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241) (241/268)

241. 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 (9)

회귀한 건 언제 밝힐 거냐니.

그 말에 현시우는 소름이 쫙 돋았다.

‘어떻게 알았지?!’

물론 일부러 숨긴 건 아니다. 이제 관리자도 죽었으니 말해도 페널티가 없다. 즉, 드디어 회귀했다는 사실을 터놓고 말해도 된다!

단지 너무 바빠서 그걸 말할 생각조차 못 했던 것이다. 마침 아헤자르도 놀란 듯 끼어들었다.

[뭐, 뭣이? 회귀? 회귀라고?]

아마 이 중 제일 놀란 모양.

[회귀라면 웹소설 주인공들이 많이 하는 그 회귀 말하는 거지? 시간 돌려서 과거로 돌아온 거? 그걸 했다고?]

“……네.”

어차피 거리낄 게 없는 현시우는 그냥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뭐 어떻게 돌아온 거냐? 아니 이런 중요한 일을 왜 진작 이야기하지 않고? 그럼 미래를 다 알고 있었냐?]

쏟아지는 질문에 현시우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음, 게이트 사태 직후로 한 번 회귀했습니다. 전부터 밝히고 싶었지만, 관리자의 견제 때문에 말 못 한 겁니다.”

그 말을 들은 하빈이 지적했다.

“엥, 그럼 관리자 죽은 지금은?”

“크흠, 그게…… 말한다는 걸 까먹었어.”

“뭐어?”

하빈이 어이없단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현시우를 추궁했다.

“아니! 그 중요한 걸 까먹고 있으면 어떡해? 어휴, 항상 내가 이렇게 물어봐야 겨우 대답하지? 내가 아주 답답해서 못 살아요!”

“아니 그게 그렇게 중요한…….”

[중요한 사실이지! 회귀자라니! 내 옆에 회귀자가 있다니!]

사태 수습이 먼저지, 본인이 회귀한 게 그렇게 중요하냐고 변명하려던 현시우는 말하기도 전에 흥분한 아헤자르에게 가로막혔다.

“큼……. 중요한 사실이긴 한데.”

[당연히 중요하다!]

“우리 웹소 전문 잘잘이, 회귀자를 실물로 봤다고 아주 신났네!”

[당연히 신났다!]

“…….”

양쪽에서 추궁하는 바람에 할 말을 잃은 현시우. 그는 곤란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사실 설명하자면 좀 긴 이야기라서 나중에 더 자세히 말하고 싶은데.”

무려 십여 년쯤 되는 이야기다. 한차례 관리자랑 맞서고, 다시 과거로 돌아와서 또 몇 년을 굴렀던 길고 긴 현시우의 이야기.

하지만 지금 옆에 채지세를 세워 놓고 할 말은 아니었다. 하빈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일단 지금 꼭 확인해야 하는 사실만 몇 가지 물을게.”

하빈이 손가락을 꼽으며 말을 이었다.

“첫째, 시간은 어떻게 돌렸어?”

“회귀 아이템 써서.”

“둘째, 그 아이템은 어디서 났는데?”

“너랑 지세 씨가 주축이 되어 만든 거였지.”

“역시. 그리고 그거 쓸 때 시스템 좀 써서 만들었던 거지?”

“그렇…… 아니, 근데 그건 또 어떻게 알아?”

“오빠도 거들었으니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억 좀 나지?”

“당연하지.”

“됐쓰!”

거의 몰아붙이는 수준으로 재빨리 대답을 받아낸 하빈이 다시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그들 사이에 있던 방음벽이 사라졌다.

[성좌, ‘가장 가까운 빛’이 본인도 못 들었다며, 무슨 일인지 너무너무 궁금하다고 중얼거립니다!]

[성좌, ‘가장 가까운 빛’이 혹시 무슨 일인지 그냥 말해주면 안 되냐고 귀를 갖다 댑니다!]

“에휴, 반짝이는 호기심이 너무 많다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하빈이 채지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마 지세도 그들의 대화를 듣지 못해 좀 답답했을 터. 결론 정도는 말해줘도 될 것이다.

“언니, 미안해. 갑자기 우리끼리 대화해서 놀랐지?”

“아냐, 뭘 그런 거 가지고. 가족끼리 해야 할 말도 있으니까.”

채지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사생활은 존중해야지.’

남매들끼리만 아는 뭔가가 있을 테니 그 부분은 당연히 이해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지세를 향해 하빈이 입을 열었다.

