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De:b\_gging (2)
“그럼 이 아이템은…….”
하빈의 추측에 지세가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 말을 덧붙이려는 순간이었다. 기숙사 방문이 거세게 흔들렸다.
쾅쾅쾅!
“현하빈 학생! 여기 있나요!”
“……!”
기숙사 사감선생님의 목소리였다. 하빈은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채남매가 온 뒤로 방 안의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방음 장치를 켜둔 상태였다.
그래서 사감선생님도 하빈이 여기에 있는지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일단 방문을 두드린 모양이지.
“쉿. 다들 일단 숨도록 하자.”
아무리 이 학교의 교사들이라고 해도 외부인 침입은 얄짤없이 벌점을 매길 게 분명하다. 하빈은 이미 글리치 때문에 벌점이 1점 적립된 상태. 3점 이상 받으면 일주일간 강제 퇴소라는 패널티를 받는다.
‘절대 그럴 수는 없다구!’
하빈이 다급하게 숨으라고 손짓했다.
“어, 어디 숨지?”
“침대? 옷장?”
아니 이 사람들이 그것도 생각 안 하고 무작정 들어온 거야?
“채씨는 직업도 도둑인데 은신 스킬 없어?”
“나야 그렇다 쳐도 누나는…….”
“어쩔 수 없지. 일단 여기 숨어!”
파지직!
하빈이 에러메이커 스킬로 오류를 만들었다. 다급히 오류 속 이공간에 하빈이 채남매와 장부들을 숨긴 순간이었다.
벌컥!
하빈의 방이 열렸다. 기숙사 사감선생님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마스터키를 가지고 다닌 탓이었다. 이처럼 사생이 방 안에 반입 금지 품목이나 외부인을 들였을 때, 혹은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 언제든 진입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
가뜩이나 현하빈은 예전에 이미 외부인을 데려온 전적이 있던 데다 학교 측에서도 주의를 기울이는 특별한 신분이었기에 사감선생님도 지체 없이 문을 연 것이었다.
“하빈 학생…… 음? 방 안에 있는데 왜 대답을 안 했죠?”
“크흠! 제가 아침이라 목이 잠겨서, 큼.”
하빈이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이미 시계는 오후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전 세계 중 어딘가에서는 이 시간도 아침이겠지, 뭐.’
태평하게 생각하는 하빈을 향해 사감선생님이 본론을 꺼냈다.
“어쨌든 현하빈 학생, 지금 교무실로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네? 저요?”
하빈이 의외라는 낯을 했다.
‘혹시 나도 모르게 사고 친 거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지각이나 결석을 조금 한 적은 있지만 그걸로는 점수는 좀 깎여도 아직 제적이나 유급을 받을 정도로 자주 빠진 건 아닌데.
의아해하는 하빈에게, 사감선생님은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비밀 이야기를 하는 듯 작은 목소리로 그녀가 속삭였다.
“지금 교무실에 보호자가 와 있어요.”
“보호자요?”
하빈의 머릿속을 스치는 보호자라면 현시우밖에 없었다. 저번에 현장학습에서 사라졌을 때 선생님이 현시우에게 연락을 넣었던 게 기억났다.
‘연락이 안 되니까 일단 온 건가?’
이번 컨티뉴 사건으로 인해 하빈의 전화기는 불이 나다시피 했다. 그래서 하빈은 핸드폰은 꺼 놓고 예전에 쓰던 노트북이나 공기계를 사용해 웹툰과 네풀릭스를 보고 있었다. 배터리 닳을 것 같아서 카톡도 사용 중지시켜 놨었는데.
아마 그래서 현시우도 연락이 안 되어 답답했던 모양.
‘평소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더니.’
이럴 때만 제일 먼저 찾아온다니까. 설마 컨티뉴 지분 나눠달라고 하는 거 아닌지 몰라? 하빈 기억 속의 현시우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지금 이 상황, 연락 없던 가족이 로또 당첨되자마자 두둥 나타나는 것과 좀 비슷한데?’
마침 사감선생님의 대답이 이어졌다.
“네 보호자요. 지금 하빈 양의 할머니, 아아니. 코니 님이 방문했다고…….”
“네에?”
그분 할머니 아니라니까요!
하빈은 오해를 풀 생각도 못한 채 한숨을 쉬었다.
