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184) (184/268)

84. 농도와 관계없이 맹독은 위험합니다.

재빠르게 스킬을 해제하고 포션 병에서 흘러나온 맹독을 처리한 하빈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옅은 농도라며! 뭐가 옅은 농도인데?!’

‘다소 옅은 농도’로 판정된 (3)이 이 정도인데 치명적인 수준이라던 (1)이나 (2)를 썼다간 시전하자마자 포션 병은 물론이고 이 방 사람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독 내성마저도 21.4억이었던 하빈. 물론 비활성화이긴 하지만 그걸로도 하빈은 타격을 입지 않았다. 하빈이 마법을 써서 깔끔하게 독을 치워냈지만, 독이 떨어진 바닥은 이미 구멍이 파인 상태. 조금만 늦었어도 아래층까지 뚫렸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섬뜩한 일이었다.

‘꼰대 기준에선 이 정도 독이 아무것도 아니었나 본데…….’

그 널널한 기준 때문에 또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말았다. 하빈은 망가진 포션 병을 허망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복원 마법 같은 건 없나?’

물론 이미 망가진 걸 다 보인 마당에 이걸 눈앞에서 복원해 버리면 그게 더 흥미로워 보일 것 같다. 최상급 아이템을 어떻게 마법 하나만으로 고쳤냐며 또 난리가 나겠지. 하빈은 별수 없다는 듯 뻔뻔한 표정으로 둘러댔다.

“아앗, 병에 하자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원래 구멍이 뚫려있었던 모양인데…….”

“허,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희가 샅샅이 다 확인했는데요?”

“스킬까지 써서 확인했는걸요!?”

“……쳇.”

상대를 검증하기 위한 용도였으니 당연히 사전에 꼼꼼하게 확인한 아이템들이었다. 누구의 오해도 사지 않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교차 검증까지 한 물건.

게다가 보통 물건이 아니다. 저건 코니 님이 직접 만드신 최상급 아이템. SSS급 맹독마저도 훌륭하게 담아내는 아이템이 확실했다.

원래라면 포션 병을 채운 용액을 다시 가져가 검사할 계획이었는데 이제 그럴 필요도 없게 생겼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포션 병 아이템도 몇 초 만에 녹여 버릴 맹독.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이 있다면 바로 이것일까.’

앨빈은 속으로 감탄을 흘리며 부서진 병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투는 한껏 더 정중해져 있었다.

“이제야 왜 하빈 양이 포션 병을 낯설어했는지 알겠군요.”

“왜 스킬을 보여주시길 주저했는지도요.”

“아하, 어차피 담아봤자 포션 병들이 다 녹아버리니까 포션 병을 접할 일이 없으셨던 거군요!”

“과연……!”

“엥.”

착실하게 쌓여 가는 오해 속에서 사람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하빈을 보았다. 빌리는 낭패한 얼굴로 구석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마도 저 설명에 납득한 모양. 빌리가 우물쭈물하며 말을 보태었다.

“……음, 죄송합니다. 그런 사정이 있는 줄도 모르고.”

일부 제작계 헌터들은 상대의 실력에 따라 대우를 다르게 한다고 들었는데 빌리가 그런 경우였던 모양. 빌리 역시 새삼스럽다는 눈빛으로 포션 병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처음 병을 보고 비싸다며 감탄한 건 설마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독을 담을 수 있는 병일지도 모른다고 기대해서 그런 건가…….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하긴 모든 걸 녹여버리는 맹독을 제조할 수 있다면 쉽사리 스킬을 보여주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병을 다룰 일도 없었을 테니 그래서 초심자의 동작이 나왔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지나치게 편견에 갇혀 있었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런 자라면 코니 님이 관심을 가지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비록 독 제조 스킬 하나만 보여줬을 뿐인데 그것부터가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능력을 상회한다. 이곳에 온 제작계 헌터 중 누구도 저 독을 막아낼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맹독을 담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코니 님의 아이템조차 저리도 쉽게 녹여버리는 독인데.

‘확실히 세간에 알려지면 파장이 장난 아니겠군.’

앨빈이 눈썹을 찡그렸다. 현하빈은 대단한 천재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동시에 컨티뉴의 모든 아이템을 무용하게 만들 수 있는 양날의 검. 만약 하빈이 만들어낸 독이 컨티뉴의 아이템들을 녹일 수 있다고 세계에 밝혀진다면. 컨티뉴의 주가는 곤두박질칠 것이다!

