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홈 스윗 홈 (2)
띠릭, 띡. 띡. 띡. 띡-
집에 도착해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하빈을 보며 글리치는 흥미롭단 얼굴을 했다.
“이곳 인간들은 그런 방식으로 침입자를 막는 건가?”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주술도 아니고 아이템도 아니다. 그런데 정해진 암호를 입력하면 열리는 문이라니.
신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에휴, 매너 좀. 그렇게 뚫어져라 남의 집 비번 보면 안 된다구.”
하빈은 글리치가 볼 수 없게 몸과 손으로 가려가며 열심히 비번을 눌렀다. 아헤자르가 찔리는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어, 어떡하느냐. 난 이미 다 봤다만?]
‘뭐어? 알아서 눈을 가렸어야지. 하여튼 성좌들은 매너가 없다니까?’
남의 집 비번 보지 말란 말이다!
그래도 나름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아헤자르는 재깍 사과를 했다.
[이, 잊어버리도록 하겠다. 못 잊는다면 무덤까지 비밀로 가져가마!]
아헤자르의 사과에 하빈이 어깨를 으쓱였다.
“흐음, 그럼 인정이지. 어디 가서 우리 집 비번 불었다간 정말 가만 안 둘 줄 알아!”
“…….”
‘역시 거주지에 대한 경계는 어딜 가나 비슷하군.’
마신 글리치 또한 마왕성에 본인만 출입할 수 있는 마신의 문을 따로 만들었을 정도니 그 마음을 이해했다. 그걸 처음으로 박살 내고 들어온 게 현하빈이었다는 점은 넘어가기로 하자.
‘하지만 이건 비밀번호를 모른다 해도 그냥 열고 들어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데…….’
글리치는 의아한 표정으로 현관문을 흘깃 쳐다보았다. 단단한 철판 하나로 막아둔 문. 옆을 보니 다른 집들도 이런 식으로 방비를 하는 모양인데.
‘이걸로 방비가 되긴 하는 건가?’
“뭐 해. 빨리 안 들어오고? 계속 밖에 서 있을 거야?”
“…….”
이 세계는 글리치가 그동안 겪은 곳이랑은 좀 많이 다른 것 같다.
아무래도 그렇다고 생각하며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 * *
“이제 스파이 한 놈이 잘렸으니 다음은 어떡하면 좋을까.”
한편 그 시각. 마이너 패치의 에라타는 심기가 불편한 듯 책상 앞에 앉아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기껏 스파이를 붙여 놓았더니만 얼마 안 가 붙잡히기나 하고.
“또 스파이를 보내기엔…… 수상할 텐데.”
학교에 연달아 전학생이 계속 들어가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하다. 게다가 이미 한 번 걸렸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울림국제고와 SPES, 한국 측에서 이중 삼중으로 신경을 많이 쓸 것이다.
“흐응, 그렇다고 해서 빈틈이 없을 줄 알아?”
누구든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녀석은 없기 마련. 그것처럼 약점이나 구멍도 캐다 보면 보이는 게 세상의 이치다. 에라타는 그동안 수많은 조직과 적들의 약점을 찾아내 쓰러뜨려가며 여기까지 왔다.
“그래, 한 녀석에게 여러 일을 맡긴 게 잘못이었는지도 몰라.”
스파이 하나에게 울림국제고의 동태와 현하빈의 감시, 강태서의 감시, 피데스의 감시까지 맡겼다. 아무리 울림국제고 내에 스파이를 심기 어렵다 해도, 한 놈에게 그렇게 많은 임무를 맡기는 건 안 되었다.
“차라리 각개격파를 하는 게 낫지.”
따로따로 각각의 방법을 쓰는 것이다.
“어디 보자, 강태서에 대한 감시는 그냥 칼리고 측에 눈과 귀를 더 붙이는 걸로 넘기고, 울림국제고 쪽은…….”
울림국제고의 경우 안 그래도 온갖 언론사들이 정보를 빼내고 싶어서 혈안이라고 들었다. 그쪽에 눈과 귀를 보내 겸사겸사 정보를 얻다 보면 걸릴 위험도 줄겠지.
