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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162) (162/268)

162. 홈 스윗 홈 (1)

왜 기숙사에서 함께 나왔냐니.

아마 글리치와 함께 쫓겨난 연유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기숙사 측에서도 하빈이 외부인을 들여 벌점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컨티뉴 측에 실수로 전달한 모양이고.

‘이런. 이러면 내 이미지가 안 좋아지겠어!’

허구한 날 기숙사의 규칙을 어기고 벌점이나 받는 한량으로 보이는 건 사양이었다.

비록 지금은 백 억이 털려 VIP급의 구매를 할 수 없는 하빈이지만, 나중에 백 억을 되찾고 나면 코니와 계속 좋은 거래처로 남아야 할 테니까 말이다.

이래 봬도 하빈은 꽤 코니에게 이미지 관리를 많이 하며 살아왔다. 학교에서 땡땡이치고 다니는 것도 편지에 안 적고, 서윤과 함께하는 즐거운 스쿨 라이프만 작성하며 이미지를 좋게 만들었는데.

‘그걸 이제 와 무너뜨릴 수는 없지!’

하빈은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그건, 오해하지 마시고!”

하빈이 홱 글리치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자, 선배님. 이쪽에 집 있어?”

“아니.”

“돈 있어?”

“……아니.”

‘하, 이거 봐. 역시 성좌는 돈과 집이 없지!’

내가 진짜 이럴 줄 알았다니까? 성좌인 놈들 중에 돈이랑 집 가진 놈을 본 적이 없어요. 주민등록증도 없고.

“…….”

[…….]

하빈이 어깨를 으쓱하며 코니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어쨌든 잘 곳 없는 불쌍한 성좌를 도와주려던 하빈. 그녀에겐 잘못이 없다! 하빈은 그 점을 어필했다.

“네. 예전에 알던 선배인데 마침 집도 돈도 없어서 당장 오늘 밤 잘 곳이 없다고 해서요. 사람은 밖에서 자면 입 돌아가서 얼어 죽잖아요?”

“그 정도인가?”

반문하는 글리치, 그리고.

“그, 그렇긴 하지요.”

수긍하는 코니.

“거봐요!”

하빈이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마신인 글리치가 얼어죽는 건 상상이 안 되지만.

“잘 곳 없는 선배를, 제가 그래도 아량 넓은 후배로서 좀 챙겨 주려고 했었죠.”

하빈의 따뜻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코니는 완전히 기분이 풀리지 않은 모양. 코니가 여전히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질문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방에 함부로 외간 남자를 들이는 건 좀…….”

하빈이 냉큼 대답했다.

“물론 이야기만 듣고 바로 쫓아내려고 했었어요!”

“……쫓아내려 했었다고?”

이번에 끼어든 건 코니가 아니었다. 글리치가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날, 쫓아내려 했어?!”

지금 소환한 게 누군데. 불러 놓고 멋대로 길바닥에 쫓아낼 생각이었냐?

아무리 봐도 그렇게 적힌 얼굴이었다. 하빈이 고개를 돌려 딴청을 피웠다.

“뭐…… 내 본가도 있고, 근처에 돈 내면 잘 수 있는 다른 숙소들도 있고. 거기 재우려고 했다구.”

“그렇지만 하빈 양.”

코니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이제 매서웠던 표정을 풀고 안타깝다는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최근에 많은 돈을 잃었다 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지인을 도우려 한 건가요?”

어딘가 감동 받은 듯 살짝 촉촉해진 눈가의 코니. 그녀는 이제 하빈에게 새로운 오해를 하고 있었다.

‘힘든 일을 겪은 와중에도 제 사람에 대한 의리를 먼저 챙기는군.’

하루아침에 백 억을 잃어도 누군가 잘 곳이 없어 도와 달라고 하면 선뜻 방법을 찾아보는 마음이 따뜻한 아이.

코니는 이미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마침 그녀의 시선이 하빈이 지니고 있는 아헤자르를 향했다.

코니가 열심히 만든 검집에 고이 모셔져 있는 아헤자르. 그걸 본 코니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무엇보다, 금전적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내 검집을 팔지 않았군요.”

“……!”

[……!]

뜨끔.

[사실 팔까 고민하지 않았느냐?]

‘쉿, 내가 언제? 조용히 하자, 잘잘아!’

최악의 경우 팔아야 하나 고민했던 코니의 검집. 하빈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능청스러운 태도로 대답했다.

“하하, 당연하죠! 할머니의 소중한 검집을 제가 어떻게 팔겠어요?”

