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177) (177/268)

177. 사실 마신은 스킬이 너무 많아서 본인도 뭐 있었는지 가끔 잊어버림 (1)

처음 화로를 가져왔을 때, 그때부터 글리치는 헼께록을 비웃고 있었다.

‘빤하군.’

저건 이제껏 글리치가 보았던 수많은 다른 사이비에서도 썼던 방법들이다. 오직 교주만 보일 수 있는 기적, 교주의 특별한 권위를 나타내는 아이템들.

그런 아이템들의 경우 ‘교주만 사용할 수 있는’ 숨겨진 설정을 걸어 놓는 경우가 많다. 다른 이들에겐 통할지도 모른다. 아이템에 정통한 자가 아니라면 풀기 어렵고, 설사 정통하다 하더라도 즉석에서 푸는 건 불가능.

문제는 그 상대가 보통 인간이 아닌, 살아있는 오류 현하빈과, 오류 그 자체인 이라는 점이다.

어떤 설정을 걸어 두었든 그래봤자 오류로 뚫으면 끝이라는 거다.

“어, 어어…… 이게 무슨…….”

한편 헼께록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환하게 타오르는 화로를 바라보았다. 그 곁에 있던 하빈이 앗, 하는 표정을 지었다.

‘엥, 힘 조절 실수했네.’

그랬다. 이 정도까지 화려하게 할 필요는 없었는데.

‘뭐, 어쨌든 잘 되었으니 된 거 아니겠어?’

이공간에서 마신에게 ‘약하게 스킬을 쓸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한 덕분에 그나마 이만큼 줄인 거다. 아니었으면 이 건물이 통째로 홀랑 타버렸을지도?

꺼질 생각은커녕 바닥부터 천장까지 화려하게 타오르는 금빛 불꽃에, 신도들은 놀라다 못해 경배라도 하는 듯 두려움에 잠긴 표정으로 하빈에게 재깍 고개를 숙였다.

“여, 역시 이쪽이 진짜 교주님이시다.”

“교주님……! 몰라뵈어서 죄송합니다.”

“흠흠, 그래그래. 알았으면 잘하라구!”

신도들의 열렬한 성화에 하빈이 야구 배트를 휘두르며 선심 쓴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오오오, 자비로우신 교주님.”

“크흠, 맞아. 내가 한 자비 하지.”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헼께록만 속이 터졌다.

‘저 멍청한 것들!’

헼께록이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다른 신도들이야 화로가 신성한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으니 저리도 충격받고 혹하는 것이리라.

안타깝게도 이 자리에 있는 인간 중 저 화로가 조작된 아이템인 걸 알고 있는 건 헼께록뿐이었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면 의심하지 않을까?’

불꽃의 크기가 압도적으로 차이나긴 했지만 어쨌든 헼께록도 불을 피웠으니까!

헼께록은 다급하게 자신의 보좌관을 찾았다. 그래도 자신의 보좌관만큼은 근 3년간 매일같이 합을 맞춰온 자다. 덕분에 예배실에 들어오자마자 헼께록이 진짜라는 걸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고 화로를 재깍 가져온 인물이기도 했다.

‘보좌관! 빨리 다음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가 다음 기회를 노리기 위해 보좌관을 향해 눈빛을 보내는 순간이었다.

“그렇습니다! 이분이 진짜인 게 틀림없습니다.”

“……?”

헼께록의 기대를 배신하고, 보좌관은 현하빈을 진짜로 지목했다!

멍한 표정을 짓는 헼께록을 무시한 채, 보좌관이 신도들을 향해 열띤 목소리로 덧붙였다.

“교주님을 몰라뵈어서 신이 노하신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평소보다도 더 커다란 불꽃을 피워낸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과연 그렇군요!”

“아아, 죄송합니다…….”

“저희가 이단에게 잠시 휘둘릴 뻔했군요…….”

언제나 헼께록의 측근이었던 보좌관. 그까지 말을 보태 주니 오히려 다른 신도들의 신뢰도는 더 높아지기만 할 뿐. 이제 막다른 골목에 몰린 헼께록이 외쳤다.

“그, 그럴 리가 없다! 저 화로가 가짜인 거야! 가짜였다고!”

“지금. 신성한 화로를 무시하는 겁니까?”

보좌관이 싸늘한 눈으로 헼께록에게 반문했다. 화로는 헼께록이 가져오라고 했을 때부터 많은 신도들이 보는 앞에서 보좌관이 직접 가져온 것이었다. 교주의 진위를 감별하기 위한 물건이었기에 특별히 더 신경을 쓰며 가져온 거였는데.

혹여나 바꿔치기라도 당할까 봐 화로에 난 흠집 하나하나까지 기억하고 있는 보좌관이었다.

‘저건 분명 진짜 정화의 불이다.’

그랬기에 보좌관도 의심 없이 현하빈을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헼께록은 부들부들 주먹을 쥐었다.

‘젠장, 하필 여기엔 광신도들밖에 없다니!’

