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2. 요즘 현하빈은 학교를 마치면 무엇을 하는가 (2)
“한동안 숙제 잘하더니 또 무슨 심경의 변화야?”
“아, 공부 지긋지긋해!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고!”
“내가 생각해도 그렇긴 해. 그동안 웬일로 공부 열심히 하더라니.”
사실 현하빈은 회귀 직후 한 달 동안은 공부를 참 열심히 했다. ‘아, 평범한 일상 최고야!’,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게 성실한 학생이 되어 봐야지!’라며 잠깐 동안은 꽤 성실히 살았더랬다.
“하지만 이제 한계라고! 이미 난 어른의 삶을 알아버렸단 말이지! 네풀릭스가 있는 한적한 삶이 참 좋았는데! 거기다 몬스터 썰던 게 엊그제 같은데 갑자기 고등학교 공부하려니 적응이 안 된단 말이야!”
하빈의 투덜거림에 지석이 덧붙였다.
“하지만, 공부 열심히 해서 변호사 되어야지, 현하빈!”
“흥, 언제 적 진로를 가지고 협박이야?”
“왜, 바뀌었어?”
“글쎄…….”
하빈은 샤프 뒤끝을 씹으며 심드렁하게 테이블에 엎드렸다. 곁눈질로 채지석이 정답을 매기는 걸 지켜보던 하빈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다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아니, 그래도 이건 진짜 불공평해! 왜 다들 대학생이고 나만? 나만 고딩이야?!”
“젊음은 좋은 거지.”
“허참, 젊음도 젊음 나름이거든? 난 수험생의 젊음 말고 대학생의 젊음이 부럽다고! 나 지금 모히또도 못 마셔!”
“너 원래 킬스크린에서도 모히또 쓰다고 주스 마셨잖아…….”
“흥! 채씨가 뭘 알아! 원래 못 마시게 하면 더 마시고 싶은 거라구!”
하빈이 옆에 놓인 주스를 찰찰 흔든 뒤 다시 내려놓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 채씨는 대학생이지? 지금 본인 대학생이라고 기만하는 거야? 어?”
이번엔 샤프를 들어 채지석을 겨누며 분통을 터뜨리는 하빈. 그 말을 듣던 채지석이 피식 웃었다.
“글쎄, 대학 가도 공부 끝 아니다. 합격한 다음엔 같이 리트 준비해야지. 로스쿨 가야 될 거 아냐.”
“아아, 싫어!”
“그 후에는 변호사 시험.”
“으으윽 싫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 하빈이 철푸덕 테이블에 엎드렸다. 한숨을 쉰 그녀가 덧붙였다.
“왜 인생은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시험의 연속인 거야?”
“음…….”
마침 마지막 문제에 동그라미를 그려 점수를 매기던 채지석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현하빈, 사실 따지고 보면 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꼼수 쓸 방법은 있지 않아?”
[성좌, ‘가장 가까운 빛’이 어차피 시간 돌리는 능력도 있으니 슬쩍 수능 답지 보고 오면 안 되냐고 합니다!]
“……으음, 물론 되긴 해.”
시스템 관리자 모드를 쓰면 손쉽게 알 수 있는 게 수능 정답이다. 이후에 있을 리트나 변호사 시험도 문제없다! 시간을 또 돌리면 되니까.
“하지만 그러면 내 능력이 아니잖아.”
하빈은 꽤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단지 시험을 잘 치는 게 아니라, 정말 실력 있는 변호사가 되려면 결국엔 내 힘으로 공부를 해야 하지 않겠어?”
“……오.”
[……오!]
“뭐야? 왜 다들 그런 반응이야?”
[성좌, ‘가장 가까운 빛’이 언제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있었냐며, 다시 봤다고 호들갑을 떱니다!]
“크흠, 흠. 어쨌든 나도 최소한의 양심이라거나, 어? 공부할 의지는 있다고!”
자랑스럽다는 듯 팔짱을 끼고 뿌듯한 표정을 짓는 현하빈. 그 모습을 본 지석이 스윽 문제집을 앞으로 내밀었다.
“멋진 자세야, 그럼 그 마음으로 다시 수업을 시작할까?”
“…….”
순간 책 위에 적힌 수많은 그래프와 수학 공식을 본 하빈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 그래도 수학은 싫어! 애초에 변호사 되는 데 수학이 왜 필요한 거야? 한국의 슼하이캐슬 입시는 잘못되었어! 역시 그냥 다 때려칠까 보다!”
“…….”
