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230) (230/268)

230. Game changer (4)

[어리석기는!]

현하빈에게 얻어맞던 관리자는 이를 가는 듯 끼기긱거리는 소음과 함께 외쳤다.

[감히 내게 이렇게 대한 걸 후회할 거다!]

“…….”

‘꽤 강한걸.’

이제껏 다들 한두 방이면 죽었는데. 아니, 그마저도 봐주느라 제대로 된 공격을 날리기도 어려웠던 현하빈의 과거.

그러나 처음으로 튼튼한 상대를 만난 기분이었다. 하빈은 그 심정을 솔직하게 뱉었다.

“한두 방으로 안 죽다니 좀 성가시네.”

[하, 뭐라고……?]

열이 뻗친 듯 씩씩대는 관리자. 그 소릴 들은 아헤자르가 걱정이라는 듯 끼어들었다.

[으음,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아냐. 빡치라고 한 거 맞는데?”

[……!]

쾅.

하빈의 공격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관리자의 안개 같은 형체는 스르륵 흩어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마법도, 검격도 잘 안 통하는 체질인가 보네.”

관리자에게 유효타가 들어갈 때는 오로지 ‘오류’ 속성의 공격을 할 때뿐이었다. 그걸 깨달을 하빈이 고개를 기울일 때였다. 관리자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네가 조금이라도 머리가 있었다면 여기에 제 발로 와서는 안 되었지……. 넌 후회하게 될 거다.]

“응 아니야. 애초에 너 만나려고 여기서 방송 켠 거야.”

[……?]

하빈은 태연히 말을 이었다.

“다들 관리자, 관리자 떠들어대는데 정확히 어디 처박혀 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직접 만나야 목을 따든 족치든 할 거 아냐?”

아무리 이곳의 코드를 바꿔놓는다 해도, 관리자가 다시 나타나 또 바꾸면 말짱 도루묵. 그러니 하빈은 이곳을 점령하는 동시에 관리자도 처치할 계획이었다.

적당히 채지세와 함께 해킹을 한 뒤, 깽판을 쳐서라도 관리자를 불러내 슥삭할 계획.

“근데 예상보다 관리자 네가 좀 더 일찍 나타난 거지. 그래도 한 시간 컷을 하려던 나에겐 오히려 땡큐란다!” 

[……꽤 허세를 부리는구나.]

관리자는 무언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다시 비웃는 말투를 되찾았다. 

[기만의 수호자, 넌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다.]

스르르륵.

흩어졌던 안개가 다시 모이며 커다랗게 관리자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번엔 꽤나 인간의 형태를 갖춘 구름이 된 관리자.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인류에게 준비 기간을 준 건 내가 당장 게이트를 열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미개한 네놈들에게 준 마지막 자비지.]

여유 있는 척 말하고 있었지만, 만일 사도들이 그 말을 들었다면 ‘자비는 무슨, 우리가 그거 준비하느라 짧은 시간 내에 얼마나 갈렸는데!’라며 분통을 터뜨렸을 것이다.

억지로 다급하게 실행시키려던 멸망 계획.

그러나 그걸 현하빈에게 티 내지 않고 이죽이며 말을 얹는 관리자.

[너희 인간들이 최후를 준비하고, 소중한 이들에게 작별할 마지막 기회. 그거라도 던져 주려 했는데 나를 이렇게 도발하다니.]

관리자는 소름 끼치게 웃는 소리를 내며 손짓했다. 그의 손짓을 따라 허공에 반투명한 창이 생겼다.

[네 고향이 저기였던가?]

창 너머로는 한반도의 모습이 떠 있었다. 그 위에 수도 없이 떠 있는 새카만 구멍들.

[안 그래도 배신자의 나라라 마음에 안 들었는데, 지금 당장 저기부터 몬스터를 쏟아주지.]

휙.

관리자가 손을 까닥이는 순간, 한반도 위에 떠오른 구멍들이 일제히 열렸다.

끼이이이-

그 너머로 괴수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 * *

“뭐, 뭐 뭐야?”

“지금 바로 공격이라고?”

“뭐가 이렇게 갑작스러운……!”

그 시각, 한국에서 대기하고 있던 군, 경찰, 헌터 길드들은 모두 비상이 걸렸다.

그들 역시 현하빈의 라이브 영상을 보고 있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한 것이다.

그건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도망쳐! 빨리 대피해요! 더 빨리!”

