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240) (240/268)

240. 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 (8)

[뭐? 그게 무슨 소리냐?]

아헤자르가 가장 먼저 반문했다.

[말린 멸치라니!]

“멸린 말치야.”

[아, 그랬던가?]

“흠흠……. 마이너 패치입니다.”

듣고 있던 채지세가 조용히 정정했다. 아헤자르가 말을 이었다.

[어쨌든! 마이너 패치 그놈들은 현하빈이 허구한 날 털어버리겠다 벼르고 있었던 곳이 아니냐!]

“……그렇지.”

현하빈의 백 억을 털어간 놈들, 거기다 이제껏 수많은 범죄를 저지르고, 기만의 수호자가 현하빈임을 까발린 데다 이번 멸망에도 연관이 있기까지.

채지세 역시 아헤자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현시우 씨 말로는 마이너 패치의 간부들이 관리자의 사도였다고 하더군요.”

“…….”

[그럼…….]

아헤자르는 침통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럼 관리자가 했던 말이 맞았던 건가…….]

강태서가 인류의 배신자였다는 말이.

그러나 채지세가 즉각 입을 열었다.

“아뇨, 이건 제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그건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마지막에 관리자에 맞섰던 게 강태서였잖아요.”

관리자의 증언에 따르면 강태서가 마지막 순간에 시스템에 접속해서 그들을 도운 것이었다.

“그리고.”

채지세는 한 차례 말을 끊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본부에 있는 마이너 패치의 수장 에라타를 포함한 대부분의 간부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어요. 그것 또한…… 스킬 흔적으로 보아하니, 강태서가 죽인 걸로 추정됩니다.”

“…….”

[그,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

아헤자르는 혼란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확실히 행보를 보면 우리 편이 맞는 데다 공적도 세웠는데…… 애초에 그 정도로 내부 사정을 알려면…….]

“내부자였다는 이야기도 되죠.”

채지세는 암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조사 결과, 마이너 패치가 실행했던 대부분의 사건에 강태서가 관여되었다는 증거가 다량 나왔어요. SPES 회의를 반출했다는 증거도 있고, 심지어는 울림국제고 사건에도…… 참여했었던 걸로 보입니다.”

“……하.”

[……그럼.]

“그래서 우리가 내린 결론은,”

채지세가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그들 사이로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전 강태서가 자진해서 이중 스파이를 맡았다고 생각합니다.”

“……!”

“현시우 씨.”

“……예상치 못한 보고를 듣느라 좀 늦었습니다. 현하빈, 몸은 괜찮고? 아까 기자분들이랑도 충돌 있던데.”

“어, 그래서 돌아갈 땐 이동 마법 쓰려고.”

“같이 가면 되겠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현시우였다. 하지만 현시우의 품에는 평소와 다르게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까맣고 통통하고, 복슬복슬하게 털이 난 생명체는.

“……까망이?”

-께에에오!(인간아!)

하빈을 발견한 까망이가 벌떡 일어섰다. 현시우의 품에서 뛰쳐나온 까망이가 폴짝 하빈에게로 뛰어들었다. 현시우가 당황한 듯 중얼거렸다.

“어? 현하빈 보고는 반응을 하네?”

“이건 강태서의 고양이잖아요?”

채지세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아, 네. 방금 들었다는 예상치 못한 보고가 바로 이 녀석에 관한 거였습니다. 오늘 발견했는데, 그림자로 만들어진 감옥 안에 갇혀 있었더라고요.”

“그림자로 만들어진 감옥이요? 그럼 강태서의 스킬 같은데.”

“네. 위험할까 봐 일부러 안전한 곳에 보호하려 둔 것 같았습니다. 저희가 발견할 수 있도록 흔적도 남겨져 있었고, 제가 다가가니 감옥이 열리더라고요. 그런데…….”

현시우가 난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까망이가 저희를 보고는 잔뜩 경계를 하더라고요. 밥을 줘도 안 먹고, 계속 울기만 하고. 그러다 탈진한 것 같아서 일단 제가 데려왔던 겁니다.”

-께에에오…….

“…….”

말없이 까망이의 머리를 쓰다듬던 하빈이 그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까망아, 혹시 태서 어디 있는지 알아?”

-께엥……?

그녀의 말에 까망이가 고개를 들었다. 까망이의 눈에는 어느새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다. 까망이는 귀를 추욱 접으며 도리질 쳤다.

-께오오!(나쁜 인간, 혼자만 가버렸다!)

까망이는 드문드문 떠오르는 목소리를 되짚었다.

까망이가 기억하는 마지막 인사는 너무 짧았다.

‘잘 있어.’

-께에엥!(어딜 가냐!)

