“오호.”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하던 하빈. 그녀가 마침내 기다리고 있던 고등학생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헤이 보이즈!”
“뭐야?”
“다들 내 집을 찾아온 거지?”
부지런한 녀석들. 현하빈을 보겠다고 언제 집 주소까지 알아내 왔담? 하빈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었어! 여긴 내 집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 집이야. 세대주가 부모님일걸?”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연히 이 나이면 부모님 집에 사는 게 대부분 아닌가? 인상을 찡그리는 고딩 패거리를 향해 하빈은 친절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웅. 그래도 다들 여기까지 찾아온 수고가 있으니까 내가 특별히 우리 집 소개도 해줄게.”
“……?”
“잠깐, 설마 현하빈 너…….”
촤아아-
무슨 뜻인지 이해한 채지석이 뭐라 말리기도 전에, 그들 앞에 이공간 진입 포탈이 열렸다. 하빈이 신난 목소리로 외쳤다.
“웰컴 마계!”
여기까지 왔으니 마왕성 한번 보고 가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