“뭐야? 지금 이거 진짜 실시간이야?”

“실시간 맞나봐! 이 방송에서 ‘관리자’가 손짓하는 순간, 진짜로 게이트가 열렸대!”

다행인지 불행인지, 하빈의 라이브 방송은 관리자를 도발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관리자의 행동과 실상을 전 인류에게 빠르게 공유하는 역할도 훌륭히 해냈다.

다른 채널이라면 이 정도의 파급력이 되지 않았겠지만, 현하빈이 쓴 채널은 무려 전 세계 랭킹 1위, 피데스의 계정. 애초에 기존에 구독하고 있던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채널이었다.

한술 더 떠, 계정 주인인 피데스 역시 방송이 시작되고 얼마 안 되어 ‘이건 해킹당한 게 아니라 진짜로 제 동생이 직접 저기로 가서 라이브방송하고 있는 겁니다.’라고 공식 선언까지 하는 바람에 엄청난 신빙성과 파급력을 부여했다.

각국의 모든 국가 수뇌부와 군 결정권자들은 물론, 세계 유수의 헌터 길드와 협회, 일반 시민들까지 시청하고 있는 라이브 방송.

“……설마 현하빈 씨는, 이런 걸 예상하고 통신 기술을 만들어 달라 한 거였나?”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던 이준휘 비서는 잠깐 든 생각을 중얼거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설마 거기까지 생각했을 리는 없겠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던전용 와이파이가 여러모로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마침 주변에 있던 솔라리스 길드원들이 물었다.

“이준휘 임시 대표님, 어떡할까요?”

지금 솔라리스는 모종의 이유로 채남매가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 그러나 이준휘 비서가 임시 대표직을 워낙 자주 맡은 탓에 혼란은 전혀 없었다. 이준휘 비서는 슬쩍 채지세의 집이 있는 쪽을 흘긋댔다.

‘……길드장님은 아직인가?’

“일단 저희는 계획했던 대로 갑니다. 갑자기 저쪽이 일정을 당겼다 해도 원래 세운 계획에는 변동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들을 비롯해, 대기하고 있던 수많은 헌터들이 하늘에 생성된 구멍들을 쳐다보았다.

-끼이이이!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이 보였다. 곧 이곳에 도달하겠지.

‘그 수가…… 어느 정도 되려나?’

구멍의 크기를 보고 적의 수를 가늠해 진영을 만들었다. 평소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의 세 배 정도를 산정해 인력을 배치했으니 이 정도면 넉넉하지 않을까.

그게 군 관계자들의 예측이었다.

“……대, 대표님 그런데.”

그의 곁에 있던 솔라리스 간부의 낯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평소 겁을 잘 안 먹던 성격치고 긴장한 목소리.

때마침 이준휘 비서 역시 무언가를 발견한 듯 눈이 커졌다.

“…….”

-끼이익!

-끼이!

-끼에에에!

“수가…… 끝이 없는데요.”

구멍에서 쏟아져 나오는 병력의 수를 세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떨렸다. 예상했던 병력을 넘겼는데도 물밀 듯이 밀려오는 몬스터들의 행렬.

“저대로면 우리가 수적으로 열세…….”

“대표님! 지금 다른 길드에서도 전략을 바꾸는 게 좋지 않냐는 연락이 오고 있는데…….”

“……아뇨.”

이준휘 비서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지금 저희가 물러서면 지하로 대피한 시민들은 누가 지킵니까?”

“……그렇죠, 동의합니다.”

다소 겁을 먹은 듯 주춤하던 간부 한 명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두려움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물러나서는 안 된다.

고지에 선 그들의 시야에 서울의 모습이 한가득 담겼다. 한때 무너졌지만 어렵게 일구어낸 도심의 모습. 기적처럼 회복한 그들의 터전을 다시 잃을 수는 없다. 그곳에서 피어난 희망도, 미래도 반드시 지켜야 했다.

설사 지키지 못하더라도 마지막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와라.’

허공에서 쏟아지는 몬스터들과, 언제 닫힐지 모르는 시커먼 구멍들을, 각자 비장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이변이 일어난 건 그 순간이었다.

……슈우우!

먼 곳에서 날아온 무언가가 까만 구멍을 직격했다. 원뿔과 원기둥을 결합한, 불꽃을 단 비행체의 모습은 마치…….

