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외박 사유는 신중히 적어야 합니다 (2)
“뭐? 스파이가 잡혔다고?”
벌써?
에라타는 의자에서 튕겨져 일어설 뻔한 것을 겨우 억누르며 물었다.
“……어느 쪽이 잡은 거야?”
마이너 패치와 적대하는 기관은 한둘이 아니었다.
‘거기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니.’
다른 나라라면 모를까, 한국은 마음에 걸리는 기관이 참 많았다. 한국의 각성자관리국, 국정원, 군과 경찰까지도 마이너 패치를 잡으러 다니니까.
‘정말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치안이 좋은 나라야.’
범죄로 돈을 버는 마이너 패치의 입장에서 한국은 별로 좋은 먹잇감이 못 됐다.
‘드는 노력에 비해 가성비가 안 좋은 나라지.’
경찰, 검찰, 각성자관리국, 국정원…… 거기다 민간 길드까지도 선뜻 범죄자 체포에 도움을 준다.
게다가 한국의 치안은 단순히 무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냉정하게 말해 헌터 보유 숫자로 따지자면 한국이 꼭 특출 난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그 밑에 깔린 문화적 기반과 시스템이 달랐다.
‘각성자가 아니라도 범죄자는 잡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비각성자인 사람들도 수사관, 프로파일러로서 활약하기 때문이었다.
‘요즘 경찰대학이랑 각성자관리국에서는 비각성자와 각성자 전형을 따로 뽑는다지?’
각성자는 각성자대로 현장에서 범죄자를 잡는 역할에 기여하고 비각성자는 적극적인 아이템 활용과 과학수사, 범죄학, 전술 등을 공부하여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법들을 익힌다.
도처에 깔린 CCTV나 혈흔과 DNA를 분석하는 과학수사 등 게이트 시대 이전의 유물들도 완전히 그 기능을 상실한 게 아니었다. 개인 대 개인으로 싸웠으면 졌을 각성자 대 비각성자의 싸움이지만, 지략이 들어가고 팀전으로 변모하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각성자와 비각성자가 서로 공조해서 각자의 분야에서 힘을 합친다면, 마이너 패치로서도 그걸 상대하기 버거워지는 것이다.
게다가 국가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도 한몫했다. 게이트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높은 치안과 낮은 범죄율을 기록했던 나라였기 때문에 사태 직후에도 사람들의 태도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도 무시 못 한다. ‘아무리 던전이 생기고 초능력이 생겼어도 도의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안 되지.’, ‘오히려 이럴수록 더 뭉쳐야 해.’라는 여론이 우세했으며, 꽤 많은 사람들이 그에 동조했다.
곧이어 피데스가 나타나 그 주장에 힘을 실으며 전 세계적인 평화를 불러왔지만 그전에도 한국의 기조는 비슷했다는 것이다.
그 뿐인가? 헌터물 장르의 모국이라는 독보적인 지위 덕분에 외교적·경제적으로도 가장 빠르게 안정을 찾은 국가였기도 했다. 그걸 바탕으로 치안이 더 강화되었으니 마이너 패치에겐 역시나 악재였다.
‘여러모로, 골 때릴 정도로 굉장히 운이 좋은 나라였지.’
에라타는 그렇게 평했다. 이런 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를 바엔 차라리 다른 나라에서 크게 한탕을 하는 게 나았다. 이번 한국은행을 턴 일이 그들 입장에선 이례적인 일일 정도.
그나마 강태서가 한국에서 버티고 있는 덕분에 사도들의 면이 서는 것이다.
‘흠, 지금 생각하면 강태서 그 녀석도 그래서 위선자로 노선을 정한 건가?’
괜히 어렵게 빌런 짓 하지 말고 스파이 노릇이나 제대로 하면서 꿀 빨겠단 노선일지도. 에라타로서 인정하기 싫지만 그게 한국에서 살아남기로서는 꽤 괜찮은 방법 중 하나였을 거다.