보좌관과 경호원을 포함해, 여기 상주하는 인원들은 모두 종말교의 충실한 신자들이었다. 이 종말교가 신도들의 돈을 뜯기 위한 비리 사이비 조직이란 것도, 마이너 패치와 연루되었다는 것도.

적어도 이 예배실에 있는 사람들 중에선 아는 사람이 헼께록 혼자뿐이었다!

이게 다 마이너 패치의 철저한 비밀 유지 방식 때문이었다. 마이너 패치와 관련 있다는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마이너 패치 측에서는 주기적으로 감사 방문만 했다.

경호원이나 보좌관 같은 사람들은 굳이 마이너 패치 소속이 아니어도 교단을 운영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믿음’을 이용해 더 효율적으로, 무급으로 굴릴 수 있으니 그만큼 편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압도적인 화력차로 신성한 화로를 사용한 현하빈. 게다가 교주와 똑같은 모습으로 사칭까지!

이런 상황에서 믿음을 가진 이들은 현하빈의 편에 선 것이다.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아이템이 고장 났나?’

아무리 생각해도 고장 났거나 바꿔치기 당했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헼께록이 아닌 다른 인간도 쓸 수 있는 상태가 된 거라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헼께록은 곁에 있던 경호원을 붙잡고 부탁했다.

“너, 너도 빨리 저기 불을 붙여 봐! 분명 화로가 바꿔치기 당했거나 고장 난 게 분명해!”

“신성한 화로에게 ‘고장’이라는 망언을 하다니! 역시 교주님이 아니군요!”

“성물이 어떻게 고장 날 수 있단 말입니까? 신성 모독입니다!”

“시X! 일단 해보라니까!”

헼께록이 붙잡은 경호원은 마법사 클래스였다. 헼께록 역시 그걸 알고 그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경호원은 진상을 상대한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헼께록을 흘겨보더니 하빈에게 고개를 돌렸다.

“교주님, 화로에 제가 불을 붙여 봐도 되겠습니까?”

경호원의 정중한 말투에 헼께록은 거품을 물었다.

“저 녀석 교주 아니라고!”

“흠흠.”

어느새 교주 의자에 떡하니 삐딱하게 앉은 하빈. 그녀가 안타깝단 얼굴로 헼께록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선심 쓴단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어, 저 가짜의 마지막 소원인 듯하니 들어주어라, 크흠!”

“…….”

“알겠습니다!”

분노로 씨익거리는 헼께록을 지나쳐, 경호원이 화로를 향해 다가갔다. 하빈이 손을 휘둘러 어디 한 번 다시 붙여 보라는 듯 불을 꺼주었다. 헼께록은 눈을 크게 부릅뜨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분명, 분명 뭔가 있었어!’

고장 났거나 화로가 중간에 바꿔치기 당한 거다. 그것밖에 생각이 안 들었다. 그리고 만약 그런 경우라면 저 경호원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정화의 불이군요. 저는 전혀 붙일 수 없습니다.”

“뭐……?”

경호원뿐만이 아니었다. 경호원 외에도 몰래 여기저기 시도해 본 이들이 있었다. 화로에 슬쩍 손을 갖다 댄 다른 신도들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도 안 되는데요.”

“역시 정화의 불입니다.”

“저 가짜가 핑계를 대려는 모양이군요.”

“이, 이것들이!”

헼께록이 답답하단 얼굴로 소리쳤다.

“나도 분명 불을 붙이는데 성공했던 걸 봤잖아! 그때는 내가 교주가 맞다고 확신하던 놈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

그 말에 몇몇 신도들의 눈빛이 찰나 흔들렸다. 헼께록이 불을 붙인 건 사실이었다.

‘아무도 못 붙이는 불을 붙인 것은 맞죠.’

‘정화의 불을 조금이나마 피웠다는 건데…….’

‘그래도…….’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반응. 헼께록은 긴장 가득한 낯에 겨우 웃음기를 띠었다.

‘역시 멍청해서 쉽게 휩쓸린다니까!’

멍청한 놈들이니 겨우 정화의 불꽃만으로도 가짜에게 넘어갔겠지. 헼께록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비록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당황했지만 그동안 교주 행세를 해온 헼께록이다. 홈그라운드에서 당하지 않는다. 헼께록이 이제껏 신도들을 구워삶아 온 능력이 있는데!

‘아무리 발버둥 쳐도 모두 내 손바닥 안이다!’

정화의 불을 피우느라 마력이 떨어졌던 헼께록, 그는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저장된 마력을 회복시켜 주는 아이템이었다. 순식간에 회복된 마력을 확인한 헼께록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마력을 긁어모았다.

‘바로 이 스킬을 위해서!’

‘선동!’

화아악!

바로 헼께록의 비장의 스킬이자 헼께록을 교주로 만들어 준 스킬.

선동 스킬을 사용한 것이다.

<선동>

대상을 설득하고 부추깁니다. 대상이 감정적인 동요를 겪고 있을수록, 본인의 매력 스탯이 높을수록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