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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1. 만나서 반가워! (2) (246/268)

외전1. 만나서 반가워! (2)

강태서가 느끼기에, 오늘의 현하빈은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했다.

그러니까, 어떤 점이 이상했냐면…….

파사삭!

“흐, 흐익, 뭐야? 뭐냐고!”

“아, 앗? 또 의자가 알아서 증발했네?”

“…….”

그날 아침, 교실에 들어서려던 태서는 그만 그 안의 광경을 보고 멈칫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의자를 연속으로 증발시키는 현하빈의 모습과 털썩 쓰러진 민수.

“…….”

처참한 현장(?)을 발견한 강태서는 지금 이 상황을 해석하기가 어려웠다.

‘혹시나 현하빈이 다칠까 싶어서 빨리 달려온 거였는데.’

복도에서부터 들리는 말다툼 소리. 박민수와 현하빈이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렸을 때 강태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싸움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빨리 뛰어 들어왔다.

‘박민수는 흥분하면 상대가 누구든 봐주지 않으니까.’

그동안 학폭위를 운운하며 박민수를 몰아붙이던 현하빈이었지만 박민수가 화가 난 나머지 앞뒤 없이 달려들면 현하빈이 다칠 위험이 있었다.

그동안 강태서가 알기로 현하빈은 운동이나 격투기를 배운 적 없는 평범하고 모범적인 학생이었으니까. 절대 박민수의 상대가 될 리가…….

‘없는데……?’

그런데 그가 보고 있는 광경은 뭐란 말인가?

‘의자를…… 저렇게 없애 버릴 수도 있어?’

의자의 쇠 부분을 손쉽게 구부렸다 해도 두 눈을 믿지 못했을 텐데, 손대는 것마다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말도 안 되는 파괴력.

현하빈이 영화나 소설 속에 나오는 초능력자라는 쪽이 더 말이 되는 광경이었다.

‘……아니.’

이건 그냥 초능력자가 맞다.

그런데 왜 그동안 아무도 몰랐을까. 심지어 친구인 강태서조차도 단 한 번도 눈치채지 못했던 힘이다.

‘숨기고 있었던 건가?’

물론 현하빈으로서는 각성을 하고 시간을 두 번이나 되감아 온 것이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태서의 눈에는 그동안 하빈이 힘을 숨기고 있다가 드러낸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하빈의 반응이 그걸 증명했다.

“……태, 태서야.”

강태서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낭패라는 표정을 짓는 하빈. 굉장히 찔렸다는 얼굴로 민수와 태서를 흘끔흘끔 번갈아 보는 게, 마치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들킨 기색이었다.

게다가.

“학교 마치고 옥상으로 따라와…… 아아니! 옥상 말고. 그, 뭐 어디더라? 우리 자주 만나던 데가 어디였지?”

“……도서관?”

“그, 그래! 도서관! 거기서 봐! 할 말 있으니까!”

황급히 말을 얼버무리며 뛰쳐나가기까지.

타타탁!

너무 당황한 나머지 그만 힘을 숨긴다는 것도 까먹고 박민수를 들쳐 메고 복도를 달리는 하빈의 뒷모습을 보며 태서는 혼자 다짐했다.

‘비밀로 해줘야겠지?’

아무래도 친구가 SSS급 각성자인 것 같다.

……라고 말하면 정말 아무도 안 믿어줄 것 같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현실이라니.

‘내가 너무 웹소설을 많이 봤나?’

“…….”

홀로 남은 강태서는 슬쩍 자신의 뺨을 한 번 꼬집어 보았다.

* * *

그렇게 순순히 옥상…… 아니, 약속된 도서관 장소에 도착하게 된 강태서.

‘먼저 와 있었네.’

아직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렀지만 하빈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들이 자주 만나던 도서관 건물 외벽. 흔들리는 나무 그늘 아래 기대 선 하빈은 홀로 고개를 갸웃하기도 하고, 인상을 찡그리기도 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지.

어쩌면, 태서한테 들킨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나도 증발시켜 버릴지 몰라……!’

이뿐 아니라,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도 강태서는 그 고민을 덜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먼저 선수를 쳤다.

“네 힘 말인데, 숨기고 싶었던 거지?”

“…….”

“꼭 비밀로 할게. 미안해.”

무덤까지 가져가겠다, 혹시 누가 의심하면 도와주겠다, 절대 아무에게도 말 안 하겠다. 이 같은 말들을 덧붙이고 싶었지만, 덧붙이면 순수한 의도가 가려질 것 같아 말을 줄인 순간.

마침 하빈이 반문했다.

“뭐가 그렇게 미안한데?”

“그동안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단 건, 그만큼 숨기고 싶었단 뜻인데, 나 때문에 처음 드러낸 거잖아.”

“아니, 음. 그게 그렇게 되나?”

“……매번 너한테 도움이나 받고. 너무 한심해서 할 말이 없다.”

강태서는 자조적인 투로 말을 맺었다. 말뿐인 약속이라도 현하빈이 안심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비밀을 지키겠단 강태서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하지만 하빈의 반응은 의외였다.

“한심하긴 무슨!”

곧바로 태서의 등을 찰싹 때린 현하빈. 그녀는 속사포처럼 말을 늘어놓았다.

“너는 말이지, 어? 만약 게이트 열리면 나라를 대표하는 각성자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을 구할 만한 녀석이야!”

“……?”

하빈이 강조한 내용은 비밀을 지켜달라는 부탁도, 강태서를 못 믿는다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시스템 관리자에게 소멸의 위협을 당하더라도, 어? 거기 동조하는 척 뒤에서 칼을 갈고 있다가 관리자한테 복수도 하고, 세계적인 범죄 조직을 끝장낼 녀석이라고! 게다가 자신의 과오를 자진해서 낱낱이 밝히며 마지막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녀석이지……!”

