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사실 마신은 스킬이 너무 많아서 본인도 뭐 있었는지 가끔 잊어버림 (7)
“제작계 스킬이 있었다고?”
“아니, 그럼 왜 그걸 진작 보여주지 않고…….”
“숨기시려 한 이유가 있었겠지!”
현하빈의 ‘제작계 스킬이 있다’라는 폭탄 발언에 웅성거리던 컨티뉴 대주주 연합. 일단 하빈은 뒤늦게 이 상황을 수습해 보기로 했다.
“아뇨, 저 사실은…….”
사실은 제작계 스킬 없어요, 하고 억지 모르쇠를 하려던 하빈. 그러나 대주주 연합이 한발 더 빨랐다.
“역시 코니 님의 안목이란!”
“빌리, 그러게 책임질 말을 했어야지!”
“역시 제작계 스킬이 있을 줄 알았어.”
“코니 님께서 그냥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푸실 리 없지.”
“…….”
“아, 하빈 양, 무슨 말씀을 하려고 했습니까?”
“아니 그게…….”
곁에서 상냥하게 챙겨주는 비서의 물음. 하빈이 그 질문에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정정할게요! 저 사실 제작계 스킬 없습니다!”
재빠르게 실언을 정정하는 현하빈. 그러나 이미 흥분한 대주주 연합은 그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하하, 농담도 참!”
“저희 다 들었습니다! 제작계 스킬 있다고 말한 거!"
“어림도 없죠!”
“…….”
강경한 대주주 연합의 태도에 하빈의 표정이 묘해졌다.
‘뭐야? 이분들 그냥 답정너신데?’
[답정너가 뭐냐?]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의 줄임말. 애초부터 내가 제작계 스킬이 없을 가능성을 1도 염두에 두지 않고 있잖아?’
그나마 구석에 있던 빌리와 그 추종자들만 하빈의 말에 신경을 썼다.
“그것 봐요, 바로 없다며 발뺌을 하지 않습니까! 보나 마나 허접한 스킬이라 보여주기 낯부끄러워서 밑밥을 까는 거라니까요?”
“뭐?”
“계속 말이 바뀌는 사람의 실력이야 빤하죠. 더 볼 것도 없습니다.”
“……흐음?”
그 발언에 하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쟤는 아주 사람을 바보로 모네?’
극과 극.
한쪽은 하빈에게 대단한 스킬이 있을 거라 추켜세우며, 다른 한쪽은 별거 아니라며 무시한다.
하빈으로서는 둘 다 마음에 드는 반응이 아니었다.
대단한 스킬이 있을 거라 기대하는 쪽은 말이 기대지, 집착하고 견제하기 위한 기대.
무시하는 쪽은 하빈의 실력을 우습게 여기는 태도다.
“좋아요. 그냥 빠르게 보여 드리고 끝냅시다.”
마침내 결심한 하빈이 팔짱을 꼈다.
이렇게 된 이상 적당하게만 보여주고 끝내는 게 나을 것이다.
어차피 하빈이 제작계 스킬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양쪽 다 계속해서 물고 늘어질 게 빤하다.
특히 하빈을 무시하는 쪽은, 하빈뿐만이 아니라 꼰대 선배의 스킬과 코니의 안목까지 무시하고 있다.
‘그건 절대 참아줄 수 없다고.’
하빈이 스킬 창을 흘끔댔다. 이래 봬도 꼰대 선배가 나름 시간까지 써 가며 가르쳐 준 스킬인데, 보지도 않고 무시하다니.
‘적당히…… 중상급 정도 제작계 스킬을 보여주면 되려나?’
하빈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 정도면 이들도 더 이상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제작계 헌터들은 일정 이상 성취를 이룬 각성자들을 서로 존중하는 성향이 강했으니까.
그리고 중상급 정도면 특별히 하빈을 귀찮게 하거나 견제하지도 않을 것이다. 코니의 후계자가 되기에는 이들보다 조금 못 미칠 테니.
물론 그런 하빈의 태도에 대주주 연합은 반색했다.
“오오, 하빈 님이 제작계 스킬을 보여주려고 하려는 모양이신가 본데요!”
“저희가 그럴 줄 알고 준비해 둔 게 있습니다!”
“딱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컨티뉴 주주 연합이 달려들었다.
‘당장 여기서 끝장을 봐야 한다!’
유전자 검사마저도 순순히 협조해 주지 않던 현하빈이다. 하빈이 언제든 집에 갈 타이밍만 노리고 있다는 걸 그들도 당연히 눈치를 챘다.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기분을 맞춰드려야 해!’
어느새 하빈이 유전자 검사에 협조해 줄까, 안 해줄까. 제작계 스킬을 보여줄까, 안 보여줄까 전전긍긍하고 있던 연합원들. 그들은 재빠르게 준비해 두었던 세팅을 가져왔다.
“하빈 님, 혹시 이걸 알아보시겠습니까?”
드르륵. 호텔 서빙 카트가 하빈 앞으로 배달되었다. 그 위에는 아무런 장식 없는 단검과 병이 놓여 있었다. 그걸 확인한 하빈의 눈이 조금 커졌다.