에라타는 부하를 향해 신경질적으로 재차 물었다.
“그래서, 스파이를 잡은 데가 어딘데? 경찰? 국정원? 각성자관리국?”
그러나 들려온 대답은 셋 다 아니었다.
“듣기로 SPES에서 스파이의 신변을 확보했다고…….”
“역시 피데스인가.”
하긴 교장으로 학교에 근무하고 있었으니 가장 먼저 이상을 눈치챌 법했다. 평소에도 피데스는 마이너 패치에 한해서만큼은 보통 촉이 아니기도 했으니까.
“저번 테러 때도 어떻게 알았는지 솔라리스를 보내고, 이번 던전도 어떻게 알았는지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단번에 공략해 버리고.”
이젠 스파이까지 보내자마자 바로 사로잡아버려?
“……하, 뭐 저런 괴물이 다 있어?”
이게 말이 되나? 관리자님은 대체 어떻게 이런 놈을 상대하란 거지?
에라타는 짜증을 삼키며 머리칼을 헤집었다.
“그런 피데스가 기만의 수호자가 아니면, 대체 누가 기만의 수호자란 거야?”
맨 처음, 에라타는 피데스야말로 관리자가 눈에 불을 켜고 찾는 ‘기만의 수호자’가 아닌가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압도적인 강함에 예지 수준의 대응, 거기다 관리자를 적대한다는 점까지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관리자에게 그렇게 말했다가 된통 깨지기만 했다.
‘그 녀석은 아니야! 내가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플레이어란 말이다.’
“인식할 수 있는 플레이어……?”
그러니까 ‘기만의 수호자’는 관리자 본인도 인식하지 못하는 오류 같은 존재인 거겠지.
“제발 약했으면 좋겠는데.”
게임에서 오류가 나타나면 그건 두 가지다. 불안정하고 약하거나, 아니면 ‘버그’ ‘핵’ 같은 압도적인 강함이거나.
‘설마 피데스보다 강하지는 않겠지……?’
제발 아니어야 할 텐데 말이다.
* * *
‘종말교.’
그들이 믿는 마신은 딱 봐도 하빈이 알고 있는 ‘마신’이랑 달랐다.
‘어둠과 피로 물든 밤, 마신이 나타나 세계를 멸망시킬 것이다!’라는 교리를 가지고 사람들을 현혹하는 종교. 자기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종말이 와도 안 죽고 살아남을 거라고 주장하는, 아주 흔하디흔한 종말론 사이비였다.
그림 그려놓은 것만 봐도 무슨 마신을/,/ 천하의 몹쓸 고어물 쓰레기 악당처럼 그려놓았다.
“오우.”
이거, 꼰대 선배가 보면 상처받겠네.
-삐?
“어허! 보면 안 돼. 이건 지지야.‘
하빈은 기웃기웃 고개를 들이미는 리베의 눈을 가렸다.
“아니 이 사람들이 진짜. 원래 타인을 묘사할 땐 예쁘게 포토샵도 해주고 좀 적당히 이미지를 좋게 해줘야 하는 거 아냐?”
뭘 이렇게 괴물처럼 그려놨대?
[그야 종말교에서는 마신이 세상을 멸망시킬 악당이니 끔찍하게 묘사해야 그들 교리에 맞…….]
‘아니, 근데 꼭 악역은 무조건 못생겨야 하냐고?’
[잘생기면 오히려 마신을 믿으려고 할 테니 사이비 입장에서 곤란해지지 않겠느냐?]
‘헉, 잘잘이가 어떻게 이렇게 예리한 추측을?’
[커흠, 나도 카카페 댓글창을 많이 보았느니라. 잘생기면 악역이어도 팬이 붙는다.]
사이비 입장에서는 신도들이 빠져나가면 그게 모두 금전적 손실이 된다. 무시무시한 마신의 그림으로 사람들을 위협하고 공포를 조장해야 교인들이 뭉칠 것.
