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 Game changer (3)
“피, 피데스 님! 빨리 확인해 보십시오! 지금 피데스 님 계정으로! 방송이!”
“네?”
다급한 보좌관의 말에, 현시우 역시 하빈의 방송을 보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짜잔! 지금 제가 어디 있게요?
해맑은 표정으로 관리자의 본거지를 소개하는 현하빈. 대체 어떻게 넣은 건지, 배경화면에는 경쾌한 ‘러브하우스’의 ‘따다다다단~’하는 배경음까지 깔리고 있었다.
[…….]
“…….”
-여기가 바로 시스템 관리자의 집이래요! 랜선 집들이 같이하실래요?
[내, 내가,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냐?]
뭐? 랜선 집들이? 저렇게 위험한 곳에서 저런 드립 쳐도 돼?
혼란에 빠진 네아이바. 현시우 역시 못지않게 멍한 표정으로 화면을 보고 있었다.
‘저, 저거 제가 알기로 관리자의 본거지이자 메인 서버 그런 곳이었던 것 같은데.’
1회차에는 현시우가 직접 방문하거나 그 안을 보진 못했지만 하빈에게 대략적으로 들어서 대충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방송에서 하빈이 설명하는 걸 보아하니 진짜로 그곳이 맞는 모양.
-네. 이곳은 여러분이 접하고 있는 ‘시스템’의 모든 것이 컨트롤되는 곳 같아요.
-정확히 용어는 모르겠는데 이런 걸 메인 서버라고 하나요?
러브하우스를 따라하며 발랄하게 설명하던 것도 잠시, 지금의 하빈은 진지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었다. 깔리고 있던 배경음악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침묵 속에서 하빈은 공간의 모습을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담았다.
-시스템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이곳에 머물면서 모든 걸 조정하는 것 같네요.
-그리고 관리자가 지금 이 ‘폐기 시스템’을 실행시키고 있는 주체죠. 멸망을 주도하는 게 관리자고요.
-그래서 말인데…… 제 생각에는요.
흠, 하고 잠깐 생각에 잠긴 듯 침묵하던 현하빈이 이내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엔 역시 관리자를 족치면 이 상황도 끝날 것 같네요!
-지금부터 여기 있는 코드 좀 살살 굴려서 멸망 프로그램 수정하고, 관리자 오면 목을 따도록 할게요.
-지켜봐 주세요!
“…….”
“저…… 피데스 님?”
화면을 본 현시우가 멀뚱히 굳어 있자, 곁에 있던 보좌관이 슬슬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어쩌다 동생분께서 피데스 님의 계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사전에 충분히 합의된 건가요?”
“그럴 리가요.”
“네?”
“……아닙니다.”
합의……라 쓰고 강제 일방적 통보를 당했던 현시우는 입을 다물었다.
계정 가져간다고 했을 때만 해도, 현하빈이 이런 식으로 관리자의 사적인 공간과 세계의 비밀을 라이브로 송출할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는데.
“저거 근데 저대로 정말 괜찮을까요?”
보좌관은 여전히 안심이 안 된다는 듯 불안한 표정으로 화면을 쳐다보았다.
“만약 저 말이 진실이라 해도…… 혼자서 저기 있으면 위험한 거 아닙니까? 이왕이면 저희 측에 알려서 지원을 받는 게 나았을 텐데, 어쩌다 A급 헌터가 저런 데 홀로…….”
[? 현하빈 아직도 A급 헌터로 등록되어 있었어……?]
‘그런가 본데요……?’
잊고 있던 사실에 잠깐 당황한 현시우와 네아이바. 그러나 현시우는 일단 추측을 이었다.
“음. 쟤가 워낙 지원을 안 좋아할 타입이긴 해서. 처음부터 홀로 들어갈 생각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류 중 공식 최강자인 현시우가 합류한다 해도 현하빈의 능력에 비하면 오히려 방해나 안 하면 다행인 수준. 여럿이서 갔다간 하빈이 사람들을 보호하느라 거슬릴 쪽에 가까울 것이다.
