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 Unspeakable secret
누군가 만일 강태서에게 헌터물을 언제부터 좋아했냐고 물으면.
아니, 애초에 그는 헌터물을 좋아했던가?
정말로 한때는 헌터물처럼 세상이 뒤집어지길 바랄 때가 있었던 것 같다.
다 망해 버리라지.
할머니와 단둘이 힘겹게 살던 생활도, 학교에서 무시와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애써 발버둥 쳐 봤자 달라지지 않는 현실과 보이지 않는 미래들도 정말 지긋지긋했다.
금수저니 은수저니, 재능이니 운이니. 누구는 날 때부터 행복한 일들만 가득한데, 그는 왜 이런 시작점에서, 이렇게 힘겹게 살아야 하는 운명인 걸까.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럴수록 열심히 해야 한다고 배웠다.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건 다른 법이다.
평생 돈을 긁어모아도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높은 빌딩 앞을 지나치거나, 준비했던 시험의 성적이 곤두박질칠 때, 민수에게 당하고 한껏 자존심이 깨진 날…….
그럴 때, 가끔은 일어설 기운이 안 났다. 아등바등 나아지겠다고, 멋있는 삶을 꿈꾸겠다고 기어 올라가는 것조차 솔직히 지쳤다.
그런 고생 없이 이대로 세상이 멈추면 좋겠다고 문득 생각했다. 모두에게 아주 공평하게. 어느 날 눈 한 번 깜빡하고 뜨면 세상이 다 같이 망해 있는 거다. 모두 처음부터.
이왕 처음부터 시작하는 김에 한 번쯤은 그에게도 유리한 순간이 와도 괜찮을지 모른다. 가끔 읽던 헌터물처럼, 주인공처럼 대단한 능력을 각성하고 멋진 삶을 사는 스토리도 있겠지.
그러면 좀 살맛이 날까? 이런 생각 따위 하지 않는 날이 오려나.
그러나 모두 부질없는 가정이었다. 매주 사는 복권이 당첨되지 않듯, 그의 부모님이 영영 돌아오지 않듯, 세상이 뒤집히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설사 세상이 뒤집힌다 해도 그가 주인공이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길 수차례, 어느 날 그에게 이변처럼 찾아온 친구가 있었다.
‘헉! 너도 이 반이야? 나도 이 반인데!’
처음에는, 원래 누구에게나 말을 잘 거는 성격인 줄 알았다. 아니면 그저 앞자리라서 그랬는지 모른다.
‘뭘 그렇게 열심히 봐? 이 책 재밌어?’
‘……재밌어.’
‘그럼 나도 볼래!’
예의상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꼬박꼬박 책을 빌려 가던 녀석이었다. 그렇게 책만 빌려보고 모른 척할 줄 알았다. 오지랖이 계속 이어질 줄은 몰랐다.
‘야, 박민수 걔 평소에도 너 괴롭혀? 계속 그랬어?’
‘네가 신경 쓸 건 아니야.’
‘뭐라고?! 그걸 왜 신경 안 써! 친구가 당하는데 누가 그걸 두고 보냐?’
‘…….’
‘또 괴롭히면 말해! 내가 그냥 확 그냥, 저 녀석을!’
‘…….’
왜 여태껏 당하면서 가만히 있었냐, 무슨 잘못을 했길래 민수가 그러냐. 이런 흔한 말로 추궁할 법도 한데, 그 녀석은 그런 것도 안 물어봤다. 대신 민수에게 물었다.
‘민수야! 학폭위 가고 싶어?’
‘뭐, 뭐라는 거야! 이거 그냥 친구끼리 하는 장난이거든?’
‘엇, 그럼 나도 장난으로 신고할래! 우리 민수…… 그렇게 안 봤는데 사실 학폭위가 궁금했구나?’
‘누가 그딴 걸 궁금해해! 뭐 이런 걸로 학폭위야!’
다시 돌이켜 보아도 좀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부터 거짓말처럼 조금씩 상황이 나아졌으니까.
‘짠. 오늘의 사탕. 이거 뇌물이니까 빨리 다음 권을 내놔라.’
생각지도 못한 일의 연속이었다. 예고 없이 들이밀어지는 사탕처럼, 낯설고 생소하지만 소소하게 기분이 나아지는.
‘나 오늘 도서관에서 공부하려고. 태서 너는 공부 안 해?’
‘해야지.’
‘야, 태서야. 다른 작품도 추천해 주라. 이거 재밌네?’
‘그럼 이거? 최근에 보기 시작한 건데.’
뭘 추천했었는지, 뭐가 재미있었는지는 돌이켜 보아도 기억 안 난다. 그때부터 헌터물에 대한 관심보다, 작품을 추천해 주는 재미에 더 보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대로면 세상이 안 뒤집어져도 괜찮지 않을까?
세상이 망하지 않고서도 괜찮을 수 있구나. 삶에서 무언가 대단하거나 엄청난 일이 생기지 않더라도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거구나. 그럼 꼭 망하지 않아도 괜찮은 거 아닐까.
비로소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쯤.
진짜로 세상이 망해 버렸다.
