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현하빈이 학교 가면 집은 누가 지키나 (2)
사실 현시우는 상당히 기분이 상한 상태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현하빈, 휴대폰을 꺼 놨잖아?’
바로, 동생 녀석이 연락을 제때 안 받았기 때문이다.
컨티뉴를 접수하는 폭탄 행보를 보이고 ‘ㅁㄹ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따위의 해명만 남긴 채 묵묵부답인 현하빈.
무슨 일인지 연락을 해보려고 해도 전화기는 꺼져 있지, 카톡은 저번의 그 답장 이후로 읽씹이다.
“어쩔 셈인 건데?”
[기자들의 연락이 너무 많이 와서 꺼둔 모양이다.]
“…….”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일리가 있는 것과 별개로 답답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현시우는 인상을 찡그렸다.
“기자들 연락은 씹더라도 인간적으로 호적메이트의 의문은 해소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
가만히 있다 컨티뉴 후계자의 혈육으로 지목된 ‘현시우’의 입장은 어떻겠냐고.
심지어 어제는 갑자기 마신을 집에 초대했다고 들었는데. 집이 멀쩡한지도 궁금했다.
“100억 날린 지 얼마나 됐다고, 설마 집까지 날린 건 아니겠지…….”
끄응.
최악의 상상을 한편으로 제껴 두고 현시우는 이참에 집에 들러 보기로 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가서 보는 게 빠르고, 직접 가서 추궁하는 게 정확하다.
마침 마이너 패치는 종말교 때문에 정신없을 테니 이쪽 감시는 소홀할 거고.
물론 현하빈의 혈육이라는 이유로 기자들이 달라붙을 가능성은 있었지만, 어차피 지금 논란의 중심에 선 건 현하빈이지 현시우가 아니다. 모르겠다고 하거나 묵묵부답으로 둘러대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관심을 끄거나 아무 기사라도 낼 것이다.
그러나.
‘……예상외로 따라붙는 놈들이 있군요.’
현시우는 발걸음을 늦추었다. 집으로 들어서는 골목에서부터 작정하고 따라오는 놈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무리 봐도 기자는 아닌데.’
기자가 취재하겠답시고 잠복한 걸 수도 있지만 그것과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애초에 기자들은 현하빈이 학교에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죄다 거기로 몰려갔으니까. 인터뷰를 따기 위해서라도 학교의 선생님이나 학생을 잡는 게 효율이 좋을 테니, 전부 학교에 몰려가 있었다. 그래서 현시우가 집으로 가는 선택지를 골랐기도 했고.
하지만 여기에 이런 불청객들이 도사리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그러게. 심지어 이 녀석들, 네가 ‘현시우’인걸 알고 따라오는 것으로 보인다.]
현하빈이 아닌 걸 알면서도 따라온다는 점, 하빈의 집 근처부터 대기하고 있었다는 점. 그 모든 점이 미심쩍었다. 그래서 시우와 네아이바는 아까부터 ‘이게 뭐지?’, ‘이게 뭘까요?’, ‘새로운 자살 방법인가?’ 따위의 농담 따먹기를 하며 그들과 눈치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흠.”
현시우는 조용히 놈들의 기척을 살폈다. 서두르는 기색 없이 천천히 다가오는 걸 보아하니 현시우가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모양.
‘그럼 적어도 내가 ‘피데스’란 걸 눈치챈 놈들은 아닐 테고.’
‘피데스’를 상대할 놈들이라면 이 정도의 구성으로는 어림없다. 작정하고 엄청난 물량공세를 했거나, 혹은 포기했거나. 둘 중 하나겠지. 마이너 패치조차도 ‘피데스’를 상대하려면 총력전을 각오할 정도의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이 정도의 인원이면 역시 ‘현시우’를 상대하기 위해 붙여진 인원이겠죠?’
[아니면 떠보는 것일 수도 있지.]
현시우가 ‘현시우’가 맞는지, 혹여나 힘을 숨기고 있는 건 아닌지. 어느 정도의 강자인지.
한번 붙어 보면 견적이 나올 테니 말이다.
“음…….”
‘어떡할까요?’
현시우가 느긋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이런 잔챙이를 상대하는 것쯤이야 그에게는 일도 아니었다. 다만 너무 과하게 대응할 경우 상대측에서 현시우에 대해 역으로 흥미를 가질 수 있으니 그 부분이 문제다.
‘그럼 좀 봐줄까?’