까망이가 왜 안 데려가냐고 무진 떼를 썼지만, 그는 매정할 정도로 들어주지 않았다. 아니면 까망이가 평소에 평한 대로 멍청해서 까망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고, 까망이는 그리 생각했다.

‘아니, 넌 여기 있어. 위험해서 따라오면 안 돼.’

-게에엥!(그럼 너도 위험한 데를 가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멍청한 인간!)

‘…….’

-게에오옹!(아님, 이왕 갈 거면 나라도 같이 가야지! 어떻게 혼자 가냐!)

위험한 건 신경 안 쓴다고 말해도 끝내 무시한 인간이다. 까망이의 의견은 신경도 안 쓰고, 멋대로 그를 그림자 속에 숨기다니.

‘너를 좋아하거나 너한테 잘 대해줄 만큼 좋은 사람들만 널 찾을 수 있게 해 뒀으니, 다들 곧 찾으러 올 거야.’

그 말은 맞았다. 이렇게 까망이를 돌봐줄 사람들이 까망이를 찾으러 왔고, 이제 까망이는 무사히 풀려났으니까.

하지만.

-께에에오…….

하빈의 품에 안긴 까망이는 정말로 서럽게 울었다. 

-게엥, 게에엥.(……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떼를 자주 썼던 것 같다.)

-게에에엥, 게에에옹.(밥 안 챙겨줘도 되는데. 간식도 안 챙겨줘도 되는데.)

-게에에오…….(그러니까 다시 돌아오면 안 되나? 다시 보면 말 잘 들을 건데.)

말을 잇지 못하고 펑펑 눈물을 흘리는 까망이를 보며 모두들 당황했다.

“왜, 왜 이렇게 울지?”

“그냥 태서가 어딨냐고 물었을 뿐인데…….”

하빈도 당황해서 까망이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곁에서 그걸 지켜보던 채지세 역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강태서의 이름을 듣자마자 저렇게도 서럽게 울다니.

“……설마 강태서에게 정말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거 아닐까요? 그걸 직접 목격한 걸지도.”

“그럴 수가…….”

현시우의 표정도 덩달아 무거워졌다. 혹시나 까망이가 강태서의 죽음이라도 목격한 건 아닐지.

그럼 그들은 이미 늦은 게 되어 버린다.

“…….”

그걸 깨달은 모두가 무거운 침묵에 잠겨 있을 때였다. 까망이가 이내 울음을 그쳤는지, 훌쩍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게에옹.(……인간아.)

까망이가 하빈을 향해 앞발을 내밀었다.

-게에오…… 게에오옹.(실은 강태서가, 믿을 만한 인간을 보면 이걸 전해주라고 했다.)

“……!”

슈룩.

까망이의 말과 동시에, 까망이 밑에 드리운 그림자가 크게 일렁였다. 잿빛의 그림자 사이로, 때 탄 종이가 딸려 나왔다.

“이건 설마……!”

편지?

“펼쳐 봐!”

지세와 시우가 놀란 표정으로 종이 근처에 다가섰다. 하빈은 조심스럽게 종이를 들어 펼쳤다. 급하게 휘갈긴 필체로 적힌 편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언젠가 편지를 발견하신 분들에게.

저는 한국의 헌터로 활동했던 강태서입니다. 시간이 없어 본론부터 말씀드려 죄송하지만, 꼭 알리고 싶은 것들이 있어 이렇게 편지로나마 글을 씁니다.

* * *

편지의 내용은 모두 강태서의 그동안의 행적에 대한 고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저는 지난 5년간 마이너 패치를 조사하기 위해 직접 잠입하여 활동했습니다.

-그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마이너 패치가 저지른 몇몇 활동에 자진해서 동조했습니다. 모두 제 잘못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이어지는 고백은 담담하면서도 충격적이었다. 편지에는 그동안 SPES의 회의 내용을 마이너 패치에게 유출했으며, 세계를 뒤흔든 몇몇 사건의 배후에도 참여했다고 적혀 있었다.

또한, 그동안의 자신의 행적과 마이너 패치의 행적을 빠짐없이 기록해 놓은 문서를 자신의 계정에 추가로 남겨놓았다며 선뜻 아이디와 비밀번호, 접속 방법 등을 적어두었다.

앞으로의 조사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처음부터 이럴 걸 예상하고 있었던 걸까.”

채지세는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준비가 되어 있기 힘든데.”

급한 상황에서도 요점을 지키고 필수적인 내용을 명료하게 적어두었음은 물론, 나머지 부분을 따로 데이터로 저장해 두었다는 점까지.