“그래도…….”

“이건 작품이에요, 작품.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가 없는! 흠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코니는 어느새 감동한 표정으로 기특하다는 듯 하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아이템이 작품으로 평가되는 것도 퍽 기쁜 모양이었다. 하빈은 이참에 그동안 말하고 싶은 것들을 전했다.

“아, 그리고 저번에 주셨던 별꽃뿌리의 가루도 정말 잘 썼어요. 감사해요.”

던전에서 썼지만 말이다. 덕분에 보스를 더 빨리 찾을 수 있었다. 하빈은 그 말을 삼키고 대신 서윤과 있었던 사용 경험으로 말을 돌렸다.

“서윤이도 예쁘다고 엄청 좋아했어요. 제가 키우는 도마뱀도 무척 좋아했고요.”

“후후, 그랬군요. 원래는 던전 내에서 길을 밝혀주는 용도로 개발하던 것이었는데 상당히 예쁘다는 장점이 있어서 혹여나 언젠가 대량생산을 하게 되면 이벤트용으로 쓰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생각했었죠. 우리 컨티뉴의 직원들도 처음 봤을 때 그 아름다움에 무척 감탄했답니다.”

사실 대량생산까지는 한참 멀었지만 말이다. 코니가 굳이 하빈에게 밝히지 않았지만 별꽃뿌리 가루는 길러내기 아주 어려운 재료였다. 만일 코니의 품종개량이 완료된다면 길을 찾아주는 아이템 중에서는 최고의 효과를 가진 아이템이 될 테니.

“길을 찾는 용도로 개량 중인데 완료되면 한 번 더 보내도록 하지요. 또, 다음에 언젠가 그게 필요해진다면 이야기해요.”

그 이후로도 몇 가지 안부의 이야기를 주고받게 된 그들. 하빈은 이번 기회를 틈타 확실하게 이야기했다.

“그래도, 학생들 앞에서 요란하게 부르시는 건 앞으로는 조금…….”

“자제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지요?”

“네에…….”

“하지만 이미 퍼질 대로 다 퍼진 소문인데 즐겨도 되지 않을까요?”

“네?”

코니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찻잔을 들어 표정을 숨겼다.

‘……놀랄 정도로 이 상황을 즐기지 않는군.’

보통의 이 나잇대 아이들이라면 갑자기 VIP 대우를 받거나 리무진과 경호원들이 난입해 아가씨 대우를 하면 좋아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저번에는 선물까지 딸려 보내지 않았던가.

코니가 그동안 보았던 사람들은 컨티뉴와 어떻게든 엮여 보려 애를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코니의 공방 컬렉션 소개 행사에 제발 참석하게 해달라고 떼를 쓰거나, 거기 초대되었다 하면 온갖 SNS에 도배를 하며 자랑을 하거나.

아이템 하나를 사도 그걸로 동네방네 자랑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하빈이 컨티뉴에서 첫 방문 때 보았던 동창 민수처럼 말이다.

혹은 코니와 말 한마디 섞은 것만으로도 코니와 친하다고 허세를 부리거나 그 이미지를 이용해 다른 사업에 이용하는 사람들.

그런 인간들을 수없이 봐 왔던 코니로서는 하빈의 태도가 의아하다 못해 신기했다.

‘조금은 더 좋아할 수도 있지 않나?’

저렇게 철저하게 혜택을 만류하고 이목을 끄는 걸 거부하다니. 그래도 감사 인사는 꼬박꼬박 하고 의리와 예의는 또 지킨다.

‘흠.’

채남매가 왜 이 아이와 친하게 지내는지 알 것도 같았다. 섣불리 권력과 재물욕에 흔들리지 않고, 허세도 없고.

물론 현하빈은 알차게 마이너 패치를 털어 백 억을 챙기겠다는 꿍꿍이가 있었지만 그건 코니가 알 수 없는 일. 코니가 보기에 하빈은 대단한 자였다.

‘보면 볼수록 참 됨됨이가 바른 아이야.’

게다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으니. 마침 옆에 앉은 글리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인간은, 또 거절을 하고 있군.’

마계를 양도하겠다고 했을 때 단칼에 거절했던 현하빈. 그 모습이 지금과 오버랩 되어 보여지는 듯했다. 당시 마계를 거절했던 것처럼 현하빈은 또 한 번 이 귀족 명문가(?)의 지원과 호의를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인간의 원래 성정인가?’