“피데스야 뭐, 항상 꾸준히 감시하고 있으니 제끼고.”
어차피 백리다에게 피데스를 감시하란 명령을 내렸던 건 ‘강태서가 아닌 피데스를 감시한다’라는 인상을 더 주기 위한 블러핑일 뿐이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현하빈에 대해서는…….”
현하빈.
아무것도 아닌 F급 학생이라지만 계속해서 마음에 걸린다. 채남매와 강태서, 심지어 코니하고까지 친분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인물.
‘얼핏 보면 인맥 말고는 별 볼 일 없는 녀석 같지만.’
아니 땐 굴뚝에 왜 연기가 나겠는가. 그녀에게 무언가 중요한 정보든, 능력이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 사람들이 꼬이는 거겠지. 에라타는 언제나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그 직감 덕분에 몇 번이나 목숨을 건지고 여기까지 왔다.
“게다가 도박장에서의 그 여자도 분명 얘랑 닮았단 말이야?”
에라타가 폰으로 현하빈의 사진과 당시 CCTV 캡쳐 사진을 이리저리 비교해 가며 흐응, 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강태서 눈에는 하나도 안 닮았나?”
당시 CCTV를 보며 ‘모른다’고 대답한 강태서. 워낙 귀찮음이 까칠하고 성질이 더러우니 이번에도 에라타의 속이나 긁으려 제대로 확인도 안 해보고 대충 넘겨버린 걸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로 닮았는데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같은 한국인이다 보니 보이는 디테일이 좀 더 다른가? 아니면 별 정보가 아니라 생각해서?
“……그럴 리가.”
그러고 보니 번뜩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는 추측이 있었다. 에라타가 형형한 눈빛으로 스윽 화면을 훑었다.
“이제 보니 그냥 강태서가 또 날 놀린 거 같은데……?”
강태서가 울림국제고에 갑자기 가겠다고 한 것도. 거기 현하빈이 있었던 것도. 우연의 일치라기엔 느낌이 쎄했다.
“어쩌면 강태서, 이미 다 알고 지가 가겠다고 한 거 아냐?!”
이제 알 것 같았다. 강태서는 일부러 에라타와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홀로 알아내려 한 게 틀림없었다.
‘일부러 사진 보고 물었을 때 아무 내색 없이 넘기고, 내가 직접 전화 걸었을 때도 아무것도 아닌 척하면서!’
혼자 먼저 조사해 내려던 거였나?
기만의 수호자를 조사하라는 명령은 관리자가 에라타에게 총 책임을 맡긴 퀘스트다. 그런데 에라타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고 홀로 먼저 조사해서, 관리자님에게 전달하려던 속셈인가?
그럼 이번에도 강태서는 관리자의 신임을 얻고…… 에라타는 최악의 경우 폐기되겠지.
“하, 강태서 개X끼가 이번에도 날 제끼려고.”
그렇게 어이없게 공적을 뺏길 수는 없지.
에라타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에라타가 상정한 최악의 가정이었지만 그녀의 경험상 언제나 최악을 가정해야만 제대로 일이 풀렸다.
‘현하빈, 이 녀석을 조사하자.’
파다 보면 무언가가 나올 것이다. 안 나와도 나쁠 건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제 학교로 잠입해서 정보를 캐내는 건 물 건너갔고…….’
대놓고 하빈과 같은 반에 투입시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으니 이제 SPES 측에서도 현하빈의 보호에 신경을 쓸지도 모른다. 게다가 현하빈은 채남매나 코니의 비호까지 받고 있다.
‘접근하기가 꽤 어려운데.’
하지만 그녀는 에라타였다. 어떤 순간에도 빈틈과 허점을 찾아내 끝내 상대를 무너뜨리는 마이너 패치의 수장, 에라타.
‘털다 보면 뭐라도 나오지.’
이를테면, 가족이라던가.