“아냐, 이야기하다 보니 언니와도 관련이 있더라고 이참에 계획을 좀 알려줄게.”

“계획……?”

“응, 언니 원래 발명하는 거 좋아하잖아?”

“딱히 좋아한다기보단…… 음, 만들 수 있으면 만드는 거지.”

채지세가 조금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몰래 지하실에서 무기를 만들고 던전용 와이파이 개발한 사람치고 꽤나 겸손한 반응. 하빈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

“혹시 이번에도 같이 뭐 좀 만들어 볼래? 저번 던전용 와이파이 때처럼! 내가 생각해 둔 게 있는데.”

“오…….”

지세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하빈이 던지는 제안은 처음엔 의아해 보여도 돌이켜 볼수록 괜찮았던 아이디어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체하지 않고 물었다.

“뭔데? 뭐 새로 필요한 게 생겼어?”

“응, 시간 돌리는 아이템!”

“……뭐?”

시간을 돌린다고?

[성좌, ‘가장 가까운 빛’이 원래 시계는 핸드폰 설정 들어가서 바꾸면 돌릴 수 있다고 끼어듭니다!]

“아잇, 반짝이! 그거 아니야! 난 진짜로 시간 돌리는 거 말하는 거라고! 타임머신! 타디스! 몰라?”

“……정말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는 거야?”

하빈의 말에 채지세가 반문했다. 방금까지와는 다르게 무거워진 목소리. 그게 농담이 아닌 진심인지 확인하려는 모양이었다.

“하빈이 네가 관리자의 권한을 양도받았다는 건 짐작하고 있어. 그걸 활용하려는 계획인 거지?”

지세는 신중한 태도로 접근했다. 그녀가 아는 현하빈은 농담인 것처럼 굴어도 그게 진짜 농담이었던 적은 의외로 없었다. 그저 상대가 농담으로 오해해서 받아들인 적은 있어도 말이다.

‘시간을 되돌리다니.’

그게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일 뿐.

혹시나 현하빈이 자신의 친구 일 때문에 감정적으로 나서서 불가능한 일을 무리하게 시도하겠다 하는 걸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녀의 우려와는 다르게 이번엔 다른 사람이 끼어들었다.

“가능합니다. 이미 한 번 성공한 적이 있거든요.”

그렇게 말한 건 현시우였다.

“네……?”

“어떻게 성공했는지는 이야기가 깁니다만, 가능한 건 사실입니다. 시스템을 활용하면 세상의 시간을 되돌리는 것쯤은 가능합니다. 좀 복잡하고 준비 기간이 좀 걸리지만…… 아마 채지세 씨라면 충분히 해내실 수 있을걸요.”

“현시우 씨까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이건 진짜다.

물론 현하빈의 제안이 설사 불가능한 것이었다 해도 채지세는 시도할 셈이었지만,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접근하는 일이라면 당연히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래.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당연히 도울 거야. 하지만 어디까지, 왜 돌리려는 건지는 듣고 싶은데.”

“당연히 그것부터 설명해야지.”

하빈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 *

“……역시 차 타고 가는 것보다 이게 낫다니까!”

회의 아닌 회의를 마치고 현 남매는 집으로 향했다. 하빈이 이공간을 통해 집으로 가자고 주장한 것이다.

“아무도 안 듣는 곳에서 할 말이 있거든.”

예전 같아서는 이공간을 황레몬이 지키고 있었겠지만, 요즘 레몬이는 간만에 관리자 눈치 안 보고 세계 여행할 거라며 신이 나서 바깥을 돌아다니고 있다 한다.

“오늘은 킬스크린 야시장에서 황금닭꼬치 먹을 거라던데. 하, 부럽다.”

[황금닭꼬치? 진짜 황금을 넣느냐?]

“아니, 소스가 노란색인데 별명처럼 붙인 이름이지. 근데 진짜 맛있대.”

황레몬 녀석, 정말 행복한 은퇴 생활을 즐기고 있군. 어쩐지 부럽고 괘씸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오늘은 이공간에 우리밖에 없다는 거지.”

물론 마신이나 채지석도 이공간을 들락거릴 수 있겠지만, 채지석은 솔라리스 일 하느라, 마신 글리치는 마계 일 하느라 정신없다고 한다.

오랜만에 텅 빈 이공간. 품에 안긴 까망이를 내려다보니 울다 지쳤는지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듣는 귀 없는 걸 확인한 하빈이 곁에 있는 현시우에게 물었다.