“……저기,”

“들어 봐, 아직 안 끝났어! 게다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목숨 걸고 세계도 구한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강태서는 제대로 된 반문조차 하지 못하고 그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하빈이 말하는 요지는 강태서가 절대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었지만.

그 근거로 드는 내용들이 상당히 허구적이었다.

시스템과 싸우고, 관리자에게 복수하고, 범죄조직을 털고. 나라를 대표하는 각성자로서 사람들을 구하고, 사회에 재산도 환원하고?

‘딱 내가 읽던 소설 주인공들이나 할 법한 일이잖아.’

그들이 읽던 판타지 장르 웹소설의 이야기들을 한데 섞은 것만 같은 일들.

‘현하빈에게 판타지 소설을 너무 많이 보여줬나?’라는 생각을 할 뻔했을 정도로.

그렇지만,

섣불리 허구라 단정 짓기엔, 하빈의 눈빛에 너무 진심이 담겨 있어서 어쩐지 할 말이 없었다.

진심으로 강태서가 대단한 녀석이라 믿는 눈빛. 그러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굳건한 신뢰.

“…….”

강태서는 말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어쩐지 그동안 그가 고민하던 것들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하빈의 비밀도, 그동안 그가 살면서 느낀 비관적인 예측들도. 어쩌면 중요한 게 아닐지 모른다.

예상하던 것보다 더 좋은 일들만 펼쳐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모든 게 잘 될 거란 느낌이 드는 게.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긍정적인 기분이 들어서 태서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지었다.

마침 그 웃음을 본 하빈이 마저 덧붙였다.

“……그래, 하지만 그 많은 일들을 하지 않더라도 난 지금의 네가 좋아. 아무 추궁 없이 친구의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하는 넌, 이미 정말 멋진 녀석이란 거지!”

고개를 한껏 끄덕인 하빈이 뿌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태서야, 내가 소개해 줄 친구가 있어!”

눈이 반짝거리는 게, 이 말을 하기 위해 한참 기다려왔다는 게 느껴졌다. 잔뜩 신이 난 듯 두 주먹을 불끈 쥐는 하빈의 모습에 태서가 물었다.

“친구?”

“짜자잔! 까망아! 이제 나와도 돼!”

하빈이 손을 펼치며 옆을 가리켰다.

그 순간.

-게에오오옹!(인간아아아!)

저 멀리서 까만 생명체가 총총총 달려왔다.

* * *

-게오옹! 게옹!(날 왜 이리 늦게 부르냐! 인간아, 보고 싶었다!)

까망이는 우다다 달려와 단번에 강태서의 품으로 폴짝 뛰어들었다.

“어어?”

폭 안기는 까만 생명체의 따뜻함에 강태서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게에엥!

기다렸다는 듯 손바닥에 얼굴을 부비며 애교를 피우는 까망이. 사람 손을 많이 탄 것 같은 모습에 강태서가 고개를 갸웃했다.

“얘는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잘 따라?”

-게에오옹!(아무나 따르는 거 아니거든? 다시 만난 김에 특별 서비스 해주는 거다!)

어디서 본 건 있는지 강태서를 따라 귀엽게 고개를 갸웃하는 까망이. 그러나 태서는 걱정스럽다는 듯 덧붙였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다 이러면 곤란한데. 나쁜 사람이 해코지하면 어쩌려고.”

-게오, 게오옹.(그럼 그 사람이 나한테 잡아먹힐 거다. 고작 인간 따위에게 질 내가 아니지!)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치켜드는 까망이. 그 모습을 본 하빈이 다그쳤다.

“어허! 까망이 혹시 다른 사람이 해코지한다고 함부로 싸울 생각 하면 못써! 여기서 그러면 태서가 잡혀간다구.”

-게에에옹?(흠? 어쩜 저런 것만 찰떡같이 알아듣냐?)

“내가 가르쳐 준 한국 형법 기억하지? 범죄는 절대 안 돼.”

그 말을 듣던 태서가 황망한 얼굴로 물었다.

“……고양이한테 형법을 가르쳐?”

“그럼! 요즘 고양이들은 형법 정도는 다 뗀다고! 특히 까망이는 똑똑해서 다 알아들어!”

-게에에옹!(그렇다! 인간보다 똑똑하다!)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까망이. 그 자연스러운 모습에 강태서는 반신반의한 얼굴로 까망이를 쓰다듬었다.

“정말 알아들은 것처럼 우네, 신기하다.”

-게에엥!(알아듣는다니까!)

“엄청 똑똑한가 봐.”

-게오웅!(흥, 알았으면 이번에도 날 잘 받들어 모시도록 해라, 인간.)

또 간택해 준 걸 감사히 여기라고!

까망이의 애교 섞인 새침한 표정을 보며 태서와 하빈은 이후로도 한참 까망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행히 이번 삶에서도 강태서는 까망이를 키우게 된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얘는 몇 살이야?”

-게, 게옹?(나, 나?)

강태서의 질문에 까망이와 하빈은 동시에 흠칫했다.

‘앗 그러고 보니…….’

얘는 진짜 고양이가 아닌데 수명이 얼마나 긴 거야?

‘이러다 세계에서 가장 장수한 고양이로 나중에 이름 날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하빈은 찔린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으, 으음! 잘 모르겠어!”

나중에 문제 생기면 그 때 생각하지 뭐!

-게오옹!

까망이 역시도 모른 척 흡족하게 웃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맑게 갠 하늘, 따뜻한 햇빛, 다시 만난 집사.

까망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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