‘…….’
망해 버리라고 매일 빌던 것이었으니 처음에는 소원이 이루어진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뒤집어져 봤자 과연 그가 각성자는 될 수 있을까 회의적이었던 적도 있었는데, 그동안의 실패와 좌절에 보상이라도 해주듯 그는 운 좋게도 각성자가 되었다. 그것도 고위 각성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새 능력으로 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잘살아 보겠다 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비웃으며 즐길 기회였을 거다.
진짜 그래 볼까, 싶기도 했다.
현하빈의 상황을 듣기 전까지는.
‘현하빈 걔, 이제 어떻게 산대?’
‘몰라. 자퇴했던데.’
‘걔 부모님도…… 그렇게 되고, 오빠도 실종되었다며…….’
가족 모두가 사망 혹은 실종. 홀로 생계를 꾸려야 해서 자퇴한 현하빈은 그대로 소식이 끊겼다. 언제나 당차고 씩씩할 줄로만 알았던 그녀의 일상이 망가진 건 정말로 한순간이었다.
부러울 정도로 화기애애하던 그녀의 가족도, 학교에서 촉망받던 그녀의 꿈도 게이트 사태와 함께 부서졌다고, 다들 안타깝다며 수군대었다.
태서는 할 말이 없었다. 그녀의 앞에서 대놓고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 그였다. 그런 그가 무슨 염치로 이전과 같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행운이 누군가에게는 악몽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실감했다. 다 망해 버리길 바란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런 식의 결과를 바란 건 기필코 아니었다. 그럼 무얼 바랐냐고 묻는다면. 그러니까…….
‘그러니까, 뭘 바란 거였더라.’
강태서는 여전히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누군가가 무너지는 걸 보고서야 그는 체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상황은 분명 잘못되었다.
그가 빌었던 소원은 결국 잘못되었다.
설사 그의 하찮은 소원이 이 상황과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이 상황을 되돌릴 수 있다면 반드시 되돌려야 한다고.
‘관리자’라는 존재의 부름을 받게 된 건, 그 다짐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 * *
처음 ‘관리자’를 마주친 곳은 새카맣고 이질적인 공간이었다. 거기엔 강태서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우릴 꺼내 줘!’
‘이게 무슨…….’
태서를 포함해, 다들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그 공간에 던져진 것이었다. 혼란에 빠진 그들을 향해 관리자는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중에서 살아남는 놈을 사도로 뽑을 거다.]
[가능성이 있는 녀석들로만 추린 거니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이어지는 설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게이트 사태의 원흉은 저 관리자였다. 그리고 관리자가 원하는 것은 최종적으로는 세계 멸망이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그의 뜻에 동의하는 사람, 그중에서도 나름의 잠재력을 지닌 사람을 뽑은 것이었다.
사도를 뽑는 데스매치를 진행하며 강태서는 부차적인 것들을 더 알 수 있었다.
관리자가 선발 과정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본 건, 그 사람이 관리자의 방식에 찬동하는지, 세계가 망해도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지. 그뿐이었다.
모두 가족이 없는 혈혈단신에, 지켜야 할 소중한 사람이 없었다. 강태서 역시 게이트 사태가 일어나기 며칠 전 하나 남은 가족인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표면적인 조건으로는 부합했다.
‘하지만 나에겐 아직 그 애가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강태서에겐 ‘소중한 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는 존재가 아직 한 명 남아 있었다.
관리자의 선발 방식에 오류가 있었던 건가.
애초에 강태서는 이제 더는 멸망 같은 거 바라지 않는데 어쩌다 여기 들어오게 된 것일까.
관리자는 현하빈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던 걸까. 혹은 강태서의 생각이 바뀌기 전에 선발 리스트를 뽑았던 건가.
수많은 추측들 사이에서도 그는 분명한 사실을 알았다. 그건 그를 제외한 여기 참가한 사람들이 모두 멸망을 바라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찬성! 세상을 무너뜨리는 데 찬성합니다!’
‘여보……. 다 끝났어, 다 끝났다고!’
희대의 살인마, 사이코패스를 비롯해 상대의 고통을 즐기는 쓰레기, 더는 잃을 게 없어서 세상이 멸망했으면 좋겠다고 동의하는 사람, 관리자를 신봉하는 광신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으니 세상도 멸망해야 한다 믿는, 핀트 나간 로맨티시스트까지.
강태서는 살면서 그렇게 많은 미친놈들이 한곳에 모인 걸 본 적이 없었다.
‘선발만 되면 관리자의 힘을 나눠 준다던데.’
‘그럼 밖으로 나갔을 때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멸망만 이루어지면 돼. 그 외에는 상관없어.’
다들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데스매치를 헤쳐나갔다.
‘어, 어떻게 저희끼리 죽여요? 이건 말도 안 돼! 미쳤어!’
때로 마음 약한 참가자도 있었고.
‘그러게 누가 내 말을 믿으래? 믿은 네가 바보지.’
때로 완전한 쓰레기도 있었다.
강태서가 평가하기에는 다 거기서 거기였다.