‘이 학교, 이대로 괜찮은 건가?’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이 보호자로 막 찾아오고 해도 너무 의심 없는 거 아니냐고.
* * *
“……오랜만이군요.”
“으음, 이틀 만인데요.”
코니와 하빈의 대면.
코니는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하는지 한참을 고르고 고르다가 입을 열었다.
“컨티뉴에게서 이야기는 전해 들었어요. 우선 내 제자들이 막무가내로 모셔갔던 것을 정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뭐, 할머니께서 사과하실 일까지야…….”
“내가 손녀 아니라고 분명 말했는데도 믿지를 않은 모양이에요.”
“그럴 수 있죠.”
하빈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빈 역시 주변에 아니라고 계속 해명하는데 아무도 안 믿어준다. 그래서 이 상황이 이해가 잘 되었다.
그러나 하빈의 그런 반응에 코니는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이해심이 깊은 아이로군.’
이 상황에 대해 분노하거나 ‘정말 코니 님이 아니라고 제대로 말한 거 맞아요?’, ‘그러게 진작 제가 거절할 때 리무진 같은 거 안 보냈으면 됐잖습니까’ 같은 원망의 말이 나올 법했는데. 그런 말은커녕 곧바로 이해한다는 저런 태도라니!
“음, 그런데 어쩌다 그런 제작계 스킬을 숨기고 있…… 아, 아니에요. 실례되는 말을 했군요.”
“…….”
‘딱히 숨긴 건 아닌데.’
하빈은 그냥 제작계 스킬이 있는지도 몰랐을 뿐이다. 굳이 보여줄 일도 없었고. 그러나 코니는 그것대로 엄청난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스킬을 억지로 공개하게 된 모양이야.’
확실히 이 정도의 재능은 뛰어난 정도가 아니라 경이롭다.
어쩌면 그동안 코니의 선물 공세나 관심을 계속 거절한 것도 자신의 제작계 능력이 함부로 밝혀질까 꺼려져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하빈이 그토록 좋아하는 평화롭고 여유로운 삶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테니.
“그동안 내가 멋모르고 저질렀던 무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사과하겠어요. 원한다면 이번에 컨티뉴 연합에서 하빈 양을 영입하려 하는 것도 내가 어떻게든 막아 보겠습니다.”
‘엇?’
가만히 듣고 있던 하빈은 귀를 쫑긋했다. 그럼 컨티뉴의 지분은 물 건너가는 건가?
‘솔직히 지분은 좀 혹했는데!’
다른 회사도 아닌 무려 컨티뉴의 지분이다. 갖고만 있어도 돈 걱정은 없을 것이다!
예전처럼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단 말씀. 그래서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여지를 남겼던 것이다. 하빈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 아니 꼭 그러실 필요는 없죠. 저 솔직히 이번 영입 제안이 좀 반가웠는데요.”
“……정말인가요?”
의외로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자 코니가 반색했다. 그녀가 평소의 침착한 말투를 잃고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혹시 정말로 컨티뉴에 들어올 생각이 있나요, 하빈 양?!”
당장이라도 손을 붙잡을 것 같은 열렬한 기세. 그 흐름을 타고 코니는 속으로 생각했던 말을 무심코 뱉었다.
“하빈 양이 들어온다면 후계자 자리도 다시 한번 생각을…….”
“네?”
후계자? 진짜 후계자 자리 줄 셈인가?
‘에이, 솔직히 저건 농담이겠지?’
원래 누군가를 영입할 땐 빛나는 희망을 보여주며 꼬시는 거다. ‘여기 지금 들어오면 나중에 연봉을 이만큼이나 받을 수 있어! 잘하면 이사까지도 달 수 있어!’ 같은 희망으로.
‘그런데 후계자라는 말부터 꺼내시다니. 그렇게 안 봤는데, 코니 님 의외로 허풍이 좀 있으신 타입인가?’
하빈이 생각에 눈을 굴리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띠링!
“……?”
“이게 무슨……?”
하빈과 코니의 앞에 동시에 붉은 창이 떴다.
[지금부터 관리자가 ‘비상 점검 모드’를 발동시킵니다.]
[시스템 전체가 비상 점검 모드로 돌입합니다.]
핏빛 알림창과 기괴하게 일그러진 글씨. 보기만 해도 섬뜩한 기분이 드는 알림창이었다.