그러기엔 집까지 따라온 놈들이 꽤 괘씸한데.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순식간에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여러 스킬들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윽?!”
“허억!”
“컥!”
갑자기 놈들이 차례차례 쓰러지기 시작했다. 헌터가 아닌 일반인이 보았다면 그냥 동시라고 해도 믿을 법한 엄청난 속도였다.
눈 깜빡할 새도 없이 한 번에 처리된 스토커(?)들. 한 놈도 남김없이 쓰러진 걸 느낀 현시우가 의아한 낯으로 고개를 돌렸다.
“……?”
[뭐야? 너 나도 모르게 스킬 썼냐?]
“안 썼는데요?”
애초에 스킬 대부분이 성좌 네아이바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으니 썼다면 네아이바가 몰랐을 리 없다.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처리된 스토커들.
“아마 이놈들을 처리한 건 제가 아니라…….”
현시우는 말을 하다 말고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낯선, 그러나 동시에 낯익은 인물이 시선 끝에 서 있었다.
익숙한 위압감을 가진 은발의 인물. 전에 봤던 때와 얼굴은 미묘하게 달라졌지만 현시우는 이 위압감을 잊은 적이 없다. 이런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존재는 그가 기억하기로 단 한 명.
예전에 50층에서도 본 적 있는 ‘마신.’
마신 글리치는 그들의 집, 정확히 말하면 아파트 공동 현관에 기대 팔짱을 낀 채 물었다.
“너는 왜 집에 저런 놈들을 달고 오는 거지?”
“……?”
[? 쟤는 왜 저기 있냐?]
‘누가 보면 지 집인 줄 알겠네?’
어이가 없어서 잠깐 침묵하던 현시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는 그쪽이야말로 왜 여기 있는 겁니까?”
* * *
글리치가 하빈의 집에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현하빈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에는 이공간에 있던가, 하빈의 집에 있던가. 알아서 하라고 허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공간도 적당히 다 둘러보았겠다, 저번에 보던 네풀릭스인가 뭔가를 마저 보려고 하빈의 집에 가려고 했는데.
“나 말고도 익숙한 얼굴이 여기로 오고 있었던 거지.”
현하빈과 아주 닮은 놈이 여기로 오고 있었다. 거기다 불청객들까지 달고서.
현시우.
사실 하빈의 집에서 가족사진을 본 적 있는 글리치는 현시우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너, 후배님의 가족인가?”
“다 알면서 왜 물으시죠?”
네풀릭스를 틀어놓은 거실. 덩그러니 소파에 앉은 현시우와 글리치 사이로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야, 솔직히 손님 있어서 소파에 못 누우니까 불편하지?]
‘…….’
[넌 왜 올 때마다 집에 손님이 있냐?]
‘그러게요.’
[현하빈이 계속 데려오니까 그런 듯! 현하빈 발 넓네!]
‘이걸 넓다고 해야 합니까?!’
저번에는 채지세, 이번에는 마신이다. 마신은 자신을 ‘글리치’라고 소개했다.
“나는 그러니까…… 음, 현하빈의 선배다.”
“……?”
[서, 선배?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선배라는 단어의 정의가 바뀌었냐? 지금 저 마신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다 하다 마신을 선배 삼는 동생을 두었다.
[후배 삼지 않은 걸 다행으로 해야 하나? 확실히 마신이 나이가 더 많긴…… 하겠지?]
‘아니, 애초에 집 안에 마신만 남겨놓고 학교를 가는 게 말이 되는 행동일까요?’
그들은 글리치의 정체가 마신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지만 일단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글리치 본인의 입으로 자신이 ‘마신’이라 공언한 적도 없는데 알고 있다는 듯 굴면 그게 더 이상할 테니 말이다.
‘침착하자, 이번에도 기본적인 골조는 같아. 채지세 때와 똑같이, ‘현시우’인 척을 하면 된다.’
마신 역시 기색을 보아하니 그를 하빈의 오빠인 것으로만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마신과는 엮이지 않는 게 최선이니 저쪽이 먼저 돌아가기 전에는 적당적당하게 조용히 넘기자.’
저래 보여도 마신이다. 지금은 얌전하게 보이지만 저게 진짜 마신이라면 눈 한쪽 깜빡이는 것만으로도 도시가 날아갈 수 있다.
‘그건 안 될 일이지.’
여긴 현시우와 현하빈이 애써서 빚을 갚아 마련한 소중한 집이었다. 그리고 평화롭던 시절의 추억이 담긴 곳이기도 했다. 생각을 마친 현시우는 평범한 한국 사람답게 안부 인사를 건넸다.
