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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239) (239/268)

239. 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 (7)

“……피데스 님. 저희 이대로 얼마까지 버텨야 합니까?”

“…….”

전세가 역전되었다 해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몬스터의 행렬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론상 관리자는 최소 몇 달이고 버틸 수 있는 병력을 가지고 있다 들었는데.’

몇 달이라니. 아무리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각성자들이라 해도 쉬지 않고 몇 달을 싸울 순 없다.

그러니 그들은 하빈이 관리자를 끝내기 전까지, 그 시간을 버티는 걸 우선적 목표로 잡을 수밖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글쎄요. 저희 측은 아직 괜찮지만, 이미 괴멸 직전이 된 나라들이 꽤 많다고 들었습니다.”

“……협조 요청을 거부했던 나라들 말이죠.”

SPES나 주변국의 간섭을 받지 않겠다며 나라를 봉쇄했던 몇몇 독재 국가는 이미 첫 공격에 대부분이 붕괴되었다고 들었다.

그 외의 다소 안전한 편인 나라들도 이미 전사자들이 꽤 나왔다. 시간을 끌수록 앞으로도 늘어가겠지.

현시우는 암담한 기분을 누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침 쿨타임이 돈 스킬을 난사하기 위해 다시 손을 뻗은 순간.

“……어?”

누군가 외마디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다.

“저, 저거, 저게 뭐죠?”

“……!”

뒤이어 웅성거리며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 현시우도 그들이 가리킨 방향을 보고 있었다.

징글징글할 정도로 거대한 몬스터 게이트. 그 가장자리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뭐야?”

“또 뭔가 오나?”

“……다들 준비하세요.”

현시우는 긴장한 낯으로 게이트를 살폈다. 지난 회차에서는 게이트가 이런 모습을 보인 적 없었다. 대체 무슨 현상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 순간.

슈우우-

구멍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

“게이트가…… 닫히고 있는데요?”

사람들은 더 당황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들에게 절망을 안겨 주었던 시커먼 구멍의 가장자리가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우글우글 구겨지며 수축하는 게이트.

-끼?

-끼이?

-끼에엑?

그에 맞추어 몬스터들 역시 수가 점점 줄고 있었다.

“게이트가 닫히려는 모양입니다!”

“어떻게…… 설마.”

현시우는 재빨리 자신의 핸드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동안 치열한 전투 속에서도 드문드문 체크하던 현하빈의 방송.

지지직.

그러나 화면은 노이즈로 한가득 깨져 있었다.

“피데스 님!”

마침 그를 향해 보좌관이 달려왔다. 보좌관은 전투 대신 상황 파악을 주로 담당하고 있었으니 방송을 봤을 터.

“어떻게 된 겁니까?”

현시우의 물음에, 급하게 뛰어온 보좌관이 숨을 골랐다. 그가 멍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피데스 님, 그게, 피데스 님의 동생분, 그러니까 현하빈 헌터가……!”

“하빈이가?”

“아무래도 관리자를 죽인 것 같습니다!”

“네?”

보좌관이 횡설수설 말을 이었다.

“여, 영상이 끊기기 전, 마지막 장면이 관리자를 때려잡는 장면이었거든요! 제대로 관리자를 벤 순간 온 방이 폭발하듯 빛이 터지고 방송이 끊겼는데…… 그 이후 바로 저렇게 게이트가 닫히는 걸 보니!”

“…….”

“성공……이 아닐까요?”

“그걸로 어떻게…….”

현시우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걸로 어떻게 성공을 확신할 수가 있는가. 아니, 그보다 그걸로 어떻게 하빈이 무사하다는 걸 확신할 수 있냐고.

[진정해라! 설마 현하빈이 당한 거겠어? 아마 카메라가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터진 쪽이 맞을 거다!]

“…….”

네아이바의 추측에도 불구하고, 현시우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방송이 중지된 이상 현하빈의 생사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물론 직접 연락을 넣는 방법도 있지만, 전투 중에 연락을 받다가 잘못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젠장.”

그렇다고 직접 관리자의 방을 찾아갈 방법도 없다. 회귀 이후 한 번도 막힌 적 없이 승승장구했던 현시우, 지금까지도 전쟁을 잘 버텨왔던 그는 처음으로 암담한 무력감을 느꼈다.

‘아, 어쩌면!’

