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Our chance (4)
강태서는 재빨리 창을 닫았다. 관리자가 등장한 이상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프로그램을 섣불리 실행하기는 곤란했다. 부재중이라면 모를까, 두 눈 다 시퍼렇게 뜬 이상 관리자 역시 빠른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아쉽지만 조금 더 기회를 지켜보며 프로그램을 보완할 수밖에.
일단 복귀한 관리자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가 우선 관찰 사항이었다.
비상 점검 기간 내내 피데스가 했던 공개 발표나 세 번째가 사라졌다는 사실까지. 관리자가 듣고 기함할 내용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상 점검 모드 종료.]
[관리자가 복귀하였습니다.]
타다닥.
강태서는 복귀 알림이 뜨기 직전에 성공적으로 작업물을 정리하고 창을 종료했다. 모른 척 시치미를 뗀 그가 태연한 낯으로 책상에 앉아 있을 때였다. 에라타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알림창 봤지?
-관리자님이 다들 모이라고 하셨어.
‘……복귀하자마자 소집을 한다고?’
그럴 것 같다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마주하니 암담한 일이었다. 에라타도 전화 없이 메시지만 보낸 걸 보니 그녀 역시 말을 꺼낼 기분이 아닌 모양.
세 번째가 사라진 걸 추궁당하면 깡그리 소멸당하는 일이라도 벌어지는 건 아닌지.
아니, 일단 그전에 강태서가 ‘점검 기간’ 동안 한 일이 밝혀져서는 안 될 텐데. 점검 기간인 걸 알고서도 평소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했으니 들킬 일은…… 없을 테지만.
그가 상황을 되짚어 보는 사이, 알림창의 내용이 바뀌었다.
[!준비하십시오!]
[24시간 내에 관리자와의 면담이 시작됩니다.]
“…….”
강태서는 알림창의 내용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당장 면담을 하지 않는 걸 보니, 무언가 먼저 해결할 일이 있는 모양.
그게 뭐지?
* * *
한편, 관리자가 복귀하기 조금 전. 97층의 하빈. 성공적으로 헤자라토 제국을 털어버린 그녀는 회담을 훌륭히 중재하고 있었다.
“자자자. 여기 다들 평화적으로 협정합시다. 협정? 오키?”
“…….”
하빈의 협박, 아니 권유로 인해 별수 없이 협상 테이블에 앉은 대륙회담의 나라들은 마계의 협상안을 제대로 훑어봐야만 했다.
차분히 협상안을 읽어보던 공작이 입을 열었다.
“……군사 협정이 가장 우선순위에 있군요. 무슨 일이 생기면 마계가 군을 빌려주겠단 말입니까?”
‘마계가 군을 빌려줘?’
‘그, 그게 가능합니까?’
‘혹시나 함정은 아닌지…….’
믿을 수 없는 내용에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마왕군은 인간을 잡아먹는다고 들었는데. 멀쩡히 함께 싸우는 게 가능하긴 할까?
그러나 이프시네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걱정 마세요! 군량이 넉넉해서 다들 배가 부르거든요. 아무리 마물이라도 그 정도의 지능도 있고, 훈련도 잘 되어 있으니 동료를 먹을 일은 없을 거예요!”
‘히익.’
‘해야 하나? 해도 되나?’
‘지금 저 말을 믿는 겁니까?’
그동안 알고 있던 무시무시한 마족의 이미지에, 다들 눈치를 살피며 의견을 나누었다.
‘지금 악마의 손을 잡겠단 겁니까? 마계에게 군을 빌리다니요?’
‘같이 싸우다가 다 잡아먹히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훈련을 잘 했다 잖나? 절대 어길 수 없는 마법의 맹세로 협정을 한다면 못할 것도 없을 텐데?’
다들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짓자 이프시네가 입을 열었다.
“아, 물론 대륙에 있는 모두가 동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원하는 나라와 각개로 맺을 협정이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나라는 빠져도 좋아요!”
“…….”
“……!”
“……그럼 하는 게 낫겠군.”
모두 웅성거리는 사이, 티자르 황태자가 입을 열었다.
‘마법의 맹세까지 하면서 뒤통수를 칠 확률은 낮으니까.’
왜 마계가 저렇게 진심으로 나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만약 저게 진실이라면 해서 나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아니, 안 하면 손해지.
만약 마계가 진짜로 군을 빌려준다면. 이 대륙 중 어느 쪽이든 마계와 손을 잡은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해진다. 마계의 군사력을 먼저 등에 업는 나라가 대륙을 휘어잡게 될지도.
