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현하빈과 비밀의 방 (1)
그 시각, 레몬과 글리치, 리베는 이공간 안에서 간식거리와 과자를 까먹고 있었다. 레몬은 곁에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떡볶이를 보며 감탄을 흘렸다.
“와! 진짜로 이거 제가 먹어도 되는 거예요?”
-삐! 삐삐!
이미 가고 없는 하빈 대신 리베가 대신해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하빈은 점심에 돈가스를 먹느라 떡볶이를 다 못 먹었다. 그래서 남은 떡볶이를 레몬 몫으로 다시 포장해서 가져 왔던 것이다. 레몬은 신이 나서 떡을 향해 나무젓가락을 들었다.
“잠깐.”
막 떡을 향해 젓가락이 닿으려는 그 순간, 글리치가 끼어들었다.
“……진짜로 먹을 건가?”
그는 시뻘건 떡볶이 국물을 향해 경계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진지하게 조언했다.
“이 음식을 먹어본 경험이 없다면 솔직히 말리고 싶군.”
“왜요?”
“독약 같은 맛이 난다.”
“……?”
레몬은 덩달아 경계 어린 표정으로 떡볶이를 내려보았다. 잠깐 두 성좌 사이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음…….”
레몬은 조심스럽게 떡볶이의 냄새를 맡았다. 감칠맛 넘치는 매콤한 향기가 그의 코를 간질였다. 그가 의아하단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하빈 님은 이 음식을 줄 때 별말씀이 없었는데요?”
오히려 첫 만남 때부터 떡볶이를 추천했던 하빈이었다.
‘떡볶이라고 매콤한 감칠맛을 가진 요리가 있어.’
그래서 이번에 주면서도 ‘이게 그때 말한 떡볶이야!’라며 밝은 표정으로 줬었는데.
‘독약 같은 맛이라고?’
그런 걸 그렇게 밝은 표정으로 줄 수 있나?
레몬은 고개를 돌려 글리치의 표정을 살폈다. 어쩌면 놀리는 걸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글리치의 표정은 진심 같아 보였다.
진심으로 빨간 국물을 경계하는 얼굴.
“…….”
진짜 위험한 건가?
그렇지만 하빈이 그동안 레몬에게 준 음식들은 모두 맛있는 것들뿐이었다. 이제 와서 이상한 걸 줄 것 같지도 않고.
‘이상하다 싶으면 뱉으면 되겠지.’
마신도 ‘독약 같은 맛’이랬지 독약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레몬은 슬쩍 떡볶이 떡을 집어 들었다. 그가 쫄깃한 떡을 입안에 넣는 순간-
“음…… 괜찮은데요?”
레몬이 고개를 갸웃하며 평을 내렸다. 매콤한 고통이 입안에 퍼지긴 했지만 참을 만했다. 대신 짭조름하고도 매콤달콤한 소스와 쫄깃한 떡, 매운맛을 중화시켜 주는 풍성한 치즈가 입안을 즐겁게 했다.
“신기하다, 이런 음식도 있구나?”
그랬다. 불행 중 다행으로 레몬은 매운맛에 강한 체질을 타고났던 것이다.
레몬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떡볶이를 내려다보았다. 글리치는 정말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레몬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지……?”
왜 맛있게 먹는 거지?
‘설마 그새 음식이 바뀌었나?’
글리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떡볶이를 쳐다보았다. 그가 머뭇머뭇 떡볶이 국물에 젓가락을 푹 찍었다.
그리고 입에 넣었다.
“……!”
순식간에 입안에 작렬하는 고통!
“큽!”
글리치는 움찔 몸을 뒤로 물리며 떡볶이를 노려보았다.
‘음식은 안 바뀌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갔다. 그동안 하빈도, 채지석도, 레몬까지도 저걸 잘 먹는데 자신만 저 음식을 못 먹고 있다니.
글리치는 불만 어린 표정으로 떡볶이를 집었다. 그러곤 옆을 향해 그걸 건넸다.
“……너도 먹어 봐라.”
-삐?
상대는 이제껏 골똘한 표정으로 레몬과 글리치를 관찰하고 있던 리베였다. 리베가 호기심이 생긴 듯 아장아장 걸어와 떡 앞에 섰다.
-삐이…….
그동안 하빈은 리베에게 떡볶이같이 매운 음식을 준 적은 없었다.
‘리베는 아기잖아. 아기는 매운 거 먹으면 안 된댔어!’라는 이유였다.
물론 그렇다고 리베한테 주는 스테이크나 치킨, 닭가슴살, 케이크를 아기에게 주진 않지만…….
-삐, 삐삐.
리베는 고민에 빠진 듯 떡볶이를 바라보았다. 이걸 정말 먹어도 되나, 하는 표정과 ‘과연 무슨 맛일까?’ 하는 호기심이 섞인 표정. 리베도 하빈과 레몬이 떡볶이를 잘 먹는 모습을 보았기에 떡볶이에 딱히 두려움이 일지는 않았다.
오히려 리베만 빼놓고 다들 먹는 게 조금은 괘씸했다!
-삐!
결심한 듯 입을 와앙 벌리는 리베. 곧이어 리베의 작은 입안에 떡이 가득 들어찼다.
쫀득.
한 입 야무지게 떡볶이를 베어 문 리베가 냠냠 떡을 씹기 시작했다.
우물우물, 우물.
“안…… 맵나?”
글리치가 슬쩍 리베의 기색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딱 3초 뒤.
-?! 삑?
리베의 표정이 삽시간에 돌변했다.
-삐아! 삐아악!
엣퉤퉤, 재빠르게 입안에 든 떡을 뱉고 이리저리 뛰는 리베
-삐, 삐이, 삐이이!