현시우는 짧은 한숨을 쉰 뒤 입을 열었다.
“……사실 쟤가 저보다 훨씬 강하거든요.”
“네?”
“…….”
“아니? 진짜로요? 농담이시죠?”
현시우의 충격 폭로에, 보좌관이 어색한 얼굴로 하하 웃었다.
‘아무리 피데스라 해도 가족은 못 이긴다, 같은 류의 농담인가?’
그가 곤란한 얼굴로 말을 받았다.
“그, 그래도 공식적으로 표시되는 랭킹이 있잖아요? 피데스 님이 1위신데.”
“그거 1위가 끝 아닙니다.”
“……?”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인 보좌관을 향해 현시우가 재차 입을 열었다.
“1위 위에 0위 있고, 그 위에 마이너스 1위 있어요.”
“……?”
“요번에 얘기 들어보니, 쟤가 그 마이너스 1위라던데.”
현시우의 말에 보좌관은 할 말을 잊은 듯 멍하니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현시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진짜라니까요. 사실 저, 계정을 순순히 준 게 아니라, 쟤한테 뜯긴 겁니다.”
“……??”
* * *
한편, 방송이 있기 조금 전.
“흐음, 정말 어렵고 복잡하게 생겼군.”
글리치에게 관리자의 시선을 끌어달라 부탁한 뒤, 하빈은 관리자의 본거지를 향해 곧바로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간식거리라도 챙겼을 텐데, 처음으로 먹을 것을 안 챙긴 던전 공략.
“휴, 배고프니 빨리 해치우고 밥 먹으러 가야겠다.”
덕분에 정말로 긴장감 없는 중얼거림을 뱉은 하빈.
[나만 긴장되는 것이냐……?]
그걸 홀로 지켜보는 아헤자르만 혹시나 관리자가 찾아올까 싶어 안절부절했다.
[들키기 전에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빨리 하자! 이왕이면 말도 좀…… 작게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그래그래, 걱정 말라구!”
[지금도 목소리가 크다!]
“구래구래.”
[…….]
체념한 아헤자르를 내버려둔 채, 하빈은 척척 인벤토리에서 핸드폰들을 꺼냈다. 몇 개는 채지석한테 여기 오기 직전에 예비용으로 받은 거, 하나는 방송 송출용, 그리고 하나는 하빈이 원래 쓰던 폰!
블루투스 이어폰을 야무지게 귀에 꽂은 하빈이 폰을 톡톡 눌러 전화를 걸었다.
-하빈아?
“언니! 지금 여기 광경 보여?”
하빈이 건 것은 지세를 향한 영상통화였다. 그녀의 손과 카메라를 따라 이리저리 관리자층 내부 공간이 지세에게 전송되었다.
둥둥 떠다니는 코드들이 화면에 비쳤다.
-응, 잘 보여!
“자, 이제 말해 봐. 어딜 어떻게 건드리면 좋을까?”
-잠시만, 거기서 오른쪽 아래…….
“요거?”
-거길 좀 더 비춰줄래?
“흠.”
하빈은 지세의 주문에 따라 스쳐 지나가는 몇 개의 문장을 촬영했다. 그걸 본 지세가 즉각적으로 피드백을 주었다.
-둘째 줄 네 번째 단어, 거기에 이런 모양으로 획을 추가해!
“요렇게?”
……치지지지직!
하빈이 손을 뻗어 글자를 건드리자 글자가 금빛으로 분해되었다. 하빈은 그 금빛을 모아 다시 글자 모양으로 재배치했다.
‘어쩐지 에러메이커 스킬 쓸 때랑 비슷한 느낌인데.’
속이 좀 울렁거리긴 하지만.
그렇게 마침내 문장이 새롭게 완성된 순간, 그녀의 눈앞에 알림창이 떴다.
[경고! 플레이어의 권한을 넘어선 접근입니다! 계속 진행 시 사용자의 존재성이 소모됩니다!]