현시우는 무언가 떠오른 듯 저 멀리 점처럼 보이는 은발의 뒤통수를 향해 소리쳤다.

“글리치!”

“……후배도 아니면서 누가 그렇게 이름을 막 부르래?”

이름이 불린 게 기분 나빴는지 재깍 그의 앞에 슈슉 나타난 마신이 삐딱한 얼굴로 건물 잔해에 걸터앉았다.

“후배님 혈육이라고 아주 기어오르고 있어? 마시, 흠, ……아니 어쨌든 나를 막 불러대고?”

그래도 그 와중 보좌관의 눈치를 살폈는지 마신이라는 정체를 발설하지 않은 글리치. 현시우는 기다릴 틈 없이 바로 물었다.

“혹시 글리치 씨는 현하빈의 상황을 알 수 있을까요? 저 공간에 들어가실 수 있는 걸로 압니다만.”

“……음.”

현시우의 물음을 들은 글리치는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보좌관과 그들 사이에 투명한 벽이 생겼다.

‘피, 피데스 님! 이게 무슨!’

벽 너머에서 당황한 듯 뻐끔거리는 보좌관.

“듣는 귀가 싫어서.”

아무래도 방음 마법인 모양이었다. 마법을 확인한 글리치가 입을 열었다.

“내가 후배님이랑 성좌 계약을 해서 아는데,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지는 않아.”

“……!”

“못 미더우면 저기 있는 저 금발 녀석한테도 물어보던가. 듣자 하니 저 녀석도 현하빈과 성좌 계약했다며.”

글리치가 저 멀리 몬스터와 싸우고 있는 채지석을 턱짓했다.

[하긴 문제가 생겼다면 채지석의 역량에도 타격이 있었겠지. 계약 자체가 깨졌을 수도 있고.]

그러나 멀쩡한 걸로 보아서는 그럴 것 같지 않다. 현하빈이 무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에 현시우는 한숨을 쉬었다.

“그럼…….”

“당연히 성공했겠지. 후배님이 어떤 후배님인데.”

태연하다 못해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신뢰가 느껴지는 말투. 마침 그 말 다음에 기다렸다는 듯 알림이 새로 떴다.

[폐기 계획이 전면 중지되었습니다!]

“……!”

[……!]

알림창과 함께 서서히 닫히는 까만 게이트들.

-끼이이…….

그와 함께 남아있던 몬스터들도 먼지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저, 정말로 성공한 건가?]

네아이바가 외마디 감탄을 흘리는 순간이었다.

슈우우-

그들의 곁에 익숙한 포탈이 열렸다. 몇 번이고 보았던 이공간 전용 포탈.

거기서 걸어 나온 사람은 바로.

“현하빈!”

현시우는 재빨리 그녀에게 달려갔다. 걱정하던 것과는 다르게 하빈은 겉으로 보기에 다친 데 하나 없이 멀쩡해 보였다.

현시우는 손으로 한숨을 삼켰다. 다행히 그는 두 번이나 동생을 잃진 않았다.

그러나 하빈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오빠.”

포탈을 나오자마자 입을 연 하빈. 관리자를 처치하고 무사히 멸망을 막아낸 상황이었지만, 그녀가 처음 꺼낸 말은 자축도, 안도도 아닌 살벌함이 느껴지는 한마디였다.

“사람 하나 찾아 줘.”

“……?”

[? 뭐냐?]

다급하고도 살벌한 기세에 네아이바는 찔린 듯 주춤했다.

[사람을 찾아? 뭐, 뭐 하게? ……누굴 묻으려고?!]

“그런 거 아니니까, 빨리 찾아야 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고!”

하빈의 말에 현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자세히 말해 봐.”

* * *

그로부터 이틀 후.

“현하빈 온다! 빨리 찍어!”

“저기 저 차 아냐?”

“뛰어!”

아침부터 기자들은 부산스러웠다.

인류가 맞닥뜨린 최악의 멸망 위기를, 다행히도 그들은 큰 피해 없이 막아낼 수 있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빠른 승리였다.

물론 사람들은 그 공의 대부분이, ‘현하빈’에게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단신으로 관리자의 방에 쳐들어가, 관리자를 처치하고 멸망 프로그램을 중지시킨 장본인.

게다가 그 활약을 무려 뮤튜브 스트리밍으로 실시간 중계했던 대담한 행보까지!