리베는 눈물을 글썽이며 물을 찾았다. 조그마한 리베의 눈에서 눈물이 퐁퐁 솟았다.
-삐아아!
엉엉 우는 리베의 입에서 조그마한 불꽃이 파밧 나왔다.
“오……?”
그걸 발견한 글리치의 눈빛이 흥미롭다는 듯 반짝였다.
“이 녀석, 벌써 불을 뿜네?”
용의 불꽃은 보기 힘든 귀한 것이었다. 성체가 되기 전까지 열심히 단련하지 않으면 깨우치기 힘들다고 들었는데.
‘역시 비장의 극약인가.’
글리치는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떡볶이 국물을 바라보았다. 무려 용에게 속성으로 불 뿜기 스킬을 가르치다니.
‘아마 다른 용들이 알면 해츨링들 조기교육에 쓰겠답시고 서로 얻고자 난리겠지.’
생각을 마친 글리치는 곁에 있던 콜피스와 종이컵을 꺼내 리베에게 따라주었다.
“자, 너도 이걸 마셔라. 내가 먹어 봐서 아는데, 이거 마시면 좀 낫더라.”
-삐이…….
콜피스를 할짝거리는 리베를 보며 글리치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내가 이상한 게 아니군.’
매운 음식에 고통받는 리베를 보라. 분명 저 ‘떡볶이’니, 저번에 먹은 ‘컵라면’이니 하는 것들은 위험한 음식이 맞았다. 글리치가 흡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리베를 슬슬 쓰다듬고 있을 때였다.
“어어? 저거, 저래도 되는 거야?”
레몬이 옆에서 당황한 혼잣말을 흘리고 있었다. 글리치도 덩달아 옆을 돌아보았다. 레몬이 바라보고 있는 건 종말교의 교주 집무실과 복도였다. 텅 빈 교주의 방을 향해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예배가 곧 시작되니 얼른 교주님을 모셔옵시다!
종말교의 신도들과 경호원들이 교주실로 향하고 있었다. 아마도 교주실에 있는 교주를 데려가려는 모양. 그 소리를 들은 레몬이 낯을 굳혔다.
“하지만 교주는 지금 지하실에 하빈 님과 있는데……!”
잠깐 지하실에 들어갔다가 하빈과 만나 기절한 헼께록. 설상가상으로 지하실 입구도 활짝 열려 있다. 이대로 사람들이 교주실에 도착한다면 방 안에 교주가 없다는 걸 눈치채고 이상을 느낄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활짝 열린 지하실 문을 발견하고 교주와 하빈이 있는 곳까지 들어갈지도 모른다.
“어, 어쩌죠?”
레몬이 다급한 얼굴로 글리치를 돌아보았다. 글리치는 조용히 그 광경을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
그러는 와중에도 교주실로 다가오는 사람들. 그들이 너무 가까워지기 전, 글리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하, 난 정말 하기 싫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슈우욱-
별수 없다는 듯 글리치가 손을 흔들었다. 곧이어 그의 모습이 교주와 똑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레몬이 그걸 보며 감탄을 흘렸다.
“우, 우와!”
하빈과 똑같은 스킬이라니.
“역시 둘 다 마신 맞죠?”
“……어.”
비록 현하빈은 아니라고 우기지만 말이다. 글리치는 마저 한숨을 쉬고 레몬에게 손짓했다.
“빨리 열어봐, 교주실로 가는 오류.”
“그, 저 혼자 힘으로는 좀 힘든데요…….”
“할 줄 모르나?”
“마신님은요?”
“나도 이런 방식은 처음인데.”
“그럼…….”
레몬이 곤란하단 표정을 지었다. 레몬은 공간을 연결하고 이동하는 능력에 특화된 성좌였지만 이곳은 오류로 가득 찬 곳. 오류 속에서 자신의 힘을 펼치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존재는 마신이다.
하빈과 비슷한 계열의 존재! 레몬은 알았다는 표정으로 글리치를 돌아보았다.
“조금 도와주시면 같이 힘을 합쳐서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오류를 다루는 부분은 마신이, 공간을 다루는 부분은 레몬이. 물론 마신도 공간을 꽤 다룰 줄 아니까 그 부분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글리치는 어디 한번 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명백한 동의의 표시였다.
“그럼 제가 이쪽 오류를 열려고 시도해 볼 테니 오류가 뒤틀리거나 일그러지지 않고 적당한 문이 되어 끝까지 열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래.”
슈아아-
둘의 협력으로 순조롭게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 * *
한편 그 시각.
사람들이 몰려오는 줄은 까맣게 모르는 하빈. 그녀는 여전히 기절한 교주를 내버려 두고 새로운 방을 구경하고 있었다.
지하실의 옆벽이 부서지면서 드러난, 새로운 공간이었다.
“어어? 이건 뭐지?”
하빈이 벽 너머를 향해 발을 디디며 중얼거렸다. 벽 너머 지하 공간은 꽤 넓었다. 어찌나 넓은지 대형 카페 한 층 정도의 공간은 되어 보였다.
그곳에는 금고 몇 개와 서적, 장부들, 그리고…….
“이건 뭐지? 꽃인가?”
식물들을 가득 심어 놓은 공간이 있었다.
빛도 하나 없는데 용케 피어 있다 싶어 하빈은 신기하단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컨티뉴의 비밀 온실을 봤을 때와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재료 아이템들?’
아무래도 재료 아이템으로 쓰이는 작물 같았다. 하빈이 슬쩍 꽃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침 아이템 설명창이 그녀에게 떴다.
[이름 없는 창조물 - 넬카피시아 꽃의 복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