“밥은 먹었습니까?”
“……아직.”
“그렇군요. 그럼 뭐라도 드실래요?”
“큼, 그럼 매운맛 아닌 걸로 부탁한다.”
“……?”
의외로 세심한 주문에 현시우는 뜻밖이란 표정을 지으며 배달 앱을 켜서 메뉴를 살폈다.
떡볶이는 매우니까 안 되겠지? 치킨? 아니면 이번에도 피자?
그가 한창 메뉴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글리치가 현시우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너, 왜 다른 건 묻지 않지?”
“뭐가요?”
“왜 내가 너희 집에 있냐는 질문이라든가, 뭐 하러 왔냐는 질문이라든가.”
“물으면 대답해 주실 겁니까?”
“…….”
눈썹을 치켜올린 글리치는 이내 네풀릭스를 보던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 그의 표정에 상당히 흥미롭다는 기색이 스쳤다.
“왜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아는 것처럼 구는 건지 참 신기하군. 아까 이 건물 입구에서 만났을 때도 경계심을 보이지 않던데.”
현시우를 따라붙던 마이너 패치를 슥삭 처리하고 기다렸다는 듯 입구에 서서 인사를 했던 글리치. 그러나 그 화려한 등장에도 불구하고 현시우는 놀라지 않았다. 글리치를 발견하고 조금 당황한 기색을 비치기는 했지만, 현하빈이 초대한 선배라고 소개하자 바로 경계를 풀었던 현시우.
[흠! 그 부분은 우리가 실수한 게 맞는 것 같다!]
네아이바가 낭패라는 듯 끼어들었다. 보통 다른 사람이면 그 상황에서 ‘누구신데요? 뭔데요?’라며 의심과 경계가 가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시우는 ‘에휴, 현하빈이 또 마신을 우리 집에…….’ 같은 생각이나 하며 태연하게 글리치를 맞이했으니 의심을 살 수밖에. 현시우는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 그렇네요. 제가 실수했습니다. 하도 현하빈의 기행에 익숙해진 바람에……!’
갑자기 킬스크린에서 깽판을 치질 않나, 마왕을 꿇리고 컨티뉴를 접수하는 현하빈의 행보. 그러다 보니 집에 마신이 찾아와도 평소답지 않게 덜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그 정도야 수습할 수 있죠.’
현시우는 동요 없이 태연한 얼굴로 배달 앱 스크롤을 내렸다. 그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받아쳤다.
“현하빈이 집에 손님 왔다고 말했었거든요. 그래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얘가 이러던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
실제로 글리치를 데려왔을 때 손님을 오빠 침대에 재워도 되냐고 묻기도 했던 현하빈. 현시우 역시 그 경험이 있었기에 글리치를 보고도 ‘마신’이라 확신하며 덜 놀랐던 게 있었다.
“……그래? 하긴 후배님의 행동은 그럴 만하지.”
그 말에 곧바로 납득하는 글리치. 의외로 쉽게 이해하는 모습에 현시우는 내심 놀랐다.
‘토, 통했나?’
[야, 역시 쟤도 현하빈을 경험해 봐서 아나 보다! 현하빈이 얼마나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많이 만드는지!]
그동안 글리치 역시 현하빈에게 많이 놀라 본 모양. 그렇게 파악한 둘이 내심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였다. 글리치의 말이 이어졌다.
“그럼 이건 다음 질문.”
“……!”
한 번 질문을 잘 넘긴 현시우는 조금 방심했다. 다음 질문은 또 뭘 하려나, 하고 심드렁하게 폰을 보고 있던 현시우.
……글리치의 공격이 쇄도한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현시우!]
“……!”
촤악!
생각이 미치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였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고개를 든 현시우는 본능적으로 펼친 자신의 마법 결계와, 그 너머로 흘러내리는 마신의 검은 마력을 응시했다. 이건 장난으로 던진 공격이 아니었다. 현시우가 아니었으면 누구든 반응조차 못 하고 죽었을 일격.
아니, 다시 말해, ‘피데스’가 아니었다면 단번에 목숨을 잃었을 공격.
현시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네아이바의 본체를 꺼내든 그는 글리치를 향해 빈틈없는 경계 태세를 취했다. 글리치는 이 와중에도 긴장감 없이 빙글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가 아주 재미있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역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네. 그날 마계에서 봤던 마법사가 바로 너였어.”
“……!”
“‘피데스’,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