‘하지만 현하빈 또한 컨티뉴의 사람이라고 알려진다면?’

그러면 정반대다. 이런 천재 제작계 헌터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주가가 미친 듯이 오르겠지!

한술 더 떠 현하빈과 코니가 협력하여 하빈의 독을 담을 수 있는 아이템까지 연구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

앨빈의 눈이 가늘어졌다. 만일 그렇다면 현하빈은 컨티뉴의 희망이자 미래가 될 인재다.

‘역시 코니 님의 안목이란!’

거기까지 예상하고 현하빈을 영입하려 애썼던 건가!

“저희가 실례했군요. 우선 오늘 본 일은 절대적으로 비밀에 부치겠습니다.”

그 말에 대주주 연합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컨티뉴의 특수 아이템을 녹일 수 있는 맹독이 존재한단 사실은 아직 비밀로 부쳐져야 했다. 그래서 코니가 하빈을 숨긴 거라면 곧바로 납득이 된다.

‘게다가 코니 님이 이렇게 영입에 애쓰고 있다니, 우리가 더 도와 드려야지!’

앨빈이 판단하기에도 현하빈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인재였다. 그래서 그는 대주주 연합을 돌아보았다. 그 동작만으로도 그가 무슨 뜻을 품었는지 파악한 대주주 연합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들의 암묵적 동의를 얻은 앨빈이 하빈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희 대주주 연합에 들어오시지 않겠습니까, 현하빈 양?”

“네?”

“원한다면 컨티뉴의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저는 개인적으로 찬성합니다. 당장 코니 님께 저희 뜻을 전달하도록 하죠.”

“아니 뭘 그렇게나…….”

딱히 후계자 자리 같은 거 필요 없는데?

괴상하게 일그러진 하빈의 표정과는 상관없이, 앨빈은 굳은 얼굴로 결의를 다졌다.

* * *

그렇게 코니에게 연락이 곧바로 전달된 것이다.

“연합 측에서 먼저 현하빈을 영입하자고 의견이 나올 줄은…… 대체 하빈 양은 연합에게 뭘 보여준 걸까요?”

웬만한 제작계 스킬로는 꿈쩍도 안 하던 대주주 연합이다. 코니로서도 이게 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대주주 연합은 ‘당연히 코니 님은 이 사실을 다 알고 계셨겠지’라고 판단한 터라 자세한 내용은 하나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왜 진작 말씀 주시지 않았냐, 어떻게 현하빈 같은 천재를 저희에게 비밀로 하실 수 가 있냐, 소개를 왜 안 해주셨냐’ 등의 말뿐.

“그러게 말이다, 이게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현하빈과 제작계 스킬을 단 한 번도 연관지어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코니.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펜을 들었다.

“역시 하빈 양과 이야기를 해봐야겠어.”

* * *

“……피데스 님, 큰일입니다.”

“또 뭡니까? 꾸껠울라칸에서 수사 요청 안 받겠대요?”

정보원의 말에 현시우가 덤덤하게 반문했다. 애초에 꾸껠울라칸이 수사 요청을 한 번에 받아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럼 마이너 패치 조사에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 정도야 예상한 범위다.

워낙 폐쇄적이던 나라이니만큼 아무리 이런 사안이라도 쉽사리 외부 기관의 수사 요청을 받아줄 리가 없지. 알아서 결론을 내린 현시우가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정보원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 현하빈이 컨티뉴를 먹었답니다.”

“……예?”

[엥?]

현시우는 귀를 의심했다.

누가 뭘 먹어?

잠깐의 침묵 끝에 그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어, 현하빈이 뭘 먹었다고요? 제가 아는 컨티뉴가 또 따로 있나? 혹시…… 컨티뉴라는 음식이 있었습니까?”

[현실 부정하려고 말 돌리지 마라.]

“…….”

현시우의 김빠진 반응에 정보원이 답답하단 얼굴로 재차 외쳤다.

“아뇨! 그 컨티뉴 맞습니다! 코니 님의 컨티뉴! 킬스크린의 컨티뉴! 무려 대주주 연합을 설득시켰답니다!”

“네? 대주주 연합이요? 제가 아는 그 대주주 연합?”

“맞습니다!”

“대체 어떻게…….”