덕분에 상황이 끝나자마자 현하빈은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되어 있었다.

“저기 봐, 저 검은 차량이야!”

“솔라리스 지부를 방문하는 모양인데!”

“저희 인터뷰 좀 부탁드립니다, 현하빈 헌터님!”

전쟁이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복구 상황 중에서도 반쯤 자축하는 분위기가 이어졌고, 그 주역으로 떠오른 현하빈에 대해서도 당연히 많은 관심이 쏠렸다.

“뭐라 한 말씀만 해 주세요!”

“대통령 표창을 받을 거란 이야기가 있던데.”

“SPES의 차기 수장이란 말이 사실입니까?”

“원래부터 SPES와 솔라리스의 숨겨진 실세였나요?”

“칼리고의 강태서와는 무슨 관계죠?”

“킬스크린 연합군을 몰래 모았다는 게 사실입니까?”

“코니 님은 이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물러나 주세요!”

기자들 사이로 솔라리스의 요원들이 끼어들었다.

“자, 잠깐! 이것만 대답해 주십시오! 관리자에 대한 진실은 어떻게 알고 있었던 겁니까?”

“안 됩니다. 물러나 주세요! 오늘 현하빈 헌터님은 인터뷰 안 받습니다!”

“…….”

하빈은 솔라리스 관계자들의 비호를 받으며 재빨리 건물로 들어갔다. 덕분에 인터뷰를 하지 않고 채지세의 집무실까지 순탄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오느라 고생 많았어.”

“…….”

채지세는 여전히 밖에서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을 힐끔 확인한 뒤 커튼을 쳤다. 하빈이 일을 빨리 끝낸 덕에 벌써부터 국가 기능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취재진들이 아무렇지 않게 취재를 시작할 정도로.

하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언제나 느끼지만 셀럽은 질색이라니까.”

“…….”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

전쟁 이후 하빈의 위상은 더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하빈이 관리자의 방에서 나오기 전부터 인터넷엔 기사들이 쏟아졌다. 하빈에 대해 붙인 수많은 상징들.

새 시대의 아이콘, 종전의 아이콘, 이 일의 모든 진상을 알고 있는 유일한 한 사람.

“하지만 나 혼자 한 일은 아니야.”

이건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싸운 결과다.

하빈이 관리자의 방까지 도달하는 그 길에, 도움을 준 사람들이 있었다. 각성할 때도 아헤자르와의 만남이 있었고, 킬스크린에서 이공간을 발견한 것도, 무사히 여기까지 정체를 숨기고 살아온 것도, 던전을 막고 사이비를 털고 마계와 킬스크린의 힘을 합친 것도.

그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던 걸 알았다. 마음 같아서는 다 함께 자축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 중 아직도 합류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서 홀로 분투했고, 지금도 여전히 실종된 채로 머무르는 한 명. 그래서 아직 축포를 터뜨릴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그걸 아는 채지세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강태서는, 그러니까…….”

채지세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미간을 꾹꾹 눌렀다.

“……마지막으로 흔적이 발견된 곳을 찾았어. 정확히 말하면, 일부러 흔적을 남겨 둔 것에 가깝긴 해.”

채지세와 현시우는 하빈의 부탁에 따라 강태서를 찾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의외로 강태서의 흔적은 여기저기 남겨져 있었다. 마치 일부러 나중에 찾아올 걸 염두에 두기라도 한 것처럼.

그 말을 듣던 하빈이 의아하단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뭐? 일부러 흔적이 남겨져 있었는데 왜 그동안 발표가 안 된 거야?”

그런 일이라면 중간중간 기사로라도 보도되었을 법했다. 현하빈 외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강태서의 행방을 궁금해하고 있었으니까.

한때 한국의 자랑으로 꼽히던 헌터, 칼리고의 수장. 게다가 마지막에 관리자가 강태서를 언급까지 했으니, 사람들은 강태서의 행보를 상당히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게…… 아직 발표하지 못하도록 우리 쪽에서 막았거든.”

“……왜?”

하빈의 물음에, 채지세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강태서의 흔적을 따라간 그 끝에, 그동안 우리가 찾지 못했던 마이너 패치의 본부가 나왔어.”

“…….”

채지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추가적인 조사를 더 해본 결과, 강태서는 정말로…… 마이너 패치의 일원이었던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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