이건 몇 번이고 이 상황에 대해 생각했던 적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언젠가 고백할 때를 대비해 강태서가 몇 번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했을지 그들로서는 짐작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래서는 비난을 면치 못할 텐데.”

현시우는 편지에 나열된 강태서의 행적을 보고 눈을 찡그렸다. 아무리 최종적인 목표가 관리자를 배신하기 위한 거였다지만, 결국 이 사실들이 밝혀지면 그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었다.

그러나 편지는 그 어떤 변명도 참작도 바라지 않는 뉘앙스였다.

-잘못된 일임을 알면서도, 언젠가 관리자를 죽이겠다는 저만의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이유를 가지고 움직인 겁니다. 그러니 제 의지로 악행을 저지른 거나 다름없고, 이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 외의 다른 칼리고 구성원들과 멤버들은 아무 관련도, 잘못도 없음을 밝힙니다. 저를 믿고 따라 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그 뒤는 자신의 재산을 모두 피해 복구를 위해 썼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

“…….”

편지를 다 읽은 뒤, 그들은 한동안 침묵에 휩싸였다. 현시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공개해야 하나.”

앞서 말했듯 이걸 공개했을 때 사람들에게 불러올 파장은 어마어마할 것이었다.

채지세와 현시우가 괜히 그동안의 보도를 막아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조사된 강태서의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법한데, 아예 본인이 대놓고 자백한 편지까지 공개된다면.

그동안 강태서가 쌓아 온 모든 명예는 없던 일이 될 것이다. 한국의 자랑으로 불리던 헌터가 한순간에 한국의 수치로 여겨질지도.

물론 강태서가 관리자를 무너뜨리기 위해 움직였다는 사실 또한 밝혀질 것이기에 이해하거나 참작해 주는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애초에 그걸 사람들이 믿어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강태서가 마이너 패치를 도왔다는 증거는 넘쳐나는데, 강태서가 관리자를 무너뜨리기 위해 움직였다는 증거는 없으니.

현시우는 편지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다급한 와중에 휘갈겨 쓴 것임에도 불구하고, 뚝뚝 끊어지는 글씨체와 어조에서 그간의 마음고생이 느껴진다고 하면 착각일까.

그간의 행적에 대한 자기혐오,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해 겸허하게 내려놓은 태도까지.

아무런 미련 같은 걸 남겨놓지 않아서 더 읽는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건 그냥 유서잖아.]

네아이바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마침 채지세도 말을 보탰다.

“저도 이번에 조사하면서 뒤늦게 칼리고 분들한테 들은 건데, 강태서는 항상 불면증을 심하게 겪었다고 하더라고요.”

어쩌면 두 발을 뻗고 잘 수 없었다는 거겠지.

“이런 일을 겪었다면 아마 저라도…….”

“…….”

얼버무리는 그녀의 말끝에 한숨이 붙었다.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하빈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래도 공개해야겠지.”

“뭐?”

현시우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전 회차에서도 끝까지 강태서 편을 들어주던 현하빈인데.’

그래서 진상을 알게 되더라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덮고 넘어가지 않을까 짐작했었다. 강태서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서.

하지만.

“그 애가 밝히길 원한다면 밝혀야겠지.”

하빈이 말을 이었다.

“비난받을 걸 다 알면서도,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알리고 싶어 했던 거니까. 아마 강태서 본인도 이 글을 적는 데 큰 용기가 필요했을 거야.”

“…….”

“……그건 들어줘야지.”

하빈은 편지를 접으며 덧붙였다.

“본인을 찾길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존중해 줘야 할 테고.”

굳이 적혀 있지 않아도 편지의 뉘앙스는 분명했다. 명백한 이별. 자신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사라지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살아 있다 해도 다시는 돌아올 일 없을 거다.

물론 소멸당해 사라졌을 가능성이 더 컸지만, 그들은 구태여 그런 가능성은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하빈은 옆에 떠 있는 창으로 눈을 돌렸다.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양도되었습니다.]

[당신은 시스템의 새로운 관리자로 임명되었습니다!]

관리자를 죽인 뒤 얻은 새로운 알림창들. 그걸 흘끔 본 현하빈이 현시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근데 내가, 그전에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딱.

하빈이 손가락을 튕기자 채지세와 그들 사이에 방음벽이 생겼다.

현시우는 표정을 굳혔다. 웬만한 일들은 다 채지세에게 알려 주던 현하빈이었다. 현시우보다도 더 사적인 이야기를 공유하는 사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채지세가 듣지 못하게 굳이 방음벽을 펼쳤다고?

무슨 얘길 하려고……?

마침 고민에 빠질 새도 없이 하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빠.”

“……왜?”

“그래서, 회귀한 건 언제 말할 셈이야?”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