[error! 플레이어가 아닙니다!]
[오류 접근!]
[비정상적인 접근입니다. 높은 확률로 존재성 소모를 회피했습니다!]
“음?”
‘이게 무슨 뜻이지?’
하빈은 천천히 알림창을 읽었다. 원래 이렇게 글자를 고치는 데는 ‘존재성’이라는 스탯이 소모되는 모양.
하지만 정석적인 루트가 아닌 오류 루트로 접근하는 바람에 대가를 치르는 것도 피했나 보다.
“……뭐, 피했으면 된 거 아니겠어?”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래도 확률적으로 잘못 걸리면 존재성이 깎일 수도 있는 것 같으니.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지도.
“아, 아니다. 생각해 보니 그냥 권한 자체를 풀어버리면 되잖아?”
하빈은 지세한테 말을 걸었다.
“언니, 이거 플레이어한테 접근 권한 막아 놨다 뭐다 뜨는데? 이 권한부터 풀어버리고 시작하자!”
-오……?
그 말에 지세가 좋은 생각이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그쪽도 살펴볼게. 너한테 접근 권한을 넘겨주면 되는 거지?
재빠르게 코드를 살펴보던 지세. 그러나 그녀는 이내 인상을 찡그렸다.
-이런. 그건 어려울 것 같아. 이건 관리자가 막아놓은 게 아니라 태생상의 문제 같아 보여서.
-평범한 인간은 그 한계상 시스템을 소화하는 게 벅찬 모양이야.
“음, 그럼 어느 정도부터 되는데?”
-음…… 최소한 성좌급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헤자르 님이 대신 작업을 하면…… 아, 그래도 아헤자르 님은 코드를 조정할 능력이 없겠구나.
“꼰대를 불러와야 하나?”
글리치는 마신에다 성좌. 거기다 하빈처럼 오류와 시스템을 다루는 능력도 있을 것이다. 성좌이니 시스템을 작업해도 존재성 소모가 없거나, 크지 않을지도.
“하지만 이 상황에 다시 꼰대를 불러올 수는 없지.”
온 힘 다해 관리자의 어그로를 끌고 있을 텐데, 갑자기 여기로 오면 관리자도 함께 온다. 게다가 막상 도착한 글리치가 코드에 대해 잘 대응할지, 지세와 합을 맞출 수 있을지도 미지수.
“그럼 답은 하나뿐이네.”
하빈은 씩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팔짱을 끼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 없지, 내가 성좌 해야겠다!”
[……?!]
-……!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까딱하는 아헤자르와, 무슨 말인지 단번에 이해한 듯 눈썹을 치켜올리는 채지세.
그 순간이었다.
[경고! 관리자가 이곳의 이변을 감지했습니다. 강림 예정 1분 남음]
“……에효, 시간이 없네.”
하빈은 한숨을 쉬며 다른 핸드폰을 두드렸다. 그러자 거기 깔려 있던 뮤튜브 계정이 켜졌다. 현시우의 명의로 만들어진 SPES 계정.
“일단 계획했던 대로 라이브 방송부터 할게, 언니는…… 남은 계획을 카톡으로 보내줄 테니까 마저 부탁해!”
-……그래.
이후는 에라타와 현시우가 본 대로, 현하빈의 전 세계 라이브 방송이 이어졌다.
관리자가 도착하기 전 최후의 1분 라이브.
-제 생각엔 역시 관리자를 족치면 이 상황도 끝날 것 같네요!
-지금부터 여기 있는 코드 좀 살살 굴려서 멸망 프로그램 수정하고, 관리자 오면 목을 따도록 할게요.
-지켜봐 주세요!
현하빈의 마지막 멘트가 끝나는 순간.
[경고! 관리자가 진입합니다!]
[경고! 관리자가 현현합니다!]
띠링띠링. 붉은 알림창과 함께 그녀의 시야로 거대한 인영이 모습을 나타냈다.
사람처럼 생겼다기보다 시커먼 먹구름에 가까운 불길한 덩어리.