“아까부터 궁금한 표정인데? 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지?”

“그래. 어떻게 알았어? 회귀했다는 거.”

아무리 생각해도 현시우가 티를 낸 적은 없었다. 조심하고 또 조심했던 그의 행적들.

그나마 채지세가 현시우의 비밀들을 알아내고 가장 근접했지만, 그녀마저도 설마 현시우가 회귀자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거다.

“게다가 시간을 되돌리는 아이템에 대해서도 꽤 알고 있던 모양새던데.”

전 회차에서 시스템을 해킹해서 만들었던 회귀 아이템. 하빈은 그걸 만들 때 시스템을 썼다는 걸 간파했다.

‘물론 시스템 없이는 불가능한 거니까 당연히 내릴 수 있는 결론이긴 한데.’

현시우가 참여했다는 것까지 짐작하다니.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다. 불안할 정도로 말이다.

“설마…….”

“뭐.”

현시우는 그냥 솔직하게 터놓고 묻기로 했다.

“설마 너, 1회차 기억 되찾은 거야?”

“…….”

[뭐? 그게 뭐냐? 무슨 소리냐?]

1회차 기억을 되찾았냐니.

그 질문을 들은 하빈이 팔짱을 꼈다. 빙긋 웃은 그녀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빨리도 물어본다!”

“……!”

“사실 관리자 족친 직후에 보상으로 떴었거든.”

현시우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근데 기억 찾은 걸 왜 말 안 했어?”

“음? 나도 까먹고 말 안 했어.”

“아니 대체 그걸 어떻게 말 안 할 수가 있어?!”

“회귀 사실 까먹고 말 안 한 건? 말이 되고?”

“…….”

할 말이 없어진 현시우가 입을 다물었다. 하빈이 고개를 기울였다.

“뭐 그래도 다 기억나는 건 아니야. 원래 사람이 오래된 기억은 좀 잘 까먹잖아? 최소 5년은 더 된 기억인 거라 디테일한 건 기억 안 나. 기억이 정확한지도 확인이 필요했고.”

“그래서 나보고 시간 돌리는 아이템에 대해 확인한 거구나?”

“회귀 사실 확인하는 겸, 겸사겸사지. 내가 이렇게 일 처리가 깔끔하다고.”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한 하빈. 그녀가 신난 목소리로 덧붙였다.

“짜잔. 이렇게 회귀자가 두 배!”

[……!]

“물론 이제 미래 지식 전혀 쓸모없지만!”

1회차 기억은 딱 멸망 전까지다. 물론 ‘전하빈’으로 활동한 기억이 좀 더 있다지만, 그래도 결국 멸망을 막아낸 지금 이후 시점으로서 회귀 기억은 별달리 쓸모가 없다. 앞으로의 미래는 완전히 달라질 테니 말이다.

“아, 그래. 알고 보니 아헤자르 가져다 두라고 한 거, 내가 현시우한테 시킨 거더라고.”

“그래! 난 네 부탁 들어준 거밖에 없다니까! 난 잘못이 없었어!”

현시우가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동안 이걸 말 못 해서 얼마나 억울했는지!

“그리고 랭킹 1위로 활동하면서 말 못 한 건 관리자의 견제 때문이었다고!”

“그래그래. 그 억울함을 좀 알겠어. 그러니 다음에 때리려고 남겨 두었던 건 특별히 없던 일로 해주지.”

“……더 때릴 생각이었냐?”

“음? 일단 살아서 같이 멸망 막아야 하니까 봐준 다음에 정산하려고 했던 거지. 5년간 내가 어떻게 사는지 제대로 몰랐던 것도 맞잖아?”

“그거야……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하던 애니까 그랬던 것도 있다고.”

현시우가 평가하기에 하빈은 혼자서도 뭐든 잘 하는 타입이라고 여겼으니 말이다. 물론 지금도 결국 잘 헤쳐 나가 여기까지 왔으니, 틀린 평가는 아니었겠지.

“어쨌든 나도 묻고 싶었던 게 있어.”

하빈에게 1회차 기억까지 있겠다, 이제는 거리낄 게 없었다. 현시우는 전부터 궁금했던 본론을 꺼냈다.

“1회차와 달리, 이번에는 우리가 온전히 시스템을 넘겨받았잖아. 그렇다면…….”

“…….”

“정말로 ‘게이트 사태’ 이전의 시점까지 시간을 돌릴 수 있을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