“음? 이거 깡통 아이템이네요?”
“아시는군요!”
“역시 제작계 용어를 아시는 분이셨어.”
‘그, 그냥 알바하다가 안 건데.’
백화점 아이템 수선실을 알바로 들락거리던 현하빈. 그러다 보니 좀 주워들은 게 있었을 뿐이었다.
‘오랜만에 보니까 얘네도 좀 반갑네.’
하빈은 아무 무늬 없는 단검을 슬쩍 건드려 보았다. ‘깡통 아이템’이라는 속어는 이처럼 아무런 효과가 부여되지 않은 기본 아이템을 지칭한다.
단검, 화살, 구 등등 기초적인 모양만 잡아놓고 거기에 아무것도 덧대지 않은 기본 중의 기본 틀.
‘마치 그림을 그리기 전의 하얀 캔버스천 같은 아이템들이라고 할까.’
‘깡통 아이템’은 던전 같은 곳에서 얻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 사람들이 아이템 제작에 쓰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었다. 주로 속성 부여가 가능한 강철 재료 등을 주물 틀에 찍어내어 만드는 방식.
흔한 재료로 대량생산한 깡통 아이템은 아이템 제조 공장으로 흘러 들어가 중하급 아이템을 만드는 데 쓰인다. 혹은 제작 계열 각성자들이 제작을 연습할 때 쓰기도 하고.
상급이나 최상급 재료로 만든 깡통 아이템은 마찬가지로 상급 아이템을 제작하기 위한 재료로 쓰인다.
물론 특별 주문 제작이나 최상급 중 최상급 아이템은 미리 뽑아둔 깡통 아이템을 쓰지 않고, 시작부터 여러 재료를 혼합하고 깎아 가며 심혈을 기울이지만.
“그렇습니다. 보다시피 이건 연습용으로 쓰이는 중급 깡통 아이템입니다. 제작 스킬과 재료 아이템들을 사용하면 속성 부여가 가능하죠.”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한번 보여주시겠습니까?”
“살짝만이라도!”
잔뜩 기대감으로 부푼 대주주 연합. 그들은 곁에 있는 포션 병도 소개했다.
“그리고 이건 용액 아이템을 제대로 담을 수 있게 특별히 제작된 포션 병입니다. 포션 제조 쪽이시면 여기에 스킬을 쓰셔도 됩니다.”
아무 용기에 담았다간 기껏 만든 포션의 성분이 상한다. 반대로 독성분인 경우 용기가 파손되는 사례도 있다. 그래서 포션 제작자들은 항상 특수한 용기를 사용했다.
‘오……. 이거 진짜로 비싼 병이잖아?’
컨티뉴의 로고가 찍힌 특수 병 아이템. 이건 컨티뉴에서도 최고 등급으로 다루는 포션 병이었다.
‘듣기로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용액을 담을 수 있다지?’
그게 얼마나 유해하든 불안정하든 상관없이,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포션을 담을 수 있다고 선전하던 병.
하빈이 신기하단 낯으로 포션 병을 슬쩍 들었다. 그 동작을 따라 주주들의 고개도 홱홱 따라갔다. 누가 보면 조금 우스꽝스러울 광경.
“하, 그냥 이쯤 하시죠.”
그들 사이로 짜증 섞인 말이 끼어들었다.
“지금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비위를 맞춰야 합니까? 다들 자존심도 없습니까?”
말을 뱉은 사람은, 전부터 하빈의 행동을 탐탁지 않게 보던 빌리였다. 빌리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하빈의 손을 쳐다보고 있었다.
“솔직히 지금쯤 다들 느끼셨을 텐데요? 저 꼴이 어딜 봐서 전문가입니까? 포션 병을 저런 식으로 드는 제작계 헌터가 어디 있다고요?”
사실 빌리에게도 이유는 있었다. 하빈이 깡통 아이템과 포션 병을 대하는 태도에서 전혀 제작계 헌터의 느낌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제작을 많이 해본 이는 포션 병을 쥐는 방식부터가 다르다. 그리고 병을 확인할 때 시선을 두는 곳이 다르다.
‘아무리 봐도 초보자다. 저 사람은 제작계가 아니야.’
저게 연기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수년간 몸에 배어 온 습관이 쉽게 사라질 수가 없다. 설사 그렇다 해도 표정과 눈빛까지 숨기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저자는 초심자인데…….’
빌리의 눈이 더 가늘어질 때였다.
“크흠.”
“뭐…… 각자의 방식이 있는 거 아니겠나.”
다른 연합원들은 다들 모르쇠 하며 하빈의 의중을 살폈다. 그들 역시 하빈의 태도에서 조금씩 묘한 낌새를 느끼고는 있었다.
‘조금 초심자 같은 느낌을 주긴 했지.’
‘하지만 연기인지도 모른다.’
그러는 사이 하빈은 스킬 창을 보고 있었다.
‘뭘 써야 적당할까?’
하빈에게는 속성 부여 스킬도, 제조 스킬도 있다. 다만.
<속성 부여>
원하는 아이템에 ‘오류’ 속성을 부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