모두 멸망을 바라는 사람들. 관리자에게 선택받고, 관리자의 개가 되길 자처하는 사람들. 그 목적만은 다들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닌 사람은 강태서뿐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실수나 오류로 잘못 선발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척 가장했다. 알 수 없는 공간에서 몇 날 며칠을 버티고 싸워가며 생각했다.
만일 여기서 살아나가는 사람이 사도가 된다면. 그리고 그 외의 다른 사람이 여기서 선발된다면.
그건 관리자의 뜻대로 훌륭히 흘러가는 것이겠지. 어쩌면 인류는, 관리자의 존재를 모른 채 이들의 손에 농락당하다 끝날지도.
딱히 그걸 막겠다는 원대한 이유는 아니었다. 강태서는 살면서 자신이 그 정도의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
꿈을 꾸는 것조차 부질없고 지쳐서, 그냥 다 같이 망해 버려라 욕이나 했던 그가 아니었던가.
영웅이 되기에는 너무 멀리 돌아왔다는 걸 알았다. 애초에 데스매치에서 살아남는 동안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다.
‘사, 살려 주세요.’
‘이거 완전 미친놈이네? 나도 죽여 보지?’
‘자네는 부모도 없나? 부모뻘인 나를 이렇게, 억!’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살기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든. 아무리 변명해도 그가 무자비하게 그들을 죽이고 올라왔다는 건 바뀌지 않았다.
관리자의 시험이 이어질수록, 관리자는 참가자의 인간성의 한계를 시험하려는 듯 더 잔혹하고 무자비한 과제를 내밀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상대를 더 잔인한 방식으로 죽여야 했다.
그리고 강태서는. 그것마저 했다.
발버둥 칠 바에 죽는 게 낫다 여기던 그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 신기한 일이었다. 실제로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여기서 그가 올라가지 못하면 상대가 올라간다. 테스트를 모두 통과한 괴물이, 사이코패스가, 멸망을 바라는 광신도가 그 대신 사도로 선발된다.
누군가의 세상을 한 번 더 무너뜨릴, 최악의 소원이 완성되고 말 것이다.
그것만은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해냈다. 할 수 없는 것마저 했다. 그런 그를 보고 다들 겁을 먹었다.
‘개새끼.’
‘어떻게 얼굴 낯 하나 안 변하고 저런 짓을…….’
‘지옥에 떨어질 거다, 넌.’
죽어가던 사람들이 남기는 저주도 들었다.
강태서는 그 말에 꽤 동의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그도 솔직히 정상은 아니었다. 지옥에 떨어질 것쯤은 감수한 지 오래였다.
나중에는 목표나 신념을 떠올릴 틈도 없이 오로지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상황도 이어졌다.
낮도 밤도 없는 곳에서 셀 수 없는 날 동안,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속이고, 베고, 죽였다.
이곳에서 나가면, 살아 나간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관리자의 계획을 일그러뜨릴 방법만 생각했다.
그들에게서 일상을 앗아간 원흉이자 이 모든 일의 원인. 그것의 계획을 망칠 방법만.
“허억, 헉, 헉…….”
……그렇게 정신을 차려 보니, 우승자가 되어 있었다.
그간 사람들에게서 수많은 희망을 앗아가고 또 절망을 주려고 계획하던 관리자. 그것이 처음으로 강태서를 향해 격려의 말을 했다.
[첫 번째 사도로 뽑힌 걸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오랜 기간 살아남기 위해 애쓰다 보니 표정을 갈무리하는 법만 늘었던 모양이다. 강태서는 진심으로 기쁜 척 웃음을 가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선발 과정이 꽤 힘들었을 텐데. 마음 쓰이지는 않던가? 사도로 들어오는 건 괜찮나?]
생각해 주는 척 떠보는 질문이 가증스러웠다. 그게 그렇게 신경 쓰였다면 애초에 이런 판을 깔았을 리가 없다.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선발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야 할 상황인데요.”
태서는 매끄럽게 대답하며 고개를 재차 숙였다. 막상 뽑힌 다음 사도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니. ‘사도’는 정말 관리자의 충실한 개가 따로 없는 지위였다.
그는 문득 죽어가던 참가자들이 그에게 하던 욕을 떠올렸다.
‘개새끼. 지옥에 떨어질 거다, 넌.’
개새끼라. 생각해 보면 참 마음에 드는 호칭이다.
어차피 누군가 관리자의 개를 자처해야 한다면, 그는 기꺼이 개새끼가 되어줄 자신이 있었다.
개가 아닌 개새끼.
충실하고 얌전한 다른 개들과는 달리, 언제든 주인의 모가지를 물어뜯어 버려도 이상할 게 없는, 지독한 개새끼가.
* * *
…
……
…
[……별의 조각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여전히 텅 빈 방 안.
고양이의 구슬픈 울음이 남긴 메아리가 맴돈 자리. 그곳에는 아직도 알림창이 깜빡이고 있었다.
[조각 사용 대상 탐색…….]
[최종 보유자 확인 완료.]
[지금부터 사용자 ‘강태서’의 존재성 복구를 시작합니다.]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