“……미사일?”

무리 중 누군가가 비행체를 발견하고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순간이었다.

……쾅!

구멍 안으로 쏙 들어간 미사일이 폭발했다.

-끼……?

-꾸에엑……?

구멍에서부터 꾸역꾸역 밀려 나오던 괴물들의 진용이 흐트러졌다. 아니, 폭발이 일어난 부근의 몬스터들은 죽거나 큰 부상을 입은 듯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다들 너무 오래 기다렸죠!”

익숙한 목소리가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소형 비행체를 타고 날아오는 금발의 인영이 손을 흔들었다.

“길드장님!”

채지세,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외쳤다.

“죄송해요. 이거 급하게 국방부에 허락 맡느라 좀 걸렸거든!”

“허락 잘 해주던가요?”

“글쎄요……? 별수 없다는 듯 해주긴 했는데.”

채지세가 곤란한 얼굴로 고개를 까닥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의 손은 착실하게 리모컨을 누르고 있었다.

-슈우우, 콰광!

-슈우우 쾅!

다음으로 날아오는 미사일들이 차례차례 구멍 안을 직격했다. 구멍 안에서 펑펑 터지는 폭탄 덕에 나오는 괴물의 수는 현저히 줄어들고 있었다. 간부 중 하나가 얼떨떨하게 중얼거렸다.

“이게 바로…… 오늘 갑자기 알려주신 몬스터에게 통하는 현대무기 프로젝트죠?”

“맞아요, 이게 바로 제 최후의 비밀병기, ‘새러데이 프로젝트.’”

기존 헌터 아이템들과 결합시켜 몬스터에게 통하는 총탄, 미사일 등의 현대무기들을 만든 것.

“조금 늦었지만, 군에도 배급될 수 있게 총화기류를 뿌려드리고 왔어요. 이제 그건 저쪽이 알아서 할 일이고.”

“……그동안 밝히지 못한 이유를 알겠군요.”

헌터법으로 인해 사회는 아이템 제작에는 관대해졌다. 하지만 채지세가 만든 건 엄연한 현대 군사무기를 바탕으로 한 것.

개인적으로 총화기류와 미사일 따위를 제작하고 있었다는 게 밝혀지면 법적으로 문제가 됨은 물론, 국가에서 가만두지 않을 테니.

“그도 그럴 게, 사실 요걸로 끝이 아니거든요.”

채지세가 씨익 꿍꿍이가 있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공중에 무언가가 떼거리로 등장했다.

-위잉 위잉

-철커덕, 철컥.

무더기로 날아오는 비행선들과, 거기서 내리는 많은 수의 로봇들. 비행선도, 로봇들도 몬스터에게 총기를 겨누고 있었다.

“아니, 저건 또 다 뭡니까?”

“4차 산업혁명 시대잖아요? 솔직히 이쯤 되면, 자율적으로 몬스터 공격하는 로봇쯤은 있어야지.”

“네……?”

“왜 다들 그걸 개발 안 하시나 궁금해서 제가 몰래 만들었답니다.”

“…….”

사람들은 할 말을 잊은 표정으로 지세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집에 로봇군대를 숨겨 놓고 있었다니. 이걸 밝힌 이상 이 상황을 무사히 넘겨도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텐데.

무슨 꿍꿍이로 정부에게도 말 안 하고 이런 것들을 만들었나, 그리고 앞으로 무기는 한국에게만 공급할 거냐 등등의 골치 아픈 문제에 시달릴 게 빤했다. 채지세 역시 그걸 예상한 듯 입을 열었다. 

“그쵸? 잘못하면 이 상황 끝나도 저 감방 가거나 최소 청문회인데. 그럼 비서님이 대표 자리 대신 맡을래요?”

“대표 자리 좀 그만 맡기시죠. 저 대표 싫다니까요?!”

“에이. 또 그러신다. 그래도 시우 씨가 좀 커버 쳐 주기로 했으니 감방은 안 갈 지도요? 어차피 다 각오하고 꺼낸 거긴 하지만.”

나중에 무슨 추궁을 듣더라도, 할 수 있는 패가 있다면 다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세는 흘긋 자신의 폰을 내려다보았다. 하빈과의 통화는 아직 끊기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하빈아, 지금 이거 보고 있지?”

지세가 씩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이쪽은 우리가 잘 해결할 테니, 걱정 말고 관리자 족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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