에라타가 꿍꿍이 있는 웃음을 지으며 현하빈에 대한 서류를 팔락 넘겼다. 다음 장에는 현시우에 대한 인적 사항이 적혀 있었다.
“얘도 가족이 있네?”
현하빈을 조사하기 힘들다면 주변 인물인 가족이라도 털어 봐야지.
그럼 뭐라도 나오지 않겠는가?
* * *
[지금 집에 간다고? 이 상황에?]
‘……역시 안 되겠죠?’
현시우가 끄응, 하고 곤란한 낯을 했다.
지금은 시기가 안 좋았다.
마이너 패치가 현하빈을 감시하려고 했다는 걸 방금 알아버렸다. 그리고 그 말은, 현시우 또한 하빈의 가족으로서 감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
자칫 잘못하면 ‘현시우’가 마이너 패치에 엮이게 될 것이고, 최악의 경우 현시우=피데스라는 것을 마이너 패치가 알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은 몸을 조금 사리는 게 낫다.
“마이너 패치의 동태를 좀 살펴보고, 잠잠해졌다 싶을 때 집에 들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집에 가면 듣는 건 현하빈의 잔소리, 그리고 1억을 뜯겨가지고 올 텐데. 게다가 현하빈은 백 억을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현시우를 조금 어려워하는 듯하다. 굳이 어색한 지금 이 타이밍에 가야 할까?
현시우는 고개를 돌려 이번에 선물 받은 포켓파이를 만지작거렸다. 지난번 솔라리스의 ‘던전 안에서 와이파이 터지게 하는 신기술’ 시연회 때 받은 것이었다. 당시 현시우도 참석해 피데스로서 축사도 몇 마디 해주고 관련 비즈니스를 논의했지.
[이게 그렇게 대단한 거냐?]
“……대단하죠.”
던전 안에서도 통신이 이어지니까 갑자기 던전에 휘말린 일반인들이 외부에 더 상세한 구조 요청을 보내는 게 가능해졌다. 그리고 무인 탐사기를 미리 보내 정찰하는 것도 가능하다.
요즘은 무인 탐사기를 보내는 것보다 미리 직접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조금 덜한 장점이긴 하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제 기억에 따르면 이걸로 인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리거든요.”
[새로운 패러다임?]
“그, 뭐라고 해야 할까요? 대방송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1회차 때의 일이었다.
던전 내로 통신이 되기 시작하자, 던전 안에 드론을 날려서 라이브로 송출하는 콘텐츠가 인기를 끌었다.
예전에도 던전 내의 영상 촬영은 분명 있었지만 그때는 직접 내부에 들어가 녹화를 다 한 다음 그 기록을 가지고 나중에 편집해서 송출하는 방식이었다. 내부에서 인터넷이 안 되니, 라이브 촬영은 안 되는 것이다.
게다가 던전 안에 날려 보낸 드론을 조종하려면 직접 조종자 본인도 들어가서 해야 한다. 통신이 끊기면 안 되니까. 그렇다고 자동 비행 드론을 날리자니 몬스터 습격에 홀로 대응하는 건 자동 비행으로 한참 무리가 있었다.
결국 무사히 멀쩡하게 살아남는 것도 기적이었던지라 드론을 여러 개 날리고도 데이터가 모두 파손되어 눈물을 삼키는 방송 제작가들도 많았다.
하지만 포켓파이 개발 이후부터는.
일반인들도 마구마구 아이템을 바른 강화 드론을 던전 안에 날려서 실시간 던전 방송을 시작한다. 어차피 실시간이니까 중간에 드론이 죽기 전까지는 무조건 방송이 된다. 데이터가 사라지거나 소실될 일도 없다.
무엇보다, 던전 안에 직접 들어가지 않아도 통신이 되니까 외부에서 안전하게 조종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수많은 일반인들도 던전 드론으로 방송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현시우가 당시의 시대 흐름을 회상하던 순간이었다.
까똑.
까똑까똑.
갑자기 그의 폰에 카톡 알림이 왔다.
“뭐지?”
현시우는 천천히 폰 화면을 확인했다.
도른자
오빠
오ᄈᆞ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