[……역시, 저 다짐도 오래 가지 않는군.]
구석에서 얌전히 웹소설을 보던 아헤자르가 끼어들었다. 꼬물거리는 숫자들을 원망스럽다는 듯 흘겨본 하빈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에휴, 그냥 변호사 같은 거 하지 말고 이 능력으로 자경단이나 할까? 범죄자들은 내가 알아서 잡으러 다니는 거지!”
[기껏 헌터물을 벗어났더니 현판 히어로물로 장르 변경을 할 셈이로군!]
“아니면 역시 시간을 돌려가면서 변호사를!”
[그건 회귀 전문가물의 정석이다. 시간을 돌린 검사나 변호사 나오는 소설도 흔하지. 카카페에서 옆 탭으로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다. 잘하면 드라마로도 제작되는 장르인데……!]
“아잇, 잘잘이 너 자꾸 웹소설로 상황 설명할래?”
하빈이 곁에 있던 야구배트를 콕콕 찔렀다.
“애초에 잘잘이는 왜 계속 여기 있는 거야? 슬슬 인간형으로 안 돌아가? 이제 관리자도 없는데 헤자라토 가서 잘 먹고 잘살아도 되잖아?”
[크흠. 그래도 검으로 있던 삶이 너무 익숙해져서 돌아가려면 아주 조금 시간이 걸린다.]
“얼마나?”
[한 1년쯤……?]
“흐음?”
하긴 듣자 하니 네아이바도 아직 볼펜인 척 변신해서 현시우의 책가방에 숨어 대학교 수업을 들으러 다닌다고 한다.
현대 대학교 강의가 정말 재미있다나?
“그러고 보니, 생각난 김에 과외 끝나면 현시우네 대학교에 좀 들러야겠어.”
“웬일이야? 시우 형 보러 가게?”
“아니? 당연히 지세 언니 보러 가는 거지. 둘이 같은 학교 다니잖아.”
“…….”
“역시 빨리 풀고 놀아야겠다!”
오랜만에 나들이할 생각 하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하빈은 다시 신난 표정으로 샤프를 빙글 돌렸다.
* * *
한편, 그날 오후, 현시우는 수업을 마치고 캠퍼스를 걷고 있었다.
“어디 보자…….”
자연스럽게 시계를 확인한 현시우가 책이 든 가방을 다시 어깨에 멨다.
아직 채지세와 약속한 시간까지는 꽤 남았다. 네아이바가 물었다.
[오늘도 그 투자 스터디인지 창업 동아리인지 하는 거야?]
“투자 스터디는 화요일과 목요일, 창업 동아리는 오늘입니다.”
[큼, 그게 그거 같다고! 애초에 너희는 왜 돌아오고 나서도 그런 거 하냐?]
“뭘요?”
[돈 버는 동아리 말이다. 뭔 동아리를 그런 걸 들어? 학문적인 거 안 들고? 모름지기 학생은 학문을 배워야……!]
자칭 대현자 네아이바는 학생이 학문을 배워야 한다며 일장 연설을 했다.
[저번에 보니 교수님이 너한테 그 뭐더라? 대학원? 그것도 추천하던데, 가볼 생각 없냐? 딱 봐도 마탑처럼 학문만을 추구하는 곳 같더니만…….]
“절대 아닙니다! 무서운 소리 하지 마세요.”
이대로는 대학원까지 권유할 기세였기에 현시우는 황급히 그 말을 잘랐다.
“투자 스터디 하는 게 어때서요? 떡하니 부자 될 길이 눈앞에 있는데 안 벌면 그게 바보 아닐까요?”
사실 현시우가 채지세와 단둘이 결성한 투자 스터디는 일반적인 주식투자 스터디가 아니었다.
예지 능력 써서 돈 될 곳에만 투자하는 사기적인 스터디!
투자하는 족족 대박 행진을 이루고 있는데 거기 안 끼면 손해였다.
“게다가 애초에 저 경영학 배우니까 투자나 창업 동아리도 제겐 상당히 학문적입니다.”
[에이 몰라. 난 대학원이 좋아.]
“그렇게 좋으면 혼자 가세요, 대학원.”
[뭐? 지금 나한테 그렇게 매정한 소리를 하다니!]
“아니, 저한테 무작정 대학원 가라고 하는 것도 매정하거든요?”
물론 학문의 발전을 위해 대학원은 무척 좋은 곳이다. 하지만 적어도 현시우는 가기 싫었다.