현시우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컨티뉴의 대주주 연합은 원체 까다롭고 의심이 많기로 유명한 집단이다. 오죽하면 일각에선 ‘제작에만 정신이 팔려서 의심과 집요함으로만 똘똘 뭉친 공방 놈들’이라고 욕을 할 정도로.

‘어떻게 그들이 현하빈을 인정한 거지?’

현시우로서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들의 인정을 받아낼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1회차 때는 아무런 접점이 없었던 집단이었기 때문이었다. 제작계 계열 헌터가 아니면 굳이 엮일 이유도 없고.

대주주 연합 역시 같은 제작계 헌터 외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들었다.

‘그들의 인정이나 호의를 사려면 최소한 그들의 실력에 맞먹는 제작계 스킬이라도 보여줘야 할 텐데.’

현시우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현하빈은 적어도 제작계 헌터는 아니었다. 1회차의 막판에 갔을 때 관리자의 코드를 훔쳐 쓴다니 뭐니 하면서 아이템 몇 가지를 만들었긴 했지만. 그때도 혼자서 만든 게 아닌, 현시우와 채남매의 협력을 얻어 만든 것이었다.

‘단독 제작계 스킬은 본 적이 없는데.’

[그럼…… 제작계 스킬이 아닌 다른 걸로라도 인정을 받은 게 아니냐?]

‘다른 거요?’

[유전자 검사!]

“……!”

현시우의 동공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혹시라도 유전자 검사에서 친자라고 뜬 건가?

진짜 코니의 핏줄이라고 떴어?

[야! 맞다! 맞나 보다!]

옆에 있던 네아이바도 흥분한 목소리로 부추겼다.

[잘 생각해 봐라! 바로 직계 할머니 아니라도 작은할머니거나, 어? 몇 촌 걸러 어르신일 수도 있잖냐?! 잘 생각해! 기억을 거슬러! 떠올려 봐!]

‘그, 그럼 나도 코니 님 혈연이 되는 건데.’

[헐, 그럼 우리도 지분 좀 먹을 수 있는 거 아냐? 어디 보자! 컨티뉴 시총이 얼마였지?]

그들이 속으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였다. 정보원이 입을 열었다.

“유전자 검사는 아니라고 떴는데, 제작계 스킬이 굉장했다고 합니다.”

“…….”

[…….]

‘거봐요, 크흠. 아니잖습니까.’

현시우는 속으로 헛기침을 했다. 괜히 네아이바 때문에 김칫국만 마신 셈이 되었다.

[에이, 아니네?]

아쉬운 듯 툴툴거린 네아이바가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제작계 스킬이 굉장했다니? 네 기억에 따르면 현하빈은 제작계 스킬이 없었다 하지 않았나?]

마침 그 부분은 현시우도 궁금하던 차였다. 현시우가 정보원을 향해 물었다.

“제작계 스킬만으로 인정을 받은 겁니까?”

“네. 제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인원을 감탄하게 만들 정도의 실력이라고 합니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대주주 연합이 오히려 코니 님에게 왜 그동안 이런 인재를 숨겼냐고 추궁하고 있다던데요.”

“그래서 곧바로 대주주 자리를 넘겼습니까?”

“아니요. 그들 역시 자존심과 그릇 챙기기가 강한 이들이라 자신의 몫을 쉽사리 넘겨줄 인물들은 아니지만…….”

당장 자신의 이익과 안전에 위협이 될 정도의 위기를 느끼거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거나. 그 둘을 동시에 해내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걸 일을 해냈다니?

“자세한 사항은 밝히지 못하지만 현하빈 양을 영입하고 싶다고 그들의 수장이 앨빈이 공개적으로 언론에 의사를 흘렸다고 합니다.”

“무슨…….”

현시우는 당장 인터넷을 검색했다. 정말로 컨티뉴 연합에서 현하빈을 영입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단 기사가 속보로 올라와 있었다.

“…….”

현시우는 천천히 핸드폰을 켰다. 공개적인 정보가 흐른 만큼 ‘현시우’가 현하빈에게 물어도 될 만한 명분이 생겼다.

판단을 내린 현시우가 재빠르게 카톡 창을 켰다. 당사자에게 물어볼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 있는데 굳이 멀리 돌아갈 필요 없지.

1 야

1뉴스 뭐냐

1컨티뉴 대주주 연합 들어간다고?

1어떻게 된 거임?

1진짜 코니님 후계자 되는 거야?

1뭔ㄷ 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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