* * *
-게, 게오오옹?!
“이게 뭐지?”
그 시각. 동일한 알림창을 발견한 강태서가 인상을 찡그렸다.
비상 점검 모드라니.
지금, 갑자기 관리자가 비상 점검 모드를 내릴 정도의 일이 있다고?
-뭐야?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마침 사도들은 화상 회의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이번 종말교 때문에 비상 대책 회의에 돌입한 탓이었다.
알림창을 확인한 사도들이 하나둘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관리자님? 관리자님이 갑자기 비상 점검 모드를 띄웠다고?
-에라타 님은 아는 게 없으십니까?
-몰라. 나야말로 묻고 싶은데. 대체 어떤 놈이……!
관리자가 비상 모드를 발동할 정도의 일이 일어나려면 오류와 관련된 긴급한 실마리를 잡은 것, 혹은 관리자의 존재에게 타격을 줄 만한 일이 일어난 것일지도.
-이번에도 기만의 수호자인가?
-…….
-일단 여기 중 누구의 짓은 아니겠군. 다 여기 있었으니 알리바이는 확실하잖아?
“…….”
강태서는 홀로 동요를 감추었다.
‘회의 중에 일이 터져서 다행이다.’
아마 다른 일 중에 이런 알림창이 떴다면 에라타는 늘 그랬듯 강태서를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몰래 관리자 모드 실행시키다가 누구 한 명이 실수하거나 배신해서 이런 일 생긴 게 아니냐며.
하지만 회의 중에 터진 덕에 모두 알리바이가 생겼다. 그들은 다른 요소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종말교가 털린 것과 관계가 있는 건가?
-다섯 번째, 네놈이 제대로 관리하기로 했던 종말교를 못 해서 관리자님이 화나신 거잖아!
-그게 나 때문이겠냐고!
-관리자님 반응은 아직 없어?
-평소랑 다르게 응답이 오지 않아. 아예 연결이 끊어진 느낌인데?
눈에 띄게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는 사도들. 그 중심에서 ‘세 번째’가 창백한 낯으로 중얼거렸다.
-잠깐, 멈춰봐. 그런데 지금 이 알림창…… 우리만 뜬 게 아닌 거 같은데?
-뭐?
굳은 표정의 세 번째가 천천히 뉴스 속보를 띄웠다.
-이 창들, 전 세계에 모두 뜬 거 아냐?
-……!
* * *
-갑작스러운 ‘비상 점검 모드’…… 전 세계를 뒤흔든 알림창의 정체!
-과연 ‘비상 점검 모드’의 의미는 무엇인가?
-게이트 연구 학계에서는 게임에서도 나오는 점검 모드를 예시로 들며 게임화가 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 중이며…….
그야말로 난리 난 기사 창. 현시우는 폰으로 기사들을 확인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마침 그의 ‘피데스’용 연락처에도 온갖 연락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피데스 님! 대체 어디 계십니까!
-비상 점검 모드 창 보셨습니까?
-당장 SPES 대책 회의를 해야 하는 건 아닌지…….
“가 봐야겠군요.”
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잠깐 발도 못 붙이고 떠나게 생겼다. 현시우가 한숨을 쉬며 글리치를 쳐다보자 글리치가 입을 열었다.
“어지간히도 미움을 샀나 보군. 네 정체를 알아챈 것만으로도 관리자가 신경을 곤두세운단 말이지?”
“어쩌면 저 때문이 아니라 그쪽 때문일지도요.”
“그럴 수 있겠군.”
현시우는 정확하게 알고 말한 건 아니었지만, 사실 그의 지적은 맞았다. 비상 모드까지 간 건 전달 대상자가 마신이었기 때문.
글리치 역시 그 부분을 고려하고 있었다.
추적하는 과정에서 마신의 오류에 휩쓸려 막히니까 관리자 입장에서도 비상 모드까지 켜 가며 원인을 찾고 있는 모양이지.
자리를 탈탈 털고 일어난 현시우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제 정체 말인데요. 현하빈에겐 비밀로 해 주세요. 알았다간 제 목숨이…….”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 따위의 말을 하려다가 현시우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 마신은 현시우의 목숨을 별로 신경 안 쓰는 것 같은데…… 부탁해도 들어는 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