관리자였다.
* * *
관리자는 여기 오는 동안 에라타의 보고를 들었다.
‘관리자님! 지금 기만의 수호자가!’
처음 글리치를 쫓느라 잠시 정신이 팔렸던 관리자는 본능적으로 그의 본거지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했었다.
거기다, 하빈의 라이브 방송을 확인한 사도들의 빗발치는 호출까지.
덕분에 도착한 관리자는 성난 기세로 하빈을 노려보았다.
조금 늦게 도착하긴 했어도 아직 막을 자신은 충분했다. 아니, 여기 온 이상 ‘기만의 수호자’를 좀 갖고 놀다가 처절하게 죽여 주면 더 재미있겠지.
그토록 자신을 성가시게 하며 꼭꼭 숨어다니던 ‘기만의 수호자’가 제 발로 눈앞에 나타나다니.
……멍청하긴.
속으로 조소를 지은 관리자가 하빈을 쳐다보았다. 이보다도 더 완벽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기만의 수호자라도, 세계 멸망 계획을 실행시키면 알아서 나타나 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정말로 나타나 주다니.
관리자는 비웃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꽁지가 빠지게 도망 다니더니,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는군.]
“음? 나 도망 다닌 적 없는데?”
하빈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나 관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빈의 어깨에 붙어 있는 카메라에 시선을 던졌다. 에라타의 보고에 의하면 지금 이 상황은 바깥에 생중계되고 있다 한다.
생중계라.
[호오, 지금 이걸 전 세계의 인간들이 보고 있다고?]
관리자는 흡족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전 세계 인류에게 마지막으로 몇 마디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기울인 그가 섬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 인간들아, 너희는 내가 왜 멸망을 일으키려는지 궁금할 테지.]
영화의 최종장, 마지막 보스처럼 무게를 잡는 관리자. 그러나 그 모습을 보며 하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응? 안 궁금한데?”
[뭐?]
“이거나 먹어라! 얍!”
콰과광!
[……!]
하빈은 기다리지 않고 관리자를 향해 아헤자르를 휘둘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 공격을 직격으로 맞은 관리자의 신형이 휘청였다. 그는 처음으로 당황한 듯 일렁이는 목소리로 외쳤다.
[뭐, 뭐냐! 기만의 수호자, 여기까지 온 이상 내게 이유를 듣고 싶지 않았나?]
“뭐래. 그딴 거 모르겠고 넌 좀 맞자.”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아헤자르를 야구 배트 모양으로 치환한 하빈이 그걸 고쳐 들었다. 그 기세에 관리자는 저도 모르게 주춤했다.
[세, 세계가 멸망해야 하는 이유는 들어야지!]
“그딴 거 필요 없고 맞으라니까? 나 너 빨리 해치우고 밥 먹으러 갈 거야.”
[…….]
이번엔 아헤자르가 중얼거렸다.
[허어, 보통 영화의 최종장 같은 거 보면 악역들이 사연을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느냐? 아니면 본인의 신념을 늘어놓거나.]
“내가 그런 거 딱 질색이라고!”
피도 눈물도 없이 악행을 일삼던 악역들이 꼭 마지막에 가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이유가 있었다.’, ‘나에겐 불행한 과거가 있었고’ 어쩌구 하면서 본인 과거 미화하고 세탁한다니까?
“여기가 법원이야? 갑자기 질 것 같으니 선처받고 싶어? 그딴 걸 왜 줄줄 읊는데?”
안 돼, 안 봐줘, 봐줄 생각 없어, 돌아가!
관리자에게 대답할 여지도 없이 공격을 밀어붙인 하빈이 덧붙였다.
“이유가 뭐 어쨌든 네가 잘못했단 거 안 변해. 넌 수많은 가정을 박살 냈고! 내 드라마 시청을 망쳤고! 아무튼 악당이다, 죽어라!”
[……뭐!]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관리자는 제 길고도 긴 인생 중, 처음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득함을 느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