‘과거에 마계와 전쟁한 적이 있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과거 이야기.’
당장 티자르 황태자 본인은 마계에게 원수진 게 없었다. 조상의 원수니 뭐니 따지지만 않고 지금 이 상황만 놓고 본다면 나쁘지 않은 제안.
마침 공작도 입을 열었다.
“그 반대도 되겠군요. 무슨 일이 생길 땐 마계에게 우리가 군을 빌려주어야 한다, 뭐 그런 뜻?”
“그렇죠.”
“이 제안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나라에게 하는 건가요?”
“맞아요.”
“흠…….”
이프시네의 대답에 공작의 미간 주름이 깊어졌다. 그녀가 고민에 빠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중대한 사안이다 보니 마법 통신으로 저희 폐하께도 논의를 드려야 할 것 같군요. 최종 결정은 그 후에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에요.”
“저, 마왕…… 이프시네 님? 저희도 질문이 있는데요!”
“네네! 말씀하세요.”
“여기 아래에 있는 항목 말인데…….”
“아, 그건 무슨 뜻이냐면요…….”
이후에도 이프시네는 각국의 대표들이 하는 여러 질문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그동안 준비해 둔 것들이 많았기에, 꽤 훌륭히 대답을 해내고 있었다.
‘흠흠, 잘하고 있군.’
하빈은 그걸 느긋하게 지켜보며 테이블에 놓인 주전부리를 먹었다. 오늘 나온 요리는 병아리콩을 넣은 감칠맛 도는 스프와 프레첼이었다.
‘꼰대는 뭐 하고 있으려나.’
오늘도 회담장에 온 건 하빈과 지석, 리베, 크릭샤, 이프시네였다. 하빈은 글리치에게 만일을 대비해 성 밖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그 말에 글리치도 흔쾌히 동의했고 말이다.
‘지금쯤 밖에서 여기저기 구경하고 있겠지?’
어제 글리치가 기념품이랑 빵을 가득 사 왔던 걸 보면 거리 구경에 신이 난 모양이던데. 하빈이 유리창 너머로 시선을 던질 때였다.
그녀의 눈앞에 알림창이 떴다.
[……비상 점검 모드 종료.]
[관리자가 복귀합니다.]
“뭐……?”
창을 확인한 하빈의 표정이 굳었다.
……관리자의 복귀라니.
‘벌써 복귀했단 말이야?!’
여기 있으면 관리자에게 들킬 텐데……!
97층은 고층이기 때문에 편법을 써서 함부로 드나들 시 관리자에게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알림이 떴었다. 황레몬이 ‘비상 점검 기간 때는 관리자도 몰라요!’라고 하길래 이 틈을 타 들어왔던 것이고.
지금 돌아가야 하나?
하지만 이 자리에서 황급히 나가면 그게 오히려 더 수상할 것 같다. 주변의 시선 한가운데서 오류를 만들고 드나드는 것도 그렇고, 관리자가 오자마자 오류를 파바박 생성하면 눈에 더 띌지도 모르니. 하빈은 오히려 뻔뻔한 얼굴로 팔짱을 끼었다.
‘어디 한번 눈치채 보던가.’
관리자가 현하빈을 눈치채서 뭘 어쩔 거란 말인가?
눈치채면 어쩌게? 싸우게?
‘……싸우자고 하면 응해줘야지.’
하빈이 알림창을 노려보는 순간이었다. 알림창의 색이 변하며 당황한 듯 깜빡였다.
[위험! 관리자가 이상 감지! 97층의 오류 감지!]
[관리자가 97층의 오류를 파악하기 위해 감시망을 펼칩니다……!]
“…….”
과연 현하빈이 여기 온 걸 눈치챌까. 잘하면 모른 척 넘어갈 수도 있지 않나? 찰나의 긴장 속에서 하빈이 물끄러미 창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97층의 오류 파악 완료.]
[오류 이동 확인! - 다른 층 추적- ]
[관리자의 97층 감시가 종료됩니다.]
띠링띠링.
경쾌한 알림과 함께 다시 평소의 색으로 돌아가는 알림창. 그 내용을 본 하빈이 인상을 찡그렸다.
‘오류 이동 확인? 감시 종료?’
“난 이동 안 했는데?”
알아서 헛다리 짚은 걸까? 하빈을 찾아내지 못해서?
그러나 그 답은 곧바로 하빈의 폰으로 날아왔다.
꼰대 선배
관리자 관ㅅla은 내가 끄ㄹ테ㄴl 알ㅇㅏ서 ㅇㄴ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