“저는 일단 이전 삶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벌어놓고 싶다고요.”
[얼마만큼?]
“흠……. 용돈으로 백 억쯤은 아무렇지 않게 쏴줄 수 있을 만큼?”
그리고 그 정도는 머지않아 달성될 것 같고 말이다.
현시우는 은행 어플을 확인하며 몰래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집에 있던 빚도 다 갚았고, 건물도 몇 채 샀고…… 이번에 창업할 것도 뭐, 잘 되겠지.’
그랬다. 사실 현시우는 돌아온 지 한 달도 안 되어 꽤 많은 자산을 일군 상태였다.
집에 있던 빚은 첫 주에 다 갚았다.
‘어머니, 아버지. 저 드릴 말이 있는데.’
‘무슨 일이니……?’
‘사실 저 로또에 당첨됐어요. 이걸로 우리 집 빚 갚아요.’
‘뭐, 뭐라고?!’
회귀 첫째 주가 지나자마자 로또 용지를 식탁 위에 올려놓은 현시우. 그걸 본 현하빈은 배신당한 표정을 지었다.
‘헉, 현시우 언제 로또 샀어?! 번호는 어떻게 알았고?’
‘당연히, 시간 돌리기 계획 짤 때부터 로또 번호부터 외웠지!’
게이트 사태가 열리기 한참 전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당시 로또 번호는 어차피 같을 것이었다. 그걸 알았기 때문에 현시우는 진작에 로또 번호부터 외웠다.
‘에잇 나도 다시 시간 돌려서 로또나 살까? 아, 그럼 까망이랑 태서를 소개해 준 과거가 사라지잖아? 다시 반복하긴 싫어.’
현하빈은 언젠가 다음에 사고 싶을 때 살 모양이었다.
‘애초에 돌아오자마자 돈부터 버는 게 말이 돼? 현시우 꽤 철저하군!’
‘저번에 빚 못 갚은 게 걸렸거든.’
‘…….’
랭킹 1위를 찍으면서도 집 대출이 있는 걸 몰라서 내버려 뒀던 과거. 그게 좀 걸렸던 모양.
[그래서 돌아오자마자 빚부터 갚은 거냐?]
“그것도 있고, 투자 자금 만들려면 시드머니도 필요했고. 부모님께서도 좋아하시고, 일석삼조죠.”
일부러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현시우는 로또가 한 번 당첨된 게 아니었다. 그 다음 주 로또도 당첨됨은 물론, 한국이 아닌 외국의 로또들도 알차게 구매했고, 한 번에 1등 번호를 여러 번 찍기도 했다.
그러고는 그 목돈을 들고 채지세와 함께 투자 스터디를 결성.
“아무리 생각해도 지세 능력이 진짜 사기인 같아요. 이 시대에 예지 능력이라니.”
주식과 코인 투자만으로도 놀고먹을 돈쯤은 그냥 벌 수 있을 듯.
[게다가 너희는 원래도 회귀 전에 잘 나갔으니 손대는 것마다 일이 잘 풀리잖아?]
“그런 점도 있죠.”
시간을 돌릴 때, 원래 세계에서 성공했던 사람들에게는 그만큼의 운을 보장해 주기로 설정했다.
덕분에 세계 랭킹 1위를 찍어 봤던 현시우의 운은 말할 것도 없이 좋았다. 투자하는 것마다 대박 행진.
[그럼 랭킹 0위였던 현하빈은 대체 얼마나 운이 좋으려나?]
“음……. 뭐, 중간고사 정도는 쳐봐야 알겠죠?”
요즘 채지석이랑 공부도 열심히 하던데. 이러다 갑자기 전교 1등이 되어 나타나는 건 아닌지 몰라?
“공부한 거랑 운빨까지 합치면 충분히 가능할지도.”
현시우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마침 그들 주위로 작은 웅성거림이 들렸다.
‘헉, 채지세다.’
‘저기 저 사람, 채지세 아냐?‘
캠퍼스를 지나는 몇몇 사람이 한쪽을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솔라리스의 길드 마스터는 아니었지만, 채지세는 이 시간선에서도 여전히 유명인인 건 변함없었다.
잡지 표지 모델로도 등장했고, SNS와 몇몇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한국대 여신으로 유명세를 탔으니까.
현시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제 헌터물 세계관도 아닐 텐데, 왜 저쪽은 전이랑 상황이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지?”
시간을 되짚어 온 그들 중 유일하게 여전히 셀럽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채지세.
마침 공대 건물 입구로 그녀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