글리치는 다시 한번 현하빈이 마계를 떠맡지 않은 게 진심임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좋은 인간들이 주위에 있으면 마계가 탐나지 않을 만도 하지.’

그렇다고 정말 마계의 자원을 건드리지 않을 줄은 몰랐다. 물론 하빈은 백리다를 납치하고 추궁하는 데 마계의 감옥과 두 마왕을 쏠쏠하게 써먹고, 학생들 저주를 푸는 데 김릭샤를 알차게 부려먹었지만 글리치는 그걸 모르는 게 문제였다.

‘대단한 성정이군.’

‘대단한 아이야.’

그렇게 그날도 코니와 글리치는 나름대로의 오해를 하기 시작했다.

* * *

“하빈 양, 정말 여기 머물지 않을 건가요?”

“네. 오랜만에 집에도 돌아가 보려고요!”

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집에 돌아갈 때가 되었다. 저번에도 던전 때문에 휴교령이 내려진 적 있었지만, 그때 하빈은 지세 언니와 함께 킬스크린에 있는 특급호텔 ‘오버 더 스테이지’에서 숙박을 했다. 이번 외박 때는 백리다를 추궁하기 위해 채남매네 집에서 잤고 말이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겸사겸사 꼭 집에 가보자고!’

하빈의 경험상 집을 오래 비우는 건 안전상 좋지 않았다. 너무 오래 빈집으로 보이면 도둑들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도둑들은 며칠간 아파트에 불이 안 켜지면 그 집을 타깃으로 잡고 작업에 들어간다고들 한다.

‘절대 당할 수 없지!’

백 억 털린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집까지 털리면 억울해 죽을 것이다. 하빈은 그럼그럼,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코니가 자고 가라고 한 것도 고마웠지만, 그리고 지금 이 별장도 너무 멋진 곳이었지만…….

‘여기 마신을 재우는 것도 좀 그렇고 말이지.’

코니의 별장이다 보니 보는 눈도 너무 많다. 비록 방금의 대화 정도야 글리치가 능숙하게 넘어갔다지만 계속 지내다 보면 수상한 점이 드러나거나 글리치의 강대한 힘 때문에 의도치 않게 사고를 칠 수 있다.

그건 하빈으로서도 사양이었다.

“할머니, 그럼 다음에 또 뵙도록 할게요! 고마웠어요!”

그래서 하빈은 코니의 배웅을 받으며 그녀가 마련해 준 차량으로 편안하게 집에 들어가는 걸 선택했다.

* * *

“코니의 별장에 현하빈이?”

“네. 별장에 방문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다만 특이한 점이 하나 더 있는데…….”

“특이한 점?”

그 시각, 현시우는 하빈이 코니와 만났다는 이야기를 정보원에게 듣고 있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코니 정도의 거물과 만나는 일이었기에 정보원이 달려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컨티뉴의 인원들이 하빈을 모셔간 것도 기숙사 앞에서 떠들썩하게 벌어졌던 일이기 때문에 딱히 철저하게 감시하지 않아도 정보원으로서는 눈에 빤히 보이는 상황을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은발의 외국인과 함께 방문했다고…….”

“은발의 외국인이요?”

“네, 보통 인물은 아닌 것 같은데요. 듣자 하니 인물이 좀 출중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기숙사에 함께 있는 바람에 벌점도 받았다고.”

그 말에 현시우의 표정이 묘해졌다.

하빈의 인간관계 중에서 은발의 외국인은 없는데.

1회차까지 통틀어 봐도 없다.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인물인가?’

아.

바로 그 순간이었다. 현시우의 머릿속에 한순간 장면이 스쳤다.

‘이 개객기가!’

욕을 퍼부으며 은발의 마족에게 칼을 들이대던 현하빈.

‘왜…….’

왜 그 은발이 생각나는 거지?!

[그러게 말이다. 나도 어쩐지 그 장면이 생각나는데!]

어쩌면 ‘마신’으로까지도 추정되던 그 강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던 은발의 마족.

최근에 하빈과 접점이 있었다고 하면 그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현시우가 계속 침묵하고 있자 정보원이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그 은발을 데리고 본인 집으로 간다고 합니다. 기숙사 말고 본가요.”

“본가……?”

그 말에 비로소 현시우는 번뜩 고개를 들었다.

그럼 우리 집이잖아?

현남매의 집. 거기에 현시우의 허락도 없이 마신을 떡하니 데려온다고?!

‘저, 집에 가 봐야겠습니다. 네아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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