“하, 그렇다고 이렇게 끔찍하게 그려놓으면 어떡해?”
하빈이 쳐다보기만 해도 징그러운 마신 그림을 콕콕 찔렀다. 안 그래도 마신은 맵찔이에 마음 약해 보이던 꼰대던데, 이거 보고 기겁하는 거 아냐?
물론 마신은 전혀 멘탈이 약하지 않았지만 어디까지나 하빈이 본 마신의 이미지는 라면 먹고 당황하던 맵찔이에 불과했다.
“담에 보여주면서 설명하려고 했는데…… 뭐 알아서 본인 멘탈 관리하겠지.”
오히려 그림 보고 빡쳐서 같이 쳐들어가자고 할지도?
[같이 쳐들어갈 것이냐?]
“…….”
[아까도 마신을 소환해 볼까 하더니만.]
“흐음.”
하빈은 베게에 머리를 기대고 누웠다. 이번 스파이를 잡는 데는 솔라리스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거야 합법적이고 뒤탈이 없을 만한 일이라 가능했던 것이고.
이번 사이비를 터는 일은 솔라리스와 엮여서는 안 될 것이다. 하더라도 현하빈 단독, 익명으로 해야 깔끔하다. 만에 하나 채남매의 도움을 받았다가 사이비 측에서 그걸 알게 되면 마이너 패치와 관계없는 다른 종말교도 모두 우루루 솔라리스를 적대하게 될 테니.
‘종말교도 여러 지파가 있더란 말이지.’
종말을 믿는 사이비도 여러 종류가 있다.
조용히 종말을 기다리는 온건파.
강경하게 세력을 확장하는 강경파.
이미 여러 사고를 쳐서 신문에도 난 막장파.
수많은 지파만큼 교주도 여러 명이고 전 세계적으로 여러 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번역 아이템이 생긴 뒤로 국제적으로 포교를 한다더라.
지금 하빈이 털까 고민하는 마이너 패치 산하 ‘종말교’도 다른 나라에 국적을 두고 있었다. 하빈이 눈을 가늘게 뜨고 보고서를 읽었다.
“……여기 이 나라가 뭐지? 꾸껠울라칸?”
꾸껠울라칸은 게이트 사태 이후 새로 생긴 나라로. 무법지대에 가까운 나라였다. 자금 세탁을 위해 그쪽에 본부를 둔 모양이었다.
“에엥, 꾸껠울라칸은 가는 데 비용이 들 텐데.”
비행기표 끊기도 아까운걸.
“뛰어가야 하나?”
하빈의 중얼거림에 조용히 숙제를 하고 있던 서윤이 고개를 들었다.
“어, 언니? 꾸껠울라칸까지 뛰어 간다고?”
“응?”
“거기 엄청 먼데…….”
대략 비행기로 네 시간은 걸리는 거리. 서윤의 걱정스러운 눈길에 하빈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안 뛰어가. 달리기가 얼마나 귀찮은데? 바다도 건너야 할 거 아냐?”
물론 이공간 진입을 쓰면 쉽게 뛰어갈 수 있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줄창 뛰는 것도 할 짓은 아니다. 하빈의 도리질에 서윤이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나도 다 생각이 있다구. 갈 방법이 있지.’
[그게 무엇이냐?]
‘꼰대 부려먹기.’
마신이면 순간이동쯤 대충 잘 쓸 수 있겠지? 하빈이 반지를 빙글 돌리며 꿍꿍이 있는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어떻게 소환한담?”
그러고 보니 소환이 문제였다. 성좌 계약할 때 하빈은 분명 이런 설명을 보았다.
[제2 성좌: 글리치]
멸망한 첫 번째 세계, 아우라이던, 그중에서도 인간계가 아닌 마계를 관할했던 마신.
알려진 정보가 극히 적다.
[특성]
마신의 경이(글리치가 가진 마법 계열 스킬을 불러와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선학의 의리(글리치의 동의하에, 원하는 장소에 글리치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